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처음부터 너무 당황스러움
태운과 강천은 곧바로 따로 작은 상담실로 불려갔다.
‘음… 어색하네.’
‘올 A라고…? 뭐야 이 사람.’
두 사람을 상담실에 내버려 두고 사라진 교관.
“…….”
덕분에 상담실 안에는 어색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거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태운은 그저 상담실 안에 나 있는 작은 창문으로 둥둥 흘러가는 구름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반면 강천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자신이 밀렸다는 경쟁심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
둘 다 말을 붙일 상황이 아니었기에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드르륵 ―
마침내 두 사람을 두고 어디론가 향했던 교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음.”
털썩 ―
두 사람 앞에 앉은 교관이 먼저 적막을 깨뜨렸다.
딸깍.
교관은 말없이 밖에서 들고 온 작은 목함을 열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화아아아 ―
작은 돌멩이같이 생긴 2개의 마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마석이다.”
꿈틀.
마석이라는 단어에 태운의 미간이 움직였다. 줄곧 무덤덤한 표정이던 강천도 눈빛을 살짝 빛냈다.
“마석이 얼마나 귀한 건지는 둘 다 알고 있겠지?”
““네.””
교관의 물음에 두 사람은 마석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얘네 봐라?’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교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렇게 귀한 마석을 왜 현역 헌터들이 아닌 사관생들에게 줄까? 아니, 애초에 왜 팔까? 마석을 얻었다면 자신이 흡수하는 게 제일 좋을 텐데 말이야.”
“…….”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헌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두 사람이 헌터 세계의 자세한 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으니까.
교관은 꼬았던 다리를 내리고 반대쪽으로 꼬며 말했다.
“마력 수치가 1만이 넘으면 마석 흡수로도 마력 수치를 올릴 수 없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헌터계에서는 상식이지.”
딸깍.
쫩쫩 ―
교관은 책상 위에 놓인 껌통에서 껌을 꺼내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쯥… 그러니까 이 마석들은 전부 A급 이상의 고위 헌터들이 내놓은 물건이다 이 말이지. 아이러니하지 않냐? 마석을 가진 몬스터를 잡으려면 최소 A급 헌터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정작 본인들은 마석을 쓸 수가 없으니까.”
킬킬킬.
교관이 껌을 짝짝 씹으며 웃었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쩌겠어? 파는 거지. 근데 또 절대적으로 수량이 부족하다 보니 값은 엄청나게 비싸요. 결국 구매자는 그나마 제일 돈 많은 정부지. 4대 길드가 돈은 더 많지 않냐고? 뭐 일단 4대 길드가 정부보다 힘이 세긴 하지. 그래도 다들 민심과 여론을 의식해서 선은 잘 지키니까 세금은 꼬박꼬박 잘 내서 돈은 정부가 제일 많아. 뭐, 마석 몇 개는 빼돌리기도 하겠지. 어쨌든 정부는 사들인 마석을 헌터사관학교에 보내 신인들을 양성한다.”
흘깃.
교관은 연신 목함 안의 마석을 흘끔거렸다.
‘자기도 탐나나 보네.’
태운은 교관의 눈빛 속에 탐욕을 바로 알아차렸다.
“뭐 고위 헌터들은 돈 벌어서 좋고, 정부는 전도유망한 헌터들을 빨리 키울 수 있어서 좋고. 너희는 마석을 공짜로 얻을 수 있어서 좋고. 서로 윈윈 아니겠어? 그니까 얼른 하나씩 가져가서 먹어버려라. 나 눈 돌아가기 전에.”
교관의 말에 태운과 강천은 각기 하나씩 마석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먹으라고? 이거 돌인데? 과자처럼 씹어먹으라는 소린가?’
두 사람은 먹지 못하고 멀뚱멀뚱 마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교관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뒤늦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름이 마석이지, 그냥 마력이 고체화된 거나 마찬가지야. 그냥 꿀꺽 삼켜. 흘리지 말고. 그거 하나에 최소 10억짜리다.”
‘10억……!’
꿀꺽.
터무니없는 가격에 놀란 두 사람은 정작 마석은 손에 든 채, 마른침만 목 뒤로 삼키고 있었다.
* * *
“너희는 내일부터 오전 이론 수업 뒤에 대강당 옆에 대련장으로 가.”
교관은 할 말을 마치고 상담실에서 쌩―하고 나가버렸다. 어지간히도 퇴근이 마려웠었던 듯했다.
“…….”
또다시 둘만 남겨진 상황.
그러나 전과는 다르게 두 사람 손에는 마석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그래도 다시 어색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태운의 신경은 온통 마석에게로 향해있었다.
‘얼마나 오를까? 100? 1000?’
마석을 흡수했을 때 얼마나 마력이 오를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바로 흡수하고 싶다.’
다만 걸리는 것은,
“…….”
마석을 손에 든 채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강천의 존재였다.
마석을 흡수하다가 마력의 기운이 새어나가 태운의 힘이 드러나기라도 하면 곤란했으니까.
‘…아쉽지만 방에 가서 해야겠다.’
바로 일어나서 나갈까 싶었지만, 그냥 나가기에는 뭔가 찝찝했던 태운은 살짝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음… 뭐라고 아무 말이라도 걸어야 하나?’
슬쩍.
태운은 잠시 강천의 표정을 살폈다.
마석을 보며 잠깐이나마 생기가 돌았던 강천의 눈빛은 어느새 입학식 때 봤던 딱딱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상담실을 벗어날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자, 애만 태우던 태운은 용기를 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
스윽.
태운의 말에 살짝 고개를 드는 강천.
다행히 반응을 보이는 강천의 모습에 태운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우리 둘만 따로 수업받을 것 같은데 잘 지내봐요.”
태운은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
그러나 태운이 내민 손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는 강천.
덕분에 태운은 밀려오는 멋쩍음에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얜 왜 이렇게 말이 없는 거야?’
가만히 손만 쳐다보던 강천은 머뭇머뭇 살짝 손을 내밀어 태운의 손을 맞잡았다.
“…네, 잘 부탁해요.”
파르르 ―
태운의 손을 맞잡은 강천의 손이 희미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 * *
[마력이 187 오릅니다.]
“오!”
마석을 흡수한 태운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그만 돌멩이 정도의 크기일 뿐인데도 마력이 187이나 되다니.
‘이건 분명 마석의 일부분일 테지. 일부분이 이 정도라…….’
교관이 준 마석은 마치 커다란 바위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처럼 생겼었다.
즉, 마석 본래의 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권태운
능력 : 초힘(중력/전자기력/?/?)
마력 : 5194
분명 어제 5000을 갓 넘겼었던 태운이었다.
‘벌써 200 가까이 올랐다!’
2차 각성으로 두 번째 힘까지 개방된 상황.
태운은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다.
‘힘드네, 이거.’
이 근질근질함을 풀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
아무리 인터넷을 뒤지고 고민해봤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태운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 운동이나 하자.”
[중력 조작 ― 3G]
그그긍 ―
태운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중력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초조해하지 말자… 진정! 진정!’
아마 이런 과정에서 조급함을 이겨내지 못한 헌터들이 망나니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태운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정원준……!’
“흡! 흡!”
이를 악문 태운의 팔이 굽혔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후욱! 후욱!”
곧 태운의 방 안은 그의 거친 숨소리와 땀으로 가득 메워져 버렸다. 어느새 태운의 머릿속에도 조급함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상태였다.
“후욱! 후욱!”
역시, 머리를 비우는 데에는 운동이 최고였다.
* * *
다음 날.
오전 수업이 끝나고 간단히 식사를 마친 태운과 강천은 대강당 옆에 있는 대련장으로 향했다.
“저 두 사람…….”
“실전반이다!”
체력장 당일, 하필 모두가 있는 곳에서 지목당해 상담실로 불려갔던 두 사람.
그래서인지 적어도 그날 같이 있었던 동급생 108명… 아니, 둘을 제외한 106명이 태운과 강천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에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마석 하나로 완전 실패네.’
생각해보니 187 정도의 마력이면 마력호흡만으로도 한 달, 아니 한달은커녕 넉넉하게 잡아도 2주면 올릴 수 있는 양이었다.
‘뭔가 손해 본 기분인데.’
찝찝한 뒷맛과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대련장에 들어서자,
“흠.”
처음 보는 교관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대련장 한쪽 구석에는 4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음! 신입들! 여기다!”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교관이었다.
인상은 꽤 호감형이었고, 민소매를 입어 그런지 그의 탄탄한 근육들이 옷 밖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단번에 실전반에 들어오다니 대단한데! 여태껏 첫 체력장에서 실전반에 들어온 사람은 겨우 한 명이었다고? 크하하!”
교관이 호탕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의 가슴에 달린 명찰이 흔들리며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이철민!’
명찰을 확인한 태운의 눈빛이 진해졌다.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분명 전 협회 전투부대 소속이었다고 했나.’
이철민은 다른 교관들과는 다르게 현역으로 활동하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사관학교 교관이 되기를 자처한 케이스였다.
‘능력은 초자연형인 경화.’
전 A급 헌터이기도 했던 그는 단단해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전력으로 몸을 강화하면 그 경도는 최소 다이아몬드 혹은 그 이상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크하하하! 한 번에 인재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이야! 간만에 보람 좀 있겠구만.”
철민은 태운과 강천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실화냐? 바로 실전반에 들어온다고?”
“미쳤네…….”
이철민의 뒤에 모여있던 4명의 사관생들이 수군거렸다.
‘2학년인가?’
총 2년의 교육과정으로 이루어진 헌터사관학교였으니 저들은 졸업반이 분명했다.
“아, 인사해라. 뭐 여기가 정상적인 학교는 아니지만, 일단은 너희보다 1년 먼저 들어왔으니 선배는 선배지.”
꾸벅 ―
태운과 강천이 고개를 숙여 목례하자, 4명의 사관생들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들 사이의 경계심을 눈치챈 건지 아닌 건지, 철민은 여전히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들은 이제 가서 마력호흡이나 하고 있어. 3시간 채우고!”
““예~””
네 사람은 대련장 위에 있는 관중석에 올라가 각자 따로따로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갔다.
그들이 잘하고 있는지 그들의 모습을 한번 확인한 철민은 이내 고개를 돌려 멀뚱히 서 있는 태운과 강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본격적인 수업을 받기 전에 우선적으로 배워둬야 할 게 있다.”
씨익 ―
미소를 짓는 철민의 입 안에서 나이답지 않게 건강한 치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대련장 한가운데.
그곳에 다짜고짜 두 사람을 앉힌 철민은 두 사람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일단, 두 사람 마력 수치는 얼마나 되나?”
“……!”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질문.
‘어…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속으로는 심하게 놀란 태운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입학할 때도 마력 수치에 대해서는 아무도 물어보거나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생각해놓은 답변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둘 다 100은 넘었지? 한 번에 실전반에 들어왔으니 마석도 받았을 테고 말이야.”
다행히 철민은 뒤이어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질문을 해주었다.
끄덕.
태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때다 싶어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그런데,
“275입니다.”
“……!”
갑자기 자신의 마력 수치를 까발리는 강천.
‘아 씨! 뭐하러 구체적으로 말해?’
덕분에 철민의 시선은 태운을 향해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너는?’ 하고 물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떡하지?’
태운은 도저히 그 시선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주르륵 ―
당황한 태운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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