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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123화 (123/145)

성스러운 의사의 길 01

<127>

200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이날 아침, 나는 전날 야간 근무에 이어서 계속 근무를 이어나갔다.

조은하 선배가 현재 뭔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다 보니, 당분간 내가 각종 일들을 도맡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조은하 선배는 자신의 오른손이 멀쩡하다며 뭐든 일을 하려고 했지만.

단순 외상에 대한 봉합, ABGA 채혈, 각종 천자 시술 등을 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내가 도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일요일 낮 동안 푹 잤던 나는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까지, 24시간 근무를 쭉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느덧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이 되자, 마침내 턴이 바뀌면서 나는 쉴 시간을 얻게 되었다.

한편, 조은하 선배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임에도 바로 숙소로 들어갔는데.

반면, 나는 병원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서울에서 막 이곳으로 내려온 한유나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힘들 거라며 직접 서울에서 내려온 그녀.

그녀는 경호차량들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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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

한편, 약간 어색했지만, 나는 그녀와 살짝 포옹했다.

그 순간, 한유나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그러나 이내 웃으며 우리는 손을 잡고서 뒷좌석에 탔다.

그리고 잠시 뒤.

그 뒷좌석에서도 다시 손을 잡았고.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무척 화사한 외투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한유나.

늘 느끼지만, 그녀에게선 광채가 나는 것 같다.

특히, 그녀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마치 내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 듯한 그런 상상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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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아직 안 먹었지?”

내가 묻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여긴 특별히 갈 데가 없는데··· 그래도 좀 괜찮은 델 찾았어. 김 과장님! 시내에 있는···.”

그러고는 나는 운전사에게 이번 목적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나마 괜찮은 레스토랑. 거기에 예약해 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한유나는 갑자기 뜻밖의 말을 꺼냈다.

“손 다치셨다는 선배님, 어떻게 됐어?”

사실, 어젯밤 한유나와 통화하면서 나는 응급실 난동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한유나는 갑자기 조은하 선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숙소에 좀 전에 들어갔으니까··· 지금쯤 쉬고 있겠지.”

“선배라고 했지? 여자 선배?”

나는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분은 친구가?”

“친구?”

그 순간, 한유나의 눈짓을 보고서 그녀가 이성친구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때, 한유나가 슬쩍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 선배도 같이 가는 게 어떨까?”

“뭐?”

순간, 놀라며 나는 반문했다.

“다치셔서 마음이 안 좋으실 텐데.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저분들과 같이 움직여야 하잖아.”

그러니까 이번 데이트는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데이트이고. 이왕 그렇게 됐으니까 조은하 선배도 데려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그녀의 제안이었다. 사실, 나는 경호원들까지 생각해서, 레스토랑 테이블 예약을 많이 잡아 둔 상태다.

“그럼, 그럴까?”

한유나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내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날 도와주신 분이 맞지?”

그녀의 그 언급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니, 한유나의 제안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러나 역시 조금 마음에 걸리는 점도 있다.

정말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커플이 움직이는 자리.

그런 자리에 조은하 선배를 부른다?

조은하 선배가 싫어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한유나가 계속 재촉했고.

할 수 없이 나는 조은하 선배한테 직접 의향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었고, 잠시 후 조은하 선배와 통화를 진행했는데.

이때, 한유나가 갑자기 내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들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한유나는 말했다.

“같이 가기로 했어.”

와!

나는 즉시 외쳤다.

“김 과장님, 잠시 저 앞에서 대기하죠.”

그리고 그로부터 10분 뒤.

별관 숙소에서 조은하 선배가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우리는 얼른 밖으로 나왔고.

바로 이때.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알리듯···.

새카만 하늘에서 무척 생동하는 하얀 눈들이 아주 탐스럽게 내리기 시작했다.

<128>

펑펑 쏟아진 하얀 눈들.

200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눈이 너무 내려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했다.

이곳 도시는 다시금 정지된 듯한 모습이 되었는데···.

왕복 2차선 작은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은 앞선 폭설 때와 같이 그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공휴일 아침인 탓도 있겠지만, 병원 앞쪽 도로도 차량 없이 텅텅 빈 상태였다.

한편, 병원 입구 쪽에는 눈이 너무 쌓인 터라 병원 보안팀 직원들까지 나서서 눈을 옆으로 치우느라 정신없이 바빠졌다.

“하아! 이거 진짜 미치겠네. 자! 자! 우리 빨리 치우고 해장국이나 먹으러 갑시다!”

점점 더 밝아오는 아침.

그 아침부터 그렇듯 눈을 치우는 직원들은 무척 바빠졌고.

병원 창고에 있던 제설삽들이 모조리 동원되어 눈 치우기에 활용된 끝에, 그로부터 30분 뒤 병원 앞쪽 입구가 나름 말끔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눈을 치운다고 해서 다 끝난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아침 9시쯤 되자, 다시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고.

굵직굵직한 눈송이가 하늘에서 온통 쏟아지며 병원은 더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특히, 이날, 남쪽 도시 부산에서도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결국, 대한민국 지역 대다수가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세계로 변해가고 있었다.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린 세상.

무척 순결해 보이는 듯한 세상.

완벽에 가까운 듯한 세상.

그렇듯 그 아름답던 세상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르는 정오 무렵, 결국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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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몇 명이나 들어 온답니까?”

“총 다섯 명요! 일가족 다섯 명이라고 했어요!”

공휴일 크리스마스인 오늘!

현재 응급실 근무 중인 배소희 간호사는 119구급대원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즉시 알려줬다.

이곳 소도시, 외곽을 지나가고 있는 고속도로.

그런데 밤새 내린 눈과 아침에 내린 눈 때문에 더 상태가 나빠진 그곳에서 상당히 위험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고속도로를 달리던 한 차량. 그 차량이 결국 눈길에 미끄러졌고, 주변 펜스를 친 뒤, 그대로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고 한다.

그쪽 라인의 펜스는 급커브 구간에 위치하고 있어 종종 차량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런 충격들로 인해 이미 약해져 있던 펜스는 이때 너무 쉽게 부서져 버렸고.

차량은 곧장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고 한다.

다행히 사고 목격자가 즉각 신고했다.

그리고 119구급차량 등이 도착한 뒤 구조 작업이 재빨리 진행된 끝에 부상자들을 이곳 병원으로 호송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로부터 잠시 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119구급차가 차례로 나타났다.

다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119구급차는 한동안 서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고.

그 때문에 사고 지점에서부터 병원까지 이송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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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간호사님! 그럼 김한석 선생님과 장종욱 과장님은 언제쯤 오신다고 연락 왔어요?”

한편, 스트레처카를 미리 끌고 나온 나는 배소희 간호사한테 슬쩍 상황을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난색을 표했다.

“그게 도로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스노우 체인 달고 오시겠다는데, 최소 20, 30분은 더 걸릴 거라고 합니다.”

현재, 주변 도로의 사정은 극도로 좋지 못하다.

또한, 여긴 신속한 제설 작업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일부 지역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라고 한다.

눈이 너무 쌓여, 차량 바퀴가 계속 헛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어제 밤늦게 한유나는 바로 서울로 출발했는데.

그녀가 그렇듯 이곳을 바로 떠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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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구령에 맞춰 환자를 스트레처카에 실은 뒤, 곧장 응급실로 뛰었다.

한편, 왼손 부상을 입은 상태인 조은하 선배도 그 일에 나섰는데.

그렇듯 우리가 재빨리 환자들을 응급실 안으로 이송하던 중.

그때, 조은하 선배는 갑자기 나한테 손짓했고, 아주 거칠게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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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여기 좀 빨리 와 봐! 빨리!! 빨리!!”

현재, 의식 불명 상태의 환자들을 응급실 베드에 옮기는 중인데···.

다시금 황급히 스트레처카를 끌고 밖으로 나오던 나는 조은하 선배의 손짓에 즉시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편, 이곳은 응급실 근무 인원들이 너무 적어 마치 수동적으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빨리 움직여야 돼! 어레스트! 어레스트 갑자기 터졌어!”

“네??”

어레스트 상황이 됐다고??

나는 흠칫 놀라며 즉시 환자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네 번째 순번으로 119구급차에 실려 들어온 환자.

그런데 이 환자는 사고를 당한 가족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대략 11살, 12살로 보이는 여자아이.

그런데 아이의 머리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어깨 자체가 완전히 틀어져 있었다.

특히, 그 어깨 쪽은 응급처치가 되긴 했으나, 흥건한 핏자국이 주변에 가득했다.

매시브 블리딩(다량 출혈) 소견도 예상되고, 이런 출혈에 의한 쇼크 가능성도 컸다.

나는 재빨리 아이를 스트레처카에 실었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비켜요!! 비켜!!”

고함까지 지르며 스트레처카를 밀며 응급실로 뛰어들어갔고.

잠시 후, 응급실 베드 위에 아이를 즉시 옮겼다.

그러고는 재빨리 CPR(심폐소생술) 작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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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스 체크해 주세요!”

“선생님! 펄스가 없는데···.”

펄스가 없다고?

“선생님! 전혀, 전혀! 없습니다!”

놀란 배소희 간호사는 다시금 외쳤고.

나는 즉시 CPR(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컴프레션! 컴프레션! 중간중간 리듬 좀 확인해 주세요!”

그렇게 외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내 시선은 계속 모니터로 향했다.

설마, 에이시스톨(asystole) 상황??

보통, cardiac arrest보다 에이시스톨(asystole) 상황이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에이시스톨(asystole) 상황은 심장 수축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이땐, ECG 그래프도 아주 말끔하게 직선 상태가 되는데.

반면, cardiac arrest 상황은 심장이 일시적으로 멈춰 혈액 순환이 정지된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CPR(심폐소생술)을 적절하게 수행하면, cardiac arrest 상황에선 환자가 소생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그런데 지금 아이의 ECG 그래프가 심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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