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수술자 02
<93>
위용, 위용, 위용, 위용!
요란한 사이렌 소리.
늦은 새벽, 그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놀라, 차량들이 멈춰 서기도 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응급 수송 차량 앞을 가로막으며 계속 달리는 차량들도 있었다.
사실, 이 시대는 응급 시스템에 대한 대중적 이해도가 조금 부족한 상태다.
그 때문에 저 멀리 교차로 앞 적색 신호등이 켜지자, 응급 수송 차량의 앞을 달리던 차량들이 옆으로 비켜 주지도 않고 서행한 뒤 멈춰 서기 시작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요지부동!
할 수 없이 응급 수송 차량은 중앙선을 이탈했고 역주행하면서 교차로를 가로질러 빠르게 직진해 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빠아앙!! 하고 들려오는 요란한 경적 소리.
그 소리가 바로 우측에 들려왔다.
신호를 받고 우측 방면에서 직진하던 차량들.
이때, 그들은 각자 요란한 경적 소리를 내며 급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응급 수송 차량 역시 크게 놀라며 끼이이익!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정거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갑작스러운 급정거 때문에 무시무시한 관성의 힘이 응급 수송 차량을 휘감았고,
나는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걸 깨달았다.
그 와중에 치이익! 밀려 나가던 응급 수송 차량!
이때 놀란 운전사는 황급히 핸들을 꺾었고.
그 바람에 건너편 반대 차선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과 충돌하는 것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와! 저 미친 새끼들!
순간,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나올 뻔했다.
현재, 응급 수송 차량은 멀리서부터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질주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을 참지 못하고 차들이 저렇듯 튀어나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초응급 상태의 환자를 수송하는 과정에서 저런 일이 발생했다면, 자칫 이차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한편, 교차로 중앙에 멈춰선 차량들 중의 일부가 아주 불만이 가득한 것 같았다.
빵! 빵! 빠아앙!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뭔가 항의 섞인 불만들을 터트리고 있는데.
“아이씨, 저 새끼들! 다 딱지를 떼야 하는데.”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 운전사.
그는 인상을 팍 쓰며 그들을 노려보다가 핸들을 확 틀며 다시 액셀을 밟았다.
그렇게 응급 수송 차량은 아슬아슬하게 교차로를 빠져나왔고, 잠시 후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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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괜찮으세요?”
나는 즉시 뒷좌석을 쳐다봤다.
임신한 코디네이터의 상태가 염려됐기 때문.
이때, 아주 놀란 표정을 짓던 코디네이터. 다행히 그녀는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만약 좀 전에 더 밀려나 반대편 차량들과 충돌했더라면, 그 충격 여파를 절대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 괜찮습니다. 선생님. 시간 없으시다면 좀 더 빨리 가셔도 됩니다!”
한편, 응급 수송 차량은 속도가 빨라지긴 했으나.
좀 전의 위험성 때문인지 몰라도 운전사는 시속 60km 속도로 운전하고 있었다.
그러자 코디네이터는 다시 외쳤다.
“좀 더 빨리 가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러자 운전사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 쪽을 확인한 뒤, 곧이어 액셀을 꾹 눌러 힘껏 밟았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토해내며 차량은 다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적색 신호등 상황에서도 빠르게 교차로를 가로질러 달린 끝에.
마침내 성국대 병원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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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들도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황급히 조수석에서 내리자마자 이번 구득 업무를 같이 했던 간호사들한테도 인사한 뒤.
나는 후다닥 병원 본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손목시계로 현재 시각도 확인했다.
휴대폰 전화를 받았을 당시에 비해, 대략 50분 정도의 시간이 경과된 상태다.
다시 말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한 끝에 1시간 30분짜리 거리를 단지 50분 만에 주파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절대 늦은 게 아니다.
나는 서둘러 비상구 계단을 밟으며 뛰어 올라갔고, 잠시 후 3층 중앙수술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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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선생님. 제 시간에 오셨네요?”
중앙수술실에 입장한 나는 재빨리 탈의실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었고. 수술용 모자, 수술용 마스크 등을 착용한 뒤, 물과 소독제 등을 이용해서 손과 팔꿈치 위쪽까지 외과적 소독을 마쳤다. 그런 뒤에 수술방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스크럽 널스가 날 쳐다보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때, 나는 바로 고개를 숙여 간단히 인사한 뒤, 바짝 다가가 수술대 위의 환자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쓰고 말았다.
현재, 수술이 진행되어야 할 부위가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큼직한 쇳덩이가 흉부에 박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엔 소독약 흔적들이 가득한 상태다.
한편, 환자는 기관 삽관이 유지된 채 호흡을 하고 있는 상태다.
“선생님! 환자는 지금 어떻습니까?”
바이탈 모니터부터 쳐다보던 나는 즉시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마취과 의사한테 추가 상황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러자 날 빤히 쳐다보는 마취과 의사.
이번 마취과 의사는 이런저런 수술들 때문에 많이 친숙해진 마취통증과 레지던트 2년차 박신희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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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당시, O형 수혈됐고, 헤모(헤모글로빈) 수치와 산소포화도 때문에 현재 6단위 packed red blood cell(농축 적혈구)과 3단위 fresh frozen plasma(신성동결 혈장) 수혈이 긴급 진행됐고, 상당히 상태가 안 좋아, 언제든 수술이 중단될 수 있어요.”
“그럼 혹시 BP는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까?”
그러자 고개를 바로 젓는 박신희 선생.
“30분 전에 SBP가 20까지 떨어져 수술 보류 결정이 내려질 뻔했다가 다행히 60으로 다시 올려놨어요. 그러나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그러니까 다시 그런 상황이 오게 된다면, 수술 포기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어레스트(심정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저 흉부 쪽 쇠붙이 때문이라도 심폐소생술(CPR)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저 쇠붙이부터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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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수술 모자를 꾹 눌러쓴, 중년의 서철성 교수.
그가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한편, 그는 날 쳐다보며 눈을 마주친 뒤 바짝 다가갔다.
“피곤하지 않아?”
“괜찮습니다.”
“그럼 환자 상태는 확인했지?”
“네.”
“언제 들어왔어?”
“좀 전에 들어왔습니다.”
“김 선생, 자세한 대화는 좀 있다가 하고, 빨리 시작하자!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아.”
현재, 서철성 교수의 표정은 아주 굳어있다.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그 얼굴에선 그런 고민과 갈등이 그대로 묻어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10번 메스를 건네받은 서철성 교수.
그는 환부를 이리저리 살핀 뒤 재빨리 개흉술을 진행해 나갔다.
그런데 이번 개흉술은 단순히 흉부만을 여는 작업이 아니다.
흉부를 여는 과정에서 주변 조직을 정리하며 쇠붙이를 제거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특히, 괴사된 조직을 절개하고, 주변 감염 부위에 대한 확인 및 처치 작업 등도 같이 이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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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여기 좌폐하엽 쪽에 제대로 꽂혔어.”
점점 더 심각한 표정이 되고 있는 서철성 교수.
천천히 쇠붙이들을 제거하자 곧이어 드러난 아주 아찔한 광경.
흉부로 파고든 쇠붙이가 좌폐하엽 쪽에 큰 구멍을 낸 것도 문제였지만, 횡경막 파열 외에도 비장동정맥에 심한 손상까지 입힌 상태다. 특히, 너무 심하게 망가진 비장은 이대로 적출해야 할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몇몇 파편들은 상행대동맥 깊숙이 박혀 있다. 특히 흉부를 열고 나서 전체를 살펴보니 각 동맥에 박혀 있는 파편들이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금방이라도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며 과다 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급박한 상황.
이런 상황에선 테이블 데스 가능성을 절대 낮게 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응급실 의사들마저 환자의 상태를 본 뒤 난색을 보였던 것이다.
“김 선생, 지혈 먼저 하고, 일부 동맥은 먼저 겸자하자! 그리고 추가 개복한 뒤 좀 더 살펴봐야겠어.”
그러면서 서철성 교수는 전기소작기 보비(Bovie knife)를 가리켰고, 한편 자신은 클램프를 손에 쥐었다.
그때부터 흉부 전역에 대한 일차 지혈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러고는 곧이어 개흉술에 이은 전체 개복술까지 진행되었다.
사실, 흉부 아래쪽 영역은 일반외과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환자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확인하기 위해 개복술이 즉시 시행되었고.
그 와중에 협의 수술을 위해 대기 중이던 일반외과 의사 몇몇이 들어와, 개복 이후의 환자 상태를 즉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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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파열, 간 손상, 소장 쪽에도 출혈이 있네요. 특히, 이게 문젭니다. 비장은 완전절제해야 할 상황입니다.”
한편, 환자의 뱃속은 피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 출혈 흔적이 나타나고 있는데.
큰 충격에 의한 다발적 손상과 출혈이 발생한 탓이다.
그래서 긴급하게 출혈 부위들에 대한 지혈 작업들과 일부 혈관들에 대해선 혈관 겸자로 혈류의 흐름을 우선 막아뒀다.
특히, 비장동정맥 쪽의 혈류 흐름을 혈관 겸자를 이용해 완전히 차단시켰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석션이 진행됐고.
쉴 새 없이 거즈가 환자의 몸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 때문에 한쪽에선 피 묻은 거즈가 점차 쌓이고 있었는데.
반면, 다른 편에선 박신희 선생이 수혈팩을 쫙쫙 짜내며 빠른 수혈을 진행하느라 무척 바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일반외과 의사들의 집도에 의해 비장 완전 절제술이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흉부 수술을 위한 완전순환정지 과정 중에 크게 손상되어 있는 비장 쪽으로 압력이 전해질 수도 있어, 혹시 모를 문제가 터지는 참사를 막기 위해 단시간 내에 완전 절제술을 통해 화근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비장은 인체 내에서 주요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나 생사의 문제에 있어선 예외적인 장기다.
그럼에도 이런 비장 자체가 제거된 사람들은 이후 면역 기능이 크게 감소하여 패혈증을 비롯하여 전염성 질환 등 각종 감염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거기다가 고혈압, 동맥경화, 혈전 등 각종 혈관 질환 문제에도 취약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비장 절제가 착착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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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정도만 하고, 저흰 다시 오겠습니다.”
잠시 후, 비장 절제가 마무리되자, 후속 처치까지 마친 일반외과 의사들은 간단히 인사한 뒤 수술장 밖으로 나갔다.
그렇듯 비장 쪽 문제를 재빨리 봉합하자, 이제 드디어 본격적인 흉부 수술이 시작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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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메스!”
“모스키토(mosquito) 잡고, 이쪽으로!”
“여기, 지혈!”
“티슈 포셉!”
“이쪽 잡아!”
“지혈!”
“시야 확보 됐으니까 비켜!”
“클램프 잡아! 여기! 여기! 김 선생, 빨리!”
“오케이!”
“좀 더 빨리 가자. 저 혈관들, 버티기 힘들어.”
“박 선생, 바이탈 어때?”
그 순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박신희 선생이 즉시 대답했다.
“BP 계속해서 처지고 있었습니다. 수혈은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환자 출혈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신희 선생 덕분에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그녀가 최선을 다해 수혈팩을 쫙쫙 짜서 혈액을 넣고 있고, 또한 약물 투여도 중간중간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완전순환정지를 위한 준비 작업이 어느덧 막바지에 달하던 그 시점.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어딘가에서 피가 분수처럼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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