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82화 (82/145)

태풍의 핵 02

<86>

“교수님, 흉부외과 김정민 선생입니다.”

아직 신경외과 수술이 딱 끝나지 않은 수술장.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나는 수술장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됐던 그 뇌출혈 환자의 수술은 현재 막바지 수술이 진행 중이다.

수술장으로 들어선 뒤 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집도 중이던 한정미 교수는 날 가만히 쳐다봤다.

수술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또렷한 두 눈만 똑바로 보이는 한정미 교수.

그 주름진 눈매가 살며시 휘어졌고, 한정미 교수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문의 그 김정민 선생인가? 잠깐만 이쪽으로 와 봐요.”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한정미 교수는 현재 수술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뇌가 부어 있어 한동안 대기했다가 다시 시작할 건데, 김 선생이 우리 전공에 관심이 있다면서요?”

그 순간, 나는 이소정을 쳐다봤다.

앞서 분명히 이소정한테 흉부외과로 최종 결정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한정미 교수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네, 관심은 있었습니다만. 저는 흉부외과로···.”

그러자 바로 내 말을 자르는 한정미 교수.

“아직 원서는 안 넣었지?”

“네. 아직입니다.”

“참, 우리 신경외과에 다시 턴을 돈다면서? 언제지?”

“내년 1월입니다.”

사실, 내년 1월에 다시 신경외과 턴을 돌아야 한다.

지난 4월에 들어갔던 신경외과 턴은 인턴 로테이션 조정 때문에 오래 있지 못했다.

그 바람에 내가 기억하는 신경외과 관련 전반적인 업무 내용들과 술기들은 2002년 1월 때 습득했던 것들이다.

“듣기론 4월에 잠깐 턴을 했다고 하던데, 그땐 초턴이라 어리숙했을 테고, 우리 신경외과에 대해 잘 모를 수 있겠네. 그럼 지금 조금 시간 내서 우리 OP(수술)을 참관하도록 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인데, 뭘 모르고 하는 건 정말 억울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한정미 교수는 내 위치를 지정해줬다. 바로 코앞에서 후반부 수술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한정미 교수는 그렇게 지정해줬다.

즉, 협의 수술이라는 명목 하에 일부러 신경외과 수술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인데.

이른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지원하라는, 일종의 구애이자 오퍼를 하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

“···이쪽 수처 부위가 잘 보이지? 여기, 여기, 여기! wide frontotemporoparietal decompressive craniectomy(광범위 전두-척두-두정부-감압개두술)가 시행됐고, 현재 양측 경막 성형술도 시행 중이야. 다시 이쪽에서 잘 보면···.”

메스를 손에 쥔 한정미 교수는 먼저 이것저것 설명한 뒤, 잠시 후 경색된 조직을 제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처 과정들.

그런데 다행히 이런 긴 수술 덕분에 환자의 천막 뇌이탈(tentorial herniation) 현상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한다.

보통, 천막뇌 이탈(tentorial herniation) 현상은 뇌의 상부(대뇌)가 뇌의 하부(소뇌 및 뇌간)와의 경계가 되는 천막 절흔으로부터 밀려나는 현상인데.

뇌출혈 혹은 뇌부종이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로써 일종의 뇌압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합병증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후반부 수술은 잠시 진행됐고.

흉부 수술과는 다르게 뇌 수술은 좀 더 제한된 범위를 대상으로 좀 더 섬세한 처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집도의가 환자의 머리맡에 앉아 집도하다 보니, 다소 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참! 김정민 선생은 수처 실력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뇨.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겸손하기도 하고.”

한편, 한정미 교수는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보다가 또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NS(신경외과)도 수처 과정이 복잡해. 수술 건수도 생각보다 많고. 흉부외과 수술 건수 정도는 아니지만···. 근데 거긴 레지던트들은 잠잘 시간이 거의 없다던데? 그렇게 혹사당하면 나중에 힘들어져.”

은근슬쩍 흉부외과를 까는 이야기도 곧잘 하는 한정미 교수.

그러면서 다시 수술용 현미경을 보면서 또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stroke 환자를 처치할 땐 긴장도 되지만, 생명을 우리가 직접 구한다는 점에서 의사로선 큰 영광이지. 흉부외과 수술도 그런 경우가 많겠지만, 뇌 수술은 정말 최악의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생명의 무게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어. 성인 남자 뇌 무게는 1.4kg, 여자 뇌 무게는 1.25kg. 1000억 개의 뉴런, 이 작은 것들이 한 인간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고, 그 인간의 모든 것들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어.”

그렇듯 한정미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남다른 자부심도 드러냈다.

또렷한 눈망울. 수술방을 압도하는 듯한 강한 시선.

그런 모습인 한정미 교수는 윤미연 교수와 닮은 듯하면서도 좀 더 섬세해 보였고.

목소리도 좀 더 나긋하면서도 좀 더 우아했다.

성국대 신경외과를 대표하는 듯한 그런 교수로서의 면모를 그녀는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정미 교수의 저런 외면 외에도 또 다른 모습을 잘 알고 있다.

즉, 지금은 감춰져 있으나.

회귀 전 내가 경험했던 신경외과 인턴 시절의 한정미 교수의 모습.

사실, 신경외과 수술 또한 그 특성상 수술 집도의가 아주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한정미 교수는 특히 더 그게 심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무척 신경질적이기도 했고, 무척 사납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욕심 또한 엄청난 사람.

현재 신경외과 분란이 촉발된 것도 결국 한정미 교수의 그런 면모 때문이 아닐까.

#

“···그리고 우리 NS 수술은 이렇듯 앉아서 할 수 있어 더 안정되게 집도할 수도 있어. 다른 외과 수술들보다는 훨씬 더 나은 점이지. 이소정 선생!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네! 저도 그런 점이 좋아, NS에 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이소정은 이때 날 힐끔 쳐다봤고.

이때, 한정미 교수는 수술용 현미경에서 조금 물러서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처 준비 작업들.

잠시 후, 드디어 수처가 진행되자, 한참 조용해졌다가.

한정미 교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이쪽 수가가 낮은 건··· 우리도 그렇고 흉부외과도 그렇고, 다들 아쉬워하는 부분이지.”

그러면서 한정미 교수는 자신이 무척 안타까워하는 부분도 가감 없이 설명했다.

즉, 좋은 점은 이렇고, 나쁜 점은 병원 수익 문제라는 것이다.

일례로 성국대 병원 신경외과 역시 개두술 수술 건수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선 그런 수술들이 크게 좋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경외과 수술은 수술 시간이 대체로 긴 편에 속하는데, 그래서 수술 환자 숫자가 늘 제한적이다.

반면, 흉부외과는 서철성 교수의 빠른 수술 외에도 폐암 환자 치료 등이 이어지면서 병원 수익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다. 다만, 의사,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바빠 의료 관련자들의 삶의 질은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 노력만큼 충분한 의료수가(醫療酬價)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었고.

결국, 어떤 전공이든 외과 계열 의사들의 숫자는 앞으로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외과 의사들 모두가 크게 아쉬워하는 부분이면서.

향후 대한민국 응급의료 시스템을 생각할 땐 무척 절망적인 상황이기도 했다.

#

한편, 그로부터 10분 뒤.

한정미 교수는 모든 집도를 마쳤다.

다행히 뇌수술은 문제없이 끝났다.

이때, 한정미 교수는 이소정에게 마무리 봉합을 맡긴 뒤 수술장을 나갔는데.

애매해진 내가 뒤따라 수술장을 나가려고 하자, 이소정이 즉시 날 잡았다.

#

“어디 가? 김 선생! 잠깐만 좀 더 있어.”

의아해하며 내가 쳐다보자, 이소정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아직 원서는 안 넣었다고 했지?”

“네. 이번 주까지 넣으면 되는 거라서.”

그러자 이소정은 즉시 화제를 바꿨다.

“우리 NS(신경외과)엔 2주 정도 있었다며?”

“네. 지난 4월에 그 정도 있었습니다.”

“그때 박시영이 맡았지?”

현재 레지던트 2년차 박시영 선배. 이소정과 같은 연차다.

당시, 인턴 관리는 그 박시영 선배가 맡았다.

“네. 그렇습니다.”

“근데, 내가 박시영한테 물어봤는데, 그땐 평범했다던데?”

그 질문에 나는 순간 애써 웃음을 참았다.

사실, 그때의 나는 인턴으로서 생초짜라고 할 수 있다.

3월에 인턴을 시작하고, 고작 한 달이 지난 시점.

이때, 어떤 전공에도 별다른 도움이 될 수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술기에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때였고.

그런 술기마저 아주 서투른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수술 위주인 신경외과로 들어가자, 당시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환자 차팅도 서툴렀고, 단순 입원 환자에 대한 임시 주치의 역할을 맡는 것도 무척 어려워했다.

이것저것 시키는 잡다한 일들에만 몰두했고.

그렇게 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던 것이다.

#

“그럼 갈수록 실력이 좋아졌다는 말인데, 거기 김정민 선생! 잠깐만 와서 이거 좀 도와줘.”

한편, 잠깐 대화하던 중, 나는 정색하며 이소정을 쳐다봤다.

현재 신경외과 수술이 다 끝난 게 아니다.

마무리 봉합까지 완료되어야 하기 때문.

그런데 이소정은 박하영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현재, 4-0 블랙 실크로 경막 봉합이 진행 중인데.

순간, 박하영은 흠칫하며 날 쳐다봤다.

“왜 돕기 싫어?”

이때, 이소정은 완전히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고.

작은 안경 너머로 새카만 눈동자가 번득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녀가 무슨 의도를 갖고서 그러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실소했다.

어떡하든 날 신경외과로 유도하고 싶은 이소정의 노력(?).

그런데 박하영의 눈동자가 지금 어찌할 바를 몰라 흔들리는 걸 보면.

이소정이 나름 파격 대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난 신경외과에 갈 게 아닌데.

하지만 이소정의 저 말을 그냥 무시할 수도 없다.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신경외과 인턴 과정.

지금 내가 괜한 각을 세우다간···.

내년 1월 한 달 동안 엄청난 고생을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론 신경외과 봉합이라는 그 특수성을 다시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고.

잠시 후, 나는 두 손을 다시 소독한 뒤 수술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무리 봉합 과정이 재개되었다.

#

“bone flap 가져다주세요.”

잠시 후, 멸균 통에 보관해뒀던 bone flap 조각을 간호사가 건네줬고.

그 bone flap 조각을 환자의 머리 수술 부위에 덧댄 뒤 위치를 고정시키며 수처 위치를 잡았다.

일례로, 뇌부종이 심할 경우엔 bone flap 봉합을 포기하고 재수술 스케쥴이 잡히기도 하지만.

다행히 뇌부종이 어느 정도 완화된 상태였고, 그래서 지금 bone flap 봉합이 가능한 시점이었다.

그러고는 잠시 뒤.

골 외막 봉합에 이어, 피하조직 봉합도 차례로 진행됐는데.

마지막 피부 쪽은 스킨 스태플러(skin stapler)로 간단히 봉합을 마쳤고.

재빠르게 운드 드레싱(wound dressing)까지 진행했다.

그렇듯 뇌 수술 절차를 모두 마친 뒤.

환자 바이탈을 확인한 결과, 흉부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소정과 박하영이 수술방을 떠나자, 그때부터 나는 흉부 수술을 위한 수술 준비를 드디어 시작하게 되었다.

#

한편, 오후 2시 무렵.

모텔에 들어갔던 윤 실장은 전남편과 함께 그 모텔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두 사람은 조용히 다시 승용차에 탑승했는데.

이때, 윤 실장은 조수석에 앉으면서 전남편의 옆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곤 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전남편.

그래서 그 앞에서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이 무척 어색했으나.

잠깐의 시간을 공유한 탓인지, 조금씩 옛날로 돌아간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그럼··· 당신이 가진 자료들, 언제 터트릴 거야?”

승용차가 출발하자 윤 실장은 그렇게 물었고.

김경준은 정면을 쳐다보며 운전하다가 간단히 대답했다.

“우선, 때를 기다려야지. 몇 개 작업해 둔 게 있으니까 당신도 이제부턴 지분확보에 무조건 집중해. 지금은 아가씨 지분을 최대한 높일 때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윤 실장.

그녀는 동의하듯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라증권 백상엽 부사장한테 도움을 좀 받기로 했어.”

“백상엽 부사장??”

순간, 운전 중에 그는 고개를 돌려 윤 실장을 쳐다봤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그 사람이 현역인가?”

“왜? 걱정 돼?”

“당신도 알잖아. 사모님이 그렇게 되자마자 그자는 뒤로 몸을 뺀 사람이야. ‘신의’보다는 ‘타의’에 흔들릴 수 있는 사람. 절대 온전히 믿을 수 없어.”

“알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음. 근데 그게 과연 괜찮을까? 좀 더 고민해 봐. 그리고 되도록 빠른 시기에 나는 김정민 선생을 좀 만나고 싶어.”

한편, 전남편의 요구에 윤 실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윤 실장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선, 아가씨의 일에 한태산 회장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데.

한태산 회장이 앞으로 얼마나 생존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했다.

비록 심장 수술이 성공했으나 그의 심장 상태는 아주 좋지 못하다고 한다.

거기다가 그는 육체적으로 모든 게 노쇠한 상태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한태산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게 되면, 신라그룹은 늑대들이 판치는 그런 세상이 될 것이다.

한편, 윤 실장은 전남편 김경준도 슬쩍 쳐다봤다.

가장 믿음직스럽지만, 그럼에도 과연 전남편을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렇듯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