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아버지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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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메스(A)]
[메스를 손에 쥐게 되면 손의 움직임이 3배 빨라집니다]
그렇듯 그 특성을 활용하자 절개가 너무나도 쉽게 끝나 버렸고.
누군가 만류할 틈도 없게 되었다.
그 구멍은 흡사 흉강경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순간, 나는 재빨리 작은 나이프를 밀어 넣었고.
누군가 황당해하며 쳐다볼 때, 재빨리 [갈렌의 나이프(B)] 특성을 발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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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렌의 나이프(B)]
[비정상적인 조직을 깨끗하게 절개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직경 1.5cm 범위 내]
그리고 동시에 [수술자의 의지(B)]도 발동시켰다.
[수술자의 의지(B)]
[수술 중, 집중력이 2배 증가합니다. 시력이 2배 증가됩니다. 실패 확률이 높은 수술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며 성공시킵니다]
그리고 이때, 또 다른 시스템 알람도 들어왔다.
[천사의 심장(SS)]
[자동으로 유효 특성이 적용됩니다! 천사의 축복을 받은 당신, 영원한 행운이 깃듭니다!]
그렇듯 각 특성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중첩되는 순간, 이때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사실, 혈전 덩어리를 단순 조직으로 볼 순 없으나.
그 혈전을 제거하고자 하는, 아주 강력한 의지를 뿜어내자.
이때, [갈렌의 나이프(B)] 특성이 새롭게 변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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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특성 간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갈렌의 나이프가 천사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경험치 +100]
[갈렌의 나이프의 절개 범위는 일시적으로 확대됩니다!]
[절개 범위 유효 시간, 3초!]
[3, 2, 1, 0!]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베살리우스의 눈(SS)] 특성을 통해, 내가 주목했던 그 혈전이 찰나의 순간, 흔적도 없이 증발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 즉시, 환부에 가까이 있던 나이프를 즉시 빼냈고.
무척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앞에서 나는 연기하듯 계속 움직였다.
마치 혈흉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인 듯, 나는 이것저것 임의 조치를 계속 병행했는데.
그 일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세밀한 봉합을 순식간에 마쳤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심장 상태를 확인해 보니, 환자의 심장 상태는 어느새 정상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짜릿한 시스템 알람이 내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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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이 크게 놀랍니다···]
[···사신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흡사 내 영혼의 깊숙한 곳과 연결되어 있던 사신의 ‘낫’
좀 전, 심폐소생술에 뛰어들면서 한쪽 옆에 내려놨던 그 낫은 지금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즉, [죽음의 낫] 특성이 깨지자, 사신의 낫은 점점 더 투명해졌고.
결국,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낫에서 비롯된 모든 특전들도 소멸되었다.
내 눈에 보이던 사람들의 수명은 사라졌고.
내 전신을 휘감고 있던 기이한 힘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무력감이 잠깐 일어났으나 이내 나는 빠르게 회복했다.
한편, 이번 구조에 대해, [천사의 심장(SS)]과 관련된 수명 보상을 조금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이후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환자를 구하긴 했으나 자기 ‘헌신’ 측면에서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무척 만족했다.
일련의 일들을 통해, 조은하 선배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이 환자의 생명을 동시에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그저 놀란 눈으로 내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김한석 선생과 간호사들.
그들은 뒤늦게 탄성을 지르며 나한테 달려들고 있었다.
“김 선생!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거의 다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한 겁니까? 와아! 좀 가르쳐주세요!”
“선생님! 어떻게 아시고 그렇게 하신 거죠? 환자가 살았어요.”
“와아아, 정말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분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어레스트 이후 8분이나 경과된 건데···.”
그러고 보면, 사망판정을 코앞에 뒀던 상황.
그러나 그 환자의 심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힘차게 뛰고 있다.
천사의 행운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겹쳤고.
그 때문에 비록 의식 불명 상태이긴 하지만, 환자의 혈색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듯 죽음의 암운은 걷히고 있었고, 환자는 기어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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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정말 수고 많았네. 2주 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수고 많았습니다! 선생님들!”
“조 선생님, 손은 괜찮으세요?”
“어머! 김 선생님, 아쉬워서 어떡하죠?”
“근데 선생님들 덕분에··· 올 연말, 정말 많은 생명들을 구한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다시 뵀으면 좋겠다···.”
“진짜 아쉬워서 어떡하지? 선생님, 조심해서 가세요!”
“항상 건강하세요.”
“선생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조 선생님은 많이 다치셨는데···.”
“선생님, 이건 귤인데··· 가시면서 드세요.”
“꼭 다음에 뵀으면 좋겠어요!”
다음 날, 2001년 12월 29일 토요일 저녁.
2주간 파견근무 일정이 마침내 끝났다.
와! 진짜 시간 한번 잘 간다.
어느새 이곳을 떠날 때가 됐다니.
엊그제 이곳 병원으로 내려온 것 같은데.
여하튼, 응급실 의사들과 간호사들과도 인사를 나눴고.
조은하 선배와 나는 우리가 돌보던 환자들과도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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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할머니는··· 도대체 왜 자꾸 우릴 쳐다보고 있지?”
짐을 챙겨 응급실 밖으로 같이 나가던 조은하 선배.
그녀는 응급실 입구 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쏙 내밀며 날 쳐다보고 있는 어느 할머니를 가리키며 눈짓했다.
아, 저 할머니?
그러고 보니, 저 할머니는 남편 때문에 어제 응급실에 왔다가 갑자기 졸도했고.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는데.
이미 해당 진료과 쪽으로 트랜스퍼가 된 상태임에도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다시 응급실로 들어와,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나는 그 할머니 쪽을 쳐다본 뒤, 바로 인사했고.
그러자 무언가에 크게 놀란 듯 할머니는 갑자기 뒷걸음질 치더니.
어느새 어디론가 쏙 숨어 버렸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잠시 후, 나는 짐들을 차 트렁크에 다 실었고.
끝까지 따라오며 배웅하려는 김한석 선생과 마지막 인사를 다시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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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운전 조심하시고요. 그리고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큰 도움 됐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선생님. 사실, 저희가 여기 있는 동안, 선생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신세는 뭘요? 제가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김 선생님도 대단하시지만, 조 선생님도 나중에 정말 훌륭한 분들이 되실 것 같습니다. 자자, 조심해서 가십시오. 잘 살펴 가십시오.”
그러면서 다시금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김한석 선생.
우리는 마주 인사한 뒤, 곧이어 차에 탔다.
이때, 조은하 선배는 내 차의 조수석에 탔고.
곧이어 몇 번이고 손을 흔든 뒤, 드디어 차는 출발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시골 도시를 그때부터 빠르게 벗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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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참 좋으신 분들이죠?”
“맞아.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분들이었어. 그래서 응급실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그게 바로 시골 특유의···.”
“맞아. 가족 같은 느낌도 있었고···.”
“선배! 근데 좀 춥죠? 히트(heat) 켤게요.”
“어.”
“그럼, 이제 좀 달릴게요.”
“야! 근데··· 지금 밤 길이니까 조심해서 가자. 되도록 천천히······.”
“네! 걱정 마세요!”
2001년 연말의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
그 추위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한편, 그런 강추위를 뚫고 내 차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드디어 고속도로에 진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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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할머니! 근데 춥지 않으세요?”
“어?”
“춥지 않으시냐고? 계속 거기 서 있으시면···.”
“춥긴 한데···.”
춥긴 한데?
현재, 오돌오돌 어깨를 떨고 있는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는 응급실 문 바깥에 계속 저렇게 서 있다.
의아해져 박미옥 간호사는 밖으로 나왔고.
너무 추워 몸을 떨면서 그렇게 물었는데.
그럼에도 할머니는 꿈쩍을 하지 않고 그렇게 서 있었다.
“빨리 들어가세요! 그러다가 감기 걸러요!”
“감기가 무슨 대수야?”
“네??”
“우리 다들 죽을 뻔했다니까···.”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박미옥 간호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빤히 할머니를 쳐다봤다.
“큰일 날 뻔했어. 줄초상을 치를 뻔했다니까.”
“할머니,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쯧! 쯧! 쯧!”
순간, 요란하게 혀를 차는 할머니.
“주사는 잘 놓으면서 왜 그렇게 바보 같아?”
“네??”
“그분이 우리 영감을 잡으러 온 것 같았어. 그러다가 엉기면, 한두 놈 더 잡아갈 수도 있는 거고···.”
이때, 박미옥 간호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내가 안 막았으면, 분명히 그분이···.”
“할머니! 대체 그분이 누구세요? 잡혀가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고?”
“정말 알고 싶어?”
“네?? 그게 무슨? 어쨌든 말씀해보세요!”
“이건 진짜 비밀인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 천기를 누설하는 일이야.”
“천기 누설??”
“저승차사께서 직접 오셨어.”
“네!!??”
“괜찮아. 괜찮아. 이젠 갔어. 아이고야,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줄초상을 치를 뻔했다고. 어찌나 무섭던지. 어찌나··· 내 평생에 그렇게 무서운 건 처음 봤어. 그 시퍼런 낫을 들고서··· 어찌나 그게 큰지···.”
“할머니! 근데 죄송한데··· 혹시 잘못 보신 거 아니세요? 꿈속에서···?”
“내 말 못 믿어!!??”
“네?”
“쯧! 쯧! 쯧!”
“···??”
“현신하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쯧쯧!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더니···.”
“네???”
“비켜봐!”
순간, 아주 차가운 바람이 맹렬하게 불어왔고.
흠칫 놀라며 몸을 떨던 백발의 할머니는 황급히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주변 여기저기에 쉴 새 없이 뿌렸다.
“할머니, 뭘 뿌리고 계세요?”
“소금! 소금도 몰라?”
“소금???”
“비켜봐!”
그러고는 할머니는 소금을 여기저기 다 뿌린 뒤, 잠시 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숙이며 기도했다.
“차사님, 차사님, 제발 좀 다신 오시지 마십시오. 저희 신께서 너무 무서워 오시지를 않습니다. 지신께서도 성주신께서도 저 멀리 달아나시고··· 제발 좀··· 제발 좀···.”
하! 머리야.
결국, 박미옥 간호사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응급실로 들어갔고.
그런 강추위 속에서도 할머니의 기도는 한참 더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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