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수술자 01
<92>
“선생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경찰차에 탔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우선 경찰서로 가자는 제안. 강제철 실장도 그걸 원하고 있었고. 그런데 경찰 차량을 타고서 즉시 이동하는 중에 나는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갑자기 나타나 내 소나타를 충격한 SUV 괴한들도 그렇고, 내가 진행하고 있는 연계 미션도 문제였다.
어느덧 날짜가 바뀌었다. 어느덧 이번 미션의 마지막 날이라고 할 수 있는 11월 23일이 된 상태. 그리고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곧 날도 밝게 된다.
그냥 차라리 내 차를 몰고서 서울로 돌아갈까. 그게 낫지 않을까.
대체 윤 실장한테 나타나게 될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다만, 확실한 건.
시스템이 예고한 일이라는 것.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최대한 신속히 병원에 복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차 후미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라 그런 차를 몰고서 서울로 가는 건 역시 마음에 걸린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이 시각이라면 성국대 응급 수송 차량이 대구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양종규 선생을 대구공항에 내려다 준 뒤, 뒤늦게 서울로 출발할 예정이기 때문.
그래서 응급 수송 차량에 타고 있을 간호사들한테 즉시 전화했고.
곧이어 강제철 실장한테도 다시 전화해서 협조를 부탁했다.
그리고 잠시 뒤.
사이렌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리던 경찰차가 한쪽 도로변에 잠시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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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바쁘신 모양이죠?”
“네, 병원 일이란 게 그렇다 보니···. 근데 제 사고 처리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 수석보좌관님께서 변호사 한 분을 보내준다고 하더군요. 그 변호사분을 통해,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근데··· 그 전에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 나한테 질문할 게 있다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흔쾌히 응했다.
“혹시 담배···? 아! 그럼, 밖에서 이야기하죠. 좀 답답하니까···.”
11월 중순의 날씨.
대구는 아직 그렇게 춥지 않았다.
“여깄습니다.”
경찰차에서 나온 나는 담배 하나를 받아 입에 물었고, 구정목 경장은 이때 라이터로 담뱃불까지 붙여줬다.
“감사합니다.”
“근데, 선생님. 누가 그런 짓을 한 것 같습니까?”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인 뒤 쭉 빨았다가 이내 하얀 담배 연기를 쭉 뿜어내는 구정목 경장.
그는 그렇듯 불쑥 물었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근데, 용의 차량들이 앞뒤로 차를 막고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거. 그게 바로 샌드위치 수법인데, 선생님은 진짜 운이 좋은 겁니다. 다만, 가장 후미에 있던 차에서 내린 사람들, 왜 용의자들과 집단 혈투를 벌였을까요? 혹시 그 차에 있던 사람들과 일면식이 있습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그들이 보디가드라고 했지만, 저는 좀 이상해서 말입니다.”
사실, 그 사람들을 강제철 실장은 자신이 보낸 보디가드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이 나타나자 그들도 달아나 버렸다. 그 때문에 경찰이 의문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내가 알 수는 없고. 그래서 계속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강제철 실장의 핑계를 대며 그쪽에 문의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 정도 선에서 답변했는데.
그로부터 10분 뒤, 저 너머 교차로에서 녹색 신호등이 켜지자, 성국대 응급 수송 차량이 크게 좌회전하며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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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괜찮으세요?”
놀란 코디네이터 선생.
“괜찮습니다. 저는.”
간호사들에겐 단순 교통사고 정도로만 이야기해 둔 상태다.
한편, 나는 즉시 구정목 경장한테 인사한 뒤 곧바로 응급 수송 차량에 탑승했다. 원래 양종규 선생이 앉던 그 조수석 자리에 내가 앉게 되었다.
“선생님! 바로 출발하죠. 저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버된 것 같은데.”
“그럴까요? 그럼 좀 더 세게 밟고 달리겠습니다.”
더는 지체할 생각이 없는 듯 운전사는 바로 액셀을 밟으며 가속을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슬쩍 이것저것 말을 꺼냈다.
“교통사고 났다던데 괜찮으세요?”
“네, 차만 좀 망가졌습니다.”
“누가 와서 박은 건가요?”
“네.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난감하죠? 자기가 운전을 잘 해도 갑자기 사고가 나거든요. 그 때문에 방어 운전이라는 말도 생겼고. 특히, 야간 운전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야간에 사고가 좀 많지 않습니까?”
어둠이 짙게 내린 늦은 새벽.
어쨌든 그때부터 응급 수송 차량은 좀 더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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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진동 소리.
너무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놀란 듯 휴대폰을 먼저 확인한 뒤, 통화 버튼을 누르며 주변도 살펴봤다.
어느덧 어둠 속 고속도로에 접어든 상태.
현재, 응급 수송 차량은 아주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뒷좌석 쪽도 아주 조용했다.
즉, 간호사들은 현재 조용히 잠에 빠져든 상태였고.
어쨌든 나는 곧바로 통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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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TA(교통사고) 환자요!?”
그리고 잠시 뒤.
나는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전화를 준 곳은 성국대 흉부외과 스테이션.
나이트 근무 중이던 김선화 간호사의 전화였다.
“네?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요? 대체 어떤 환잡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에 나는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선생님! 2002호실 윤 실장님이 아시죠?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 왔고···.”
그러고는 이어지는 후속 설명들.
사실, 한유나의 비서이자 간병인인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것저것 음료수와 먹을 것들을 VIP실 병동 간호사들 외에도 흉부외과 간호사들한테 갖다 줬고, 그래서 윤 실장에 대해 간호사들이 모를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스테이션 김 간호사는 윤 실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나는 머리가 조금 하얘지는 느낌마저 받았다.
윤 실장이 위급하다고?
그런데 이 말 자체가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윤 실장이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된 거라.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윤 실장의 스케쥴 기준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윤 실장은 이런저런 미팅을 마친 뒤 전날 밤 9시쯤 병원에 도착한다고 했다.
즉, 병원에 있을 사람이 TA(교통사고) 환자가 됐다는 건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스테이션 김 간호사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을 테고.
“···그래서 서철성 교수님께서 절 호출하셨다고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한편, 나는 휴대폰을 잠깐 내려놓고서 즉시 운전사에게 물었다.
“병원까진 얼마나 걸릴까요?”
창밖은 너무 어두웠다.
도로 표지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잠깐 잠을 잤던 것 때문에 나는 위치 감각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운전사한테 즉시 물었고, 운전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마 1시간 30분 정도쯤, 그쯤이면 병원에 도착할 겁니다.”
1시간 30분?
“선생님! 병원까지 1시간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그럼 수술은 언제 시작됩니까? 네? 1시간 뒤??”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니까 김 간호사는 내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왔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했던 거고.
만약 내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으면, 윤세진 선생을 호출해서 수술을 시작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나는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력도 없는 윤세진.
그 인간이 수술장에 들어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윤 실장을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미션이 예고한 걸 떠올리면, 윤 실장의 상태는 서철성 교수님마저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일 수도 있다는 말인데.
[특성] 사용 없이는 치료가 불가능한,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선생님! 저는 무조건 시간 맞춰서 갈 겁니다! 무조건 수술 시간에 맞춰 병원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자 스테이션 김선화 간호사는 약간 안도해 하더니, 좀 더 세밀하게 환자 상태에 대해 나한테 언급했다.
“···일부 차량 파편이 아직 흉강 쪽에 박혀 있기도 한데, 일부는 관통했다고 합니다. 특히 파편 쇳조각이 갈고리 형태로 박혀 있다 보니 제거가 쉽지 않다고 해요. 테이블 데스 가능성이 커서 응급실에서조차 수술이 힘들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서 교수님께서 보신 뒤 수술하시겠다고 하셔서···.”
이때, 나는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역시 서철성 교수님다웠고.
만약 서철성 교수님의 수술 의지가 없었다면 나는 이런 전화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재빨리 운전사에게 외쳤다.
“선생님! 지금 급한 건이 들어왔습니다! 무조건 한 시간! 한 시간 내에 병원에 들어가야 합니다! 응급수술 건이고, 지금 당장 속도를 높일 수 없을까요?”
“정말 급한 건입니까?”
“네! TA 환자 수술입니다! 정말 급한 환잡니다!”
그 순간, 운전사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응급 수송 차량의 사이렌을 켰다. 이런 응급 차량에서 사이렌을 켤 수 있는 경우는 응급환자 이송, 응급 혈액 및 응급 대상물 수송, 응급의료종사자의 운송 등이 사유가 될 수 있는데.
지금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응급의료종사자 운송 목적으로 사이렌을 켰고. 그때부터 차량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야 할 거리를 최대 한 시간 이내에 주파해야 한다.
즉, 3분의1 가량의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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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밟아주세요! 좀 더! 좀 더!”
나는 도저히 성이 차지 않았다.
운전사가 액셀을 계속 밟고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느리게 느껴졌던 것이다.
한편, 그렇게 난리를 피우자, 운전사는 좀 더 속도를 냈고.
위용, 위용, 위용, 위용, 위용!
그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토해내며 미친 듯이 고속도로를 질주해나갔다.
그리고 그런 소란 탓에 뒷좌석 간호사들은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상태다.
사이렌 소리가 워낙 시끄럽기도 했고, 차량의 빠른 속도 때문에 차체의 흔들림이 무척 심해져 그녀들도 그걸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으세요?”
놀란 코디네이터의 물음에 나는 간단히 사정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그사이 폭주하듯 달리던 응급 수송 차량은 고속도로로부터 빠져나와, 어느덧 서울 시내로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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