마지막 총탄 02
#
“하! 이제 좀 살 것 같네. 원래 나도 담배 잘 안 피잖아? 근데 어떡하냐. 힘들어 죽겠는데.”
“야! 박대규! 말 돌리지 말고. 그래서 조은하 선배가 뭐?”
내가 다시 따지듯 묻자, 박대규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제삼자로서 봤을 때, 내 결론이 뭐냐면··· 조은하 선배··· 너 좋아하는 거 같다!”
에에??
나는 경악하면서 녀석을 노려봤다.
“이씨!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다 보니, 그래서 목소리가 커진 거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 곰곰이 생각해 봐. 그런 거 당사자들이 더 잘 알잖아? 연하남 좋아하는 여자들 많아진 거 몰라?”
뭐? 나를 좋아한다고?
나는 계속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회귀 전과 현재를 돌이켜봐도 우린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니다.
조은하 선배가 응급실 레지던트 과정을 마칠 때까지 우린 동선이 서로 겹쳤을 뿐, 이후 특별히 만난 적도 없다.
단지, 아주 긴 시간 끝에 이렇듯 회귀를 통해, 다시금 여기서 만나게 된 것뿐이다.
“그런 거 아냐? 음, 내 감이 틀린 적이 없는데. 넌 진짜 모르겠냐?”
박대규는 확인하듯 다시 물었고.
내가 계속 난색을 표하자, 녀석은 담배만 뻐금뻐금 피워댄다.
아님 말고, 딱 그런 표정이었다.
#
“···그럼 너희 병동, 앞으로 더 힘들어지겠네?”
잠시 후, 다시 그 화제로 돌아갔는데.
그러자 박대규는 그때부터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역시 원흉은 새로 부임한 남윤성 교수!
한국대 의대 출신에 그곳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거친 뒤 군의관 제대를 했으며.
펠로우 2년을 마친 뒤, 성국대 의대 조교수로 발령받아 일반외과에 합류했다.
그런데 그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대 의대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을 때, 그 밑에 있던 후배들은 아직도 이를 간다고 하니.
물론, 일반외과 교수님들은 병동 운영이 훨씬 더 잘 되고 있어 좋아하지만.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지금 고역이라고 한다.
사실, 흉부외과 사정만큼이나 일반외과 쪽도 사정이 좋지 못한데.
지랄 맞은 젊은 교수까지 나타난 터라 모든 일상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
“혹시, 누구 맞은 적은 있어?”
“당연히 있지! 시도 때도 없어. 수시로 뒤통수를 후려쳐. 존나 기분 나쁘게. 근데 그게 애매해. 장난처럼 손을 멈춰서. 시발!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나서는 것도 좀 그래.”
“대체 왜 그런대? 살살 꼬셔도 잘 안 가는 곳인데···.”
“그러니까 이런 말도 나온다니까. 남윤성 그 새끼, 한국대에서 보낸 가미카제라고.”
“가미카제?”
절대 어감이 좋지 못하다.
일본식 표현이니까.
“존나 쑤시고 사람 개병신 만들고. 지랄같이 다 같이 죽자는 거잖아. 앞으로 레지던트 수급 끊기면 자기도 어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하!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갑자기 문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신경외과 쪽도 교수들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고.
일반외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흉부외과가 사람살 만한 곳인가.
에휴.
또 그것도 아니지.
흉부외과의 살인적인 수술 스케쥴을 생각한다면 이런 근심을 안고 있는 박대규가 오히려 행복한 것인가.
고작 며칠 밤, 수면 시간이 좀 짧아졌다고 저러는 건데.
최근 흉부외과 사정은 거의 살인적이다.
#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박대규는 툭툭 치며 담뱃재를 모두 털어낸 뒤 담뱃불을 껐다. 캔커피도 모조리 마셨다.
“그만 가자. 방법이 어디 있냐? 교수가 지랄하는 건데.”
그래, 방법이 없다. 단체 행동을 하려면 뭔가 더 큰 게 있어야 한다.
아주 애매하고, 아주 교묘하게, 아주 계획적으로.
남윤성 교수가 지금 그렇게 지랄을 한다는 말이다.
“참, 이거 조은하 선배한테 갖다 줘야 하는데, 바로 갖다 주고 올게.”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응급실로 뛰어갔고.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응급실 스테이션 쪽.
그곳에 잔뜩 모여 있는 경찰관들을 보고서 나는 잠시 멈춰 서고 말았다.
<68>
왜 이렇게 경찰들이 많지?
의아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
이때, 다시금 조은하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녀의 두 눈이 약간 커지는 게 내 시야에 잡혔는데.
박대규의 말 때문에 나는 그런 조은하 선배를 유심히 쳐다봤다.
한편, 그녀는 양손을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고서 나한테 다가왔다.
“다 폈어?”
날 빤히 쳐다보다가 손을 내미는 그녀.
정신을 차린 나는 허겁지겁 담배와 라이터를 그녀에게 넘겼다.
“잘 썼습니다. 담에 갚을게요.”
“그럼, 커피 한 잔 사. 캔커피 말고.”
캔커피 말고?
······뭘?
에이씨! 모르겠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이때, 좀 어색해져 나는 바로 화제를 바꿨다.
“선배님! 근데 경찰관들은 왜 이렇게 많아요?”
그러자 고개를 돌려 응급실 스테이션 쪽을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수술 들어갔다며? 서 교수님 수술.”
그럼 혹시 그 이성훈 환자 때문에?
“맞아. 그 이성훈 환자.”
“혹시 그 사건과 관련해서, 경찰관들이 많이 다쳤습니까?”
응급실 베드 위에 누워있는 경찰관들을 눈짓하며 내가 묻자, 그녀는 간단히 대답했다.
“심하진 않아. 허벅지 한 방, 정강이 한 방, 어깨 한 방.”
베드에 각각 누워있는 세 명의 경찰관들.
그렇게 각각 한 발씩 총상을 입은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 아세요?”
내가 다시 묻자, 그녀는 말할까 말까 좀 망설이다가.
날 슬쩍 올려다보며 손짓했다.
그래서 우리는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겠고. 대충 들었어. 우연히 범인과 싸우다가 그 환자는 그리됐대. 경찰이 출동하자 범인은 사라졌고···. 저 경찰관들은 뒤쫓다가 저리된 거고. 범인은 아직 안 잡혔고···.”
대한민국은 총기 사고가 흔치 않다.
그럼에도 사제총기류에 의한 피격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것도 바로 그런 사건인 듯.
그나마 다행인 점은 좀 전에 수술이 끝난 이성훈 환자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그가 다량의 출혈을 했음에도 쇼크사로 사망하지 않은 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뭔가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서철성 교수님이 언급했던, 마지막 탄환!
경찰이 나타난 터라 범인이 서둘러 달아나야 할 상황이었다면, 왜 구태여 확인사살까지 감행했을까.
갑자기 끼어든 이성훈씨를 이미 제압했다면, 구태여 잔인한 확인사살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어쨌든 간단히 사정 이야기를 듣고 응급실에서 바로 나온 나는 후다닥 뛰어갔으나.
박대규 그 녀석은 더 기다리지 않은 듯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할 수 없이 본관 1층을 혼자서 가로질러 갔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을 때.
바깥에선 다시금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섰고.
나는 즉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또 무슨 일일까.
그러나 성급할 건 없다.
응급실에서 뭔가 큰 이슈가 있으면 반드시 흉부외과 스테이션으로 콜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8층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수술일지 작성을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대략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바로 옆 스테이션 전화기가 아주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조치하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응급실에서 들어온 콜이다.
앞서 1층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냈던 그 앰뷸런스에 실려 온 환자일까.
레지던트 1년차 김보영의 응급 콜 전화였고.
현재 환자는 바이탈이 좋지 못하며 출혈 등이 아주 심각하다고 한다.
이송 직후 어레스트(심정지)가 발생해 심폐소생술(CPR)를 진행했다고 한다.
흉부 CT 결과, 흉부 압박 손상으로 인한 대동맥 내막 파열 증상이 관찰되었다고 하고.
심전도 및 심장 초음파 결과, 심장 일부 파열로 인한 카디악 탐폰(심장 압전) 소견도 떴다고 한다.
나는 즉시 주위를 살폈다.
응급 콜에 대해 즉각 보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
다들 바쁘다.
사실, 성국대 흉부외과는 다른 병원들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교수 숫자가 충분하고, 펠로우 숫자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먼저, 나는 김재호 선배 등의 현재 스케쥴을 확인했고.
할 수 없이 오늘의 야간 당직 교수인 홍진훈 교수님한테 직접 전화했다.
그러고는 서둘렀다.
#
잠시 후, 황급히 뛰어서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응급실 바깥이 유난히 환했다.
그 빛 때문에 응급실 앞쪽 반투명한 대형 유리창을 통해 바깥 풍경이 조금씩 보였는데.
방송사 기자들, 각 일간지 기자들 외에도 경찰관들이 물샐틈없이 배치되어 있었고.
경찰특공대 특유의 완전무장한 상태인 이들이 그 옆을 지나가는 게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응급실 내, 예리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 딱 보면 알 것 같은 사복 경찰관들인 형사들도 여럿 보였다.
한편, 그들은 40대 중반 나이로 짐작되는 어느 남자가 다가서자 칼같이 경례했고.
눈빛이 딱딱해진 중년 남자는 쉴 새 없이 한숨을 내쉬며 베드 위, 피투성이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
“왔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조은하 선배다.
그런데 그녀의 의사 가운 여기저기에 붉은 혈흔이 가득하다.
그사이 출혈 환자의 응급처치를 담당했나 보다.
“이쪽으로 와.”
조은하 선배는 손짓했다.
얼른 같이 움직였고.
역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 응급환자는 형사들이 모여 있는 바로 그쪽, 그 베드 쪽의 환자였다.
#
잠시 후, 우리가 그쪽으로 다가서자.
형사들은 이내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릴 쳐다봤다.
그러나 우리는 모른 척했고, 더 가까이 다가섰다.
“김보영 선생! 바이탈 어때?”
한편, 바로 상태를 묻자, 응급실 레지던트 1년차 김보영 선생은 고개를 돌렸다.
“선배! 혈압이 들쑥날쑥해요. 왼쪽 110/70, 오른쪽 62/35.”
“야, 비켜봐.”
김보영 선생이 즉시 물러서자, 조은하 선배는 나한테 눈짓했고, 나는 환자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섰다.
보통, 왼팔, 오른팔의 혈압이 달라지는 건 체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대체로 한쪽 팔로 이어지는 동맥에 문제가 발생한 거다.
이 환자는 외상 환자이기 때문에 그런 외상이 복잡한 혈관계에 영향을 줬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경우, 뇌경색, 부정맥, 심근경색 등의 환자한테 이런 기형적인 혈압 측정이 관찰되기도 하는데.
이 정도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가 아주 위급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자! 이걸 보면 알겠지만, 혈액검사에선 특별한 소견은 없어. 그러나 체스트 CT 결과, 종격동 확장 소견이 있고, 헤마토마(혈종)가 상당량 관찰됐어. 상행대동맥에서 대동맥궁으로 이어지는 곳에 세 군데 파열 소견이 나타났고, 무명동맥으로 들어가는 위치에서 폐색이 확인됐어···.”
“그럼··· 총상은 없습니까?”
환자의 어깨 쪽과 다리 등을 쳐다보며 내가 묻자, 조은하 선배는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설명했다.
“여기, 여기, 여기. 세 군데 관통상이 있었어. 두 다리는 부러졌고. 척수분절(spinal segment) 중에 요수와 천수 손상도 있어.”
그런데 관통상???
그럼 이 환자도 이성훈 환자와 관련성이 있단 말인가.
그런 의문과 함께 나는 한편으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