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징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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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라건설은 그룹 전체 지배력에 있어서, 신라전자, 신라생명, 신라물산, 신라증권에 비하면 그 중요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 때문에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으나.
윤 실장은 좀 더 날카로운 시각으로 그 상황을 분석하며, 그 위험성에 대해 나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현재, 신라건설은 신라섬유 지분 28.6%와 신라랜드 지분 23.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라건설을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라섬유와 신라랜드까지 얻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근데, 여기서 주목해야 될 점은 신라랜드는 비상장 회사이고, 현재 그룹의 막강한 현금 소스가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 세 개 회사를 합쳐 가져가게 된다면, 신라그룹 전체 유동 현금의 삼 분의 일 가량을 빼앗기게 됩니다.”
아! 현금이라···.
그러고 보니 이것도 강력한 조합이 될 수 있다. 비주류 회사들을 합쳤지만, 이게 뜻밖의 공략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제 생각엔, 이런 중요한 부분을 회장님께서 모르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회장님 성미라면 이런 상황을 절대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상태가 아직 유지가 된다는 건, 결국 신라건설-신라섬유-신라랜드를 따로 떼 내어 그룹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회장님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 그럼 한태산 회장님이 그 계열사들을 떼 내고, 누군가에게 그걸 전해줄 생각이었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러니까 한태산 회장의 의도가 들어갔다는 말이다.
“그럼 손미희 여사와 손명국 의원은?”
“제 생각엔··· 그들은 대리인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태산 회장님은 [태평그룹]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을 대거 가지고 계십니다. 즉, 회장님께선 [태평그룹]의 목줄을 쥐고 계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 또 그게 그렇게 엮이게 되나.
정말 그룹의 일들은 무척 복잡하다.
그리고 이때, 나는 무언가 번쩍! 하며 생각이 떠올랐고, 곧이어 놀라운 예측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손미희 여사가??”
그러자 윤 실장은 아주 조심스럽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나는 다시 외쳤다.
“그럼, 유나를 죽이려고 했던 그 괴한들도···.”
윤 실장은 이번에도 머리를 끄덕였다.
“선생님! 제가 기억을 찾은 이상,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저 증거 없는 예측이긴 하지만.
충분히 그렇게 의심할 여지가 있다.
그러고 보면, 한태산 회장이 왜 갑자기 내 약혼을 허락했을까. 물론, 이런저런 조건이 붙긴 했으나, 궁극적으로 보면 한유나를 위하는 길이었다. 즉, 한유나를 살리는 길이었다.
그래!
한태산 회장은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확실히 심적 변화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후, 한유나를 위해 그룹 일부분을 떼어주려고 뭔가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한유나의 배경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던 대리인들이 변심했다면?
한태산 회장의 건강 악화 때문에···.
그리고 실제 공교로운 일들이 계속 터졌다.
한태산 회장의 심장마비가 있기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한유나를 노리지 않았나.
그리고 만약 그때 한유나가 죽게 됐다면···.
한태산 회장마저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게 됐다면···.
그리고 바로 이때, 나는 머릿속 셈을 마친 뒤, 또 다른 사실을 유추하게 되었다.
즉, 그들에게 한유나가 죽는 건 당장 이익이 되지만.
한태산 회장이 바로 죽게 되면, 손미희와 손명국 같은 대리인들에겐 당장 큰 이익이 되지 못한다. 바로 후계구도가 잡히게 되면서 자신들이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낼 가능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듯 복잡한 상황까지 예측하게 된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복잡하고.
또한, 정말 더럽구나!
결과적으로 그런 대리인들의 욕망과 여러 변수들.
그것들이 훗날 미래의 모습을 낳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아는 미래의 모습!
2남 한윤수는 3남 한윤형과 연합 라인을 형성한 뒤, 장남 한윤기 회장에 대적했고.
결국, 모체 신라그룹으로부터 여러 알짜배기 회사들을 끊어내어 새로운 그룹을 창출하게 된다.
이때, 그 대리인들은 마지막 순간, 2남 한윤수와 손을 잡고서 그 거대한 욕망을 실현한 게 분명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그 대리인들이 욕심을 내고 있는 그 지분은···.
아마도 한유나에게 주어지는 지분일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141>
“시발, 어떻게 할까? 저 집인 것 같은데?”
“존나 잘 사네. 시팔! 의사라서 다르다 이건가? 시팔!”
“개새끼야, 이번엔 똑바로 해! 저번처럼 하면, 시팔! 내가 모가지가 따 버린다!”
“아으, 진짜 존나 궁시렁거리네. 알았다! 개새끼야!!”
“시팔! 모자나 똑바로 써!”
그리고 잠시 뒤.
아파트 1층 현관 앞에 서서 호출을 한 뒤.
자신들을 가스검침원으로 소개한 이들은 무사히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시팔, 웃기지? 이렇게 쉬워.”
“우리가 한 연극하잖아.”
“이제부턴 집중해! 시팔놈아. 할매라고 무시하지 말고.”
“개새끼! 너나 걱정해.”
“멍청한 할매는 내가 제압할 테니까, 쓸만한 거 있는지 바로 확인하고. 시팔! 일 끝나고 고기나 좀 먹자.”
“알았다. 시팔!”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들은 집 앞 벨을 눌렀고.
바로 인기척이 들리더니 그 문이 열렸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다.
이때, 주태는 무척 기분 좋게 웃으며 사정 이야기를 했고, 곧이어 집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번개같이 움직이는 주태.
주호 역시 재빨리 안쪽으로 뛰어들어가며 각 방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놀란 비명 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할머니를 단숨에 기절시킨 뒤 꽁꽁 묶고 있던 주태. 그는 차가워진 눈으로 그쪽을 쳐다봤다.
이때, 형 주호가 나타났다.
뒤에서 여자애의 목을 꽉 잡은 채 걸어 나오는 주호.
그 순간, 주태의 입가엔 섬뜩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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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장님! 근데··· 오늘은 이 정도 하시고, 다음에 회의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어떨까요? 저기 강 과장 와이프가 조만간 출산한다고 하는데···.”
그 순간,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서 고개를 드는 서철성 교수.
그러자 직원들은 모두 서철성 교수를 가만히 쳐다봤다.
이때, 서철성 교수는 피식 웃더니 서류를 천천히 덮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2001년 마지막 날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수술할 때도 그렇지만, 한번 일에 집중하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서철성 교수.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서철성 교수는 일 처리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번 회의가 시작되면 최소 3시간은 기본인 게 서철성 교수다.
그런데 오늘은 12월 31일!
모두가 연말을 좀 즐기고 싶은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닌가.
더군다나 일반 직원들의 퇴근 시각도 다 되었다.
어느덧 저녁 6시가 다 된 시각.
그 때문에 서철성 교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테이블을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재, 서철성 교수는 진료부원장 취임을 앞두고서 무척 바쁜 상태다.
그 때문에 오늘 수술 스케쥴을 잡지 못했고.
실제, 수술에 들어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오늘 하루를 아주 바쁘게 보냈다.
“그럼, 좋습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죠.”
“감사합니다! 부원장님!”
“참! 강 과장님, 그럼 언제 출산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강 과장. 그는 바로 대답했다.
“와이프 예정일이··· 아! 어쩌다가 바로 내일입니다.”
내일이라면 1월 1일 새해??
“하하! 이거 참! 새해에 태어나는 아이라! 정말 잘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 서철성 교수.
그의 두 눈은 한없이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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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임오년(壬午年) 새해!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이제 2002년 새해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 때문에 회의를 끝낸 직원들은 새해 인사를 한 뒤 회의실에서 나갔고.
서철성 교수는 연신 웃으며 새해 인사에 마주 답했다.
그리고 그는 그 회의실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의 교수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거기서 이것저것 정리해야 할 것들도 좀 있고.
모니터를 통해 흉부외과 환자들 상태도 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느껴지는 아주 요란한 진동.
휴대폰 진동?
사실, 수술 중이었다면 절대 받을 수 없는 전화다.
그러나 그는 즉시 의아해하며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하던 중,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뜻밖에도 집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사실, 자신이 워낙 바쁘다 보니, 어머니와 딸 수연은 좀처럼 자신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뻔히 못 받을 거라고 그냥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쉴 새 없이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호기심이 생기던 서철성 교수는 늦지 않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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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서철성 교수는 흠칫 놀랐다.
갑자기 들려오는 딸 수연의 목소리.
그런데 수연이가 지금 울면서 말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할머니···.”
그러나 그 목소리는 금방 사라졌다.
바로 전화가 끊겨 버린 것이다.
놀란 서철성 교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는 재빨리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무언가 일이 발생한 것 같은데.
그러나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대체 왜 이러지.
서철성 교수의 미간은 점점 심하게 접혔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쉴 새 없이 발신음들이 이어졌으나 그럼에도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갈수록 입술이 말라가는 서철성 교수.
이때, 두 번 더 통화를 시도하다가 그게 실패하자, 서철성 교수는 생각을 달리했다.
그는 즉시 외투를 집어 들었고,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될 터.
그렇게 그는 후다닥 뛰어나갔고.
잠시 후, 차를 몰고서 그는 아주 빠르게 성국대 병원을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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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민아. 저녁 먹으러 가자.”
어느덧 저녁 7시가 다 된 시각.
2001년의 마지막 날을 응급실 근무를 하며 보내던 나는 부랴부랴 차팅을 끝내던 중, 고개를 들었다.
이동욱이었다.
그리고 옆에 방지현도 같이 서 있었다.
“다 끝났어?”
내가 묻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이 응급실 인턴 마지막 날이다.
거기다가 우리는 말턴이다.
각자 전공도 결정된 상태이고.
이럴 때 여유 시간을 주면 좋겠지만.
연말연시 응급실은 나름 비상상황이 되고.
그래서 그런 여유를 우리를 감히 요구할 수가 없다.
“야, 빨리 먹고 오자. 환자들이 좀 이따가 몰릴 수도 있대.”
방지현의 그 말에 나는 바로 일어섰다.
실제, 오늘 같은 날, 차량 이동이 부쩍 많아진다.
인근 고속도로 TA(교통사고) 환자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곳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 수도 있다.
“알았어. 근데, 잠깐만!”
이때, 나는 혹시 몰라, 호출기 외에도 휴대폰도 같이 챙겼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치 뭔가 빨려 들어오듯 휴대폰이 내 손으로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그 휴대폰이 아주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나는 흠칫 놀랐고, 바로 휴대폰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즉시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던 나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현재, 내 휴대폰 화면에는 서철성 교수님의 개인 전화번호가 찍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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