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의 신 02
#
“···하하! 여기 팁부터 받으세요.”
한편, 식사가 한참 진행되던 중.
인상이 무척 좋은 중년의 요리사는 문밖에서 노크한 뒤 우리의 룸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참치의 얼린 수정체를 잘게 부숴 소주에 섞었고.
그렇게 총 4잔의 눈물주를 만들어줬다.
그러자 장종욱 선생은 즉시 팁을 그에게 건넸고.
요리사가 룸에서 나가자, 바로 건배 제의를 했다.
“자, 자, 다들 한 잔씩 잘 받았지? 우리 깔끔하게 한 잔씩 하자고!”
그러자 장종욱 선생의 옆에 앉아 있던 김한석 선생이 슬쩍 입을 열었다.
“과장님! 근데 그냥 마시기엔 좀 그렇고··· 연말이고 해서 과장님이 건배사 한번 하시죠.”
그러자 40대 후반의 나이인 장종욱 선생의 눈매가 이내 부드럽게 휘어졌다.
“아, 그럴까? 그럼 대체 뭐가 좋을까? 아아··· 그래! 그게 좋겠다! 그걸로 가자!”
뭔가 건배사를 떠올린 듯, 씩 웃던 장종욱 선생.
곧이어 그는 힘차게 외쳤다.
“고! 감! 사!”
고감사?
“고생했어요! 감사했어요! 사랑합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고감사’였다.
“참! 김한석 선생은 야간 근무해야 하니까 입만 대고 마시지는 말고. 알겠지?”
“아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쉬운 듯 입맛만 다시는 김한석 선생.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의하고 있었다.
사실, 김한석 선생은 중간중간 야간에 농땡이를 치며 다방으로 가긴 하지만.
그래도 늘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실제, 그는 장종욱 선생의 간단한 건배사가 끝나고 다들 ‘고감사’를 외치며 눈물주를 마실 때.
그는 마시는 시늉만 하고서 눈물주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내려놓고 있었다.
이를 힐끔 쳐다보던 장종욱 선생. 그는 무척 만족한 듯 피식 웃더니 곧이어 우리를 쳐다봤다.
#
“어때? 두 사람, 마실 만하지?”
“네. 저는 좋습니다.”
“조 선생은···? 좀 텁텁할 텐데, 괜찮아?”
“네, 저도 괜찮아요.”
“하하, 참치는 말야! 수정체가 진국이지. 비타민 A, 비타민 B1, 비타민 B2, 이런 것들이 풍부해서 몸에도 좋고. 자! 자! 그럼 우리 오프 상태인 사람들끼리 이제부터 적당히 마시는 게 어때? 눈도 대부분 다 치워졌겠다, 다시 TA 환자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올 리는 없을 테고.”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바로 반박하듯 말했다.
“과장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이땐, 도로가 많이 얼어붙어 빙판길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아! 빙판길?”
이때, 장종욱 선생은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이거 참! 쩝! 쩝! 괜히 눈물주를 마셨나? 소주 맛이 진국인데. 에휴! 할 수 없지. 우리가 직업을 잘못 택한 건데. 그래, 빙판길도 많이 위험해! 아쉽지만··· 다들 콜라나 마시는 거로? 오케이?”
그 말에 조은하 선배와 나는 씩 웃으며 동의했다.
고작 눈물주 한잔!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인가.
24시간 긴장 상태로 유지되는 응급실.
물론, 응급실 환자가 제한적이라면 응급실 당직 의사만으로도 충분히 커버칠 수 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갑자기 환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게 된다면, 그땐 오프 상태인 의사도 응급실에 합류해야 한다.
특히, 이렇듯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는 날엔 응급실 오프 의사들도 각별한 주의를 할 수밖에 없다.
#
“···참! 그때 조 선생 손을 찌른, 그 주취자 말이야.”
그리고 잠시 뒤.
화제가 바뀌면서.
장종욱 선생은 저번 야간 주취자 난동 사건에 대해 슬쩍 언급했다.
“그 주취자 말이야. 내가 건너 건너 아는 형사가 있어서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말이야. 원래 술 먹으면 미친개가 된다고 하더라고.”
술 먹으면 미친개가 된다고?
평소에도 술주정이 아주 심했다는 말이다.
“근데 그 사람이··· 동사무소에 다니는 공무원이라고 하더라고.”
“네?? 동사무소요??”
순간, 나는 놀라며 외쳤다.
그때, 무척 사납게 가위를 휘둘렀던 남자.
그런데 그 직업이 소박하게도 동사무소 공무원이었다.
“···분위기가 특수상해로 기소될 것 같고, 그 때문에 합의 때문에 그 인간이 고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조 선생! 혹시 합의해줄 생각은 있어?”
한편, 장종욱 선생은 조은하 선배를 빤히 쳐다봤다.
그 순간, 나도 조은하 선배를 쳐다봤다.
조은하 선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징벌 상황이 향후 달라질 것이다.
이때, 조은하 선배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아직 반깁스를 풀지 않은 자신의 왼쪽 손을 슬쩍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합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합의 안 할 겁니다.”
“합의 안 한다고?”
“네!”
이때, 아주 짧고 힘있게 다시 대답하는 조은하 선배.
한편, 장종욱 선생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고.
그러자 조은하 선배는 아주 당차게 부연 설명을 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난동을 피운 사람에 대해선, 절대 합의해 줘선 안 됩니다! 병원 응급실이 어떤 곳인지 선생님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마터면 박 간호사님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자 장종욱 선생은 할 수 없다는 듯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참! 어쩔 수 없네. 그 인간 어머니가 여기 병원에 자주 오시거든. 뭐! 조 선생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사실 뭐··· 우리도 주취자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 나도 뺨을 여러 차례 맞았고. 김한석 선생은 눈에 멍까지 들었고. 암튼, 조 선생은 확실히 강단이 있어!”
한편, 묵묵히 참치회를 먹고 있던 김한석 선생.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근데 제가 걱정되는 게 있는데···.”
그러자 다들 김한석 선생을 쳐다봤다.
“사실, 제가 그 인간을 좀 압니다. 그때, 소식 듣고 깜짝 놀랐는데···. 그 새끼 이름이 ‘강기준’이라고 하는데, 원래 싸가지가, 아! 죄송합니다. 좀 이상한 놈입니다. 근데 그 인간 아버지가 옛날에 군수까지 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집안이 좀 빵빵하다 보니···.”
아버지가 군수까지 했다?
“김 선생! 근데 그건 어디서 들었어?”
“과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 인간 어머니가 얼마나 자랑이 많습니까? 저는 야간 근무가 많아 그 인간 어머니도 종종 만납니다. 그때마다 자식 자랑, 남편 자랑, 자기 자랑··· 듣다 보면 아으, 진짜 미치죠.”
“그래서?”
“그 작자가 혹시··· 원한 같은 걸 품진 않을까요? 합의가 없으면 공무원 자리도 잘릴 텐데···. 자존심이 아주 쎈 놈이라서 나중에 무슨 짓을 할지, 대체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자 조은하 선배의 얼굴은 더없이 냉담해졌다.
차가운 냉기가 펄펄 흘러나오는 것 같았고.
그런 선배의 모습 때문에 김한석 선생은 정색하더니 이내 화제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 귀엔 뜻밖의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마치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기라도 한 듯.
아주 서늘한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
[경고! 경고! 사신의 낫(S) 특성이 사망 예정자를 인지했습니다!]
[사망 예정: 조은하]
[남은 시간: 9:05:52]
<131>
순간,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원래, [사신의 낫(A)] 특성은 사망 예정자들에게 사자(死者)의 징후를 낙인시키는데. 이때 나는 그 사자의 징후를 직접 보면서 사망 예정자들을 판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신의 낫(S)] 특성은 그런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좀 더 수치화된 상태.
그러면서 직접적인 사망 예정 통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은하 선배가 대략 9시간 뒤에 사망한다고???
이 믿을 수 없는 통보를 받게 된 나는 잠시 멍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정보를 내가 믿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조은하 선배가 죽는단 말인가.
지병이 있어서???
훗날, 방지현이 죽게 되는 이유와 같은, 원인 미상의 심장마비???
아니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 강기준이라는 남자 때문에???
사실, 회귀 전을 떠올려 보면, 조은하 선배는 이 시점에 성국대 병원 응급실에 있었고.
그때는 파견근무를 신청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땐 조은하 선배는 멀쩡했고.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질병 문제에서 비롯된 죽음이 아니란 말이다.
결국, 사건들이 얽히면서 갑자기 날아든 죽음의 저주라는 것!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다!
바로 강기준!
강기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그자가 가장 의심스럽다!
한편으로는 나는 아찔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사신의 낫] 특성이 A등급에 머물고 있었다면, 정확한 사망 시각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다행히 특성 업그레이드가 된 이후에 발생한 일이고.
그 때문에 다시금 느끼지만.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 선택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한편,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90분 남짓 이어지던 회식은 드디어 끝나게 되었다.
장종욱 선생은 자신의 차를 몰고서 귀가했고.
남은 사람들은 시내에서 택시를 잡은 뒤, 이제 병원으로 함께 향하게 되었다.
#
“···그럼, 수고하세요.”
그리고 잠시 뒤.
택시를 타고서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응급실 앞에서 각자 흩어졌다.
김한석 선생은 야간 근무를 위해 서둘러 응급실로 들어갔고.
오프 상태인 우리는 이제 별관 숙소로 향하게 되었다.
한편,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추위 속.
나는 조은하 선배와 함께 나란히 걷다가.
결국, 참지를 못하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즉시 입을 열었다.
“선배, 잠시만요.”
그러자 멈칫하는 조은하 선배. 그녀는 날 쳐다봤다.
“잠깐 이야기 좀 하죠.”
“무슨 이야기?”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의아해하며 날 쳐다보는 조은하 선배.
그때 나는 손짓했다.
“저기서 커피라도···.”
한편, 내가 가리킨 곳.
그곳은 김한석 선생이 자주 다니는 그 다방이다.
이 근방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커피숍은 바로 저 다방밖에 없는데.
물론, 내가 내 차를 운전해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갈수록 무언가 위험해지고 있었고, 조은하 선배를 설득할 수 있는 합당한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조은하 선배의 운명에 혹시 다른 변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
현재, 강기준이 가장 의심스럽지만, 아직 그녀의 사인(死因)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예를 들어, 강기준을 피하려다가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는 방식으로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
결국, 모든 것들이 무척 불투명하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는데.
어쨌든 내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조은하 선배의 사망 예정 시각은 새벽 5시 26분, 바로 그 무렵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