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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94화 (94/145)

죽음의 저주 01

<97>

잠시 후, 아이는 긴급 검사를 위해 응급 CT실로 들어갔다.

나머지 일들을 담당 간호사한테 맡긴 뒤 다시 응급실 베드 쪽으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계속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냐하면, 사자(死者)의 징후가 나타나기 전과 후의 모습을 내가 다 봤기 때문이다.

즉, 피할 수 없는 죽음. 이제 최대 24시간이 남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무슨 메커니즘으로 사자(死者)가 되는 숙명이 갑자기 결정되는 것일까.

특히, 그런 메커니즘을 감히 알 수가 없어, 갑자기 닥친 이 상황 앞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내가 정말 사신과 거래를 해야 하나.

절대 쉽지 않을 텐데.

그러고 보면 처음 사신을 만났을 때, 그때 사신은 내 목을 부러뜨릴 듯 움켜쥐었고 호흡이 막히는 순간, 나는 깊은 공허와 절망,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잠시 맛보았다.

그게 바로 인간이 그 칠흑 같은 죽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런 절망적인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초월적 존재와 거래를 한다?

본능적으로 큰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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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CT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한편, 이런저런 검사들이 시행됐고.

수술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하기 전, 생명 보전을 위한 온갖 처치가 아이한테 집중된 상태에서 드디어 검사 결과들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즉시 뛰어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CT 검사 결과 외에도 심전도 검사 결과, 혈액검사 결과 등도 서둘러 확인했다.

이때, [베살리우스의 눈(A)] 특성을 통해 대략 확인했던 각종 손상 부위와 이번 결과들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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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어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조은하 선생이었다.

아까 사망자 쪽에서 일했던 그녀는 어느새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고.

지친 기색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안 좋습니다.”

그런 내 대답에 흠칫하더니 조은하 선생은 다시 물었다.

“심장 문제야? 얼마나 안 좋아?”

“음! 좌측 흉부 쪽, 다량의 혈액이 검출됐고. 좌측 벽측 흉막에 수많은 파열 흔적이 있습니다. 좌측 총장골 동맥 원위부에서 대동맥분지부까지 출혈이 발생했고, 대동맥 주변 장간막 부분 파열 소견도 있습니다. 복부 대동맥 박리 소견! 소장 및 장간막 출혈, jejunum(공장) 출혈, duodenum(십이지장) 출혈, 심막 파열 및 우심방 쪽 6cm 길이의 파열 소견 등도 있습니다.”

그러자 잠시 멍해지는 듯한 모습인 조은하 선생.

이 정도 손상이라면 흉부와 복부 쪽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는 의미다.

차량에서 튕겨 나간 뒤 아주 나쁜 위치에서 무언가와 몸이 아주 세게 부딪힌 모양이다.

“뇌는 어때? 뇌 CT 결과?”

“아, 일부 출혈이 있긴 하나, 피부 쪽 출혈 문제이고, 그 외 다른 문제는 아직 잡히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재 흉부 쪽과 복부 쪽은 그 문제가 아주 심각했다.

“수술할 수 있을까?”

날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독백하듯 말하는 조은하 선생.

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사실, 누가 봐도 수술은 불가능한 상태.

왜냐하면, 저런 상태는 십중팔구 테이블 데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문득,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에 실려 왔을 당시, 그때 아이의 상태도 이와 다를 바가 없을 텐데.

그땐 사자(死者)의 징후가 아이의 얼굴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악화되어 사자(死者)의 징후가 나타날 수도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했다.

즉, 사자(死者)의 징후가 나타난 건, 단순히 골든아워를 넘어섰기 때문일까.

그렇듯 아이한테 주어진 숙명때문일까.

그런데 이때 조은하 선생의 반응을 보게 되자 나는 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되었다.

즉, 수술이 힘들 것 같다는 그녀의 적나라한 반응.

그런데 외상환자들한테 수술하는 것과 수술하지 못하는 것은 그 차이가 극명하다.

수술 포기는 바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

그럼에도 외상 전문 의사들은 간혹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테이블 데스 문제!

도저히 방법이 없는, 환자의 상태 문제!

그리고 테이블 데스를 우려하여 법정 공방을 피하려는 문제!

그렇듯 수술 여부가 결정되기 전, 그런 외적 문제들이 수술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이의 상태를 좀 더 빨리 확인하기 위해 [베살리우스의 눈(A)] 특성을 발동했고 그러면서 아이를 즉시 살폈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죽음의 징후가 아이한테 날아들었다.

바로 직전까지도 그런 징후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 징후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설마······.

누군가의 죽음과 운명! 그게 찰나의 순간, 우리 의사들의 손에서도 결정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즉, [베살리우스의 눈(A)] 특성 발동은 아이의 상태가 드러나는 것이고.

이건 바로 이후의 결정과도 연관이 된다.

그렇듯 갑자기 섬뜩한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그리고 바로 그때.

뜻밖의 시스템 알람이 갑자기 내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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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사신의 눈이 당신을 날카롭게 쳐다봅니다!]

[사신과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인상을 팍! 쓰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며, 이내 짧게 탄성을 질렀다.

이때 의아해하며 날 쳐다보는 조은하 선생.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빠르게 스치듯 지나갔고.

재빨리 서철성 교수님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뛰어갔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바로 이 상황에서, 저 아이를 수술대 위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서철성 교수님뿐이다.

“교수님! 교수님!!”

내 깨달음의 결론은 결국 그것이고.

나는 고함을 지르며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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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려고? 저 상태에선 수술은 무리일 텐데?”

잠시 후, 함께 움직이던 조은하 선생은 내내 걱정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좀 전, 서철성 교수님은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를 호출했고.

그가 응급실로 내려오자, 응급실 바로 옆에 있는 회의실로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요란한 목소리들이 문밖으로 들려오는데

지금 두 사람은 서로 날을 세우며 크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서 교수님! 이번엔 절대 안 됩니다! 이러다간 법적 소송으로 갑니다! 어떻게 감당하실 겁니까! 도대체 안 되는 걸 왜 하시려는 겁니까!”

“김 교수! 그게 아니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태가 위독해도 외과적 처치라는 건···.”

“아뇨! 아닙니다! 절대 안 돼요! 테이블 데스 확률이 90% 넘어요! 무조건 수술대 위에서 죽는다니까. 그걸 어떻게 용납합니까! 절대 안 돼요! 절대 안 돼!”

“야!! 김 교수! 말 좀 들어봐!”

“왜 삿대질입니까? 이번 일은 절대 안 된다니까요!”

그렇듯 수술대에 올리기 힘들다는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의 의견.

반면, 수술대에 무조건 올리겠다는 서철성 교수님의 의견.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쉴 새 없는 말다툼으로 번지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 환자는 바이탈 확보를 위해 심장막천자(Pericardiocentesis) 등이 시행된 상태다.

또한, 흉강천자(thoracentesis) 시술을 통해 출혈된 혈액이 배액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출혈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쉴 새 없이 수혈이 진행되는 중이다.

각종 약물 투여도 진행되어 바이탈 사인을 억지로 조정하고 있는 중인데.

문제는 결국 외상성 손상 범위가 너무 넓다 보니 외과적 수술이 쉽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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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잠시 후, 회의실에서 걸어 나오는 서철성 교수.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약간 두 눈까지 충혈된 걸 보면, 정말 격렬한 말싸움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나중엔 이런저런 욕설까지 들릴 정도였는데.

그만큼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가 격렬하게 수술을 반대했다는 의미다.

“어쨌든··· 이 수술은 하기로 했다.”

“네?”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며 서철성 교수님을 쳐다봤다.

내가 봤을 때도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그러니까 서철성 교수님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써,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의 의견을 눌러버린 것이다.

특히, 좀 전에 ‘진료부원장’이라는 말까지 문밖으로 들려온 걸 보면, 서 교수님은 ‘진료부원장’ 내정 사실까지 언급하며 김광일 교수를 압박한 모양이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보직인사.

그것까지 들먹이며 힘으로 압살한 거였고.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이의 상태가 위중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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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바로 수술대로 데려오고! 10분 내로 모든 조치 완료해! 10분 내로 나도 들어갈 테니까.”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수술 동의서는 받았지?”

“네. 혹시 몰라 보호자를 통해 받아뒀습니다. 좀 전에 보호자가 도착했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강한별입니다.”

“강한별? 흠, 남자아이 이름치곤 유별나군. 어쨌든 좀 이따 보지.”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님은 터벅터벅 걸어갔고.

곧이어 회의실에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상태인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가 걸어 나왔다.

그는 나오자마자 날 매섭게 노려보더니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야! 빨리 수술실로 데려와!”

그 순간, 나는 얼른 뛰었다.

더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고.

모든 수술 준비를 재빨리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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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응급전용 수술실로 이동식 베드가 들어갔다.

그때부터 아주 빠르게 모든 처치가 취해졌다.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는 이때 강한별의 상태를 다시 쳐다보더니 인상을 팍팍 썼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신마취를 시행했다.

그 일을 보조한 뒤, 나는 환자 바이탈을 다시 확인했고.

수술방 입장을 위한 모든 처치를 빠르게 진행해 나갔다.

사실, 내 신분은 현재 응급실 인턴 신분이라 이런 일들은 내 일들이 아니다.

그러나 서철성 교수님이 응급의학과 과장한테 협조 요청을 했고.

그 때문에 나는 이번 수술에 애매한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역할은 퍼스트 어시 역할이다.

한편, 이번 수술은 응급수술이라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지 않았고, 그래서, 잠시 후 강한별은 수술방으로 들어간 뒤, 수술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혀지게 되었다.

현재 수술 부위로 잡힌 것은 흉부와 복부 쪽이다.

그래서 일반외과에서도 레지던트 선생이 내려와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갔고.

수술 부위에 대한 마킹과 주변 소독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수술장에 들어온 서철성 교수님은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와 잠깐 마취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더니 곧바로 스크럽 널스로부터 메스를 건네받았다.

이후, 별다른 코멘트 없이 바로 시작되는 개흉 과정.

그때부터 지독한 침묵이 수술방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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