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하 선배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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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두개골 골절 때문에 상황이 심각하긴 한데···.
그러나 의외로 생각보다 각 증상이 무척 심한 게 아니었다.
먼저, 출혈성 좌상은 심각한 편이 아니었고.
보통, 뇌동맥류 파열에 의해 발생하는 뇌실질내 출혈 징후가 좀 심하긴 했으나. 이 정도 상황에선 현미경 수술을 통해 혈종 제거 뒤 뇌실외 배액(external ventricular drain, EVD) 과정을 시행하면 뇌내 압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울 점은 이 환자의 뇌실질내 출혈 양상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 따라서 그 정도의 출혈 양상이면 쓰롬빈(thrombin)이 적셔진 솜으로 환부를 직접 압박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지혈될 수가 있다.
한편, 경막하 혈종이 생겨나 뇌간 압박을 초래하고 있으나 이 상황 역시 수술적 처치가 아니더라도 자연적 처치가 가능하다. 보통, 이런 혈종은 뇌압을 높이는 위험성이 있음에도, 이런 혈종들 자체가 자연흡수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주막하 출혈 소견은 뇌동맥류 파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땐 개두술을 통한 교정 혹은 다리 쪽 대퇴동맥 쪽에 코일을 집어넣는 방식인 ‘혈관 내 코일 색전술’을 통해 뇌동맥 파열 문제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선 함부로 환자의 생사를 예단할 수가 없다. 비록 외면적으로 환자의 머리 모양이 이상해졌으나 지금 당장 뇌 수술이 진행된다면, 환자는 충분히 살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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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차라리 제가 이 환자 맡겠습니다!”
한편, 내가 그렇게 말하자 조은하 선배는 이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환자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아, 현재 수술 자체가 불가능한 환자.
거기다가 신경외과 교수들도 수술을 거부한 환자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환자한테 괜히 신경을 쓰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완강하게 부탁하자, 조은하 선배는 한번 해 보라며 물러섰다.
“그래, 누군가는 케어해야 하니까 김 선생이 한번 해 봐.”
그리고 잠시 뒤.
그때부터 나는 [전용 특성]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환자의 뇌 CT 결과를 확인했고, 이후 영상실에 환자의 뇌 CT 검사 의뢰를 다시 넣었다.
이미 수술 거부 판정이 내려진 환자에 대해 신경외과 교수들의 의견을 번복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보호자가 없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치프 장태욱 선생의 허가를 받은 뒤, 환자의 2차 뇌 CT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것저것 정신없이 바빠졌는데.
이 무렵, 흉부외과 스테이션에서 갑자기 콜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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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희 병동 윤혜선 환자가 선생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하셔서, 혹시 시간 되시면 한번 방문해주시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지금 맡은 환자가 있어서 일 끝나면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윤혜선 환자, 즉 윤 실장이다.
아주 심각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녀.
간신히 살아남았던 그녀.
얼마 전까지 중환자실에 있다가 이제 일반실 1인실로 옮긴 상태다.
그러고 보니, 미션은 비록 완료되었지만, 윤 실장 사건과 관련해서 그 내막을 자세히 확인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고, 대구에서 날 위협했던 SUV 차량들에 대한 일들도 아직 남아 있다.
이것저것 일들은 그렇게 많지만.
우선은 저 환자부터!
아주 급한 상황이다. 시간에 쫓기고 있는 저 환자부터 좀 더 제대로 챙겨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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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찰서엔 계속 연락해 보셨어요?”
“네. 근데 아직 별다를 게 없어요. 경찰관이 주소지 집까지 방문했다고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선생님, 잠시만요!”
스테이션에 들러 응급실 이시영 간호사와 대화하던 중, 그녀는 갑자기 말을 끊고 전화를 받았다.
“네! 성국대 병원 응급실입니다. 아? 박 경사님!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요? 아, 그래요? 잠시만요.”
이시영 간호사는 통화 중에 갑자기 날 쳐다봤고, 재빨리 전화기를 나한테 넘겨주며 외쳤다.
“선생님, 한번 받아보세요. 박 경사님이신데 호적 조회를 통해 환자 동생하고 드디어 연락이 됐대요.”
환자 동생?
반색하며 나는 즉시 전화기를 받았고, 경찰관과 통화를 시작했다.
“저는 응급의학과 인턴 김정민입니다. 지금 너무 급한데, 혹시 환자 동생분이 언제쯤 병원에 올 수 있을까요?”
그러자 경찰은 사정 이야기를 했다.
환자의 여동생은 제주도에 산다고 했다. 직업이 해녀라고 하고. 그래서 연락하기가 정말 어려웠던 거라고 한다. 제주도의 경찰관이 그 집을 방문했고, 그 때문에 간신히 연락된 거라고 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잠시만요! 우선 그분께 말씀드려 여기 병원으로 바로 연락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너무 급합니다! 더 늦었다간 환자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는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보호자가 오지 않아 응급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
그러나 다행히 상황은 변하고 있었다.
특히, 조금 전 영상실에서 날아온 뇌 CT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이다.
최초 뇌 CT 결과와 비교해도 크게 악화된 게 없다. 오히려 이번 검사에선 CT 이미지도 좀 더 선명하게 나왔다.
결과적으로 내가 [베살리우스의 눈(S)] 특성을 통해 확인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고.
이 정도 상태라면 수술적 처치를 통한 이득이 훨씬 더 크게 된다.
한편, 그로부터 잠시 뒤.
응급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고.
그때부터 제주도에 살고 있는 그 여동생과 통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환자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그 과정에서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김춘식 환자에겐 여동생을 제외한 다른 가족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몇 년 전, 이혼과 실직을 하게 되었고, 슬하에 자식 하나 없다고 한다.
서울에서 택시 기사를 하면서 근근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서로가 이래저래 바빠,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중이라고 했다.
어쨌든 직계 가족이 없다는 걸 나는 확인하게 되었고.
따라서 유일한 보호자인 여동생에게 구두상으로 수술 동의서를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주도와 서울 간의 거리 때문에 여동생이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올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과정을 음성 녹음했고, 어쨌든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올 수 있도록 그런 당부의 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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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선승님(선생님)! 우리 오라방(오빠) 병원비는···.”
그런데 전화를 끊기 전, 갑자기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주도에서 사는 그녀는 김춘식씨한테 당장 뇌 수술이 필요하다는 내 말에 병원비가 갑자기 걱정된 모양이었다.
“아뇨!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교통사고 건입니다. 경찰관한테서 듣기엔, 과실도 상대편에 있고, 더군다나 이건 과실 사항을 떠나서 병원비 전체가 보험 처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바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비행기 표를 알아본 뒤, 서울로 오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즉시 신경외과에 콜을 날렸다.
이제 새롭게 노티를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로부터 잠시 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갑자기 터지고 있었다.
<99>
“···그래서? 환자가 뭐? 지금 바빠 죽겠는데, 요즘은 인턴까지 다 지랄이네. 지랄! (야! 최상진! 너 미쳤어? 응급실 인턴 전화를 왜 나한테 넘기고 그래? 지금 이 새끼가 교수님들 잘못했다고 뒤에서 까고 있잖아! 받아! 니가 알아서 해결해!)”
“선생님! 선생님! 그게 아니라 뇌 CT 촬영을 다시 했고, 현재 결과는···.”
그럼에도 이때 떨떠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민아. 나, 최상진.”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에이씨’를 연발했다.
좀 전에 어렵사리 신경외과 치프 윤정화 선생과 통화가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번 사안은 단순한 트랜스퍼 건이 아니었고, 수술 전제가 꼭 필요하기 때문. 그런데 그 와중에 불쾌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윤정화 선생은 계속 짜증을 내며 전화기를 결국 최상진 선배한테 던져버린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냐? 너 원하는 대로 바꿔줬잖아.”
“네. 선배님, 그렇긴 한데···.”
“야, 적당히, 적당히 하자. 우리 시어머니 광분하고 있어. 나도 힘들다고. 근데 대체 무슨 일이냐?”
의아해하는 최상진 선배.
현재 레지던트 1년차인 최상진 선배는 유난히 똑똑한 여의사들이 많은 성국대 신경외과 의국에서 청일점인 상태다. 나름, 고생하고 있는 그는 그럼에도 나중에 아주 대단한 위치까지 올라서게 된다.
한국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 그리고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하는 대단한 명의가 되는 게 바로 저 최상진 선배였다. 물론, 지금은 신경외과 의국에서 인턴을 제외하곤 가장 막내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하는 수 없이 최상진 선배한테 그 환자의 상태에 관해 설명해나갔다.
그러나 최상진 선배가 가만히 듣기만 할 뿐, 따로 코멘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그는 기껏 레지던트 1년차에 불과했고.
뭔가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선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으음, 이런 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야! 정민아! 이런 건, 우리 선에서 판단할 게 아니라 직접 교수님들한테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미 수술 불가 판정이 난 건데. 상황이 좀 달라졌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다른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앞으로 웬만해선 치프 선생 바꿔 달라고 하지 마. 좀 전에 자기 환자가 사망했거든. 윤정화 선배, 지금 신경이 졸라 날카로워.”
그렇듯 더는 진전이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인사를 한 뒤 즉시 전화를 끊었다.
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뀐 상태.
보통, 응급실에서 신경외과로, 그리고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통해 신경외과 교수한테 노티가 진행되는 게 가장 좋은데, 지금은 윤정화 치프 선에서 그게 차단된 것이다.
할 수 없이, 차기 병원장으로 내정된 박윤후 교수님을 찾아가 부탁을 해야 하나.
문득 그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고.
의아해하며 즉시 뒤돌아봤다.
어?
조은하 선배???
인상을 팍 쓰며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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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전에 김춘식 환자 2차 뇌 CT 결과 봤어.”
“보셨어요?”
“근데 수술이 필요하다고 해도 우리가 수술 전제를 걸 수가 없어. 먼저, 신경외과로 환자를 넘기자. 여기서 붙들고 있을 이유도 없고. 그리고 이시영 간호사한테서 그 이야기도 들었어. 전화 녹음까지 했다며?”
“네!”
“그럼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잠깐 빠져 있어. 그리고 좀 전에 NS 윤정화 선생이 빠꾸논 거 맞지?”
“네.”
“비켜봐.”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전화하는 걸 듣고 있었을까.
아주 표정이 딱딱해진 조은하 선배는 바로 내 앞으로 가더니 전화기를 잡았고.
곧장 신경외과 스테이션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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