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유명해지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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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션! 조심해서!”
“지혈!”
“최 선생, 여기 모스키토 잡아!”
“내가 메젠바움(metzenbaum)으로 커팅할 테니까 잠시 기다려.”
그렇게 주변 조직 박리가 끝났고.
곧이어 약물 투여 뒤, 상행 대동맥, 상대정맥, 하대정맥에 캐뉼라를 삽입해서 심폐 바이패스 작업까지 완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완전순환정지 작업이다.
심정지 액이 주입된 뒤, 완전순환정지가 확인되면 그때부터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관련 수술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조직 박리 작업들이 좀 더 진행되었고.
심막 일부를 절개한 뒤 흉관을 넣어 심막에 꽉 차 있던 공기도 깨끗하게 제거했다.
또한, 폐정맥 개구부, 장측 심막, 벽측 심막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혹시 모를 파열 흔적도 추적하듯 확인했다.
“괜찮지?”
“파열 흔적은 없습니다.”
“그럼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시작할까? 아, 잠깐만!”
수술용 현미경을 통해 심장을 살피던 윤미연 교수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최고은 선배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곧이어 날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윤미연 교수님은 어시 포지션의 위치 교대를 지시했다.
그러니까 내가 퍼스트 어시가 되고, 최고은 선배가 세컨 어시가 되는, 바로 그런 상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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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 최근에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상태에서 수술을 많이 해 본 사람은 김정민이잖아. 서철성 교수님께서 워낙 수술을 빨리하시니까 그런 쪽에 더 익숙할 테고.”
윤미연 교수는 그렇게 이번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는데.
그러자 최고은 선배는 즉시 날 쳐다봤다.
그리고 새카만 눈동자로 날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윤미연 교수 쪽을 쳐다봤다.
“알겠습니다. 자리 바꾸겠습니다.”
후배한테 퍼스트 어시 자리를 내주는 거라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녀는 흔쾌히 응하는 모습이었다.
곧이어 그녀는 나에게 눈짓했고.
이때 나는 어색한 표정을 하면서 퍼스트 어시 자리로 넘어갔다.
“지금부터 카디오 플레지아(cardioplegia, 심정지액) 넣고, 30분 이내 모든 수술을 끝내야 돼. 김 선생, 수처 준비하고.”
순간,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번에 수술을 모두 끝내지 않고 2차, 3차 형태로 수술을 더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이한테 너무 가혹한 거라, 앞으로의 수술은 더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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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고은은 날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김정민, 정말 할 수 있어? 한태산 회장 수술 중에 수처 맡았단 이야길 듣긴 들었는데. ”
의문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그런 질문은 사실상 타당한 것이다.
그녀는 내 모습을 직접 본 게 아니니까.
더군다나 현재의 나는 신생아 수술 경험이 없는 인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인턴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녀는 그 점이 무척 궁금할 것이다.
특히, 아이의 심장은 성인의 심장과 확실히 다르지 않은가.
그런 작은 심장을 대상으로 수술을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서 지체할 수가 없어 즉시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 목소리를 윤미연 교수님도 들었고, 스크럽 널스도 들었다.
그러자 새카만 눈동자에 묘한 기운이 보이던 최고은은 돌연 표정을 바꾸더니 윤미연 교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제가 잠깐 확인해도 될까요?”
“확인? 그건 왜??”
수술용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서 쳐다보던 윤미연 교수.
그러다가 윤미연 교수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최고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80>
신생아의 심장.
그건 정말 작다.
보통 메추리 알보다 조금 더 큰 정도.
대동맥과 폐동맥의 굵기는 고작 2mm 정도가 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쪽 관련된 모든 수술은 수술 현미경을 통한 초정밀 수술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즉, 절개부터 수처까지 미세 수술기법이 활용되는 것이다.
물론, 심장 수술 과정에서 이런 현미경 수술이 많이 활용되다 보니 최고은 역시 이런 수술을 할 수가 있다.
다만, 수술 집도의의 수준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숙련되지 못한 수술자는 대체로 이런 수술 집도 과정에서 손 떨림 현상이 먼저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엔 절대 수술 집도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수술 집도의는 그런 손 떨림 자체가 없어야 하고, 외과 술기를 구현하는데 어떠한 장벽도 없어야 한다.
물론, 그런 수준까지 오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미경을 통해 바라보는 심장의 모습은 아주 특이하니까.
예를 들어, 현미경 속의 혈관들과 각 조직 구간들은 원래 모습과 다르게 아주 크게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수술자는 자신의 시야 속에 들어오는 수술 부위와 자신의 손놀림 사이에서 간혹 미스매치(mismatch)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미세 수술기법에 익숙해진다는 건, 공간적 제약 없이 어떤 곳에서든 외과 술기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런 실력자가 된다는 의미다.
물론, 나는 오랜 수술 경험과 교수 경력이 있어, 눈앞에 현미경이 있든 없든 동등한 외과 술기를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상태다.
그래서 잠시 후 진행된 연습용 패드 수처에서 내 능력이 그대로 드러내자, 그녀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윤미연 교수님은 눈매가 이내 호선을 그렸고.
최고은 선배는 무척 놀란 표정으로 내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단 한치의 떨림도 없이 순식간에 (신생아의 혈관임을 고려하여) 아주 얇은 깊이에서 미세 문합 과정을 흉내내는 내 모습을 보며, 최고은 선배는 정말 깜짝 놀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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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 이제 그만하고 바로 시작하자. 보면 알겠지만, 수처 술기만큼은 내가 봤을 때 타고난 뭔가가 있어. 서철성 교수님도 저런 유형이었고. 그러니 수술이 빠르잖아. 야! 벌써 3분이나 지체됐어.”
윤미연 교수님은 그렇게 선을 그은 뒤, 바로 다음 단계를 진행했다.
“박 교수님! 지금부터 카디오 플레지아(cardioplegia, 심정지액) 주입해 주세요!”
특히, 대동맥의 혈류 흐름이 차단된 상태에서 카디오 플레지아에 의한 심정지가 유도되었고.
이때, 중심체온은 섭씨 23도 내외로 맞춰졌다.
잠시 후, 완전순환정지가 드디어 시작되자, 그때부터 윤미연 교수님과 내 손놀림은 아주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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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메스!”
“이쪽 잡아!”
“종절개할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
방법은 바로 우심방과 하공정맥 경계부에 대한 절개다.
이후, 상공정맥 개구부에서 하공정맥 개구부까지 인조도관을 넣은 뒤 외측 통로를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방법이다.
특히, 이번 수술은 그 통로를 일정한 규격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해서 관련 수처를 아주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윤미연 교수님은 옆으로 물러섰고, 나는 그때부터 현미경을 이용한 미세 수처를 빠르게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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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 마스터(C)]
[수처(봉합) 중 손가락의 움직임이 2배 빨라집니다]
그렇게 특성이 발동되자 손놀림은 아주 빨라졌는데.
그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인조도관을 각 혈관과 연결시킨 뒤 인위적으로 외측 통로를 만들었다.
특히, 내 원래의 수처 실력보다 2배 정도 속도가 빨라지자, 그 움직임 자체가 다소 현란할 지경이다.
이때, 여기저기서 기이한 감탄성이 들려왔는데.
나는 모른 척했고.
묵묵히 수처 작업을 마친 뒤, 다시 퍼스트 어시 역할을 진행했다.
그리고 잠시 뒤.
폐동맥판 폐쇄 부위에 대한 혈관 성형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폐동맥 절개 부위와 상공정맥 절개 부위를 서로 연결하는 혈관 문합 방식이다.
이때 아주 빠르게, 무척 기계적으로 문합이 이어졌는데···.
다 됐다!
순간, 나는 재빨리 물러섰고.
놀란 듯 쳐다보던 윤미연 교수는 이때 표정을 고친 뒤, 곧이어 심방중격 절제술을 시행했다.
사실, 이 시술은 생후 한 달 미만의 신생아들에게 아주 효과 만점인 방법인데.
풍선도자를 심초음파 관찰 상태에서 우심방, 좌심방 등에 넣은 뒤 풍선도자를 부풀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걸 심방중격으로 끌어온 뒤 우심방 하부에 두게 되면, 이때 우심방과 좌심방의 압력이 같아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각 심방 상태를 복원하는 일종의 개통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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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부턴 coronary sinus(관상정맥동)를 잡을 테니, 김 선생! 대기하고 있어!”
어느덧 수술 시간, 146분 경과.
심폐 바이패스, 66분 경과.
완전순환정지, 25분 경과.
현재, 수술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심방중격 절제술 이후, 이제 폐정맥 연결이상(anomalous pulmonary venous connection) 부위에 대한 처치도 시작되었는데.
이때 수술 방법은 coronary sinus(관상정맥동)를 부분 절개한 뒤 패치를 대고 수처한 뒤 완전히 폐쇄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을 통해 폐정맥 환류 이상을 해결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기능적 단심실 문제를 마침내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내 손을 통해 화려한 수처 기술이 실현되었다.
그렇게 그 시술까지 마치고 나자, 목적했던 일들이 거의 다 끝나게 되었다.
특히, 전체 완전순환정지 시각을 즉시 확인해 보니 겨우 29분이었다.
그래서 그로부터 몇 분간 심장 각 부위를 빠르게 훑으며 이상 유무를 다시금 확인했고.
그 일을 마친 뒤, 완전순환정지를 빠르게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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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수술은 잘 된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내가 그 말을 하자, 윤미연 교수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사실, 수술 시간은 상당히 짧았고.
그럼에도 꽤 많은 수술들이 진행되었다.
특히, 완전순환정지 시간이 아주 짧았고.
심폐 바이패스 시간도 아주 짧았다.
실제, 신생아의 경우 심폐 바이패스 시간이 180분을 초과하게 되면 수술 이후 사망률이 크게 증가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이번 수술은 그런 우려마저 불식시킨 상태다.
이제 남은 것은 마무리 봉합.
그리고 수술 직후의 각 상태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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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교수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 눈으로 웃고 있는 윤미연 교수.
그녀는 지금 무척 기분이 좋은 모습이다.
수술 시작 전엔 아주 어려운 수술로 생각했는데···.
시간에 쫓기고 복잡한 심장 상태에 쫓기는 그런 어려움만 보였으나.
생각보다 수술은 빨리 끝났고,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수술 이후 측정된 평균 폐동맥압, 동맥혈 산소포화도 등이 거의 정상치에 가깝게 나타나자, 윤미연 교수의 눈빛은 더욱더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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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윤미연 교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실 앞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의 부모.
동그랗게 눈을 뜨고서 윤미연 교수를 쳐다보다가.
윤미연 교수가 이것저것 수술 상황을 이야기하자, 어느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은 확 달라져 버렸다.
너무 기뻐, 오히려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아이 아빠의 모습.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아하는 아이 엄마의 모습.
그들은 어느 순간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그때부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흑! 감사합니다!”
다행히 아이는 살아남은 것이다.
그 작은 몸뚱이로 수술을 견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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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수술 모자를 뒤늦게 벗었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현재, 아이는 신생아 중환자실 감염격리 병동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조만간 일반 소아과 병동으로 옮겨질 것이다.
“수고했어.”
한편, 고개를 돌려 보니, 최고은 선배다.
그녀 역시 땀으로 머리가 축축했다.
긴 머리카락을 땋아둔 상태로 수술 모자를 쓰고 있던 그녀는 잠시 후 머리를 풀었고.
그러자 긴 머리카락이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음료수 마실래?”
음료수? 그래, 괜찮겠다.
“네! 좋습니다.”
“가자.”
그녀는 앞장섰고, 잠시 후 우리는 본관 1층까지 내려갔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수술을 빨리 끝낸 터라 이렇듯 아침을 보게 된 거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본관 1층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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