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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135화 (135/145)

폭풍 속으로 02

<137>

“···미안. 시간 맞춰서 가려고 했는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시간에 딱 맞춰 한유나의 저택을 방문한 뒤, 거기서 같이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바로 [MH투자펀드] 강만희 회장과의 약속 시각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중간에 저렇듯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한유나의 저택에 들렀다가 거기서 출발하게 되면, 그땐 시간이 많이 늦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유나를 여기로 부른 건데.

한유나는 흔쾌히 응했고.

이렇듯 그녀는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괜찮아. 근데 다친 덴 없지?”

“실은, 아까 좀 다칠 뻔했는데···.”

그러면서 나는 슬쩍 그 차주를 흘겨본 뒤 씩 웃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어.”

“어떻게 된 거야?”

자세한 사정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한 한유나.

그래서 나는 손짓했다.

이동하면서 설명하겠다는 그런 제스처였다.

“가자. 가면서 이야기해줄게.”

그러자 한유나는 갑자기 자신의 차를 가리켰고.

이때, 나는 잠시 멍해진 표정으로 그 차를 쳐다봤다.

사실, [MH투자펀드] 강만희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보니.

엄청난 돈 욕심을 가진 강만희 회장의 앞에서.

초반 인상을 강하게 할 목적으로, 한유나는 대단한 고가의 차량을 빌려서 타고 온 상태다.

마치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화려한 페라리 스포츠카!

그 정열적인 붉은 색채는 무척 압도적인데.

이 정도 급의 스포츠카라면, 20억 원 이상은 될 것 같았다.

#

“그럼 내가 운전해도 될까?”

그러자 한유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운전석으로 가서 탑승했고.

한유나는 조수석 자리에 앉았다.

한편, 경찰차 뒷좌석에 앉아 있던 스포츠카 차주.

그는 투명한 창문을 통해 놀란 듯 쳐다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나는 페라리 스포츠카의 조작 방법을 숙지한 뒤.

즉시 출발했다.

#

부우우웅!

순간 터져 나오는 아주 요란한 엔진 소리.

그렇듯 그 요란한 소리는 공기를 뒤흔들며 터져 나오고 있었고.

곧이어 총 4대의 SUV 경호 차량 외에도 (경호원이 운전하는) 내 소나타까지 일제히 움직이자, 잠시 경찰관들은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스포츠카 액셀을 가볍게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로부터 대략 15분 뒤 약속 시각에 정확하게 맞춰.

[MH투자펀드] 강만희 회장의 저택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

“···이쪽입니다.”

어느 아리따운 여자 비서.

그녀는 저택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를 잠시 후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저택 내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머리가 희끗희끗하지만 중후한 용모가 가진 어느 중년인이 정장 차림을 하고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체격도 늘씬하지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그의 옆에는 여러 종류의 위스키 병이 보였고, 그중에는 조니워커 블루라벨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우리가 나타나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흡사, 한유나와 닮은 듯한 용모인데.

이목구비 형태가 한유나와 많이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인사는 시작되었다.

#

“···저는 김정민입니다.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삼촌, 저번에 말씀드렸던···.”

그러자 강만희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갑자기 비틀거렸고.

반사적으로 테이블 한쪽을 손으로 잡았다.

이때, 비서가 즉시 다가가 강만희 회장을 부축했다.

“괜찮아. 괜찮다고. 하하! 낮술이 좀 독하거든.”

그러면서 강만희 회장은 비서의 손을 떨쳐낸 뒤,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

“···그럼, 자네가 우리 유나 약혼자가 되는 사람인가?”

한편, 바로 코앞에서 보게 된 강만희 회장의 모습.

확실히 잘 생긴 중년인의 모습이고, 기품도 있고, 세련된 모습도 있다.

키도 큰 데다가 그는 늘씬하다.

그러나 뚜렷한 눈동자 사이로 보이는 충혈된 기운과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모습은 그의 격을 조금 떨어뜨리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한편, 내가 힘있게 대답하자, 날 유심히 쳐다보는 강만희 회장.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친과 많이 닮았는데··· 근데 눈빛이 좀 다르군.”

아버지와 나의 차이점을 바로 알아챈 강만희 회장.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나 보다.

“어쨌든 반갑네. 오늘 귀한 사람들이 왔는데, 자! 앉지. 유나야. 너도 반갑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그러면서 그는 가볍게 팔을 벌렸고, 한유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가볍게 그와 포옹했다.

그러나 긴 세월의 간극 때문일까. 절대 자연스러운 포옹은 아니었고, 약간 어색해 보이는 그런 포옹이었다.

“정말 이뻐졌구나.”

강만희 회장은 다시금 감탄한 뒤, 미소를 지었고.

잠시 후, 우리는 응접실 테이블 쪽에 서로 마주 보면서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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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할까? 그게 아니면···?”

잠깐 이어지던 담소.

그게 끝나자, 강만희 회장은 그렇게 의향을 물었는데.

이때 나는 한유나를 쳐다본 뒤, 재빨리 입을 열었다.

“먼저 말씀드릴 게 좀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먼저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습니다.”

“음, 심각한 건가?”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럼 무슨 말을 더 하려고? 내가 유나를 돕기로 했는데, 더 중요한 게 또 있나?”

그러고는 좀 더 말을 이어나갔다.

“알다시피, 나는 혼자야. 이혼을 두 번이나 했고, 지금은 이렇게 사는 게 무척 편해. 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고 있는 자식들이 여럿 있어 그게 좀 불편한데···. 여하튼, 유나는 내 친조카니까,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 걱정할 거 하나도 없네.”

강만희 회장은 매사에 무료해진 듯 그렇게 말했는데, 돈 많은 부자가 특별한 의욕이 없어진 듯한 그런 인상을 주고 있었다.

아마 내가 앞서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면, 바로 저 모습! 저런 모습에 그대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내 의견을 제시했다.

“죄송하지만, 중요한 일이라··· 지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강만희 회장은 의아해하며 날 쳐다봤다.

그리고 한유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나는 한유나에게 눈짓했다.

나에게 시간을 좀 달라는 눈짓.

그러고 보면, 여기 오기까지 시간이 별로 없어 자세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못한 상태다.

특히, 강만희 회장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나 역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간단한 음료가 준비된 뒤, 그때부터 우리는 꽤 중요한 이야기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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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런 말씀, 드리긴 죄송한데··· 더 늦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단도직입적? 대체 어떤 거?”

“혹시 회장님께서 가능하시다면, 충분한 자금을 좀 빌리고 싶습니다.”

“자금···? 자금을 빌린다? 한데 그 자금 건에 대해선 유나한테 이미 말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저희는 좀 더 정확하게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강만희 회장은 다시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어떤 식으로?”

“회장님! 가능하시다면, 최대 5,000억 원을 저희가 빌리고 싶습니다.”

그 순간, 흠칫 놀라며 날 쳐다보는 강만희 회장.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던 한유나도 꽤 놀란 표정이다.

“물론, 담보 설정을 하겠습니다. 이자도 충분히 드리겠고···.”

그러자 강만희 회장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인상을 팍 썼다.

그리고 목소리가 조금 더 거칠어졌다.

“어이, 조카사위! 내가 분명히 도와준다고 했을 텐데? 구태여 우리 사이에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있나? 난 이자도 필요 없고, 담보도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도와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때 쐐기를 박듯 다시 말했다.

“그럼, 회장님! 서약서를 한 장 써 주십시오.”

“서약서?”

“유나가 신라그룹 각 계열사 인수에 성공할 경우, 도움을 준 자금 부분 외에는 일체의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그런 서약서입니다.”

그러자 강만희 회장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제안.

그런 제안을 내가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화를 쏟아낼 듯한 그런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계속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저희는··· 회장님의 선의를 절대 잊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그 서약서가 될 거고··· 회장님의 아름다운 선의도 절대 오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바로 질문이 날아들었다.

“근데 자네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뭘 오해한단 말인가?”

이때, 나는 내가 유도한 ‘오해’라는 단어에 그가 즉각 반응하자, 속으로 웃으며 바로 대답했다.

“유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께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께선 자신을 위해 그 어떤 이익을 취하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건 아버지께서 유나한테 남긴 서약서입니다. 자신을 위한 이익은··· 절대 취하지 않겠다는 그런 서약서까지 직접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서류가방에서 서약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 서약서는 오늘 오전 내내 아버지와 대화하는 와중에 아버지가 즉석에서 써 준 서약서다. 물론, 한유나와 아버지가 맺은 계약서라는 게 따로 있지만, 그 계약서에 적혀 있는 혜택 당사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였고, 그래서 이번 서약서는 앞선 계약서에 전혀 위배되는 게 아니었다.

한편, 한유나.

그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서약서를 내가 꺼내자 흠칫했으나.

영리한 그녀는 모른 척하며 강만희 회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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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좀 도와주세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한유나는 감각적으로 날 도와줬는데.

이때, 강만희 회장은 듣는 둥 마는 둥 차가운 표정을 짓다가.

그 서약서를 다시 나한테 넘겨줬다.

“그래서 5천억 원을 빌려달라?”

“네.”

“그리고 그냥 이자를 주겠다고?”

“네.”

“담보도 따로 설정하고?”

“네.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음, 그럼 합당한 담보가 있나?”

순간, 입꼬리가 틀어지며 날 쳐다보는 강만희 회장.

그러면서 그는 가볍게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위스키 잔을 만졌는데.

그렇듯 손의 움직임이 많아진 걸 보면, 그는 지금 적잖이 당황한 모습 같았다.

그리고 이때 한유나가 다시 나섰다. 즉, 내가 생각지도 않은 적절한 코멘트를 그녀는 때마침 하고 있었다.

“근데 담보는 너무 엄격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강만희 회장은 흠칫하더니 갑자기 표정이 확 바뀌고 있었다.

좀 전까지 무척 굳었던 그 표정.

그녀의 말에 그 표정이 확 풀리고 있었다.

즉, 우리 쪽에서 걸 수 있는 담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듯, 강만희 회장은 그 표정이 어느새 느긋해지고 있었다.

하긴, 5천억 원을 빌리는 데 있어 그만한 담보를 설정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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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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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유나야, 내 직업이 돈 장사하는 사람인데, 알잖아. 너도?”

“네. 하지만 삼촌!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음. 그야 나도 많이 돕고 싶지. 당연히 돕고 싶긴 한데, 그렇게 꼭 담보를 설정해야 하고 또 이자를 주겠다고 하면, 그건 나한테도 좀 어려운 문제가 되거든···.”

똑같은 자금이지만,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면 담보, 이자 없이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투자가 우리에게 훨씬 더 나아 보이지만, 한편으론 리스크가 상당히 크다.

이 자금으로 획득된 지분은 어쩔 수 없이 강만희 회장이 강력한 지배력을 갖게 될 거고.

이런 지배력을 갖춘 그는 유나와 함께 자연스럽게 그룹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그 때문에 그가 어떤 특정 목적을 갖고서 이 투자에 나선 거라면, 어느 순간 한윤기, 한윤수, 한윤형에 버금가는 적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한편, 나는 그런 그의 흑심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도록 대화를 유도했고.

영리한 한유나는 바로 그 점을 즉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후 다음 계획을 또한 실행했다.

이 계획은 아버지가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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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담보가 무척 힘들긴 한데··· 회장님께서 곤혹스러워하시면 저희도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그래서 우선, 저희는 5천억 원에 대한 담보를 이런 식으로 준비할까 생각 중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서류가방에서 다시 서류 한 장을 꺼내 강만희 회장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의아해하며 그 서류를 받던 강만희 회장은 잠시 후 표정이 다시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약간 충혈된 눈을 하고서 강만희 회장은 입을 열었다.

“5천억 원 담보는··· 이렇게 준비하면 충분할 수 있겠지. 하지만 신라그룹을 치는 일인데, 고작 5천억 원으로 어찌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이번엔 한유나를 쳐다봤다.

이때, 한유나는 날 쳐다봤고, 나는 그 시선을 받은 직후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이런 일들은 자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큰 도움이 되는 게 맞습니다. 그럼 혹시··· 좀 더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음, 최대 1조 원까지, 만약 그게 가능하시다면, 저희는 그 자금을 받겠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듯, 날 쳐다보고 있는 강만희 회장.

한유나 역시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5천억 원도 아니고, 1조 원을 빌리는 일이고, 5천억 원 담보도 놀랍지만, 1조 원 담보는 더 경악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유나는 반신반의하면서 날 쳐다봤는데.

나는 즉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원하시는 담보 조건이 있습니까?”

그리고 바로 그때, 강만희 회장의 눈빛은 무언가 달라졌고.

뭔가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다가 결국 그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 그 추가 5천억 원에 대한 담보는··· 신라생명으로 했으면 하는데.”

그러니까 나머지 5천억 원은 자신의 투자 개념으로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즉, 한유나가 신라전자를 장악하게 되면, 신라전자가 가지고 있는 신라생명 지분을 통해 자신이 신라생명을 인수할 교두보를 쌓겠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과거 신라생명 등 몇 개 계열사를 노렸다가 실패했던 강만희 회장. 그는 그 과정을 다시 밟으려고 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그때의 실패 때문에 무척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한편, 강만희 회장이 직접적으로 신라생명에 대해 언급하자, 한유나의 표정은 조금 딱딱해졌지만.

그러나 그녀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아마 그녀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해낸 일타 3피의 묘안.

즉, 강만희 회장의 자금을 활용하게 된다면, 신라그룹 인수 과정에서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한,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투자하게 되는 강만희 회장은 당분간 우리를 배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만희 회장이 지난 실패를 지우기 위해 신라생명을 다시 노리는 순간, 어쩔 수 없이 2남 한윤수와 접전을 벌여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나름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신라생명이 흔들리는 순간, 신라그룹의 해체 과정은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다.

#

그리고 한참 뒤.

우리는 점심을 먹은 뒤, 강만희 회장의 저택에서 나왔다.

한편, 계속 밝은 미소를 보이던 한유나는 잠시 후 저택에서 나오자마자 그 표정이 굳어졌는데.

그녀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아진 모습이었다.

“괜찮아. 내가 좀 이따가 설명해줄게.”

잠시 후, 우리는 페라리 스포츠카를 타고서 달린 끝에 한적한 카페 앞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다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아버지의 계획과 강제철 실장의 계획을 내 식대로 융합해서 차례로 언급했는데.

그 계획을 듣게 된 한유나는 생각보다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대단했던 신라그룹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이후, 흩어진 계열사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는 작업을 진행한다는 건.

그녀로서는 무척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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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겠지만, 한윤기, 한윤수, 한윤형의 지분들이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고, 서로 뒤엉켜 있어. 근데 이게 하나로 합쳐지게 되면, 전체 상황이 위험해져. 특히, 세 사람이 손을 잡게 되면 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래서 강만희 회장님의 5천억 원 담보는 아버지가 준비한 국내외 은행 대출 권한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나머지 5천억 원은 전략적으로 신라생명을 치는 데 써야 돼. 결국, 반쪽(5천억 원) 힘만 갖고서 강만희 회장이 나서서 우리 싸움을 대신해 주면, 그동안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고··· 강만희 회장을 제어하지 못한 우리를 그들은 얕잡아 볼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러고 나서 아빠를···.”

아, 그러고 보니 그게 문제였나.

한태산 회장을 이용한다는 것.

그 시작은 바로 한유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한윤기, 한윤수, 한윤형이 우르르 달려들어 한태산 회장을 마구마구 뜯어먹을 것이다.

즉, 그들이 한태산 회장의 손에서 지분을 강제로 빼앗아가면, 그때부턴 파국이 시작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신라그룹은 조각이 나서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결국, 한태산 회장은 사후가 아니라 죽기 전에 그 험한 꼴들을 보게 될 것인데.

물론, 치매가 심해져 그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한유나는 불쌍한(?) 한태산 회장을 그렇게 이용한다는 점에서 표정이 썩 좋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특전 [어느 망자의 인생 파편]을 통해 알게 된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한유나도 이제 알아야 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원수.

그 원수가 바로 아버지 한태산 회장이라는 걸!

또한, 어머니가 물려받았고 자신에게 전해져야 할 선대의 유산 대다수가 아버지 한태산 회장의 손에 강제적으로 넘어갔으며, 은밀하게 신라그룹 속에 녹아든 것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잠시 후,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정보의 출처로써 아버지의 이름을 댈 생각인데.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쉽게 믿기 힘든,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편,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날의 비극을 저지른 신라병원 외과의사 정상영과 강성훈.

그들은 여전히 신라병원에 재직하고 있는 중이었다.

<138>

2001년 12월 30일 저녁 무렵.

한 번씩 세차게 불어오는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

그리고 그 추위 때문인지 작은 눈송이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

그저 작은 낙엽처럼 흩날리는 듯한 눈송이였고.

아마 밤이 깊어지면 맹추위가 세상을 휩쓸 것 같은 그런 전조와도 같아 보였다.

한편, 우리는 그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잠시 바라봤다.

“춥지 않아?”

“···괜찮아.”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서울 도심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이곳 언덕.

한편, 저 황혼빛 노을은 점점 더 짙어지며 점점 더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조만간 해가 완전히 저물 것 같은데.

한유나는 슬쩍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더니, 내가 팔을 들자 슬그머니 내 품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까 많이 울었고, 그녀는 이제 좀 진정한 상태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침울한 상태.

그때 호텔에서 봤던 그 우울한 미녀. 그 모습으로 그녀는 돌아와 있었고.

그 때문에 나는 기분이 다소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근데 윤 실장님, 드디어 퇴원한다면서?”

그러자 한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사고는 대체 어떻게 당한 거야?”

아직도 이해되지 않은 그 사고. 그 사고에 대해 나는 슬쩍 물었고.

한유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간단히 대답했다.

“왜 자신이 병원에서 나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대.”

단기 기억 상실.

윤 실장은 아직도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기억은 무척 중요한 기억인 것 같은데, 그걸 기억하지 못하다니 무척 안타깝기만 하다.

혹시라도 그 기억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가 문득 [거짓 없는 입] 특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영구적으로 그 기억을 상실한 게 아니라면, [거짓 없는 입] 특전을 통해 그 기억을 내가 찾아낼 수도 있다.

즉, 어딘가에 기억이 남아 있다면, [거짓 없는 입] 특전은 아주 유용한 방편이 될 것이다.

근데 그래도 될까.

막상 특전을 쓰고 나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

이럴 땐, 특전이 무척 아쉽게 사라지게 된다.

즉, 특전이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것이다.

근데 어쨌든 곧 퇴원 예정이라고 하니까.

내일 병원에 복귀하게 되면 윤 실장을 한번 만나봐야겠다.

한편, 나는 그 생각을 마친 뒤, 슬쩍 다른 질문도 던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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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까 내가 했던 말들··· 다 믿을 수 있어?”

별다른 증거 없이 오로지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반박할 수도 있다.

사실이 아닐 수 있다며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자 한유나는 고개를 들어 그윽해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때,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고.

우수에 가득한 저 깊은 눈동자 속으로 마치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 한순간 일어났다.

그리고 이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무척 촉촉해진 목소리였다.

“그냥 꿈을 꾸신 거라고 그땐 생각했는데···.”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즉시 알아차렸다.

그때 나는 한태산 회장의 병문안을 처음 갔지만.

한유나는 한태산 회장의 병문안을 여러 번 갔을 것이다.

횡설수설하는 한태산 회장의 말들을 그녀는 여러 번 들었을 것이고.

결국, 내가 해 준 이야기들과 한태산 회장이 직접 한 말들이 거의 일치했나 보다.

그래서 최초,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의 표정은 그렇게 변했던 모양이다.

한편, 잠시 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한유나는 자세를 바로 했고.

내 옆에 가만히 섰다.

그리고 그녀는 다행히 충격에서 많이 벗어난 표정이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날 쳐다보더니, 약간 수줍은 듯 조금 두 팔을 벌렸다.

이때, 나는 의아해하며 쳐다보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그녀한테 안겼는데.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아주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입술 깊숙이, 아주 수줍은 듯 와 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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