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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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잡았습니다!! 그 새끼!! 잡았습니다!!!”
그 새끼를 잡았다? 누굴?
고태진? 그게 아니면···.
설마???
“네! 선생님 말씀대로 수사관들이 잠복하고 있다가, 고태진을 노리던 그자를 잡았습니다! 무사히 검거 완료했습니다! 현재 관할서에선 그자에 대해 취조를 진행 중입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역시나 바로 움직임이 나타난 것.
사실, 고태진의 입을 두려워하는 자, 아니 고태진의 회복 자체를 싫어하는 자는 그 즉시 반응할 거라고 봤는데.
즉, 식물인간 상태였던 고태진이 의식을 회복하게 된다면 그때 무언가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다시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큰 사건인데.
특히,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던 고상중 의원. 그는 이번 사태로 인해 어쩌면 정치적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다!
한태산 회장은 자신의 아내를 죽였고.
간병인을 통해 고태진의 상태를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는 고상중 의원은 자신의 아들에게 저번에 이어서 이번에도 독수를 쓰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모두가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이다.
냉혹한 자들.
지독한 인간들.
과연 그들에게 있어, 가족이란 건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까.
그러고 보면, 그들 두 사람 모두 사회적 악마들이다.
이 사회 속에 숨어 있는 사이코패스, 그리고 소시오패스와도 같은 인물들···.
“···그래서요? 그다음요? 어떻게 됐습니까?”
순간, 내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졌다.
이때, 나는 환자 베드로부터 즉시 물러섰고.
한편으론 조은하 선배 쪽을 잠시 쳐다봤다.
내가 그렇듯 전화에 몰두하는 모습에 조은하 선배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한쪽 방향을 손짓했다.
하긴, 응급실이 아직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즉시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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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잉!
순간, 아주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입고 있던 의사 가운은 그 찬 바람에 요란하게 펄럭였다.
역시 바깥은 춥다.
그러나 조금 참아볼 생각을 하고서 나는 응급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고.
이때, 김덕규 검사의 목소리가 계속 내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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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가 의사 복장을 하고서 그 병실로 들어갔는데···.”
의사 복장? 의사로 위장했다는 말인가.
“···수사관들 말로는 행동이 좀 이상했고 서류가방 같은 걸 들고 있어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래서 고민하다가 달려들어 그자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때, 격투가 일어났고 그자가 칼을 꺼내 들기에 선생님 조언대로 공포탄 격발 뒤 바로 다리를 쏴서 제압했습니다.”
“네!!?? 진짜 총을 쐈다고요?”
순간, 나는 다시금 놀랐다.
보통, 경찰들은 총기 사용을 하더라도 그 사용 자체가 엄격하게 제한된다.
그런데 지금의 경우는 바로 총기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아무리 내가 그런 제안을 했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무조건 상대를 잡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검경이 강했다는 말이다.
다만, 그때 병원의 놀람이 정말 엄청났겠다.
일반 병동 복도에서 큰 총성이 울렸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중에 과잉 대응이라는 질타도 나오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땐, 그게 최선의 방법일 것 같았다.
저번에 한유나의 병실을 침범했던 괴한!
그때, 내가 봤던 그 괴한의 실력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유형의 인간이 고태진을 노린다면, 설령 수사관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중간 격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즉, 무조건 완벽하게 상대를 잡을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그 배후까지 차례로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지연 검사님 말씀으로는··· 고태진이 그 일로 크게 놀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관할 경찰서 형사들과 공조해서 주변을 밀착 보호하고 있는 중인데··· 오히려 이번 사건 때문에 향후 고태진을 설득할 가능성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그럼, 괴한과 관련해서 증거들도 확보된 겁니까?”
“네! 가방에서 독극물로 추정된 주사 세 개가 발견됐고, 즉시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한 상탭니다.”
무척 잘된 일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선 더는 의심할 게 없어진다.
증거는 완벽하니까.
“그럼 혹시··· 고상중 의원이 다시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내가 질문을 던지자, 이때 김덕규 검사는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 최대한 차단할 겁니다! 강지연 검사님이 지금 나섰고, 곧 체포영장이 나오면 바로 체포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고상중 의원 측에서 변호사를 보내면···.”
“네! 당연히 그 부분까지 저희는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태진 사건을 책임지고 있는 강지연 검사님이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의견이고. 그 변호사가 중간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런저런 사유 등도 준비해둔 상탭니다.”
즉, 변호사 면담을 막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그렇듯 무언가 일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고.
강지연 검사까지 나선 터라 뭔가 일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약간 안도해 했는데.
그리고 잠시 뒤.
김덕규 검사는 나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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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근데 제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절대 오해하지 마시고 성의껏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근데 어떻게 선생님께선 고태진이 깨어나는 시점에 맞춰··· 그러니까 혹시 뭔가··· 따로 조치를 취한 게 있습니까?”
아, 저 질문인가.
하긴, 김덕규 검사는 무척 궁금하겠지.
내가 의사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덕규 검사는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신라병원을 방문했고.
그 직후 고태진은 의식을 회복했다.
마치 우연인 듯 우연이 아닌 것 같은.
그러나 세상에는 늘 희한한 우연이란 게 종종 존재하지 않는가.
그리고 다행히 그런 우연이 이번에는 내 편이 되고 있었다.
“저는 단지 한태산 회장님 병문안 때문에 신라병원에 간 겁니다. 병문안 마치고 돌아가려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났고, 그래서 잠깐 들린 겁니다. 그때, 한유나씨와 함께 문 쪽에서 슬쩍 봤는데··· 결국, 저는 입원실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게 아닙니다.”
그러자 김덕규 검사는 바로 다행이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참 공교로운 우연이지만 정말 하늘이 절 돕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확인하지 않으셨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고태진 상태가 좋아진 줄도 모르고. 그사이 다른 누군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혹시··· 그럼, CCTV 녹화본 같은 건 다 회수했습니까? 고태진 입원실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중요 용의자나 공범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네. 다 회수해서 분석 중입니다.”
“아. 잘됐군요.”
나는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내 알리바이가 더 확실해질 테니까 말이다.
“근데 선생님!”
그리고 잠시 뒤.
약간 달라진 말투로 김덕규 검사는 또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갈수록 놀라고 있습니다.”
“네? 무슨···?”
“확실히 선생님께선 단순한 의사 선생님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의아해하며 즉시 묻자, 김덕규 검사는 바로 대답했다.
“신문에서도 봤습니다. 용감한 시민상··· 그리고 신라그룹 한유나씨와···.”
“아, 그건···.”
“늦었지만, 정말 축하드립니다!”
무척 힘이 실린 듯한 목소리.
그 축하의 말에 나는 갑자기 실소했다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어쨌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공로에 대해선, 나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현장에서 ‘살인미수 용의자’도 잡게 됐고, 그 덕분에 사건을 좀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김덕규 검사는 괴한을 ‘살인미수 용의자’로 보고 있다.
물론, 내 생각엔 그자가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고태진을 꼭 죽일 의도가 아니라 다시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그런 의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덕규 검사는 무조건 계획 살인미수로 ‘수사’와 ‘기소’를 확정하려는 것 같았다. 독극물로 추정되는 주사기가 가방에서 발견된 터라, 그렇게 밀고 나가는 게 오히려 관련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더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즉, 고태진에게는 그런 살해위협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있게 되고.
이후 고태진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거기다가 상당한 수사 인력을 동원받아, 괴한과 관련된 배후 세력을 찾는데 더 큰 수사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고태진이 의식을 회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새로운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어, 현재는 극적 반전이 이루어진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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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고상중 의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잠시 후, 나는 고태진 문제에서 벗어나 이제 고상중 의원을 언급했다.
사실, 회귀 전, 아버지의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던 고상중 의원.
그런데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상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차기 대권 주자로까지 급부상하지 않았나.
“사실, 좀 전에 저희 부장님과도 논의했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고상중 의원이 혐의점이 가장 많습니다. 다만, 물증이 없어, 그건 수사 과정에서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입니다.”
그렇다면, 김덕규 검사는 다시금 고상중 의원을 노리게 됐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번엔 저번보다 더 유리해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중요한 무언가가 드러나게 되면, 그다음 것들은 줄줄이 엮이며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건 시간 문제.
그리고 수사 집중력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이 일에 대해선 절대 함구하셔야 합니다.”
그래, 중요한 수사니까. 수사가 끝날 때까지 절대 입 밖에 낼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즉시 동의했고.
그로부터 잠시 뒤.
특수부 김덕규 검사와의 긴 통화를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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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이씨! 어떡하지.
순간, 갑자기 담배 한 대가 그리워진다.
뭔가 일들이 착착 잘 진행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약간 불안해지기도 하는 바로 이 순간.
담배 한 대가 절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서 조은하 선배 앞에서 금연 선언을 했다.
더군다나 조만간 약혼까지 하게 되는 입장.
하긴···.
불쾌한(?) 담배 냄새가 계속 내 몸에 배이게 할 순 없다.
그래서 입맛만 다시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뒤, 내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래, 이번 기회는 확실한 기회다!
아버지의 정적을 확실히 제거할 기회가 될 테고.
태아를 잃은 김덕규 검사와 故 권철수씨 같은 사람들에겐 큰 복수가 될 수 있다.
한유나와 나에게도 나름 도움이 된다. 고상중 의원 라인과 연결된 듯한 3남 한윤형의 힘이 확 빠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럼 된 거다.
그렇듯 정리를 마친 뒤, 나는 즉시 응급실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런데 바로 이때.
나는 다시금 멈칫했고.
황급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김덕규 검사가 다시 전화를 한 것일까.
그런데 내 휴대폰 화면을 즉시 확인하던 중, 이때 아주 뜻밖의 발신자 번호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휴대폰 전화번호???
그렇다.
아버지의 휴대폰 전화번호가 지금 발신자 번호로 찍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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