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의 신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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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씨, 나 알아?”
헬멧을 쓰고 있는 강기준은 저음이지만 무척 기분 나쁘게 말했다.
“시발! 어디서 욕설이야!”
그러고는 잠시 뒤.
코웃음을 친 뒤, 그는 고개를 돌려 조은하 선배를 쳐다봤다.
“시발! 의사 선생! 그 일, 내가 사과한다고! 사과한다고!! 시팔!!”
“······.”
“필름이 끊겼다 말했잖아!! 씨팔, 존나 열 받게 하네. 술 마시면 사람이 또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병원에 갔잖아! 씨! 이건 너무 심하잖아!”
그렇듯 갑자기 목소리가 사나워진 남자.
내 도발에 반응하며 강기준은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고···.
그 모습이 무척 위협적이었다.
사실, [사신의 낫(S)] 특성이 예고한 건, 새벽 동틀 무렵에 조은하 선배가 죽는다는 거다
그리고 그때 일어날 수 있는 그 끔찍한 일들을 막기 위해.
나는 좀 더 빨리 강기준을 자극했다.
왜냐하면, 시스템 미션에서도 시기를 놓쳐 연계 미션(1)을 실패한 적이 있는데. 이후 그 인과가 결국 다음 미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듯 각 사건의 흐름은 서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일에서도 조은하 선배가 사망하는 그 시점만을 노리며 대응하기보단 좀 더 빨리 주요 대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특히,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과들은 특정 조건들과 어느 순간 결합되고, 이때 인간의 생사도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다만, 조은하 선배같이 불확실성을 넘어서 죽음의 인과가 완전히 형성된 경우, 이땐 더 격렬하면서도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즉, 그냥 수동적으로 기다릴 경우, 그 숙명을 절대 피할 수가 없다. 또한, 인과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로지 변죽만 두드릴 경우, 그때도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반드시 특정한 인과를 잘라내야 한다!
그 인과가 잘려 나간다면, 죽음의 숙명 역시 흔적도 없이 소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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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우리 그냥 들어가자. 저 새끼, 그냥 미친 새끼야.”
한편, 조은하 선배는 강기준의 기세가 너무 사나워 보여.
구태여 여기서 더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뒤쪽에 바짝 붙으며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그러면서 자신의 오른손으로 내 왼팔을 잡아 쭉 뒤로 끌었다.
그러나 이때, 나는 서둘러 대응했다.
“잠시만요. 선배!”
“들어가자. 상대할 가치가 없어. 저런 인간은···.”
“아뇨. 제가 잠깐만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바로 이때, 강기준의 욕설이 다시 들려왔다.
“시팔 새끼들! 아이, 시팔! 합의금 2천! 개시팔! 2천만 원 준다고 했잖아! 이 시팔 년아!”
진짜 미친 새끼다.
저게 대체 무슨 합의하려는 사람의 자세인가.
이 시대, 2천만 원이 상당한 고액이긴 하지만, 그 기본자세부터가 틀려 먹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강기준의 욕설들을 들으며, 나는 대략 그의 사정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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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팔년! 적당히 먹고 떨어져! 곧 서울 간다며? 이 시팔년아! 가기 전까지 합의 좀 하고 가! 더 필요해? 시팔! 알았어! 총 3천 줄게. 지금 합의하고 돈 받고 끝내든지, 아니면 최고 변호사팀으로 떡칠할 테니까 그렇게 알라고. 시팔! 그냥 돈 받고 끝낼래? 아님, 끝까지 가보든가. 돈이라도 받고 꺼져! 시팔년아! 돈이라도 받으라고! 시팔년아!!”
“······.”
“아으, 존나 시팔! 입만 아파 죽겠네. 씨팔! 받을 거야 말 거야? 시팔년아! 아으, 진짜 더러운 년! 그래, 알았다. 5천 줄게! 시팔! 이게 맥시멈이야! 이년아, 존심보다 돈이 더 좋아. 그냥 5천 받고 끝내! 시팔!”
그러면서 점점 더 합의금이 높아지고 있는데.
내 뒤에 서 있는 조은하 선배는 그 와중에도 무척 냉담하기만 했다.
그녀는 고액의 합의금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합의 자체를 해 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한편, 헬멧을 여전히 벗지 않은 상태인 강기준.
그는 계속 화를 내며 합의를 종용했는데.
그럼에도 그의 의도는 좀 더 분명해졌다.
계속 욕설을 하고 있으나, 그는 나름 최선을 다해 합의를 보려고 하고 있었고.
최대한 빨리 이 사건을 수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주 강렬해 보였다.
차라리 변호사를 사서 그 합의 일을 맡겼다면 좀 더 나았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은하 선배가 반응하지 않자, 강기준은 무척 화가 난 것 같았고.
어느덧 합의금이 1억 원에 육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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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씨팔! 개쌍년! 고집이 우리 꼰대보다도 더 심하네! 1억 원이야! 1억 원! 시팔! 먹고 떨어지라고 시팔! 공무원 새끼들도 천만 원이면 환장하던데, 시팔! 존나 지리네. 우리 꼰대 때문에 나랏밥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아으, 진짜! 쌍년아! 좀 도와주라! 현금으로 해서 바로 갖다 줄게! 이 시팔년아!”
그러니까 강기준은 지금껏 온갖 사고를 많이 쳤던 것 같고,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사고를 무마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전직 군수였다고 하더니, 상당한 부잣집인 것 같았고.
지역 유지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위치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엔 상대를 잘못 만나고 말았다.
그가 그렇듯 더 적극적인 합의 의사를 보이게 되자.
조은하 선배는 더 차가워지고 있었고.
입을 꾹 닫고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가 슬쩍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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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헬멧부터 벗지?”
그리고 그 순간.
뭔가 흠칫하는 듯한 그의 동작.
사실, 확실히 이상했다.
그 많은 말들을 하면서 그는 헬멧을 벗지 않고 있었고.
좀처럼 헬멧을 벗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회유하듯 다시금 재빨리 외쳤다.
“합의하고 싶다면··· 적어도 헬멧은 벗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강기준은 움찔하는 것 같았고.
잠시 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그가 쓰고 있는 저 큼직한 헬멧은 그 존재만으로도 무척 위협적이다.
얼굴을 감추고서.
표정을 감추고서.
그렇게 욕설을 하고 있는 강기준의 모습.
그래서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뒤.
다행히 강기준은 자신의 헬멧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이때, 좀 뜻밖의 얼굴이 그 헬멧 너머로 나타났다.
좀 전의 강렬했던 모습과 달리.
축축해진 머리카락 아래로, 다소 풀려 있는 두 눈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한 번씩 두 눈이 꿈틀거리며 두 눈에선 번쩍번쩍 광기가 한 번씩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한편,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순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그때 응급실에선 주취 상태에서 아주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자세히 그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땐 그가 너무 발버둥 치는 바람에 간단한 채혈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눈의 초점이 확실히 이상했고.
갑자기 멍해지기도 하고.
또한, 갑자기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조은하 선배한테 뭔가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조은하 선배의 두 눈이 즉시 커졌다.
우리는 다시 서로를 쳐다봤고.
나는 이때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은하 선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강기준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한 조은하 선배.
그녀는 곧장 여자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
한편, 헬멧을 벗은 상태인 강기준.
그는 조은하 선배로부터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여자 화장실 쪽만 계속 노려보는데.
마치 그 순간, 완벽히 그쪽에 몰입한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의 두 눈은 서서히 몽롱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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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미치겠다.
저 새끼, 진짜 미친 새끼다!
진짜 미친 새끼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됐지만.
저 헬멧.
저게 바로 이번 조은하 선배의 사건에서 어느 순간 큰 중심이 되는 그런 중요한 인과였다.
수많은 인과의 선들이 이어지며 교차하다가.
어느 순간, 그 선들이 저 헬멧을 관통하며 집중되는데.
그 시점이 바로 지금 이 시점이었던 것이다.
사실, 주취자 난동 때는 단순히 술 때문에 빚어진 사건으로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게 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마약 복용 상태다.
더 높아진 집중력과 환각, 종잡을 수 없는 폭력적인 상황이 현재 교차하고 있는 상태다.
그건 바로 마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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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별관 바깥, 그곳에 다섯 명의 형사들이 조용히 나타났다.
다른 곳에 차량을 정차한 듯.
조용히 이쪽으로 다가온 그들.
그들은 천천히 입구 쪽으로 들어왔고.
곧이어!
미친 듯이 뛰어들어 강기준을 덮쳤다.
이때, 깜짝 놀란 강기준이 헬멧을 휘두르며 발악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폭력적이라고 해도, 다섯 명의 건장한 형사들을 이길 수가 없다.
강기준은 즉시 제압됐고.
그 즉시 그의 팔뚝의 옷을 걷어본 형사들은 혀를 찼다.
수많은 주사 자국들.
이건 흡사 마약 복용자의 완벽한 흔적 같았다.
그리고 그렇듯 큰 소란이 끝난 직후.
곧바로 내 귀엔 아주 놀라운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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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하, 사망 예정이 취소되었습니다!]
[사신이 크게 놀랍니다]
[사신의 권역이 일부 축소되며··· 인과율의 변동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또 다른 알람도 이어졌다.
[경고!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개입에 따라 ‘예고된 죽음’이 완벽히 회피되었습니다]
[개별 조건 충족에 따라 사신의 낫(S) 특성은 일시적으로 죽음의 낫(S) 특성으로 변경됩니다!]
[죽음의 낫(S)]
[치명적인 죽음의 저주가 지금 즉시 불특정 대상에게 도래합니다!!]
[경고! 경고! 죽음을 회피한 자는 생존하고, 그 죽음의 저주는 불특정 대상에게 주어집니다]
[그 새로운 죽음이 완료되는 시간은 앞으로 44분 뒤!]
[카운트다운 시간 동안 당신은 이제 사신의 낫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뭐???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내 귀를 의심했다.
[죽음의 낫(A)] 특성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내용.
그리고 이때, 시스템 설명은 또 이어졌다.
[사망 예정자를 최대 2명까지 임의 지정할 수 있으며···]
[임의 지정자가 없을 경우, 불특정 사망 예정자는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죽음의 낫(S)]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곧이어 정말 환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앞서 사신이 지니고 있던, 그 ‘진짜 낫’에 대해 언급했던 시스템.
그리고 시스템은 기존의 방식 그대로, 먼저 나에게 그 낫의 위력을 알려줄 생각인지.
무시무시한 그 낫을 내 오른손에 강림시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이 볼 수 있는 그 거대한 낫이 어느 순간 내 손에 쥐어지고 있었는데.
시퍼런 검정 초승달 모양의 거대한 날!
그 날이 달려 있는 그것이 내 손아귀에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사신 강림 때 봤던, 바로 그 끔찍한 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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