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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111화 (111/145)

나에게 욕심이 생겼다 01

<116>

2001년 12월 13일 목요일.

영하 2도의 날씨인 점심 무렵.

나는 치프 장태욱 선배로부터 허락을 받은 뒤, 잠시 병원에서 나왔다.

은행에 잠깐 들릴 일이 있다고 했는데.

이미 약혼 발표까지 난 상태라 장태욱 선배는 이 잠깐의 외출을 흔쾌히 허락해줬다.

잠시 후, 나는 택시 정류장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곧바로 택시에 탔다.

“삼호증권! 삼호증권으로 가 주세요!”

예전에 한 번 방문했던 삼호증권 지점.

그때 이런저런 투자를 하려다가.

잠시 보류했던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런데 어느덧 2001년이 저무는 12월이 되었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투자를 진행할 생각으로 잠시 후 삼호증권 지점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깄습니다! 잔돈은 괜찮습니다.”

곧바로 택시비를 치른 뒤, 나는 택시에서 내렸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대는 거리를 좀 걷다가.

이내 삼호증권 지점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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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랜만입니다. 손님.”

그때 인상이 무척 좋았던 그 직원.

그 직원은 바로 날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대충 인사말로써 그렇게 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잠시 후, 나는 투자 상담 겸 투자 주문을 진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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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나스닥 주가지수 선물과 관련해서 풋옵션 쪽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번에 최대 만기일이 2003년 1월까지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쪽 옵션에 전액 투자하고 싶습니다.”

“그럼 투자금은 어느 정도 하실 겁니까?”

“증권계좌에 예치되어있는 3억 원··· 전액입니다.”

“아! 그래요?”

사실, 저번에도 약간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도 표정이 조금 변한 직원.

그는 곧바로 각종 서류들을 챙겨왔다.

“우선, 이 서류들을 작성하기 전에··· 이쪽 미국 자료들부터 잠시 보시겠어요? 보다시피, 12월 12일자 기준, 나스닥 지수는 2,011포인트를 찍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는 좀 더 설명했다.

“···올 초에 2,291포인트였다가, 4월에 1,673포인트까지 떨어졌고, 5월에 2,220포인트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10월 말엔 1,699포인트로 급락했습니다. 현시점에선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럴 때 풋옵션 투자가 괜찮겠습니까? 저번에 설명해 드린 거 기억하신다면 잘 아시겠지만··· 이런 주가지수 쪽은 그 등락이 무척 심합니다. 하루 기준 등락 폭도 엄청나고···. 자칫 손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질 수도 있어요.”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손실 리스크가 있는 만큼, 반대로 수익 규모도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가장 최근의 나스닥 지수는 2,011포인트.

최근,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내가 이 시점에서 풋옵션 투자를 제시한 건, 결국 이 지수 포인트가 갈수록 하락한다는 것에 적극적으로 베팅한다는 의미다.

물론, 그 이유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2002년 증시의 모습.

지독한 증시 불황기!

특히, 닷컴 버블 사태 이후, 2002년에는 다시금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터지게 된다.

스톡옵션 제도가 주가 조작의 수단이 된다는 대형 이슈 건이 터졌고.

분식회계 파문의 주역이 된 에론(Enron) 사태는 무디스, S&P, 피치 등 3개 신용평가회사의 아성을 흔들리게 했다.

거기다가 기존의 닷컴 버블 사태가 진정되는 게 아니라, 갈수록 증시 불안 요소들이 가중되면서 증시를 지배하게 된다.

결국, 나스닥 지수는 1,100포인트까지 낙폭하며 새로운 증시 불황기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즉, 그런 식의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의 미래 정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세세한 주가 종목의 주가 추이와 특정 종목의 우세성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증시 불황기’라는 키워드에 나는 더 주목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개별 종목에 대한 투자보다는.

좀 더 넓은 거시적 개념에 해당되는 미국 주가지수 옵션 상품에 오로지 주목하게 되었다.

즉, 이런 시점에 풋옵션 전략을 따라가게 된다면.

적어도 중단기적 가치 투자에서 큰 성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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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계약 주문들을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풋옵션이고, 각 행사가는 여기 나와 있는 대로 하면 되는 거죠?”

“네!”

“근데 옵션 매수를 위한 프리미엄 가격이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문이 들어가게 되더라도, 꼭 이 가격일 수가 없고. 총 계약 건수도 꼭 이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얼마 정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네.”

“그리고 혹시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까?”

“혹시 그러면··· 이 계약들이 다 체결됐다고 가정하고··· 나중에 나스닥 주가지수가 현재 기준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그땐 제 수익이 어느 정도나 될까요?”

대략, 투자 범위와 증거금 범위 등까지 다 정한 터라, 나는 그렇게 물었고.

그러자 그 직원은 잠시 날 빤히 쳐다봤다.

다른 것도 아니라, 나스닥 지수가 반토막이 날 경우를 가정했기 때문에 그는 좀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쪽 가격대의 프리미엄으로 개별 매수가 된다면··· 그리고 주가지수 반 토막이라고 하셨죠? 그럼 계산이 대충··· 아! 이렇게 되네요.”

탁! 탁! 탁! 탁! 탁!

곱셈과 덧셈을 반복하며 아주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린 뒤, 직원은 눈앞에 몇 개의 숫자들을 내게 보여줬다.

“2,056?”

“네! 현재 기준, 2,056배 수익이 가능합니다!”

순간, 나는 약간 눈이 커졌다.

“그러니까, 투자금 3억 원 기준으로 보면, 대략 6,168억 원까지 가능합니다. 하하! 이게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치죠. 3억 원 투자로 6,168억 원? 복권당첨도 이런 게 없을 겁니다. 근데, 이런 식으로 꿈꾸는 건 좋은데··· 너무 과하게 생각하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옵션이라는 게 역작용이 큽니다. 3억 원이 순식간에 0원에 수렴할 수도 있거든요.”

“네! 어쨌든 감사합니다. 우선, 그렇게 주문은 넣어주시고. 다 완료되시면 꼭 전화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근데 위험요소들에 대해서 제가 충분히 고지를 드린 거 꼭 기억해 주십시오! 원금을 다 잃게 되더라도 저희 증권에선 일체의 책임이 없다는 것,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원금을 잃기는커녕 얼마나 수익이 나올지 나는 훨씬 더 기대가 된다.

그러다 보니 피식 웃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전화로 거래 주문을 할 수도 있으나.

좀 더 각종 자료들을 직접 보고 싶었고, 그 자료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내일 오전이나··· 아니면 다음 주 월요일 중에··· 옵션 매수 결과가 나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시대엔 실시간 미국 투자가 불가능하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시차 문제를 떠나서, 이 시대는 직접 투자를 할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이 자리에서 결정된 내용들은 현지 법인으로 전달될 거고. 미국 현지 시각에 맞춰, 현지 법인에서 옵션 투자가 시행될 것이다.

그렇게 투자 일들을 마친 뒤, 나는 삼호증권에서 나왔고.

잠시, 거리에 서서, 휴대폰을 이용해 통화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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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있는 중이라고? 어디···? 잠깐만···.”

통화 중에 나는 서둘러 손목시계의 시각을 확인한 뒤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30분 정도 시간은 있는데. 어디? 거의 다 왔다고?”

나는 즉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좌우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때, 아주 우아한 포르쉐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내 앞에 나타났는데.

바로 내 앞에서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그 순간, 그 안쪽을 쳐다본 뒤, 나는 얼른 조수석 쪽으로 뛰어갔다.

이때, 차 문이 쉽게 열렸고, 나는 즉시 조수석에 탑승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우아한 포르쉐 세단은 바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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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경호원들은?”

잠시 후, 나는 그렇게 물으며 뒷좌석 쪽을 슬쩍 쳐다봤다.

그러나 뒷좌석 공간은 텅 비어있다.

과연 이래도 될까.

불과 얼마 전까지 그녀는 목숨을 위협당했다.

윤 실장은 아직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그러자 운전석의 한유나는 피식 웃으며 우측 사이드미러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이 차량을 계속 쫓아오는 SUV 차량들이 보인다.

그러니까 그녀는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인 거다.

그제야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교차로 앞, 신호 대기 중에 한유나는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고.

그 촉촉한 눈빛과 새하얀 이목구비를 바로 코앞에서 대면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콩콩 뛰며 마음이 좀 이상해졌다.

그러던 중,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잠깐 어디든 멈추자.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하기엔 내가 시간이 없을 것 같고···.”

“그럼 저기서··· 우회전해서 멈출게···.”

높임말을 쓸 듯하다가도 끝내 편안한 말투로, 좀 더 가까워진 말투로 한유나는 대답했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입꼬리는 슬쩍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뒤.

차량은 다소 한적한 도롯가에 멈춰 서게 되었다.

그 직후, 한유나는 엔진 시동을 완전히 껐고.

그런 뒤 정면을 쳐다보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비로소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날 쳐다보는 그녀의 두 눈.

그리고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아주 달콤한 체향, 아니 아주 달콤한 향수 냄새.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과 코가 홀린 듯 그녀를 계속 응시하게 되었다.

하필, 단둘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현 시각 기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그런 공간.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더 없이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순간.

이때, 나도 모르게 혀로 내 마른 입술을 슬쩍 축였다.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늘씬한 하얀 목덜미, 생동하는 듯한 입술, 무척 맑아 보이는 그 눈동자가 무척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언가 목이 마른 듯 한유나도 침을 조심스럽게 삼키는 듯했고.

그때, 무척 어색한 순간이면서도 무척 긴장된 순간이 잠시 이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살짝 웃었고.

그런 내 미소에 한유나의 표정도 더 밝아졌다.

“···다른 게 아니라 신라그룹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좀 있어서···.”

사실, 내가 [특전]을 통해 봤던 것들.

과거의 오래된 기억들과 사건들.

그리고 한유나의 불행.

그리고 내 가족의 불행.

나의 불행.

그 모든 것들이 터무니없게도 한 사람을 향해 귀속되고 있는 걸, 나는 [특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한유나에게 그 비슷한 이야기들을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가 없으나.

다른 식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아주 진지한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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