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저주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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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김 선생, 이쪽 좀 잡아. 조심해서.”
개흉이 진행되면서 이리저리 부러진 늑골들에 대한 정리가 진행되었다.
통상 가장 많이 골절되는 부위는 제4에서부터 제9까지의 늑골 쪽이다.
반면 제9에서부터 제12까지의 늑골이 골절되게 되면 비장, 간, 신장 등에 파열 및 열상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이 아이의 경우, 다발적 늑골 골절에 의한 장기손상이 아주 심각한 편인데.
이런 장기손상에 대한 직접적인 처치 외에도 이런 늑골 골절에 대해서도 적절한 교정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다발성 늑골 골절은 보통 수술적 정복고정술을 써서 교정하게 되는데.
이 시대 기준으로 보면, 스테인리스 철사를 이용해서 일차 교정을 하고.
이후 쥬데 플레이트(judet plate)를 이용한 이차 교정.
티타늄 플레이트와 나사 등을 이용한 3차 정복고정술이 필수적이다.
현재, 손상 부위가 흉부 쪽이라 어쩔 수 없이 수술 목적을 위한 일차 교정이 진행되었고.
이후, 본격적인 개흉 과정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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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셉(forcep)!”
“김 선생, 여기 좀···.”
“보비(bovie)로 이쪽 절개도 하고 지혈도···.”
“심낭 고정할 테니까···.”
“이거 좀 받아. 늑골 파편인데···.”
“석션은 그 정도면 됐어.”
“지혈!”
“먼저 double purse string으로 가자고. 그쪽 혈관도···.”
“석션!”
“이쪽 잡아!”
“오케이! 저기 김 교수님! 수혈팩 좀, 팍! 팍! 짜주십시오!”
현재, 환자는 출혈 상태.
더군다나 수술 중 절개에 의한 출혈 또한 이어지면서 출혈량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부족한 혈액을 수혈로 대신해야 하고, 이때 각종 약물 투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잠시 뒤.
흉부의 모습이 좀 더 적나라하게 시야에 잡히고 있었다.
특히, 석션에 의해 혈흉 상태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그 실제 모습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 내부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수술 집도의의 표정은 바로 굳어진다.
여기저기 장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혈액의 모습.
그렇듯 장기 출혈 흔적은 뚜렷했고.
이런 상태에서 심장이 요란하게 뛰고 있는 건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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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봐! 저걸 보면 누가 포기할 수 있을까? 우리 같은 흉부외과 의사들은 저런 걸 보면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서철성 교수는 아이의 심장을 눈으로 가리키고 있었고.
그 순간, 나도 그 심장을 가만히 쳐다봤다.
사실, 저 심장이 멈추게 되는 순간, 한 인간의 삶도 끝나 버린다.
그렇듯 고귀한 생명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김 선생!”
“네?”
“오늘 스케쥴은 어때?”
“네?”
순간, 내가 의아해하며 반문하자, 그는 씩 웃었다.
“난 (수술 시간이) 10시간, 20시간 되도 상관없으니까 한번 끝까지 가보자! 무조건 끝까지 말이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네! 저도 상관없습니다!”
“그래, 시작하자!”
잠시 심장을 쳐다보던 우리는 그 바람에 조금 시간을 빼앗겼으나 그때부터 손놀림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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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이쪽 좀 잡아!”
“11번 메스!”
“메젠바움(metzenbaum)!”
“이쪽 묶어서 넘겨.”
“11번 메스!”
“지혈!”
“석션!”
“캐뉼라 삽입은 다 됐지?”
“김 간호사! ice saline 준비됐나?”
“야, 김 선생! 클랩프 물리고 즉시 온도 낮춰!”
“4-0 prolene 수처 준비!”
“이쪽 포커스해서 바로 따라와.”
그리고 잠시 뒤.
드디어 완전순환정지 상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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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로부터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는데···.
총 수술 시간, 3시간 23분 경과.
심폐 바이패스, 102분 경과.
대동맥 폐쇄, 62분 경과.
완전순환정지, 27분 경과.
그렇듯 완전순환정지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흉부 대동맥 파열에 대한 처치 및 심막, 우심방 열상 등에 대한 단순 봉합 처치 등이 빠르게 이어졌다.
한편, 대동맥 파열이 복부 대동맥까지 이어져 있어, 일반외과(GS) 의사들도 수술 중간에 합류했는데.
그때부터 수술이 흉부와 복부를 오가며 진행되었다.
그렇듯 무척 빠듯하면서 복잡한 수술이 계속 이어졌는데···.
그리고 잠시 뒤.
대동맥 각 파열 부위에 대한 봉합 수술들을 모두 마친 뒤, 이제 완전순환정지 상태를 풀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지금껏 잠잠하던 심장 쪽!
그런데 그쪽에서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난데없이 심각한 이벤트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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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서 교수님! 심장 상태 이상합니다! 위험해요!”
김광일 교수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
그 목소리에 우리는 고개를 돌려 바이탈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이내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위험한 부위에 대한 수술이 어느 정도 끝났는데.
그러나 아이의 심장이 갑자기 버티지 못하고 급제동을 건 것이다.
실제, 이런 종류의 수술에선 비록 수술 과정이 무난하게 진행됐다고 하더라고, 중간에 난데없이 테이블 데스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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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테니까 여기 치워봐! 김 선생, 여기 흉부 대동맥 잡아!”
수술용 현미경이 옆으로 치워졌고, 서철성 교수는 스스럼없이 아이의 심장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 와중에도 심장 상태는 더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즉, 심실 자체가 1분에 수백 회가량 불규칙하게 수축을 반복하는 심실세동(VF) 상태가 되었고.
이런 상태는 순식간에 환자를 어레스트(심정지)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즉각 치료가 안 될 경우, 환자는 즉시 사망할 수 있다.
“김 교수님! 에피네프린(epinephrine) 더 투여해 주십시오!”
그렇게 약물 투여량을 즉시 더 높였으나 그럼에도 심실세동(VF)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 순간, 서철성 교수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환자의 심장을 만지며 직접적인 마사지를 시작했다.
바로 개흉식 심장 마사지다.
사실상, 다발적 늑골 골절들 때문에 일반적인 폐흉식 심폐소생술이 불가능했던 아이.
그런데 사고 이후 처음으로 개흉식 심장 마사지에 의한 심폐소생술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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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규칙적인 심장 마사지.
한편, 서철성 교수의 얼굴은 갈수록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폐흉식 심폐소생술보다 이런 방식은 그 효율성이 더 떨어진다.
특히, 이런 직접 접촉을 통한 심장 마사지 요법은 쉬운 게 아니라서.
물리적 노력 외에도 더 큰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런 데다가 이 방식 자체가 여러 가지 제약점들이 많다.
특히, 심실세동(VF, ventricular fibrillation) 상태에서 이런 심장 마사지의 효력은 더 크게 떨어지는데.
결국, 분당 60회의 규칙적인 심장 마사지가 쭉 이어졌음에도 별다른 개선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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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지금 즉시 리도카인 투여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뇨! 리도카인 말고 아미오다론 투여해 주세요!”
땀을 뻘뻘 흘리며 심장 마사지 중인 서철성 교수는 그렇게 외쳤다.
보통, 환자의 심실세동 현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그때 리도카인 투여가 많이 권장되고 있으나.
대략 10년 전에 출시된 아미오다론도 제법 많이 쓰여지는 약물이다.
특히, 강력한 항부정맥제인 아미오다론, 이 약물은 리도카인보다 환자 생존율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한다.
다만, 문제는 갑상선 쪽과 폐 쪽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그런 부작용을 염려할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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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제가 하겠습니다!”
잠시 후, 내가 나섰다.
분당 60회에서 80회 정도로 규칙적인 심장 마사지를 하는 것. 그런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날 쳐다보다가 서철성 교수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즉시 위치를 교대했다.
그 순간, 내 손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촉들.
그러나 그 느낌을 얼른 지운 뒤, 집중하며 심장 마사지를 이어나갔다.
그로부터 잠시 뒤.
내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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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간이 흐를수록,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심장을 마사지하는 건, 단순히 어깨를 주무르는 것과 같을 수가 없다.
더 많은 신경이 쓰였고, 더 많은 집중력 외에도 물리적 악력도 필요했다.
어느 순간 굵직한 땀방울들이 이마를 타고서 흘러내리자, 수술방 간호사는 내 이마를 타고서 흐르는 땀을 즉시 닦아줬으나.
땀은 끊이질 않고 흘러나왔고.
그 와중에 점점 더 마음은 불안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심장 마사지 시간이 경과될수록 상황은 더 좋지 못한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떡하든 이런 심장 마사지를 계속해야만 어레스트(심정지) 상황이 오는 걸 막을 수 있으나 문제는 이걸 무한정 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심장이 계속 버틴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다.
그래서 점점 더 회의적인 시각이 깊어졌는데.
이때 나는 심하게 인상을 찡그리다가.
문득 다른 해결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98>
그래! 고작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숙명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선 더 큰 노력과 더 처절한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지금은 생사가 걸린 문제.
더 많이 노력해야 하고 더 많이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
현재 주어진 시간으로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의 장벽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과거 권철수 환자를 하루 더 살린 적이 있다.
바로 [회광반조] 특성 덕분.
그렇듯 그의 수명이 늘어나자, 그때 사신은 날 주목했었다.
그 정도로 [회광반조]가 임팩트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는 그때와 다르게 [회광반조] 특성이 더는 내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니지! 아냐!
비슷한 게 있잖아!
즉, 얼마 전에 내가 획득한 새로운 [전용 특성]을 떠올리던 나는 어느새 두 눈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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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특성, 일대일 교환(S)이 발동되었습니다]
[당신의 수명이 하루 감소됩니다]
[강한별 환자의 수명이 비례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씩 웃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시스템 경고 알람!
[경고! 당신을 향한 사신의 분노가 갑자기 커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죽음의 저주가 즉각 발동됩니다!]
뭐? 다시 죽음의 저주가 주어졌다고?
안 돼!
아직 부족한 걸까.
다시 말해, 숙명을 바꿀 변수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특성을 발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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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특성, 일대일 교환(S)이 다시 발동됩니다]
[수명 하루가 더 감소되며, 강한별 환자의 수명이 비례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자 곧이어 들려오는 또 다른 경고!
[사신의 유혹 Lv.2! 사신이 직접적으로 경고합니다!]
[새로운 죽음의 저주는 불특정 대상에게 도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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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나는 흠칫 놀라며, 서둘러 [일대일 교환(S)] 특성 발동을 멈췄다.
더는 위험을 좌초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죽음의 저주가 불특정 대상에게 도래할 수 있다는 사신의 위협은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 정도면 됐겠지.
아이의 수명은 이미 늘어났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의하면, 지금 아이의 상황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즉, 원인과 결과, 그런 인과를 고려할 때, 가장 큰 사인(死因)이 될 수도 있었던 대동맥 파열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고.
그런 문제가 이 상황의 아이에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권철수 환자와는 지극히 다른 경우라고 해야 하나.
그저 한별이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다시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받게 될 것인데.
다만, 이전과 달리, 모든 것들이 한별이에게 유리해진 것이다.
원인에서 비롯된 숙명이라는 건, 명실공히 원인이 사라지게 되면 과연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까.
특히, 수술은 진행 중인 상황이고.
외과적 처치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실질적인 징후 변화가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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