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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116화 (116/145)

화이트 크리스마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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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유도 없이 무섭게 화를 내기도 하고, 기억들이 뒤엉키면서 이상한 말들을 하기도 하고, 팔다리 마비 증세도 있으셔서···.”

계속되는 그녀의 설명들.

“···결국, 검진 결과··· 급성 혈관성 치매 진단이······.”

결국, 그녀는 혈관성 치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편, 나는 가만히 그녀의 설명들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태산 회장의 나이가 많긴 하지만.

그리고 그의 건강 상태가 본래 좋지 못하긴 하지만.

어느새 상황이 그렇게 됐단 말인가.

그래서 이런 상황이 무척 아쉽기도 했고.

내 처치가 무척 억울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이것저것 좀 더 물어본 뒤.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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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치매라는 것은 여러 종류의 증상을 내포한다.

이런 치매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알츠하이머형 치매다.

이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는 게 일반적인데, 지남력을 포함하여 기억력 등이 점점 더 나빠지는 증상이다.

반면, 혈관성 치매(vascular dementia)는 뇌혈관 관련 문제 및 뇌 조직 손상 등이 원인이 되는데.

급성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서서히 진행될 수도 있다.

다만, 증상 악화가 계단식으로 급격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인지 장애, 언어 장애, 안면 마비, 균형 장애, 하반신 마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때로는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사람이 무척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복잡한 혈관성 치매는 좀 더 세분화가 되는데.

피질(cortical) 혈관성 치매, 피질하(subcortical) 혈관성 치매, 전격성(strategic) 혈관성 치매 등으로 세분화된다.

그런데 현재 한태산 회장의 상태는 구태여 세분화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 복잡한 상황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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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치료는 어떻게 하려고?”

“먼저, 수술 쪽을 확인했는데 그 위치가 너무 위험해서··· 그리고 수술 이후 경과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하고···.”

보통, 노령 환자한테 수술적 처치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약물치료를 택한 모양인데.

아마 이 시기엔 항혈소판제나 항응고제 등이 투여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도네페질(Donepezil) 투여가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도네페질은 알츠하이머병 관련 치료제인데, 혈관성 치매 쪽에도 사용될 수 있으나.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인 1996년도에 미국 FDA 승인이 된 약물이다.

현시대 기준으로 보면, 알츠하이머병 신약이다.

이 약물이 경증, 중증 치매 약물로 승인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태여서, 결국 이 도네페질 역시 이 치료에 접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태산 회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바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된 상황이다.

나로 인해 죽음에서 벗어났던 한태산 회장!

그러나 다시 그에게 죽음이 찾아오고 있다.

이번엔 심장이 아니라 뇌 쪽에서···.

그리고 다시 심장 쪽에서도 더 큰 문제가 갑자기 생겨날 수도 있다.

현재 그는 육체적으로 아주 쇠약한 상태. 그리고 정신적 문제까지 겹쳤다.

그건 그의 온갖 탐욕들이 만들어낸, 인과응보의 치명적인 대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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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한유나와의 전화를 끊은 뒤, 계속 고민을 거듭했다.

현재 한태산 회장의 상태가 그런 상태라면···.

그리고 심각한 인지 장애가 발생한 거라면.

현재와 과거의 기억들까지 제멋대로 엉키는 그런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런 것들은 바로 내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특전: 거짓 없는 입]

[대상자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1회 사용]

[특전: 검은 고양이(S)]

[어두운 곳에서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습니다. 밝은 곳에서도 10분간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1회 사용]

그렇듯 [거짓 없는 입] 특전과 [검은 고양이(S)] 특전을 이용한다면,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그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들을 수도 있다. 그가 미처 내 존재에 대해 뚜렷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사이에 말이다.

다만, [거짓 없는 입] 특전은 3번 사용할 수 있지만, [검은 고양이(S)] 특전은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고태진의 일에 [검은 고양이(S)] 특전을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갑자기 그렇게 되자, 내 머릿속은 좀 더 복잡해졌다.

즉, [검은 고양이(S)] 특전을 잘 활용한다면, 남들 모르게 한태산 회장한테 접근할 수 있을 거고. 그의 진실된 입을 통해 안기부 요원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고태진과 한태산. 이들 중에서 과연 어떤 인간한테 그 특전을 쓰는 게 더 좋을까.

그런 고민들이 한참 이어지는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마침내 나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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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한태산 회장 쪽은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많이 위험해.

우선, 한태산 회장의 주변 경호가 삼엄할 것이고.

그의 주변에 도청 장치 혹은 CCTV가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에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무리하게 특전 [검은 고양이(S)]를 써서 위험하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나는 한유나와 함께 움직이면 된다.

한태산 회장의 상황을 직접 보되.

한유나와 함께 대면한 자리에서, 한태산 회장에게 [거짓 없는 입] 특전을 직접 쓰면 될 게 아닌가.

특히, 한태산 회장이 직접 말하는 진실을, 한유나 역시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녀한테도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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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서.

나는 나이트 근무를 마치자마자 아침 일찍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는데.

어느덧 신라병원 근처에 이르자, 나는 한유나에게 연락했다.

깜짝 놀란 그녀.

그래도 그로부터 30분 뒤, 그녀도 신라병원에 나타났다.

사실, 내가 그렇듯 신라병원을 갑자기 찾은 이유는 나름의 명분이 있기 때문.

어쨌든 나는 한유나와 약혼을 올리게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미래의 장인어른이 무척 편찮은데, 더 늦기 전에 병문안을 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 일을 핑계 삼아, 신라병원에서 나는 두 가지 일들을 진행할 생각이다.

한태산 회장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

신라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고태진을 치료하는 일.

그리고 잠시 뒤.

나는 병원 1층에서 한유나와 만나게 되었다.

<121>

우아! 역시 빛이 난단 말이야.

한유나의 모습.

웃으며 경호원들과 함께 나타난 한유나.

더 매력적이고 더 아름다워진 것 같다.

화사한 털모자를 쓰고.

두 갈래의 머리카락이 양쪽으로 길게 내려와 있는 그녀.

하얀 목도리로 목을 감싸고 있고.

짧은 스커트 차림이지만 길게 뻗어있는 순백의 외투를 입고 있어.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은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완전히 다른 품격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는 가볍게 뛰어와 내 팔을 잡았고.

아주 오래된 연인인 듯 아주 능숙하게 팔짱을 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나한테 쏠렸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저런 여자와 팔짱을 낄 수 있을까, 마치 그런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들이었다.

조금 민망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빨리 앞으로 걸었다.

그러고는 조금씩 속도를 늦추며 한유나를 쳐다봤다.

이때, 그윽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그녀.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 갑자기 불러내서···.”

“괜찮아. 잠도 못 잤을 텐데.”

하긴, 나는 나이트 근무를 마치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무척 피곤하기도 하지만.

한유나의 얼굴을 보게 되자, 금세 그 피로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웃었다.

“별거 아냐. 인턴, 레지던트 때는 이런 게 당연해서.”

“그래도···.”

“어서 가자. 지금 가면, 뵐 수 있지?”

“비서실에 연락은 해 뒀어. 그리고 아침엔 상태가 더 좋으시다고 하고···.”

그러면 됐다.

이번 방문의 첫 목적은 한태산 회장의 상태 확인이니까.

한태산 회장의 현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VIP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올라갔고.

잠시 후, 우리는 신라병원 VIP실 병동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곧장 입원실로 향했다.

사실, 한유나 자체가 프리패스이기 때문에 어떤 신분 검사 절차가 없었고.

그저 비서실 직원들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우리한테 인사했다.

그리고 그사이, 우리는 한태산 회장이 투병 중인 입원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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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때, 좀 더 힘이 있고, 절도 있는 목소리가 곧 들려왔는데.

저번 성국대 병원 2001호실에서 본 적이 있는 중년 남자다. 단정한 정장 차림, 바로 그룹 비서실 김상영 부장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그룹 비서실 박가영 과장도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비서실 직원들이 자세를 갖추며 서 있다가 김상영 부장이 대표로 인사하자, 즉시 우리한테 90도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한태산 회장의 입원실을 찾았을 때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극도의 공손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

한유나는 일명 로열 패밀리다.

아무리 그녀가 한태산 회장의 자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한태산 회장의 막내딸이며 신라전자의 2대주주이기도 하다.

그런 데다가 그녀의 입지가 최근 들어 완전히 달라졌다.

위력적인 정치가 김윤상 의원의 며느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건 그녀에게 큰 힘을 주었고.

그 때문에 직원들은 그녀의 등장에 다들 긴장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즉, 내 약혼자가 되기 전과 그 이후의 그녀의 위상이 그렇게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상 변화는 결국 그룹 후계 결정에 있어서 그녀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젠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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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오시지요.”

김상영 부장과 박가영 과장은 공손하게 우리를 한태산 회장의 침대 쪽으로 안내하면서.

간간이 내 눈치도 살피고 있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 박가영 과장은 현재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회장님께선··· 좀 전에 잠시 잠이 드셨습니다.”

그렇게 그 말을 끝낸 뒤, 그들은 다시금 90도에 가깝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고.

그러고는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한편, 우리는 잠시 그들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우리는 넓은 침대 가운데에 누워있는 한태산 회장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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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한유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한태산 회장을 불렀고.

한태산의 회장의 팔을 가볍게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한태산 회장은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런데 첫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한태산 회장의 눈빛이 무척 탁해 보인다.

특히, 그는 우리가 앞에 있음에도 계속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한유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이상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여보. 목이 말라. 왜 이렇게 답답해?”

“······.”

“물 좀 갖다 주라고! 물 좀!”

목소리가 작았으나 무척 거칠어진 목소리.

“아, 아빠. 잠시만.”

당황하던 한유나.

그녀는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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