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인턴 01
#
“자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의사로서의 사명감?
갑자기 왜 저런 질문을 하실까.
그러나 나는 잠깐 생각한 뒤 소신대로 대답했다.
“제가 담당하는 환자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또한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되 최고의 답안지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답안지를 만들어낸다?”
“네! 의사들에겐 수많은 환자들이 있으나 그 환자에겐 수많은 의사들이 없습니다. 매일 쫓기는 듯한 삶을 살아도 새로운 환자를 만나게 되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또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철성 교수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술할 때도 그렇고, 수술한 이후에도 환자의 예후를 지켜보느라 밤을 새울 수 있는 게, 바로 의사의 사명이자 의사의 열정이지.”
그 말에 나 역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좀 더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알다시피, 내가 내년 1월부터 진료부원장으로서 보직을 수행해야 하네.”
그건 저번 박윤후 교수님 방에서 직접 들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회귀 전에도 내가 직접 봤던 일이고.
“그런데 그 진료부원장의 일이 생각보다 많아. 수술 참여 횟수도 결국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아쉬움의 감정이 그의 표정에서 묻어나오고 있었다.
치열한 수술 현장에서 뛰다가 내년부턴 조금 뒤로 물러서야 할 서철성 교수님.
그는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네. 그 때문에 장고 끝에··· 그 보직 제의를 수락하기로 최종 결정했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내가 슬쩍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 자리 자체가 원래 힘이 있잖아. 내가 순전히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가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더라고.”
“어떤 거 말입니까?”
“우선, 나는 행정 시스템과 진료 시스템을 내 손으로 꼭 개선하고 싶네. 자네도 좀 전에 말했지. 의사는 모든 선택지를 다 고려해야 한다고.”
“네, 그랬습니다.”
“근데··· 내가 봤을 때, 우리 병원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아. 병원이 환자 중심이 아니라 어느새 수익 사업으로 변하고 있거든. 물론, 수익도 중요하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병원이 조금씩 놓치고 있어.”
“교수님, 대체 어떤 거 말입니까?”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긴 하지만, 모든 게 돈의 논리로 바뀌어 가고 있어. 이번에 신규 건물 증축만 하더라도 암센터가 메인이거든. 가장 큰 수익이 보장되니까 암센터에 올인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게 조금 바꿔서 여러 센터가 입주하게 됐고 그나마 다행이야. 외상센터가 새로 발족하는 건 정말 큰 수확이고···.”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님은 할 말이 많은 듯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의사들에 대한 평가 시스템도 문제야. 현직 진료부원장이 만든 의대 교수 평가 시스템도 문제가 있어. 왜 그런 줄 아나? 진료의 질보다는 국가 보건 및 임상 연구 프로젝트 수주, 민간 용역과제 수주, 외래진료 건수 등에 더 높은 배점을 두고서 의사들을 평가하고 있어. 그런 기준으로 하니까, 현재 그 진료부원장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높아. 그 인간은 자기 인맥을 이용해서 국가 프로젝트를 아주 잘 따오거든. 그런 자가 임의로 평가 기준을 만들다 보니, 현장의 문제와 현장의 중요성이 전혀 반영되질 않아.”
그렇듯 갑자기 봇물이 터진 듯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서철성 교수님.
하긴, 현재는 크게 위험한 수치는 아니지만, 앞으로 의대 교수들은 더없이 바빠지게 된다.
환자 진료에 집중하는데 끝나지 않고 이런 연구비 수주에도 큰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
사실, 해가 바뀔수록 성국대 병원의 국가 프로젝트 수주 숫자는 갈수록 커지게 된다.
성국대 병원의 일년 국가연구비 규모가 천 억대를 넘어서게 될 정도로 커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연구와 진료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선순환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연구비 수주가 의대 교수의 필수가 되면서 의대 교수들 사이에선 심각한 스트레스와 번 아웃 증상까지 나타나게 된다.
환자 개개인에 대해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점에, 이런 복잡한 외적 상황이 생기는 건 절대 좋지 못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보직을 맡으면 그런 점들을 모두 개선할 생각이네. 현장에 있는 진료과의 고충부터 해결하고, 입원실, 수술실, 스테이션 등 각 유닛(unit)의 효율성을 좀 더 짚어볼 생각이네.”
그러니까 환자 진료 및 치료 등, 모든 시스템을 환자와 현장 종사자 위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아는 성국대 병원의 미래는 서철성 교수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서철성 교수님이 보직 임기를 마친 뒤 다시 평교수로 돌아오자, 성국대 병원의 정책도 새로운 보직자들에 의해 다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즉, 국가연구비 수주가 주요 포인트가 되는 교수 평가 시스템으로 업데이트가 되고.
특히, 국가연구비 수주 자체가 각 병원의 자존심 경쟁으로 변질되게 된다.
그런 미래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이내 쓴 미소를 지었는데.
그럼에도 오로지 환자한테 집중하는 서철성 교수님의 태도는 확실히 남달랐고.
확실히 선이 굵은 거인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
“그리고 김 선생! 아까··· 그 수술 말이야.”
잠시 후, 화제를 전환하는 서철성 교수님.
그는 드디어 좀 전의 수술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말 놀랐네! 내가 못하는 걸 자네가 번개같이 해내는 걸 보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한데, 지금도 일부분 이해를 못 하겠네. 내가 왜 갑자기 자네한테 그걸 시켰을까? 물론, 자네 수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 순간, 나는 움찔했다.
그러나 일부러 모른 척했다.
시스템에 의해 조작된 기억.
그 기억이 이식됐으나, 그럼에도 서철성 교수님은 자신한테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조작됐다는 걸 절대 알 리가 없는 그는 또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자넨··· 앞으로 큰 의사가 될 것 같네. 그래서 말인데··· 그런 의사들한텐 더 큰 사명감이 있다는 걸, 자넨 꼭 기억해야 하네. 아무리 여건이 힘들어도, 아까 말했던 그 사명감! 그 사명감을 죽어도 잊어선 안 되네. 나는 자네가 꼭 그런 의사가 되었음 좋겠네.”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님은 씩 웃는다.
그러고 보면, 나한테 하고 싶은 말들이 바로 저 말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회귀 전의 내가 서 교수님한테서 저런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을까.
사실, 그런 기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비록 기억 조작의 결과였으나.
매시브 브리딩(다량 출혈)을 극복한 내 솜씨는 바뀔 수 없는 결과였고.
그 결과만큼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서철성 교수님.
그 때문에 나는 서 교수님마저도 인정하는 그런 위치로 순식간에 올라서게 된 것이었다.
#
한편, 그로부터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고···.
갈수록 한파가 매서워지는 초겨울의 시간은 점차 본격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그 와중에 [연계 미션(3)]과 관련된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상들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흉부외과 수술들과 환자 관리에만 집중했고.
그 와중에 일주일의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갈수록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 [연계 미션(3)]은 특별한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계속 그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언제 갑자기 돌발적으로 미션이 시작될지 모르는 일이고.
한편으론 미션 목표도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김윤상 의원의 생명을 구하라?
아버지의 목숨?
바로 아버지의 목숨이었다.
특히, 회귀 전에 내가 봤던 아버지의 죽음.
다만, 놀라운 점은 그런 죽음이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시스템은 예고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숙명을 뛰어넘으라는 거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또한, 어떻게?
그래서 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
근데 문제가 또 있단 말이야.
그 문제는 바로 이번 미션이 ‘사신’과의 연계성이 아주 높다는 거다.
특히, [사신의 낫(A)] 특성이 평상시에도 발동된 상태다.
[사신의 낫 A등급]
[예고된 죽음을 피하고 싶습니까? 아직 당신에겐 기회가 있습니다. 죽음을 회피하는 순간 새로운 죽음의 저주와 싸워야 합니다]
[당신의 반경 10m 거리 이내, 하루 이내 사망자 식별 가능, 제한 조건: 없음]
그러다 보니, 응급실을 지나칠 때마다, 중환자실을 지나칠 때마다, 수술장에서 어시를 하고 있을 때마다, 나는 순간순간 흠칫하게 된다.
하루, 다시 말해서 24시간 이내에 사망하게 될 환자들이 내 눈에는 식별되기 때문이다.
비록 ‘반경 10m 거리’ 제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내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여러 환자들의 숙명을 나는 원치 않게 알게 된다.
그런데 그게 환자의 숙명을 넘어서는 일로 나아가게 된다면 무척 기분이 좋을 텐데.
꼭 그렇지도 않다 보니, 누군가의 생사를 아는 건 항상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다.
<96>
2001년 12월 1일 토요일.
초겨울의 매서운 한파가 더 세게 몰아치기 시작하는 그날.
응급실 한쪽 베드에 누워있는 어느 노인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또 어떡하지.
그 노인의 얼굴 절반은 이미 검은 기운이 내려앉은 상태다.
바로 저 검은 기운, 저건 바로 24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사람들의 표식이다.
노인에겐 이미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고.
그 기운이 얼굴을 완전히 뒤덮는 순간, 노인은 결국 임종하게 될 것이다.
#
“···응급실 생활을 이미 해 봤으니까 다들 잘 알 테고. 더군다나 너흰 흉부외과에서 수술도 많이 해 봤다며? 그래서 기대가 더 커! 물론, 말턴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응급실이 어떤지 잘 알지? 암튼, 좀 더 힘내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응급실 레지던트 3년차, 치프 장태욱 선생.
오늘부터 우리는 흉부외과를 벗어나 응급실 턴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그는 간단하게 인사말을 한 뒤 가볍게 우리와 악수도 했다.
그런데 그게 환영식의 전부였다.
“야! 이제 됐으니까 지금 당장 준비하자! 빙판길 때문에 아침에 7중 추돌사고가 났다고 좀 전에 연락 왔다! TA(교통사고) 환자들 곧 밀려들 테니까 정신 바짝 차려! 첫날부터 일 터진다고 야속해 할 거 없어. 원래 응급실이 그러니까.”
“네!”
방지현, 이동욱, 그리고 나는 힘있게 대답했고.
그때부터 각자 흩어져 TA 환자들을 받을 준비를 빠르게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10분 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여러 대의 앰뷸란스가 응급실 앞에 나타났다.
“야! 뛰어!”
그 순간, 우리는 뛰었다.
119구급대원들과 함께 환자를 실은 스트레처카를 끄는 것 외에도 환자 상태를 서둘러 확인하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