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유명해지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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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찰칵······.
본관 2층, 세미나실.
일간지 기자들이 바글바글 모여있고 방송국 카메라들이 촬영을 이미 시작했다.
단정한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서철성 교수.
그는 다소 얼굴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고 그 옆에 나는 자리를 함께했다.
그리고 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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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사제 총기 사건의 범인이 대학병원 응급실 현장에서 검거되었습니다. 피의자는 사건 당시 치료 중이던 윤 모씨를 살해하고자 응급실로 뛰어들어 다섯 명의 경찰관들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당시 윤 모씨를 치료 중이던 이 대학병원 소속 서철성 교수와 인턴 김정민씨는 격투 끝에 피의자를 제압했습니다. 당시 현장 사진을 보시면···.”
“안녕하세요? KBC 9시 뉴스 강진운 기자입니다! 오늘 새벽 4시 10분경, 사제 총기 사건의 피의자가 드디어 검거되었습니다! 이 대학병원 소속 의사들은 피의자의 살인 행각을 멈추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중략) ···환자를 구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각 방송국 기자들은 마이크를 들고 이번 사건에 관해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또한, 각 방송국 ENG카메라는 일반 카메라 플래시에 휩싸인 우리를 놓치지 않고 촬영하고 있었다.
사실, 방송국 인터뷰 시간은 고작 10분에 불과했으나.
수많은 카메라는 우리의 모습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그런데 그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빛이 너무 강렬해 눈이 부셨고, 또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은 또한 각 방송국 카메라에 계속 녹화되었다.
한편,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질문들!
“서 교수님! 총구가 서 교수님의 심장을 겨냥했다고 들었습니다. 기분이 어땠습니까?”
“김정민씨! 피의자가 어떻게 제압된 겁니까?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서 교수님! 김정민씨가 피의자와 격투를 벌일 때, 그때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그리고 또 이어지는 방송국 기자들의 논평들.
“···피의자 검거 직후, 피해자 윤 모씨에 대한 응급 수술이 즉각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피의자 검거에 큰 공을 세웠고, 잠잘 시간도 없이 응급 수술을 시행한 이들에 대해 사회적 칭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위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한 그들은 이 시대 참된 의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범행 현장에 맞선 두 의사의 용기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교수님! 이쪽 좀 봐주세요!”
“김정민씨, 여기 카메라 좀 봐주세요!”
찰칵! 찰칵!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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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저 김정민 선생님, 어쩜 저렇게 용감하실까?”
“8시 뉴스 봤어요? 저는 좀 전에 영상실 휴게실에서 봤는데···.”
“전 못 봤어요. 어땠어요?”
“강 선생, 무조건 봐. 9시 뉴스에도 또 나온대.”
“용감한 시민상도 받게 될 거라고 하던데. 선생님,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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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요란했던 방송국 인터뷰를 마치고 나자 나는 이것저것 많이 불편해졌다.
병동 환자 관리를 하던 중,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 간호사들을 쳐다봤는데.
그녀들 모두가 난리다.
괜히 인터뷰에 참여했나.
문득 그런 후회도 생긴다.
하지만, 서철성 교수님마저 기자회견 테이블에 올라섰고.
기획조정실과 홍보팀의 직원들이 직접 찾아온 터라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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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단숨에 유명인사 되신 거 아시죠?”
나는 내내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아, 진짜 미치겠어요. 참! 김 간호사님!”
“네, 말씀하세요.”
한층 밝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간호사들.
“807호 최미선 환자 모니터링 좀 해주시겠어요? 좀 전에 벤틸레이터 위닝(ventilator weaning, 인공호흡기 제거) 했고 당분간 주의가 필요합니다.”
“네! 중간중간 잊지 않고 확인해 볼게요.”
표정도 밝고 아주 시원스럽게 말하는 그녀.
“선생님, 근데 좀 전에 박윤후 교수님께서 좀 뵙자고 연락이 왔어요. 시간 되시면 바로 교수실에서···.”
“아, 지금요?”
“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휴, 왜 그렇게 자꾸 쳐다보십니까.
민망하게시리.
확실히 방송빨이 세긴 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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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박윤후 교수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똑. 똑.
그러고는 가볍게 노크를 한 뒤, 곧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이때 누군가와 통화 중이던 박윤후 교수님.
그는 흠칫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잠깐 나한테 양해를 구했다.
“김 선생, 잠깐만! 재단 관계자와 급하게 이야기를 할 게 좀 있어서. 요 옆, 휴게실에서 잠깐만 기다릴 수 있지? 전화 끝나면 바로 가겠네.”
“교수님, 그럼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나는 그곳에서 나왔고, 휴게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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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기가 괜찮겠다. 저기 앉으면 되겠네.
조용한 휴게실.
그런데 그 휴게실은 TV가 없었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겨우 서너 명 정도가 보이는데.
신문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졸고 있는 모습이다.
잠시 후, 나는 창가 쪽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슬쩍 창밖을 쳐다보니, 이미 바깥세상은 새카만 어둠에 휩싸여 있다.
다만, 주차장 쪽,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고.
몇몇 차량들이 빠르게 달려 주차장을 나가는 모습 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때, 손목시계로 시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
그러고는 나는 슬며시 턱을 만지면서 잠깐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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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제안하지.”
그때!
아주 힘이 실린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바로 한태산 회장의 목소리다.
그의 입원실에 찾아갔을 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뜻밖의 제안을 했다.
다행히 그때의 나는 강제철 실장이 건네준 비밀 서류들을 다 읽은 상태였고.
그 때문에 한태산 회장의 말에 이리저리 휩쓸려 가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의도는 대체 무엇일까.
아직도 정확하게 그 판단이 서질 않는다.
당시, 한태산 회장은 내가 원한다면 한유나와 약혼할 기회를 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한태산 회장은 다소 난감한 조건도 함께 언급했었다.
내가 한유나를 설득해야 한다고?
특히, 향후 일 년 내에 그녀의 지분 절반을 자신한테 넘기라며, 한태산 회장은 그렇게 이번 약혼의 조건을 달았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훗날 신라의료재단의 운영을 맡기겠다는 말도 함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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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역시 아버지와도 이 일은 관련성이 있어···.”
문득 나는 작은 목소리로 독백했다.
왜냐하면, 한태산 회장의 제안이 있기 전, 아버지는 그 기밀 서류를 나한테 보냈다.
당시에 아버지는 뭔가를 이미 예측했다는 말이다.
비록 나한테 따로 이야기를 전하진 않았지만, 이런 관계성을 아버지도 애초에 원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만약 내 예측이 맞다면, 이 사안은 아주 묘하게 바뀌어 버린다.
다시 말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 이른바 정략적인 관계로 변질되는 것이다.
다만, 단순한 정략 관계였다면 나는 즉시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초한 한유나를 문득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좀 이상해진다.
에이씨, 모르겠다.
지금 당장 결정할 것도 아니고.
그리고 바로 그때!
휴게실 입구에 박윤후 교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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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박윤후 교수의 사무실.
나는 작은 소파에 앉았고, 박윤후 교수는 내 앞쪽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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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뉴스를 봤네. 자넨 갈수록 대단해지는군?”
“아닙니다. 교수님.”
“겸손하긴? 하하. 사실 내가 요즘 정신없이 바빠. 그러다 보니 자네 같이 더 바쁜 사람을 좀 전에 기다리게 했네. 근데 재단 일도 그렇고, 학교 일도 그렇고, 온갖 일들이 산적해 있어.”
그러면서 살짝 한숨을 내쉬는 박윤후 교수.
그 순간, 나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하긴, 바쁘시겠구나.
내년 1월부터 병원장 겸 부총장 보직을 맡으시려면 그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상당히 많을 것이다.
“전 괜찮습니다. 교수님. 근데 어쩐 일로 절 부르신 겁니까?”
나는 슬쩍 손목시계를 보면서 그렇게 물었고, 박윤후 교수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자네한테 중요한 부탁 좀 하려고.”
부탁? 중요한 부탁?
“실은, 조만간 레지던트 모집이 있지? 뭐, 서철성 교수나 윤미연 교수는 개인 의사를 아주 존중하는 사람들이라서, 자네한테 뭔가 말하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난 그 사람들과 달라. 내 생각에 자네는 꼭 우리 흉부외과를 택해야 하네. 난 자네 같은 인재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거든.”
갑자기 박윤후 교수는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고.
나는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응시했다.
“이보게, 김 선생! 우리 병원은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거야.”
그러면서 박윤후 교수는 흉부외과의 비전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우리 병원에 암센터, 혈관센터, 심장센터, 외상센터 등이 차례로 설립될 거고. 이 모든 센터에 우리 흉부외과가 관여하게 될 거네. 특히, 이런 센터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젠 국내 병원 간의 협력 관계를 뛰어넘어 해외 최상위권 병원들과도 파트너십이 체결될 거네. 자네 같은 젊은 의사들한텐 아주 좋은 기회가 될 테고. 그러니 우리 흉부외과에 꼭 들어오게.”
그렇듯 박윤후 교수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때 나는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사실, 이번 전공 결정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지현과 이동욱이 얽혀 있고.
내 머릿속엔 이런저런 생각들도 뒤엉켜 있다.
물론, 박윤후 교수의 말대로 성국대 병원은 훗날 저들 센터를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그중에서 암센터는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타 진료 분야와 비교할 때, 암 치료 분야가 수익률이 가장 높기 때문.
그래서 이 암센터는 나중에 암병원으로까지 승격된다.
다만, 신규 센터들 중에서 외상센터만큼은 예외적으로 끝까지 빛을 발하지 못하는데.
어쩔 수 없는 전문 의료진 숫자 부족, 병원 지원 부족, 국가 예산 지원 부족 등으로 인해 외상센터만큼은 결국 그 존재감이 퇴색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은 했나?”
잠시 후, 무척 인자해진 눈으로 날 쳐다보는 박윤후 교수.
그러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간단히 대답했다.
“아직 결정은 못 했습니다. 다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그러자 박윤후 교수는 다시 조언했다.
“그래? 하긴 아주 중요한 순간이니까 생각도 많아지겠지. 하지만 너무 과한 생각은 좋지 않네! 자네 같은 인재는 그런 고민보다는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해! 그런 점에서 흉부외과는 자네한테 아주 잘 어울리는 전공이 될 거고···.”
그렇게 계속되는 권유.
하지만 이때 나는 다시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전공 선택이 아니라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사실, 생각해 보면, 회귀 전의 나는 흉부외과 의사였고, 또한 교수였다.
그게 나의 천직이었고.
그래서 다시금 그 천직을 잇는 건 아주 간단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동욱과 방지현 때문에 요즘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이때, 여러 전공에 대해서도 다시금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요즘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오늘 자정 무렵, 인턴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각자의 전공 결정이 주요 화제가 될 텐데.
그래.
우선 거기 다녀온 뒤 다시 생각해 보자!
우선은 나는 그렇게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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