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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75화 (75/145)

로얄 레이디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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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수술이든 뭐든 왜 그렇게 잘해?”

1층 자판기 근처.

음료수를 하나씩 뽑은 뒤 근처 벤치에 앉았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진 터라 추워서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우리는 그냥 거기에 앉았다.

“잘하긴요? 그냥 그런데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충 대답하자 최고은은 가만히 날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날아온 질문.

“전공 결정은 했어?”

최고은은 다시 날 쳐다봤다.

근데 전공 결정이라.

아직 그 결정을 못 했다.

흉부외과, 신경외과, 일반외과를 놓고서 계속 저울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못 했습니다.”

간단히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의 시선이 좀 더 짙어진다.

“혹시 우리 흉부외과에 오는 게 싫어?”

“네?”

“근데 니가 안 오면 여긴 누가 오겠어?”

“그건 제가 아니더라도···.”

“정말 싫은 거야?”

“아뇨! 절대 그런 건 아니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게 좀 많습니다. 새로운 전공을 개척해 볼까 그런 생각도 좀 들고···.”

“새로운 전공?”

이때 의아해하는 최고은.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사실, 회귀 전의 나는 흉부외과 의사다.

하지만, 현재 인턴 신분인 상황에선 새로운 전공을 갑자기 언급하는 건 어감상 아주 이상한 것이다.

“아, 그냥··· 별 뜻은 아닌데. 이미 흉부외과 수술을 많이 해 봐서, 다른 전공 수술도 좀 하고 싶고. 대충 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자 최고은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자신의 음료수를 약간 마셨다.

그러고는 그녀는 또 입을 열었다.

“그럼 수술 전공 쪽에만 관심 있어?”

“네. 수술 쪽이 제 적성에 맞거든요.”

그러자 최고은 선배의 표정이 꽤 진지해졌다.

“나도 옛날에 그것 때문에 고민이 참 많았는데.”

“그러셨어요? 근데 선배님은 왜 흉부외과를 택했어요?”

불쑥 내가 흉부외과 합류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음료수를 자신의 옆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가볍게 팔짱을 꼈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인턴 때, 윤미연 교수님께서 환자 심장을 직접 만지게 해 줬어. 그땐 그게 너무 큰 감동이 되던데···.”

으으!

나는 그 순간 인상을 썼다.

그러니까 윤미연 교수님이 최고은 선배를 데려오려고 흉부외과 전통의 필살기(?)를 날린 거다.

문제는 요즘엔 그런 필살기조차 잘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누가 봐도 흉부외과는 3D 중의 3D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신경외과나 산부인과는 로컬 병원 개업이라도 가능한데.

흉부외과나 일반외과 등은 그것조차 쉽지 않다.

“근데, 이번엔 우리 흉부외과 지원자가 하나도 없다면서?”

이때, 나는 약간 놀라며 바로 되물었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저번 인턴 모임,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걸.”

아! 그랬구나.

그러고 보면, 내부 경쟁률에 대한 관심은 인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일부 전공은 레지던트 선배들까지 귀를 쫑긋 세우며 예상 전공 지원율에 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기 전공에 후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두고두고 큰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민아. 근데···.”

“네?”

“우리 전공이 힘들긴 해도, 여긴 나쁜 사람이 없잖아?”

나쁜 사람이 없다?

문득 윤세진 선배가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그를 제외하면, 김재호 선배도 괜찮고, 최고은 선배 역시 아주 괜찮은 사람이다.

교수님들도 대체로 인자한 편이고, 다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린··· 인턴이 너무 잘나가는 거, 그런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우리 일을 많이 덜어줘서 그게 더 고맙기도 하고. 물론, 쬐금은 신경이 쓰이지만.”

그러고는 그녀는 몇 번 주저하는 듯하다가 눈을 감고서 씩 웃었고, 결국 뜻밖의 말을 나한테 던졌다.

“그래서 앞으로 더 잘 해 줄게.”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며 쳐다봤다.

“그러니 그냥 우리 흉부외과에 들어와. 계속 발전하는 그런 모습도 괜찮고. 너도 아는 것처럼, 우린 수술 케이스가 넘쳐나고 있어. 여기서 레지던트 마치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텐데? 다른 덴 그렇지 않잖아?”

계속되는 설득의 목소리.

근데 최고은 선배가 왜 저러지.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이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좀 전의 말들이 하나도 틀린 게 아니니까.

회귀 전에 나는 레지던트 과정만 마치고 성국대 병원에서 나왔지만, 다른 곳에서 의대 교수 포지션을 잡을 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기회의 땅이다.

하! 근데 이거 어떡하지.

최고은 선배가 이렇듯 적극적으로 나한테 구애(?)할 줄은 몰랐다. 사람 좋은 김재호 선배도 이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

더군다나 박윤후 교수님까지 저번엔 흉부외과에 오라고 사정사정하지 않았나.

나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좀 더 생각했다.

신경외과나 일반외과로 넘어간다는 건, 딴에는 새로운 시도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최고은 선배가 나서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특히, 쉴 새 없이 수많은 수술에 뛰어드는 동료이자 선배. 그런 사람의 조언이라서 그러는 걸까.

더 실감있게 와 닿는 그런 것.

더군다나 생각해 보면, 내가 흉부외과에 들어간다면 좀 더 많은 일들을 난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레지던트 과정부터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선명한 기억들을 갖고 있기 때문.

즉, 내가 다른 전공으로 넘어가 버리면, 내가 기억하는 그 수많은 환자들을 구할 수 없게 된다.

제대로 회귀 프리미엄을 써 볼 수도 없게 되고.

에이씨!

결국, 난 지금껏 쓸데없는 고민을 한 것인가.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보면, 그 고민의 가치도 나쁘지 않다.

여러 전공에 대해 깊숙히 살펴볼 기회가 됐고.

안타까운 방지현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고민이어서 이런 고민은 수십 번 반복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방지현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방지현이 죽으면 이동욱도 망가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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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그럼 바이크는 언제부터 탔어요?”

잠시 후, 나는 좀 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 보면, 회귀 전의 나는 그녀가 바이크를 탄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렇듯 그땐 무관심했던 건, 지금과 달리 나는 어떤 여유도 없이 무진장 바빴기 때문이다.

“바이크는··· 음, 본과 들어가고 나서, 그때부터 시작했어.”

날 쳐다보며, 입을 여는 최고은 선배. 그리고 그녀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살짝 피어올랐다. 바이크를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때 사귀던 사람이 그쪽 마니아였거든.”

사귀던 사람?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시간 나면 바이크 타는 거 배웠고, 같이 레이싱도 했고. 그러다가 지금은 혼자서 타고 다녀.”

“근데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응급실에서도 바이크 사고는 상당히 심각한 편에 속하는데···.”

“그건 그렇지. 그래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 조금만 더 타려고.”

한편,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최고은 선배가 사고 난 적이 있던가. 다행히 내 기억 속의 그녀는 바이크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그나마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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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넌 어떻게 할 건데?”

다시 전공 선택에 대해 묻는 최고은 선배.

그녀는 새카만 눈동자로 날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뭐, 어쩔 수 없이 저는···.”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정말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저 최고은 선배의 간절한 표정을 보면서 말이다.

“혹시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부탁?”

흠칫하며 재빨리 반문하는 그녀.

“지현이한테 말해서, 지현이도 흉부외과로 지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자 최고은 선배는 미간을 찡그리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바로 되물었다.

“지현이는 왜?”

“그야, 저 혼자 들어가는 것보다 두 명이면 더 낫죠. 흉부외과 사정이 가뜩이나 안 좋은데.”

그 순간, 최고은 선배의 표정은 더없이 환해진다.

“너 약속한 거다! 지현이 지원하면 너도 꼭 흉부외과 들어오는 거!”

그러고는 최고은 선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 이제 그만 가자. 신생아 중환자실 가서 지혜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

그러고는 그녀는 무언가 목적 달성을 한 듯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어딘지 모르게 발걸음에 힘이 넘치고 있었다.

에휴!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젠 고민할 시간도 없고.

이젠 결정할 시간이니까.

이렇게 결정하는 게 정말 잘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81>

“아가씨, 이거 좀 보시겠어요?”

초겨울의 아침 기운이 선명해지는 시각.

윤혜선 실장은 조간신문 여러 개를 가져왔다.

간이 덜 돼 맛없는 병원 음식이지만 아침 식사를 하던 한유나.

그녀는 의아해하며 그것을 펼쳤다.

그리고 이때 그녀의 두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이곳 성국대 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것이다.

흉부외과 인턴 김정민이 격투를 벌여 범인을 사로잡은 그 사건. 그런데 오늘자 신문은 단순 재탕 기사에서 벗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수술복 차림인 그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또한, 이번 사제총기 사건의 피해자들을 응급수술을 통해 구해낸 일화도 함께 기술되어 있었다.

다만, 특이한 건, ‘수술하는 인턴’이라는 키워드와 ‘천재 인턴’이라는 수식어가 그 기사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천재 인턴?”

“네. 아가씨. 김정민 선생님은 보통 분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간호사 선생님들한테서 이것저것 많이 들었습니다. 회장님 수술 때도 아주 큰 역할을 하셨고, 아가씨 수술 때도···.”

그리고 이때, 갑자기 한유나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나,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되었다.

자신이 받은 그 수술이라는 것.

자신의 상반신이 모조리 드러난 상태에서 받게 되는 그런 수술 말이다.

나중에 듣긴 했으나, 가장 먼저 달려와 응급처치를 했던 그는 자신에게 아주 격렬한(?) 인공호흡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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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네. 말씀하세요. 아가씨.”

“김정민 선생님··· 다시 한번 뵙고 싶습니다. 다시 드릴 말씀도 있고.”

그러자 눈이 약간 커지는 윤 실장.

“아가씨!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그분의 일정을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황급히 병실을 뛰어나가려던 윤 실장.

그런데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윤 실장은 잠시 멈춰섰다.

“아! 그리고 아가씨! 조금 있다가 밖에 일이 좀 있습니다.”

한유나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윤 실장은 좀 더 설명했다.

“신라증권 백상엽 부사장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약속 잡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드디어 약속을 잡게 됐어요.”

그러면서 윤 실장은 슬며시 한유나의 손을 잡았다.

“아가씨, 조만간 뉴욕에 가시더라도 이 일만큼은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말입니다. 누구도 아가씨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편, 한유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현재 자신이 가진 신라전자의 지분은 대략 12.8%에 이른다.

이건 한태산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지분 규모다.

그 지분 때문에 자신은 수많은 견제를 받았고 수많은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하물며, 한태산 회장마저 자신의 지분을 탐내고 있지 않은가.

한편, 그로부터 잠시 뒤.

윤 실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8층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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