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아버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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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희 회장을 조심해야 한다고?
“음, 너도 그 이력을 알 테니까, 그 이력만 보면 대충 상황판단이 되겠지.”
“혹시 신라그룹을 공격했던 사람이라서?”
“그래. 자신의 매형 회사를 노렸던 사람이다. 그래서 한태산 회장이 한유나의 외가를 그렇게 두려워했던 거고. 지금이야 그 힘이 완전히 역전됐지만, 한때는 한유나의 외가 쪽 힘이 아주 막강했다.”
그리고 결국 그런 두려움이 더 큰 파장을 낳게 하지 않았나.
결국, 한태산 회장은 한유나의 어머니가 테이블 데스 상태가 되도록 지시했다.
그토록 그 외가 쪽이 두려웠다는 말인가. 자신의 신라그룹을 빼앗길까 봐?
한편, 나는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아버지한테 언급할까 하다가, 결국 입을 닫았다.
어디서 그 정보를 얻었는지, 적어도 출처를 제시해야 하는데.
아직 한유나마저 모르는 사실을 내가 함부로 언급하는 건, 역시 위험성이 있다.
할 수 없다.
아직은 입 밖에 낼 게 아니었다.
“그럼··· 도움을 받는 걸 취소할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원래, 큰 전쟁을 벌이는 군주는··· 주변의 오랑캐마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오랑캐, 아니 강만희 회장을 이용하라는 말씀인가.
그러면서 아버지는 좀 더 세세한 방법들을 차례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대화가 더 길어졌는데.
아마 내 평생에 이렇듯 오랜 대화를 아버지와 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정오 무렵이 되자, 나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다음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136>
“···강 실장님! 이제 나오시죠. 정민이는 갔습니다.”
넓은 소파.
서재의 그 넓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김윤상 의원.
그는 고개를 돌려 서재 우측 벽면의 책장을 쳐다봤고, 한 번 더 강 실장을 불렀다.
그러자 책장이 좌우로 열리며 그 안에서 백발이나 다름없는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바로 강제철 실장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들고 뭔가 대화하다가.
“···네. 그렇게 합시다. 바로 경호등급을 높여···.”
그러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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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상당히 당혹스러우실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한편, 김윤상 의원의 맞은 편에 앉게 된 강제철 실장.
그는 무척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의향을 물었다.
그러자 김윤상 의원은 팔짱을 끼고서 좀 더 생각하다가 강제철 실장을 빤히 쳐다봤다.
이때, 김윤상 의원의 두 눈엔 아주 날카로운 기운이 번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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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한데, 그 전에··· 강 실장님이 보시기엔, 정민이의 말을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강제철 실장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앞서 김윤상 의원은 자신에게 지시를 했다.
저 안에 들어가서 모든 대화를 들으라고. 그만큼 자신을 신뢰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현재 김윤상 의원은 도련님이 갑자기 변한 것에 대해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삼자의 식견으로 도련님의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도련님이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가져왔다.
그런데 그 정보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지금껏 김윤상 의원님의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의심과 불안함. 그런 감정들이 그대로 현실화될 수 있는 정말 놀라운 정보였다.
그러니까 도련님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변한 게 아니었다.
그저 어둠 속에 남겨져 있던 그 진실.
그런데 도련님은 어느 순간 그 섬뜩한 진실에 바짝 다가서 버렸다.
그 결과, 의원님마저도 놀랄 정도로, 의원님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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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도련님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어떤 점에서요?”
“그 이름을 아는 것 자체가··· 현재로선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김윤상 의원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는 듯 짧게 탄식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강제철 실장도 낮게 탄식했다.
좀 전, 김윤상 의원은 큰 혼돈 상태에 빠져 있었다.
진실을 대하게 되자 극도의 분노에 휩싸인 것도 있으나.
상대가 ‘최덕렬’인 걸 알게 되자,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진 거나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제멋대로 격앙되기도 했고.
또한, 온갖 걱정과 초조함 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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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원님! 정 필요하시다면, 제가 상황 확인부터 다시 해서···.”
그러나 김윤상 의원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위험합니다. 최덕렬 부장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려면, 정말 확실하게 하던가···.”
그 순간, 강제철 실장은 즉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최덕렬 전 안기부장을 터치하는 거라면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최덕렬 전 안기부장은 오랫동안 김윤상 의원의 일들을 맡아줬고.
또한, 긴 세월 동안 서로의 이해관계를 지켜왔다.
피를 나누진 않았으나, 피를 나눈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권력을 위해 서로가 밀접한 관계가 된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혈맹(血盟)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한때 그런 사고를 계획했다니.
그리고 그 결과, 끔찍한 일들이 발생했다.
바로 저 최덕렬 전 안기부장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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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좀 더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의원님···.”
그렇게 말하며, 강제철 실장은 거듭 탄식했다.
그러나 김윤상 의원은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그때 그럴 수 없다는 건.
김윤상 의원이 더 잘 알고 있다.
만약 자신이 안기부 보고서를 믿지 않고, 강제철 실장을 통해 따로 사건을 파헤쳤다면, 최덕렬 부장은 어느 순간 자신을 처리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최덕렬 전 안기부장의 능력이고 잔혹함이다.
어쩌면 그걸 알기에, 자신은 ‘어떤 세력이 개입되지 않은 단순 교통사고’라는 안기부 보고서를 그땐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도 달콤했으니까.
청와대 수석비서관 자리가 갑자기 날아왔다.
물론, 그 일에 최덕렬 부장은 은밀히 관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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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실장님!”
“네.”
“일을 좀 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김윤상 의원의 눈빛은 점점 더 섬뜩해졌다.
“저번에 그 친구들··· 실력이 좀 괜찮아 보이던데. 다시 일들을 좀 맡깁시다.”
순간, 강제철 실장은 무척 긴장된 눈으로 김윤상 의원을 쳐다봤다.
사실, 좀 전까지 무척 혼란스러웠던 김윤상 의원.
그러나 그 혼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게 바로 김윤상 의원의 본 모습이다.
자신을 공격하는 정치인들에게 과감한 철퇴를 가했고.
그 피 묻은 땅 위에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그런 세력을 계속해서 넓혀갔다.
그런 정복 군주는 절대 야성을 버릴 수가 없다.
고상중 의원을 타깃으로 정한 그 순간부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김윤상 의원.
그런 그의 근성이라면, 절대 최덕렬 전 안기부장을 그냥 둘 수가 없다.
다만, 지금부터 큰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강제철 실장은 더 긴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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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렬, 조상천, 윤평근, 그리고 윤평근 국장의 국내팀 간부들까지··· 모두 다 잡아서 상황을 확인해 봅시다. 무슨 사정인지 낱낱이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불안이 현실화되자, 강제철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김윤상 의원의 가장 강력한 정보라인 중의 하나가 바로 국정원 윤평근 국장 라인이다.
그런데 그 라인을 지우겠다는 지시나 다름없다.
“의원님! 상황이 무척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정리하시겠습니까? 그쪽 라인을 그렇게 만들면, 정보 라인 하나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윤상 의원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강 실장님! 하지만 이번 일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특히, 제가 알게 됐고. 강 실장님도 알게 됐고. 그리고 정민이도 알게 됐고···.”
그리고 바로 이때, 강제철 실장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바로 세 번째 상황이었다.
‘그래, 도련님이 아시게 된 게 가장 중요하지. 그래서 더 감정적으로 격앙되신 거고···.’
강제철 실장은 김윤상 의원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고 보면, 도련님에 대한 그의 걱정과 관심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한때 포기했던 도련님의 미래.
그러나 한유나와의 관계가 생기면서 그는 다시 한번 큰 기대를 품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한 강제철 실장은 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최덕렬 부장이 무척 위험한 사람이긴 하지.
이참에 이 라인을 정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과거와 다르게 이젠 많이 늙게 된 최덕렬 전 안기부장.
그를 털어내고.
그 위에 의원님이 확실하게 올라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이 라인은 그 자체가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서 의원님의 비밀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어느 정도 정리를 진행할 필요성도 있다.
다만, 이번 일들을 진행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국정원 일부 현직 요원들을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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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럼 라인 정리를 위해···.”
그리고 이때, 김윤상 의원은 한가지 말을 덧붙였다.
“제가 김 차장한테 귀띔해 둘 테니까, 그쪽 라인과 은밀히 힘을 합친다면 좀 더 쉽게 정리가 될 겁니다.”
한편, 그 순간 강제철 실장은 흠칫 놀랐다.
언제 국정원 김 차장과 그런 관계가 됐단 말인가.
확실히 의원님의 위치는 놀라울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의원님! 그럼 최선을 다해 정리부터 하고. 그때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김윤상 의원은 잠시 후 무척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더 지시했는데.
이때, 강제철 실장은 몇 번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의원님께선 언제고 최덕렬 부장과 반목할 생각이었단 말인가.
언제고 말이다.
하긴, 초원의 제왕은 한 명이어야 한다.
의원님은 그 위치까지 오르길 원하시는 거였다.
그렇듯 김윤상 의원의 또 다른 의지를 확인한 강제철 실장은 그 지시에 순응하며 즉시 일어섰고, 무척 바쁜 듯 곧장 서재를 나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뒤.
김윤상 의원은 쉴 새 없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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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아앙!
빠아앙!
순간, 갑자기 들려오는 요란한 경적 소리들.
나는 흠칫 놀라며 백미러를 쳐다봤다.
[···새롭게 바뀐 인과율 법칙에 따라··· 연계 미션(3), 피 흘리는 약혼식(클래스 S)의 전개 속도는 더욱더 가속화됩니다···]
사실, 좀 전에 들려온 이 시스템 알람 때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는데.
그 바람에 잠시 정신을 빼앗겼고.
교차로 앞, 녹색 신호등이 들어왔지만 내가 즉시 출발하지 않자, 바로 뒤쪽 차량은 아주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즉시 미안하다는 신호로써 비상등 깜빡이를 켜며 출발했는데.
슬쩍 뒤쪽을 쳐다보니, 상대 차량은 대단한 브랜드의 스포츠카였다.
그런데 그 스포츠카의 주인은 뭐가 그렇게 기분 나쁜지 몰라도, 내가 출발했음에도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며 잠시 후 내 차 후미에 바짝 따라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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