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저주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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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물러서!”
갑자기 들려온 서철성 교수님의 목소리.
물론, 그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손을 떼고 있었다.
내 손에서 느껴지던 심실세동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있었고.
다시 심장은 정상적인 형태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들.
그리고 머리가 핑! 돌 것 같은 피로감.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쓱 길어지며 나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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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시무시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래서 의사로서 웃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죽음의 징표가 내려진 것 같았는데.
그러나 그 고비를 확실히 넘긴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묘한 생각도 문득 들었다.
[사신의 낫(A)] 특성.
그런데 이건 24시간 이내에 사망할 사람들만 표시해 주는데.
문득, 나는 그 특성 자체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좀 전의 한별이의 상태는 정말 심각했는데, 적절한 처치가 없었다면 이때 한별이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망 예고란 게 이런 의사들의 노력까지 다 감안된 예고일까.
그게 아니면, 일종 조건에 대한 조합들이 계속 이어지는, 연속적인 사건의 결과물일까.
예를 들어, 미션 진행 과정 역시 무언가 해당 조건이 충족될 때마다 미션들이 생성된다.
사망 예고 또한 그런 식의 조건 충족들의 결과라면, 원인과 결과, 즉 인과라는 것이 더 중요해지게 된다.
이것은 [예고된 죽음을 피하고 싶습니까? 아직 당신에겐 기회가 있습니다. 죽음을 회피하는 순간 새로운 죽음의 저주와 싸워야 합니다], 바로 그런 말들과도 일치하게 된다.
즉, [사신의 낫(A)] 특성의 사망 카운트다운 역시 이런 조건의 충족에서 비롯된 거라면, 수술을 받고 있는 한별이에게 무언가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한별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아이의 얼굴에 드리어져 있던 사자(死者)의 징후. 그런 징후가 계속 남아 있는지 그걸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물러섰다가 아이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때, 머리맡에 있던 김광일 교수, 그는 의아해하며 날 쳐다봤으나.
나는 재빨리 한별이 얼굴 쪽을 쳐다본 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왜 무슨 일 있나?”
순간, 서철성 교수님이 의아해하며 날 쳐다봤으나, 나는 즉시 아무것도 아니라고 외쳤다.
“아닙니다. 교수님. 잠깐 상태 좀 확인했습니다.”
“그럼, 그러지 말고 이쪽 좀 잡아!”
“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수술은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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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션!”
“이쪽 지혈하고 4-0 prolene 수처 준비!”
“15번 메스!”
“지혈!”
“잘 보이지? 흉막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지혈!”
“지혈!”
“이쪽 석션!”
“그쪽 수처 진행하게!”
“잠깐 기다려!”
“그건 골절편 같은데···.”
잠시 후, 서 교수님은 흉막에 꽂혀 있던 미세한 늑골 조각들을 수술용 핀셋으로 잡아냈다. 그러고는 주변 조직의 괴사 부분들을 제거한 뒤 곧바로 수처도 진행했다.
그 뒤, 흉부 전체를 살피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출혈 흔적들을 지혈했고.
혹시 모를 열상 흔적을 잡기 위해 수술용 현미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을 쉴 새 없이 살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다시금 [베살리우스의 눈(A)] 특성을 발동시켰다.
특히, 흉부 쪽에 주목하며 상황을 살폈는데.
이때 제거되지 못한 몇 군데 골절편 흔적들이 시야에 잡혔다.
그런데 그 파편 위치가 폐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처였고.
지금 상황에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서 수술이 끝날 수도 있는 그런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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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자의 의지(B)]
[수술 중, 집중력이 2배 증가합니다. 시력이 2배 증가합니다. 실패 확률이 높은 수술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며 성공시킵니다]
[갈렌의 나이프(B)]
[비정상적인 조직을 깨끗하게 절개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직경 1.5cm 범위 내]
[이격 블레이딩(C)]
[공간 장벽을 격해 내부 조직을 절개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공간 장벽 1cm 범위]
슬며시 15번 메스를 손에 쥔 나는 찰나의 순간 세 개의 특성을 동시에 발동시켰다.
그러자 공간적 거리와 조직 장벽을 넘어서서 특성들이 발현되었고.
이때, 폐 속에 박혀 있던 골절편들이 미세 절개 끝에 밖으로 밀려 나왔다.
[경험치 +10]
[경험치 +10]
[경험치 +10]
[경험치 +10]
그렇듯 경험치도 얻게 됐지만.
잠시 후, 서 교수님은 수술용 핀셋으로 이렇게 튀어나온 골절편들을 깔끔하게 제거했고, 그 위치에 대해선 즉각 봉합술을 시행했다.
그리고 다시 발동된 [베살리우스의 눈(A)] 특성!
이 특성을 통해 좀 더 세밀하게 흉부 쪽을 체크하자, 이때 나는 흉부 쪽 상처들이 거의 치유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험치 +10]
[베살리우스의 눈(A) 특성과 수술자의 의지(B)가 연계되어, 베살리우스의 눈 특성이 상향 조정됩니다]
[축하드립니다!]
[베살리우스의 눈(S) 특성을 확보하였습니다]
[베살리우스의 눈(S)]
[병변 부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성공 확률 95%, 스캔 깊이 제약 없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일반외과(GS) 영역의 수술이다.
한편, 그렇듯 내가 빠르게 상황판단을 마친 것과 다르게, 서 교수님은 구석구석 문제점들을 추적하느라 여전히 바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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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것 같지?”
“네! 다 된 것 같습니다.”
그렇듯 내가 힘있게 대답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만 하자. 문제가 있으면 2차 수술을 하면 되니까. 김 선생! 정말 수고가 많았어! 그리고 김 교수님! 피치 못하게 제가 이래저래 결례가 많았습니다. 죄송해서 제가 담에 꼭 밥 한번 사겠습니다.”
그러자 마취·통증과 김광일 교수는 어색한 표정을 보이더니 곧이어 대답했다.
“VF(심실세동) 떴을 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잘 모면해서 다행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고는 김광일 교수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김정민 선생이라고 했지? 자네도 수고 많았어.”
그 순간, 나는 바로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렇듯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한편 서철성 교수는 비로소 시선을 돌려 간호사들한테도 수고 인사를 한 뒤 나한테 손짓했다.
“우리 마무리하고 나가자.”
“네! 교수님!”
그리고 그때부터 개흉된 흉부에 대한 마무리 봉합 작업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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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드디어 끝났다.
한편, 그로부터 대략 30분 뒤.
나는 드디어 수술실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 교수님과 헤어졌고, 이제 곧장 응급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실, 강한별의 수술 때문에 시간이 꽤 경과되었는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점심까지 식사를 건너뛴 상태다.
꼬르륵.
배에선 요란한 소리가 났으나.
아직은 꾹 참고서 응급실 스테이션 쪽으로 나는 걸어갔다.
이때, 탈진한 기색의 장태욱 선생과 해쓱해진 안색의 조은하 선생이 그 앞에 서서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지금 끝났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바로 다가섰고. 그들은 고개를 돌려 즉시 날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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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어? 애는 살 수 있어?”
즉시 질문을 던지는 장태욱 선생.
“네! 흉부 수술까진 잘 끝났습니다. 다음 수술은 지금 진행 중입니다.”
“어때? 그래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듯 다시 반복되는 그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듯 생각해 봤다.
왜냐하면, 나는 심실세동 이벤트가 끝난 직후 강한별의 얼굴 쪽을 쳐다봤고.
또한, 수술방에서 나오면서도 다시금 강한별의 얼굴 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여기서 아쉬운 점이 있다.
아쉽게도 내가 예측한 ‘죽음으로부터의 완전한 회피’, 이게 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별이의 얼굴에는 아직도 사자(死者)의 징후라고 할 수 있는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달라진 점도 있다.
검은 기운이 더 옅어진 것.
그럼에도 완벽히 확신할 순 없다.
즉, 일반외과 수술까지 마무리된다면 확실한 변화가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된다면 내가 생각하는 소생의 조건 충족이 이루어져 한별이는 죽음의 예고를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다.
“수술 상황은 나쁘지 않아 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듯 내가 다시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장태욱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수고했다.”
그러고는 그는 또 말했다.
“TA 환자들은 거의 다 정리됐어. 각 진료과로 다 트랜스퍼됐고. 다만, 저기 저 환자! 저 환자만 빼고 정리가 다 됐어.”
“네? TA 환자가 아직 있다고요?”
이른 아침, 응급실로 TA 환자들이 밀려왔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각 기준으로 보면, 각종 응급처치와 각종 검사들이 다 완료됐을 테고, 수술실 및 각 병동으로의 트랜스퍼까지 다 끝났을 시각이다.
그런데 아직 TA 환자가 이곳에 남아 있다고?
“저기! 저쪽 베드!”
한편, 장태욱 선생은 손으로 구석진 곳의 베드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엔 한 남자가 온갖 기계들을 달고서 의식 불명 상태로 누워있다.
문제는 머리 쪽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데, 외형적으로 드러난 머리 모양이 좀 이상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아 수술을 못 했어. 인공호흡 장치로 간신히 버티긴 한데, 도대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어. 약물 투약도 한계가 있고.”
“근데 보호자가 안 왔다고요?”
“백방으로 연락해 봐도 안 돼! 경찰서에서도 안 된다고 하고. 알잖아? 수술 동의서 없이 수술 못 하는 거.”
그 순간, 나는 바로 인상을 팍 썼다.
그렇다고 수술을 안 하고서 골든아워를 허무하게 보낸단 말인가.
그런데 바로 이때, 나는 아차! 싶었다.
회귀 전에 내가 살던 시대와 이 시대는 다르다.
이 시대 기준으로 봤을 때, 수술 동의서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수술을 했다간 그 뒷감당을 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불법이었다.
물론, 2008년 무렵 응급의료법 관련 시행 세칙이 개정되면서, 환자의 보호자가 병원에 오지 않더라도 응급수술은 가능하게 되었다.
즉,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응급환자의 경우,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의료인 1인의 동의 하에 수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선 수술 동의서 없이 수술할 수가 없고.
의사 판단에 따라 임의로 수술을 하는 건, 그 자체가 위법이었다.
“그럼 제가 환자를 좀 봐도 되겠습니까?”
한편, 내가 그렇게 묻자, 미간을 조금 찡그리던 장태욱 선생.
이때, 그는 조은하 선생을 쳐다봤고.
조은하 선생은 즉시 날 쳐다보더니 나한테 손짓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그 베드 앞에 섰고.
조은하 선생은 곧이어 환자의 머리 쪽 붕대를 조금 푼 뒤, 환부 쪽을 눈으로 가리키며 간단히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쪽 형태를 보면 잘 보이지? 두개골 한쪽이 완전히 뭉개진 거. 두개골 골절이 너무 심해. 중증 두부 외상 상태인데. 출혈성 좌상, 뇌실질내 출혈, 경막하 혈종 등도 나타났어. 특히, 코와 귀 쪽에서 뇌척수액이 누출됐고, 그 때문에 지주막하 출혈 소견도 있어. 이것만 봐도 이렇게 버티는 게 이상할 정도야. NS(신경외과)에선 교수님들 몇 분이 오셨다가 가셨는데, 수술하겠다는 분이 한 분도 없어.”
그렇게 설명을 들으며 환부를 쳐다보던 중.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통 땐 잊고 있는 아주 중요한 사실.
[사신의 낫(A)] 특성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24시간 [사신의 낫(A)] 특성이 강제적으로 발동되어 있는 상태인데, 지금 내 눈앞의 환자는 어떠한 사자(死者)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그럼, 이 미친 경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신경외과 교수들이 환자 상태를 확인한 뒤 수술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수술 동의서와 별개로 그런 진단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이 환자를 대상으로 [베살리우스의 눈(S)] 특성을 발동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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