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유명해지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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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는 어때?”
“···산소포화도가 80%로 떨어져 HFV(high frequency ventilator)로 조정해서 좀 전에 산소포화도가 90%까지 올라갔습니다. 심박수 140회, BP 65에 35, 긴장성 심막 기종으로 인한 우측 기흉은 아직도 심합니다. 흉관 삽입술이 시행됐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고, 심장 기능 상태가 극도로 저하되어···.”
윤미연 교수님한테 그렇게 보고를 마친 뒤, 수술 전 각종 검사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 아이는 분만 직후 청색증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신생아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아프가 점수(apgar score)도 상당히 낮게 나왔다고 한다.
보통, 아프가 점수는 10점 만점인 경우가 가장 좋으나 6점 이하인 경우엔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당시, 이 아이의 점수는 고작 4점이 나왔고 이 때문에 태어난 직후부터 각종 검사가 진행되었다.
처음엔 폐렴이 의심되었다.
그래서 항생제 처치가 시작됐으나 아이의 상태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심막 기종이 확인됐는데.
이런 심막 기종(pneumopericardium)은 심장 주변에 위치한 심낭에 공기가 꽉 찬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다.
둔상 혹은 관통상 등의 외상성 발현, 세균 감염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으나.
심낭 속 공기를 배출해 주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그 수술 시기를 놓치게 되면 공기가 심장을 압박하게 되고 결국 환자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심막 기종 문제 외에도 이 아이한텐 더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폐동맥판 폐쇄 외에도 대동맥과 폐동맥이 거꾸로 심장에 연결된 대혈관 전위증이 동반된 것이다.
이건 일종의 선천성 심기형 상태를 이야기하는 건데.
아이는 선천적으로 남들과 다른 심장을 갖고서 태어난 거였다.
각 심실 크기가 다른 심장기형, 이른바 ‘기능적 단심실’ 상태였고.
그로 인해 각종 문제들이 유발되었다. 심막 기종도 그런 문제들 중의 하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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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 지혜, 우리 지혜··· 꼭 좀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만나게 된 보호자들.
아이 아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계속 잘 부탁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반면, 아이 엄마는 태어난 직후 바로 응급 상태가 된 아이 때문에 산후조리를 할 겨를이 없었고. 그래서 얼굴이 퉁퉁 부은 모습으로 또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작은 아이.
신생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모든 게 하나같이 작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복잡한 기계를 달고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은 무척 애처롭기만 하다.
그리고 저 아이는 조만간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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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만,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 밖으로 나가주시겠습니까?”
신생아 중환자실 감염격리 병동.
수술 전에 아이를 꼭 봤으면 한다는 그들의 요청 때문에 중환자실 간호사를 통해 그들을 잠시 여기로 데려왔고.
이렇듯 대형 유리창 너머로 아이를 지켜볼 시간을 준 것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면회 시간은 바로 끝나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한데, 죄송한데, 조금만 더 볼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근데 더 안 보면··· 어쩌면 얼굴도 잊어버릴 것 같아······ 혹시··· 지혜가··· 지혜가··· 죄, 죄송합니다···.”
말을 하면서도 두 눈이 붉게 충혈되는 남자.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한편, 그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내는 갑자기 그대로 주저앉으려고 했다. 순간, 두 다리에 힘이 빠진 것이다.
놀란 남자가 아내를 황급히 포옹했다.
그렇듯 잠깐 소동이 일어났으나, 다행히 해소되었고.
나는 안타깝지만, 다시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턴 수술 준비도 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아, 그··· 그렇습니까?”
결국,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시다시피 저 병동은 보호자 면회가 엄격하게 제한됩니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면회 시간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자 남자는 다시 탄식했다.
“압니다. 압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러고는 깊이 머리를 숙이는 남자.
한편, 힘겹게 일어난 아이 엄마는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을 계속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이번 수술이 실패한다면, 그땐 싸늘하게 죽은 아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그렇게 눈이 빠져라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나가시죠.”
매정해진(?) 나는 얼른 문을 열며 안내했고.
두 사람은 힘겹게 걸어나갔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려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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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깁니다. 여기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잠시 후, 수술 동의서가 전해졌고.
응급수술에 대한 보호자 동의가 완료되었다.
물론, 수술 동의서를 사인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온갖 위협적인 문구들을 읽었기 때문에.
펜을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산모 역시 쉴 새 없이 울고 있는데···.
잠시 후, 나는 수술 동의서를 챙겼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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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교수님께서 오실 겁니다. 교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겠지만, 수술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희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점은 꼭 양해주십시오.”
사실, 이 시대, 이런 수술 과정에서 아이는 갑자기 어레스트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아이의 사망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
그 때문에 나는 테이블 데스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서 그런 언급을 했는데.
그들한텐 무척 매정한 말로써 들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확하게 현재 상황을 알아야 그들도 이후의 일들을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를 위해, 저희는 정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잠시 후, 나는 안타까움의 감정을 가슴 속에 가득 담은 채, 수술 전 짧은 미팅이 시작되는 흉부외과 컨퍼런스 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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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어떻게 됐습니까? 수술방은 열립니까?”
먼저 컨퍼런스 룸에 와 있던 윤미연 교수.
그녀는 내가 바로 질문을 하자 대답 없이 날 쳐다봤다.
그런데 지금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마취과 의사가 격렬하게 반대한 걸까.
누가 봐도 저런 신생아를 수술대 위에 올리는 건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테이블 데스 확률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건, 마취과 의사가 수술을 반대할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다.
그걸 알기에 그녀는 레지던트를 보내지 않고 직접 마취통증과 교수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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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떻게 되긴 됐는데.”
순간, 입이 열리며 그렇게 말하는 윤미연 교수님.
그럼 잘된 게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윤미연 교수님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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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혹시 이 검사 결과도 봤어?”
“네?”
“아직 못 본 모양이네. 좀 전에 들어온 검사 결과야. 폐동맥판 폐쇄와 대혈관 전위가 동반된 건 잘 알 테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폐동맥판 폐쇄와 대혈관 전위가 동반된, 기능적 단심실 상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대한 처치는 바로 변형 폰탄(Fontan) 수술을 시행하는 거다.
그러나 이건 절대 쉬운 수술이 아니다. 거기다가 수술 이후 다양한 부작용들이 유발될 수 있어 위험성도 자연 크다.
그래서 최근엔 심장 내 외측통로 폰탄 수술(intracardiac lateral tunnel Fontan operation)이 그 대안으로써 이야기되고 있다.
“자, 여기 좀 봐! 심장 기형 상태가 아주 특이하지? 이런 경우는 심방중격 절제술도 들어가야 돼. 이쪽, 폐정맥 이상 연결증에 대해선 정밀한 교정이 필요하고. 결국, 시간이 문제야! 아이가 과연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현시점에선 심장 이식도 불가능한데.
윤미연 교수는 설명하면서도 계속 심각한 모습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날 빤히 쳐다봤다.
“신생아는 처음이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때 고개를 끄덕였다.
인턴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신생아 수술이 처음인 게 맞다.
회귀 전 경험까지 포함한다면 절대 처음일 수가 없지만.
그러다 보니, 이번 수술은 최고은 선배가 퍼스트 어시를 맡게 되었고.
나는 세컨 어시를 맡기로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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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잠시 후, 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자 윤미연 교수는 고개를 돌렸다.
“근데, 교수님! 그 수술이 비록 고난이도 수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인조도관에 대한 재빠른 수처가 진행된다면 제한된 시간 내에 수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뭐? 수술할 수 있다고?”
“네! 최근 임상 논문 자료들을 보면, 우심방 일부 절개 이후, 그 절개 포인트를 인조도관 수처에 포함시킨다면 외측 통로 라인을 좀 더 일정하게 뽑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긴 하지. 나도 알아. 그 방법은.”
“하지만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시다시피, 제 수처 속도가 아주 빠르지 않습니까?”
그 순간, 눈이 약간 커지는 듯한 윤미연 교수.
사실, 한태산 회장의 심장 수술 때 나는 [수처 마스터(C)] 특성을 이용해서 수처를 아주 빨리 마쳤다.
그 덕분에 한태산 회장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런 당시의 일을 지금 언급하자, 윤미연 교수의 표정이 좀 묘하게 바뀌었다.
왜냐하면, 이번 수술 자체가 신생아 대상이므로 수술 시간이 아주 중요한데, 수처 속도가 빠르다는 건 충분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좀 더 설명했다.
“또한, 그 수술은 수술 이후 환자 사망자 발생률이 아주 낮고 합병증 발생률도 아주 낮다고 들었습니다. 그 수술이 시행되는 시간과 향후 타 병원으로 이송되는데 들어가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절대 이번 골든아워를 놓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자 윤미연 교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긴 하지. 추가해서 폐정맥 이상연결증 교정술과 심방중격 절제술까지 다 하려면, 아마 다른 병원에선 난색을 보일 거야. 수술 자체를 허락하지 않을 거고.”
그렇게 말하는 윤미연 교수의 두 눈은 오히려 더 밝아졌다.
결국, 그녀의 고민은 끝난 것이다.
이제 주저할 이유가 없다.
서둘러 수술하지 않으면, 아이는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최고은 선배가 컨퍼런스 룸으로 뛰어들어오자.
그때부터 이번 수술에 대한 짧은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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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로부터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는데.
그사이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결국, 아이는 수술실 환자 대기실을 거쳐 수술방으로 옮겨졌고.
곧이어 수술대 위에 아주 조심스럽게 눕혀졌다.
수술 부위 등에 대해서 소독이 바로 진행됐는데.
이후, 이런저런 수술 준비가 다 끝날 무렵.
비장한 표정의 윤미연 교수님이 드디어 수술방 안으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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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새벽 4시.
사실, 이런 시각에 수술을 시작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의료진들은 군말 없이 다 모인 상태이고.
이제 수술 집도의의 지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최 선생, 준비 다 됐어?”
“네. 그렇습니다.”
퍼스트 어시를 맡은 최고은 선배.
그녀는 그렇듯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윤미연 교수는 고개를 돌려 수술방 간호사들과 마취과 의사를 각각 응시한 뒤 짧게 코멘트했다.
“새벽부터 너무 고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힘들더라도 마지막까지 집중해주세요.”
이때, 마취과 박동순 교수가 대답을 겸해 한 가지 코멘트를 했다.
“좀 전에, 신생아라서 마취과정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허나, 이왕 수술을 시작한 김에 무조건 수술은 잘 됐으면 합니다.”
마취 베테랑인 박동순 교수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번 신생아 마취는 어려운 편에 속한다.
체중, 장기 크기, 미숙한 신체 대사 능력, 근이완 능력, 생리적 미성숙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존재하다 보니, 신생아 마취는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생아 수술 과정 중에 주의해야 할 사항은 꼭 그것만이 아니다.
사용하는 메스 블레이드나 수처 역시 아주 큰 주의가 요구된다.
신생아는 피부가 얇고 피하 지방층도 얇다.
그래서 체온조절 같은 게 미숙해진다.
또한, 수술 도중 갑자기 생기는 고농도 산소 중독증으로 인해 아이의 눈과 폐가 망가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체내 장기의 크기는 아주 작고.
신생아의 혈관을 다루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에 속한다.
따라서 이런 수술에선 하나부터 열까지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더 많은 주의가 요구된다.
그리고 잠시 뒤.
윤미연 교수는 드디어 15번 메스를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메스 블레이드가 아이의 피부를 그으며 내려가자, 붉은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
이때, 성인 대상으로 주로 쓰는 10번 나이프가 아니라, 좀 더 섬세한 15번 나이프가 절개에 이용되었는데.
흉부를 여는 방식 중의 하나인 ‘정중 흉골 절개’를 위한 그녀의 손놀림은 그때부터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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