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80화 (80/145)

상류 사회 03

<85>

“선생님! 잠시만요.”

2001년 11월 20일 화요일 새벽 2시.

스테이션 김선화 간호사는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놀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받느라 잠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전날, 밤이 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고.

그 바람에 심장마비 환자들이 많아지면서 쉴 새 없이 응급실로 실려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흉부외과로 들어오는 응급실 콜이 많아졌고, 의사들은 번질나게 응급실로 내려가야 했다.

일부 의사들은 응급수술을 위해 수술실로 넘어가기도 했고.

간혹 타 진료과의 협진 요청들이 중간중간 들어오기도 했다.

사실, 이렇듯 갑자기 응급실 외에도 흉부외과가 바빠지게 된 이유가 나중에 밝혀졌는데.

지난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각에 개최된 민간 마라톤 대회 때문이라고 한다.

추운 날씨에 무리하게 달렸던 40대, 50대 나이의 중년 남성들.

자신의 체력만 믿고서 정신없이 달렸다가 뒤늦게 심장 이상이 나타났고.

특히, 밤이 되면서 한파가 몰아치자 더는 버티지 못한 채 야간 응급실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 가을에서 겨울로 이행되는 이런 시기에 간혹 그 한파가 아주 매서운데, 폐렴 징후를 가진 환자들의 응급진료 건수만큼이나 흉부외과 응급진료 건수도 눈에 띄게 늘어나게 된다.

한편, 그 시각.

나는 급성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이 발생한 47세 남성 환자를 황급히 수술실로 옮기게 되었다.

#

“잠시 비켜 주시겠습니까?”

거의 사색이 된 듯한 40대 중반 나이의 아내, 그리고 중학생 딸은 얼굴 자체가 거의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서둘러 환자 침대를 끌고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보호자들이 너무 경황이 없다 보니 침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비켜달라고 외치자, 중년 아내는 난데없이 내 팔을 잡았다.

“선생님, 저희 어떡해요? 우리 남편 얼마나 위험한 건가요?”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리는 여자.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이었다.

“죄송한데, 아까 수술 동의서 작성할 때 말씀 듣지 않으셨어요? 저는 환자분을 지금 바로 수술실로 옮기려고 왔습니다.”

간호조무사들과 함께 나타난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바로 침대를 끌고 나가려고 했는데.

그 아내가 다시금 날 잡았다.

“선생님!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런데, 아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한시가 급하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사인은 했는데···.”

그러니까 너무 놀라 정신이 없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고.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이제라도 정확하게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마 이 환자의 전체 수술 동의서를 받았던 진료과는 신경외과일 것이다. 거기서 어떻게 설명했는지 몰라도 어쨌든 설명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할 수 없이 나는 재빨리 손목시계로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그래. 대략 2분, 3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재빨리 말했다.

“회사 동료분이 신고해서 119구급차를 타고서 여기 응급실에 도착했고, 다시 심폐소생술(CPR)을 진행했습니다. 회사 동료분의 대응이 빨라 심정지 위기를 면했고,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입니다. 또한, 뇌경색과 관련하여 뇌부종이 발생해 있고 일부 뇌출혈 소견도 있습니다. 천막뇌 이탈(tentorial herniation) 증상도 발견되어 신경외과와 흉부외과의 협의 수술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

“죄송한데, 지금 가 봐야 합니다만. 늦어지면 큰일 납니다.”

그러자 얼른 물러서는 그녀는 다시 외쳤다.

“선생님! 꼭 살려주세요! 흐으으. 우리 영선이 아빠! 꼭 살아나야 합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최대한 쉽게 설명했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나는 간호조무사들과 함께 빠르게 움직이며 침대를 끌었고.

잠시 후, 우리는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이때,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수술실 경고문 때문에 빠르게 뒤따라오던 가족들은 이내 멈춰 서고 있었다.

나는 슬쩍 뒤돌아봤으나 그렇다고 멈추진 않았다. 환자 상태가 급하기 때문에 더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겁에 질린 모녀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는데.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불안에 떨고 있는 두 사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수술실 자동문은 닫히고 있었다.

#

그로부터 잠시 뒤.

마취과 의사의 마취가 진행되기 전, 신경외과 레지던트 2년차 이소정 선배와 인턴 박하영이 수술실로 내려왔다.

이때, 나는 박하영에겐 눈인사로 인사를 대신하고 이소정 선배한테 고개를 숙였다.

사실, 이소정 선배는 예전 협의 수술 때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흉부외과 수술을 잠시 참관했는데.

당시 그녀는 날 무시하는 발언을 좀 하기도 했으나.

레지던트 4년차 급으로 내가 수술 어시를 하자 결국 경악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약간 경계의 눈빛을 보이면서도 이번엔 내 인사를 즉각 받아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녀는 다가와 입을 열었다.

“요즘 잘나가던데? 우리 과 교수님들 중에도 김정민 선생한테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졌어. 하영이한테서도 들었는데, 우리 과에 들어올 생각도 있다면서?”

이때, 작은 안경 너머로, 이소정의 작은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저번 인턴 모임 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이미 흉부외과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아뇨. 결정했습니다. 흉부외과 지원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움찔하며 미간을 조금 찌푸렸고.

반면, 옆에 서 있던 박하영은 그 표정이 이내 밝아지고 있었다.

“야, 정말 흉부외과 결정한 거야?”

“그래. 그렇게 하기로 했어.”

“정말 잘 생각했다. 넌 흉부외과랑 더 잘 어울려.”

박하영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는데.

이때, 마취통증과 김석현 교수가 들어왔고.

우리는 즉시 흩어지며 김석현 교수의 환자 마취과정을 우선 돕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잠시 후, 환자는 수술 집도가 진행될 수술방으로 즉시 이동되었다.

#

“빨리 준비하자.”

레지던트 2년차 이소정이 지시하며 박하영과 나는 수술 준비를 재빨리 진행했다.

환자 몸 여기저기를 각종 벨트로 묶었고.

수술 부위 마킹을 확인하며, 소독액이 묻은 거즈 볼로 수술 부위에 대한 소독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일련의 수술 준비 작업이 순식간에 끝나자 다시 한번 상태를 확인했다.

환자는 이미 삭발된 상태이고.

우선, 뇌 수술을 위한 준비 작업이 빠르게 완료된 상태다.

물론, 흉부 수술을 위한 수술 부위 소독 작업은 나중에 진행될 예정이다.

“그럼 저는 나중에 들어오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러고는 나는 이소정 선배한테 인사한 뒤 등을 돌렸고.

날 쳐다보며 울상(?)을 짓는 박하영에겐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그곳을 나왔다.

아마 저 뇌 수술은 대략 12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즉, 내일 점심 때가 지나야 저 환자의 뇌 수술이 끝날 것이고.

이후, 환자 상태를 확인한 뒤 흉부 수술이 진행될 것이다.

어쨌든 뭐, 환자 확인은 된 거니까.

응급환자 확인 외에도 신경외과 상황을 조금 보고 오라던 김재호 선배의 제안.

그래서 일부러 그쪽 수술 준비 과정을 조금 도왔던 나는 곧장 응급실로 돌아왔다.

#

“왔어?”

응급환자에 대한 흉관 삽관을 마치고 물러서던 김재호 선배.

그는 즉시 손짓하며 한쪽 구석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좀 전 내가 다녀온 수술실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어때? NS(신경외과) 선생들은 괜찮아? 요즘 거기 선생들이 좀 이상하다고 하던데, 다들 어때?”

이러니 병원 소문이란 게 참 무서운 법이다.

얼마 전, NS(신경외과) 수술 과정에서 몇 번 실수가 있었고, 그게 간호사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물론, 병원 내에서 암묵적으로 입을 꾹 닫고 있다 보니, 의료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상당히 큰일날 뻔한 일들이 수술 중에 몇 번 일어났다고 한다.

그나마 환자 사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게 주효했고.

그래서 겨우겨우 자체적으로 수습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소정 선배가 내려왔는데, 뭐 특별한 문제점은 모르겠습니다.”

“이소정?? 흠, 사실 그 친구가 좀 문제야.”

“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치프 윤정화 선생도 함부로 할 수 없다잖아. 2년차 선생이 3년차 치프와 싸우려고 하니, 위계질서고 뭐고 다 개판이 되는 수밖에.”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가만히 서 있었고.

김재호 선배는 이제 내가 진짜 흉부외과 후배라고 생각된 듯 좀 더 설명했다.

“한정미 교수 라인에 이소정이 있잖아. 박희경 교수 라인은 윤정화 선생이 있고.”

그러니까 이소정과 윤정화는 신경외과 내, 양대 파벌의 레지던트 대표 격이란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정미 교수의 지인이라고 하던 대기업 전무 김세경 환자의 심장 수술 때, 이소정이 직접 와서 참관하지 않았나. 뭐, 그런 것도 연관성이 있으려나.

“어쨌든 다음 신경외과 과장이 누가 되든, 빨리 결정이 돼야 내부 혼란이 수습될 텐데···.”

“근데 병원에선 왜 가만히 있죠?”

“아니, 이젠 가만히 있지 못할걸. 듣기론,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말들도 나돌고 있고···. 아마 신경외과 교수님들끼리도 이런저런 싸움이 좀 많이 벌어졌나 봐. 본래 서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는데 이번 일로 빵! 터진 거야. 워낙 잘나신 분들이 많이 계신 곳이니까.”

한편, 김재호 선배는 서둘러 자신의 손목시계를 쳐다본 뒤, 재빨리 날 쳐다봤다.

“너는 여기 좀 더 있다가 올라와. 흉부외과에서 응급처치해 준 것들, 잘 됐는지 좀 확인하고. 알겠지?”

“네. 선배님.”

김재호 선배는 먼저 응급실을 나갔고 나는 잠시 응급실에 남게 되었다.

<85>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새벽 3시 35분.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윤혜선 실장은 잠결에 휴대폰을 잡았다.

넓은 2002호실 한쪽.

간이침대를 놓고서 그곳에서 자고 있던 중.

뒤늦게 인상을 쓰며 졸린 눈으로 윤 실장은 휴대폰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 시각, 아주 낯선 번호가 찍혀 있다.

그 때문에 윤 실장은 잠시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시각을 확인했고.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게 되었는데.

사실, 이 시각에 전화?

분명 잘못 걸려온 전화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간단히 확인한 뒤 바로 끊을 생각으로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여보, 잘 지내고 있어? 나야. 내 목소리··· 잊지 않았지?”

그 순간, 윤 실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