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의사의 길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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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네프린(epinephrine)! 즉시 투여하세요!”
그리고 또 이어지는 컴프레션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딱히 뚜렷한 반응이 없다.
할 수 없이 defibrillator(자동제세동기)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이씨! 미치겠다!
큰일났다!
“서두르죠! defibrillator(자동제세동기) 준비됐죠?”
“네! 선생님!”
“바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작은 아이의 심장을 향해 심장 충격이 즉시 가해졌다.
“40J 차지!! 다들 비켜요! 하나, 둘, 셋!”
팡!
곧이어 모니터를 즉시 쳐다보던 나는 두 눈에 힘이 팍 들어갔다.
맙소사, 반응이 전혀 없다.
혹시 몰라, 컴프레션을 더 해 봤지만, 이때도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50J 차지!! 다들 비켜요! 하나! 둘! 셋!!”
팡!
그리고 다시 가해진 심장 충격.
제발 좀 돌아오라고!
제발 좀 팡팡 뛰라고!
아이의 심장이 다시 뛰길 원하는 나는 애타는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다가,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모니터의 모습.
마치 눈앞의 아이는 모든 것에서 무감각해진 모습 같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미 아이의 운명을 알고 있는 상태다.
현재, 나는 [사신의 낫(A)] 특성이 강제적으로 발동되어 있는 상태.
그래서 나는 언제든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아이의 얼굴, 그 얼굴에는 사자(死者)의 징후라고 할 수 있는 시커먼 기운이 잔뜩 쌓여 있는 상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선생님, 그만하시는 게···.”
한편, 이런저런 시도를 다 해 봐도 아이한테선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결국 간호사는 낙담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나는 이미 죽음을 극복한 적이 있어, 그 경험 때문에 절대 이 시점에선 물러설 수가 없다.
물론,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선 상황과 조건이 반드시 만족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바이탈이 돌아와야 하고.
소생의 가능성도 기필코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사자(死者)의 징후가 인간에게 낙인되고 나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한번 생성된 사자(死者)의 징후는 쉽게 지워지지 않고.
그 징후가 완벽히 사라지기 전까진 언제든 갑자기 죽음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그런 징후를 완벽하게 떨쳐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은 소생 자체가 가장 중요했다.
이때, 나만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도 이런 노력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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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더 가죠! 하나! 둘! 셋!”
그리고 다시금 주어진 심장 충격.
그 순간, 다들 모니터를 응시했고.
잠시, 피가 마르는 듯한 긴박한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이대로 사망하느냐.
아니면, 소생의 씨앗이 싹트게 되는 것일까.
두근두근.
내 심장은 더 심하게 뛰었다.
“선생님!”
그리고 잠시 뒤, 날카롭게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
“반응이, 반응이 없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흐려지는 간호사의 목소리.
나는 잠시 멍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일 뿐.
갑자기 혈압이 팍 치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속의 피가 온통 머리끝까지 몰려드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 함께 난데없이 분노가 확 치솟아 올랐다.
응급실 근무 의사들은 사실, 이런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탈진에 가까운 충격과 깊은 허탈감에 빠져들게 된다.
사실상, 최일선에서 환자를 구하게 되는 응급의사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응급구조 과정에 있어, 특별히 쓸 수 있는 시술 방법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몇 가지 주요 응급 시술과 약물 투약 등도 활용되지만.
이런 경우, 그 짧은 기간 동안 더 중점적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바로 전기 충격을 포함한 CPR(심폐소생술) 방식이다.
그런데 이 자체가 무력화된다면, 그땐 다른 방도가 없다.
이미 중요한 시간이 소진했고, 결국 환자의 죽음은 기정사실화된다.
이런 순간, 대다수 응급의사들은 절망하며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는···.
나는 아직은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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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더 가죠!”
“네? 선생님? 더 하실 필요가···.”
그러나 나는 고집스럽게 다시 달려들었다.
다시금 컴프레션을 시도하며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고.
일반적인 구조 방법으론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즉각 특성을 발동시켰다.
[베살리우스의 눈(S)]
[병변 부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성공 확률 95%, 스캔 깊이 제약 없음]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그 순간, 아이의 상태가 좀 더 일목요연하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한편, [사신의 낫(A)] 특성이 발동되어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다른 특성이 발동되자, 바로 시스템 경고음이 들려왔다.
[경고! 사신의 저주가 당신에게 집중됩니다! 주의하세요!]
그렇듯 사신은 나의 적극적인 개입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좀 더 빨리 반응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런 특성 발동 없이 아이를 구할 수만 있었다면, 훨씬 더 나은 상황이 될 텐데.
그러나 이번에도 저번과 동일한 상황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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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쩔 수 없어! 무조건 구하자!
적어도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적어도 이 아이가 내 환자라는 것···.
비록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다 살릴 능력은 안 되지만, 적어도 눈앞의 아이만큼은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드디어 나는 [특전, 빛나는 손가락]도 발동시켰다.
특전 [빛나는 손가락]!
[외상 부위에 직접 손가락을 접촉할 경우, 외상 부위가 말끔하게 치유됩니다. 제한 조건: 첫 발동시 하루 유효]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그런 특성 발동과 동시에 나는 아이의 머리, 어깨, 심장 부위를 두 손으로 만진 뒤, 컴프레션을 또한 진행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이어진 심장 충격!
“비켜요! 하나, 둘, 셋!”
팡!
그리고 그 순간,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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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서, 서, 선생님!!”
“······.”
“퍼, 펄스가 있어요!!”
“······.”
“펄스!! 어떡해? 돌아왔어요!! 돌아왔어요!!”
“······.”
“선생님! 살았어요!! 살았어요!!”
놀라며 외치다가 이내 어쩔 줄 몰라 하며 방방 뛰는 간호사.
한편, 나는 뒤늦게 모니터를 확인했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아이의 심장.
그 심장이 이제 다시금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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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때, 다른 변화들도 나타났다.
앞선 케이스와 다르게, 특전 [빛나는 손가락]은 직접적으로 환부에 효력을 발휘했고, 그로 인해 아이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다.
[빛나는 손가락: 외상 부위에 직접 손가락을 접촉할 경우, 외상 부위가 말끔하게 치유됩니다. 제한 조건: 첫 발동시 하루 유효]
즉, 내 손가락이 비록 환부 깊숙한 곳까지 닿지 않았음에도, 이 특전의 효력은 상당했다.
이른바, 일부 치유 과정까지 진행되자, 한번 낙인될 경우 쉽게 지워지지 않던 사자의 징후도 이런 특전 앞에선 그대로 붕괴되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운 시스템 경고음이 내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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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 ‘사신’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커집니다. 폭발적으로 낮아진 인과율에 따라, <사신의 낫> 특성은 즉각 <죽음의 낫> 특성으로 일시 변경됩니다!]
[죽음의 낫(A)]
[치명적인 죽음의 저주가 불특정 대상에게 도래합니다. 경고! 경고! 새로운 죽음이 완료되는 시간은 앞으로 44분 뒤! 해당 특성 사용자는 사망 대상자를 임의로 지정하며 바꿀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1회 변경 가능]
[경고, ‘사신의 눈’이 저주받은 인간을 무섭게 노려봅니다!]
[사망 예정: 김주은]
[남은 시간: 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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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순간, 바로 옆 베드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른 어레스트 상황이 나온 건데.
바로 저 아이의 엄마가 있는 베드 쪽이었다.
나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결국, 아이가 되살아나자, 죽음의 저주는 그 아이 엄마한테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내 반응이 좀 더 침착해졌다.
좀 전에 그 놀라운 효력을 확인했던 특전 [빛나는 손가락], 그 특전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특전은 본래 일회용이지만.
유효 시간은 무려 24시간.
물론, 이 24시간이 경과되면 다신 이 특전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좀 아쉽기도 하다.
무척 위력적인 특전이기 때문.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후회는 없다.
사실, 이런 특전들 자체가 환자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 아닌가.
다만, 미션과 관련하여,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특전을 이렇게 쓰게 되어 아쉬움이 없잖아 있지만.
그럼에도 그 아쉬움마저 이내 떨쳐냈다.
나는 절대 이 아이의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
내가 외면하는 순간, 나는 환자를 위하는 의사가 아니라, 그저 내 이익만을 쫓는 그런 의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회귀 전에도 그랬고, 회귀 이후에도 그랬고, 나는 절대 그런 인간이 될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이런 응급의료의 최전선에 서서도 안 되며,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치열한 수술의 현장에 서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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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나는 아이의 엄마에 대한 CPR(심폐소생술) 응급처치를 진행했다.
이때, [베살리우스의 눈(S)] 특성과 [빛나는 손가락] 특전이 동시에 발동되었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죽음의 낫]이 발동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대일 교환(S)] 특성이 무력화된 적이 있는데. 그때, 특전 [은빛 성수]마저 무력화되면서 나는 무척 당황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앞서, 고태진을 치료하기 위해 나는 특전 [은빛 바늘]과 [은빛 성수]를 사용했고, 그때 고태진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만약 내가 [은빛 바늘] 혹은 [은빛 성수]를 단독으로만 사용했다면 그 시도 자체가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 사용을 통해 두 [특전]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고, 그 덕분에 고태진을 치료할 수 있었다.
결국, 특전이나 특성은 합당한 조건에 맞추어 사용할 때만 그 효력이 생성되는 게 분명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신의 저주, 즉 [죽음의 낫] 특성은 새로운 죽음이 완료되는 시간에 대해선 아주 엄격한 관련성이 있는 것 같았고, 결국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최대한 회피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즉, 죽음이 완료되는 시간, 44분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는 그 특이한 제약!
(죽음의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일대일 교환(S)] 특성은 그 제약에 위배되는 것 같았고.
단순히 환자의 활력을 증진시키는 [은빛 성수]는 환자의 절망적인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배척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현재 유효한 [빛나는 손가락] 특전은 과연 어떨까.
특히, 이 특전은 그 자체가 직접적인 환자 치료 기능이 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그런 생각과 가능성을 아이의 엄마, 김주은 환자한테 집중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짜릿한(?) 시스템 알람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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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예정 취소!]
[죽음의 낫 특성이 즉각 취소됩니다!]
[사신이 크게 놀랍니다!]
[사신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신의 권역이 일부 축소되며··· 인과율의 변동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성좌께서 당신의 계산되지 않은 과감한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새로운 특성이 부여됩니다!]
[전용 특성: 천사의 심장(SS)]
[사심이 없는 자비로운 당신에게 무한한 축복이 주어집니다. 자신을 헌신하여 생명을 구할 경우, 그 축복을 받아 당신의 생명력은 1년씩 늘어나게 됩니다. 제한 조건: 없음]
[천사의 축복을 받은 당신에게 영원한 행운이 깃듭니다!]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시스템 알람!
[새로운 히든 미션 발생!!]
[히든 미션: 성스러운 의사의 길!]
[생명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현재 시각 기준, 당신은 0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특전 유효 시간 동안, 당신이 구하는 생명 숫자에 따라 새로운 인과율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인과율에 따라 새로운 칭호가 주어질 것이며···]
그렇게 시스템 알람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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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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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미션: 성스러운 의사의 길!]
한편, 그렇게 새로운 히든 미션 정보도 떴다.
그런데 이 미션은 그저 단기 미션이라고 할 수 있다.
미션 성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느냐에 따라 그 인과율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때, 새로운 칭호도 나한테 주어진다고 하는데.
과연 이 칭호의 의미가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런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
계산되지 않은 과감한 헌신이라···.
에휴!
사실, 내가 앞뒤 재지 않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빛나는 손가락] 특전을 쓴 것을 두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과연 내가 정말 사심이 없는 그런 자비로운 사람일까.
최근엔 욕심도 생겼다.
신라그룹에 대한 욕망도 생겼고.
특히, 가족을 해친 한태산 회장 등에 대한 증오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중이다.
이러니 내가 사심이 없는 자비로운 사람이라곤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환자를 대할 땐, 마음과 열정이 불같이 끓어 오르고.
머릿속은 맑아지며, 세상은 무한정 넓게 보인다. 환자에 대한 집중력 역시 무척 높아지고···.
그건 결국 내가 어쩔 수 없는 의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긴, 회귀 전에도 나는 의사였고, 지금도 의사다!
그리고 회귀 전의 삶도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달라진 건··· 내 의술 실력이 이전보다 더 향상됐다는 것.
더 많아진 경험들과 어느 순간 내가 얻게 된 이 놀라운 특성들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면, [히든 미션: 성스러운 의사의 길]이 오픈되면서 이래저래 아쉬움이 더 커진다.
내가 진작에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면···.
향후 [지옥 여행 6일]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기만 하다.
에휴!
근데 어떡하나.
이걸 되돌릴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고.
시스템 특성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어 또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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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대략 한 시간 뒤.
김한석 선생과 장종욱 응급실 과장은 황급히 응급실에 나타났다.
가장 급할 때 두 사람은 병원에 도착하지 못했는데.
그들이 도착할 무렵엔 가족 TA(교통사고) 환자들에 대한 응급처치가 거의 다 완료된 시점이었다.
즉, 우리는 아이를 포함한 세 명의 환자들에 대해 CPR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세 건 모두 CPR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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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3건 모두 성공했다고? 사망자 없이?”
“네. 사망자는 없습니다.”
그러자 응급실 과장 장종욱 선생은 약간 놀란 눈으로 조은하 선배와 날 쳐다봤다.
사실, 의사 두 명이 합심하여 세 건의 CPR을 성공적으로 끝낸 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어레스트 상황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약간 운이 좋았습니다. 거의 5분 간격으로 어레스트가 연속적으로 터졌지만···.”
그럼에도 3건 모두를 해결한 것이다.
이때 장종욱 선생은 순간 뭔가를 발견한 듯 좀 더 놀란 눈으로 조은하 선배의 왼쪽 손을 쳐다봤다.
현재 조은하 선배는 반깁스를 푼 상태다. 그런데 그녀의 왼손 압박붕대는 어느새 붉은 피의 흔적이 가득해진 모습인데.
즉, 그녀는 자신의 반깁스를 스스로 풀어 던졌고. 왼손 압박붕대 상태에서 환자 한 명에 대해 CPR을 직접 진행했으며 이후 각종 처치도 그 손으로 다 끝낸 상태였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빨리 응급처치를 한다고 해도.
동시에 어레스트 환자가 두 명 이상이 나오게 되면 나로선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조은하 선배가 직접 나섰고, 직접 환자의 배 위에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것이다.
“근데 조 선생, 손은 괜찮아? 내가 봐 줄까?”
불안한 듯 그렇게 묻는 장종욱 선생.
그러나 조은하 선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표정만큼은 숨길 수가 없다.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대답하는 조은하 선배.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왼손을 뒤로 감추고 있다.
아무래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남들한테 보여주기 싫어하는 모습 같은데.
그녀의 그런 감정을 우연히 읽게 된 나는 그래서 일부러 모른 척했다.
“알았어. 다시 소독하고 드레싱해 봐. 어쨌든 두 사람, 정말 고생 많았어. 적어도 한두 분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그럼 트랜스퍼는?”
“노티는 아까 돌렸고, 각 진료과에서 곧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별로 흉부, 복부, 뇌 쪽에 각각 포커스를 맞춰 각 검사 스케쥴도 잡아뒀습니다 ”
나는 그렇게 대답했고, 장종욱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혈은?”
“풀랩으로 넣어뒀습니다.”
“심전도 결과는?”
그때부터 각 환자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졌고.
장종욱 선생은 그때마다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검사는 웬만한 건 다 된 거네?”
“네! 근데 그게, 콜이 들어가긴 했으나··· 선생님들이 오시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바로 눈길 도로가 문제였다.
공휴일, 특히 이렇게 눈이 수북하게 쌓인 날.
콜을 받은 의사들이 신속하게 병원으로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다.
“···자! 자! 그럼, 우리 이렇게 정리하자고!”
곧바로 장종욱 선생이 나섰다.
“조 선생, 김 선생, 두 사람은 땀부터 닦고 잠깐 쉬고 있어. 김한석 선생! 우리가 나머지 일들을 좀 맡아서 합시다.”
“네. 과장님.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서 장종욱 응급실 과장과 김한석 선생은 환자 차트를 보며 응급실에 있는 그 환자들을 살피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우리는 잠깐 뒤로 물러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의사 두 명이서 아주 절망적이었던 어레스트 환자 3명을 살렸다.
그리고 의식 불명 상태인 2명의 환자들에 대한 응급처치까지 다 끝냈다.
각종 검사들도 진행했는데.
이런 일들을 짧은 시간 안에 동시에 진행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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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그 손은··· 제가 봐 드리면 안 될까요?”
한편, 나는 티슈 몇 개로 땀을 닦은 뒤, 곧장 조은하 선배한테 다가갔고.
무척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처를 살피려고 하던 그녀는 정색하며 날 쳐다봤다.
“줘 봐요! 그냥 제가 볼게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다가섰는데.
아무리 자신이 의사라고 해도 자신의 상처를 직접 처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다.
이때, 흠칫하던 그녀의 오른쪽 팔을 잡은 뒤, 구석진 베드 쪽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선배, 국소 마취도 해야 하고, 봉합도 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조은하 선배는 베드에 앉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왼손을 멸균 천 위에 올려놓은 뒤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이때, 뒤늦게 무서운 통증이 밀려온 듯.
조은하 선배는 인상을 팍팍 썼고.
그러다가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슬쩍 쳐다보니 이를 질근! 악문 모습이다.
즉, 통증이 심해져 억지로 참는 듯한 모습.
실제, 그녀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봉합했던 곳이 다 터져 버렸고.
그 상처엔 고름과 피가 섞여 있었다.
재빨리 생리식염수로 세척한 뒤 다시금 확인해 보니, 그 안쪽 조직까지 짓눌리며 거의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도대체 선배는 무슨 생각을 갖고서 흉부 압박을 시도했던 것일까.
차라리 간호사한테 일을 맡기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사실, 좀 전에 아이의 엄마와 할머니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어레스트 상황에 빠져들었는데.
[죽음의 낫] 저주로 인해 아이의 엄마한테 먼저 어레스트 상황이 왔고.
그래서 내가 먼저 나서서 아이 엄마를 맡았는데.
이후, 아이 할머니마저 어레스트 상황이 되자.
피치 못하게 조은하 선배는 직접 CPR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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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손가락 좀 움직여보세요.”
그러자 조은하 선배는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자체가 무척 힘든 듯 점점 더 신음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됐어요. 잠시만요.”
그때부터 나는 얼른 주변 소독을 했고, 국소 마취도 진행했다.
“수처하고 나서 바로 항생제 투여하죠.”
“그냥··· 빨리 좀 해 봐.”
한편, 조은하 선배는 억지로 힘내서 말하는 것 같았고.
자신의 상처가 심하다는 걸 아는지.
구태여 자신의 상처를 직접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바로 시작할게요.”
그리고 잠시 뒤.
국소 마취 상태가 어느 정도 되자, 괴사된 조직 등을 확인하며 내부 상처를 다시금 확인했고.
이때, 미세 봉합 대신에 나는 즉시 [빛나는 손가락] 특전으로 그녀의 손바닥 안쪽 상처를 치료해나갔다.
그런데 이 특전은 환부에 직접 손가락이 접촉될 경우 그 효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실제 내 시야에 들어오는 그 효력은 정말 엄청났다.
특히, 내 손가락 끝이 환부에 닿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새하얀 광채.
아마도 내 눈에만 보이는 그 광채가 환부를 휘감는 것 같았고.
그 광채가 사라지자마자 환부를 삽시간에 아물고 있었다.
그 안쪽부터 새살은 아주 빠르게 돋아났고.
짓이겨진 미세 혈관 등은 눈 깜짝할 사이 복원되고 있었다.
그렇듯 안쪽 환부가 말끔하게 정리되자, 나는 다음 작업을 위해 [빛나는 손가락] 특전을 정지시켰다.
그러고는 그때부터 [빛나는 손가락] 특전 대신에 내가 직접 수처를 진행했다.
이때, [수처 마스터(B)] 특성이 활용되자 순식간에 수처는 끝나게 되었고.
현재 왼손 일부가 국소 마취된 조은하 선배가 미처 이 상황을 알지 못하도록 재빨리 드레싱까지 마쳐 버렸다.
사실, 이 정도 상처라면 최대 일주일 안에 조은하 선배는 붕대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상처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나는 봉합사를 이용한 피부 봉합만큼은 확실하게 해 둔 상태다.
그러고는 드레싱 상태를 다시 확인한 뒤, 조은하 선배를 쳐다봤다.
“선배, 끝났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이때, 아주 깔끔하게 붕대가 감긴 자신의 손을 쳐다보던 그녀는 무언가 만족한 듯 바로 몸을 일으켰다.
“잘 하네. 수처는?”
“아시다시피, 저는 흉부외과 수술 전문 인턴입니다.”
그러자 조은하 선배는 피식 웃었다.
“선배, 근데 그냥 저기서··· 좀 쉬는 게 어때요?”
한편, 내가 베드를 가리키며 묻자, 조은하 선배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항생제 건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 마. 그리고 잠깐만 기다려. 아까 그 환자한테 좀 확인할 게 있어서.”
아무래도 뭔가 부족한 게 갑자기 생각났는지 몰라도 조은하 선배는 반대편 베드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고 보면, 이럴 때 의사의 사명감이라는 건 정말 무섭다.
아픈 자기 몸보다 환자의 상태가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조은하 선배는 다시 돌아왔다.
“참, 깜빡했는데, 상처는 어땠어?”
이때,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다.
그러나 나는 그 걱정을 떨쳐줄 목적으로 즉시 기분 좋게 대답했다.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을 겁니다. 당분간 손을 쓰지 않는 게 좋고. 최소 일주일 정도는요.”
“최소 일주일?”
“네!”
“근데 내 상태가 그 정도로 좋아?”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며, 바로 반문하는 조은하 선배.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좀 전까지 위축됐던 그녀의 표정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잠깐, 내가 확인해 볼게.”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정색하며 손을 저었다.
“혹시 저 못 믿으세요?”
“······??”
“절 믿으면 그냥 편안하게 기다려요. 실밥 뽑을 때나 한번 보세요.”
“정말 괜찮다는 거지?”
“네.”
“으음··· 그래, 알았어. 어쨌든 고맙다.”
그렇게 말한 뒤, 조은하 선배는 이내 피식 웃었고, 그러고는 그녀는 눈짓했다.
“잠깐 밖에 나가자.”
“네? 밖에요?”
“담배 한 대 피게.”
“밖에 추운데요?”
그러자 입꼬리가 씩 올라가던 조은하 선배는 오른손으로 손짓했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잠시만요.”
이때, 나는 얼른 당직실로 이동했고, 각자의 잠바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온통 새하얗게 변한, 병원 건물 뒤쪽.
그 뒤쪽으로 먼저 가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조은하 선배에게 그녀의 잠바를 넘겨줬고.
그런 뒤, 나는 어깨를 쭉 펴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때, 아주 차가운 듯, 아주 시원한 공기가 내 콧속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머리끝까지 시원해지고 정신이 한없이 맑아지는 듯한 바로 그런 느낌이 불쑥 들었다.
그래, 춥긴 한데, 그 느낌이 아주 괜찮다.
또한, 세상이 너무 하얗게 변한 터라 그 광경이 은근히 보기에도 좋다.
한편, 한쪽 구석에서 하얀 털 잠바를 입고서, 조용히 담배를 피고 있는 조은하 선배의 모습은 그런 눈의 모습과 은근히 어울리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고.
그로부터 2시간 뒤.
119구급차량들이 싣고 온 새로운 TA 환자들을 우리는 또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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