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수업이 너무 쉬움
‘…일단은 얼버무려보자.’
태운은 두 주먹을 몰래 꽉 쥐며 일단은 말을 내뱉고 보았다.
“…저도 비슷합니다.”
“으음.”
다행히 철민은 태운의 대답에 수긍한 것 같았다.
‘휴우…….’
생각보다 쉽게 고비를 넘긴 태운은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다 이제 마력호흡을 배운 생도치고는 마력 수치가 엄청 높구만? 크하하하! 대단해!”
철민의 우악스러운 손이 두 사람의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혹시 마력수치 물어봤다고 기분 나쁜 건 아니겠지? 어차피 학교 졸업할 때 마력 측정해야 하니까 너무 숨기려 들진 말라고.”
덕분에 태운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졸업할 때 측정을 하는구나… 그 전에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측정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도…….’
태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팡!
두 사람의 마력 수치를 대강이나마 파악한 철민은 두 주먹을 부딪치며 자세를 다잡았다.
“좋아! 그 정도 수치면 충분하다 못해 배우기에 너무 좋은 상태군. 자, 지금부터 너희가 배울 기술은 바로 ‘자가 회복’이다.”
자가 회복.
고유 능력이 생기고 상태창이 생기면서 다소 게임처럼 변해버린 현실은 의외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건 바로 힐러의 부재.
던전 출입 시 딜러, 탱커, 서포터 등 포지션을 정해서 효율적으로 던전 공략에 나서는 것이 정석.
그러나 어떤 파티에 들어가더라도 힐러가 있는 파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 힐러를 할 만한 능력을 가진 헌터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헌터들이 익힌 것이 바로 ‘자가 회복’이었다.
마력을 이용하여 몸을 강화하거나 고유능력을 사용하면서 소비되었던 마력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마력을 이용해 몸을 치료하면 사용된 마력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즉, 자신의 마력이 아니라 마력 수치 자체를 희생시킴으로써 체력을 회복시키고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인 것이었다.
‘헌터들이 마력 수치를 빠르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지.’
교과서에 나와 있던 내용이었고 태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마력 수치가 아까워 한 번도 시도해보지는 않았던 차였다.
‘최대한 다치지 않는 게 최선.’
그러나 이젠 피할 수 없는 듯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 배워두는 게 맞긴 하지.’
다만 걱정되는 점은 이제 5000을 갓 넘긴 마력 수치였기에 혹시나 마력이 줄어들면서 각성이 무효화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다시 올리면 되긴 하지만.’
다시 5,000을 넘겼을 때 각성이 안 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조금 불안한 태운이었다.
“기껏 힘들게 올린 마력 수치인데 잃는 건 물론 아까울 거다. 그러나 그 마력 수치 중 일부를 잃는 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아깝진 않겠지?”
당연한 소리.
태운은 쓸데없는 걱정을 떨쳐내고 진지하게 임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유강천이라는 친구의 눈은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 흐리멍텅함과 예리함의 경계 그 어딘가에 있었다.
“크흐흐! 너무 걱정은 하지 마라. 부상의 정도에 따라 소모되는 마력 수치는 달라지니까. 대충 이번 훈련을 통해서 50 정도 없어진다고 생각해.”
‘아하.’
생각보다 작은 대가에 태운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스릉 ―
설명을 마친 철민은 허리춤에서 천천히 단도를 빼 들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할짝 ―
우락부락한 몸집에 날카로운 단도를 든 철민의 모습은 마치 공포 영화 속 악당 그 자체처럼 보였다.
꿀꺽 ―
‘아니, 혀는 왜 날름거려!’
태운과 강천은 본인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자가 회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마력을 움직여 상처 입은 부분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
다만 그 숙련도에 따라 회복 속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서걱 ―
철민의 단도가 태운의 왼팔에 깊고 긴 검상을 냈다.
치이이이 ―
상처가 급속도로 치유되며 마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눈앞에 보였다.
[마력이 1 감소합니다.]
[마력이 1 감소합니다.]
[마력이 1 감소합니다.]
[마력이 1 감소합니다.]
대략 중지 길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마력이 4 정도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손가락 마디 정도의 상처가 마력 1로 회복시킬 수 있는 수준인가.’
생각보다 가성비가 좋은 듯했다.
현재 중지 길이 정도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여 초.
강천이 거의 30초가 걸리는 걸 감안했을 때, 확실히 태운의 마력 운용 숙련도는 뛰어났다.
“…대단한데?”
철민은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둘 다 대단하구만.’
매년 있었던 일이었다.
실전반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먼저 철민에게서 자가 회복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칼과 피를 보고 대게 정신을 못 차리기 일쑤였고, 심지어 몇몇은 거품을 물고 기절까지 했다.
그나마 정신을 부여잡고 자가 회복을 하는 사람들도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도 몇 분이나 걸리기 마련이었다.
‘근데 이놈들은…….’
먼저 유강천이라는 생도.
처음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해서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눈빛이 돌변했다.
피를 보고서도 잠시 멍하니 있는가 싶더니 1단계인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상처를 1분도 걸리지 않아서 회복해버렸고, 두세 번 후에는 20초 이내로 속도가 대폭 상승했다.
그리고 2단계인 중지 크기의 상처도 연습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30초 이내에 회복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녀석이지.’
입학 한 달 만에 체력장 올 A라는 엄청난 성적을 받은 생도.
자꾸 무엇인가 숨기려는 듯한 낌새를 보였지만,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피에 익숙한 건가?’
꽤 깊은 상처를 내는 순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녀석.
상처를 냄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연습을 시작했고,
치이이이 ― !
그 실력은 유강천이라는 생도의 수 배 이상이었다.
‘벌써 나랑 비슷한 수준이라니.’
중지 크기의 상처 정도면 이철민은 7~8초 정도에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근데 이 녀석은…….
삐빅.
[9초 31]
‘뭐 하는 놈이야?’
입학 한 달 만에 마력 운용도 면에서 A급 헌터를 따라잡는 재능이라니?
‘너희 둘은 꼭…….’
자가 회복 연습에 매진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철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 눈빛이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빛과 비슷했다.
* * *
“그만! 그만!”
치이이이 ― !
생각 이상으로 두 사람의 속도가 빨라지자 철민은 다급하게 두 사람을 제지했다.
“후우…….”
[상태창]
이름 : 권태운
능력 : 초힘(중력/전자기력/?/?)
마력 : 5117
‘생각보다 많이 써버렸네.’
50 정도면 될 거라고 들은 것과 달리 태운은 80 가까이 마력 수치를 사용해버렸다.
‘은근 재밌는데?’
잃어버린 마력 수치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유익한 수업이었다.
“허억… 허억…….”
강천은 땀까지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뭐 이리 잘해?’
자가 회복 연습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태운 쪽을 바라본 것이 실수였다.
치이이이 ― !
자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아무는 상처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경쟁심이 붙어버린 것이다.
‘무리해버렸다.’
[상태창]
이름 : 유강천
능력 : 무기(?/?/?/?)
마력 : 208
강천도 철민이 말했던 수치 50 이상으로 많은 마력을 소모하고 말았다.
“둘 다 정말 대단하구만.”
철민은 작게 박수를 쳤다.
“원래 내일까지 자가 회복만 연습시킬라고 했는데 말이야. 둘 다 너무 잘해서 이 정도만 해도 될 것 같군.”
보통은 이틀 내내 연습하더라도 중지 크기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데에 15초에서 20초 선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이후로는 스스로 단련하여 조금씩 시간을 줄여가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
그런데 두 사람은 겨우 2시간 만에 이미 철민의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럼 수업 일정을 미리 땡겨야겠군. 두 사람 체력은 괜찮나?”
철민은 그 말을 하면서 강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평온한 태운에 비해 강천의 얼굴에서는 땀이 잔뜩 맺혀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뭔가 뒤처졌다는 느낌에 강천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화르륵 ― !
흐리멍텅하던 동공에는 어느새 투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좋군.’
태운을 바라보며 투지를 불태우는 강천의 모습에 철민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아, 두 번째로 배울 건 격투 수업이다. 이제부터 매일매일 받아야 할 수업이지. 둘 다 혹시 무술을 배워본 적이 있나?”
끄덕 ―
태운과 강천 둘 모두가 끄덕이자, 철민은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한 번에 실전반에 올려면 그 정도는 해봤어야지. 크하하! 이거 점점 내가 가르칠 것이 줄어드는데?”
한바탕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철민은 오른손을 들어 태운을 가리켰다.
“한 번 실력 좀 볼까?”
까딱 ―
태운을 향해 뻗어진 철민의 손가락이 까딱거리며 태운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씨익 ―
실로 오랜만에 받아본 상대의 도발에 챔피언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 *
대련장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는 두 사람.
강천은 대련장 한쪽 벽면에 기대어 앉아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격투기만큼은…….’
강천의 경쟁심이 어느 때보다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이 엄청난 경쟁심이 바로 겨우 고등학생이었던 강천이 철인 3종 경기에서 우승할 수 있게 도와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한편, 철민과 마주한 태운은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몸 좀 쓰겠군.’
격투기를 그만둔 후, 한 번도 스파링은커녕 누군가와 주먹다짐 한번 못했던 태운이었다.
물론,
‘그놈한테 한 대 맞고 뻗은 적은 있지.’
그러나 그건 불공평한 싸움이었다.
‘A급 헌터가 마력까지 사용해서 일반인을 때려?’
지금 생각해봐도 희대의 미친 새끼였다.
‘이철민도 은퇴하기는 했지만, A급 헌터지.’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A급 헌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마력은 서로 사용 금지다. 어디까지나 순수한 실력을 확인하기 위함이니까.”
“넵.”
척.
A급 헌터를 앞에 두고 자세를 잡는 태운.
“드루와!”
철민의 목소리와 함께 곧바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갑니다!”
슈욱 ― !
태운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두 사람 사이의 공백을 지워냈다.
“헉?”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에 철민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이게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거라고?’
대략 20m 정도 떨어진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는 태운.
후욱 ― !
달려드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태운의 왼 주먹이 철민의 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윽!”
고개를 젖혀 겨우 피해내는 철민. 그러나 태운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빙글 ―
빗나가는 왼팔을 거두지 않고 뻗은 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몸의 관성을 이용해 오른팔로 엘보우를 날렸다.
뻐억!
“크흡!”
가까스로 얼굴 정면으로 들어오는 팔꿈치를 손바닥으로 막았지만, 그 충격은 손바닥을 뚫고 안면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틀비틀.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몇 걸음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철민.
피잉 ―
털썩.
곧바로 자세를 잡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 것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 모습에 강천은 물론이고 관중석에서 마력호흡을 연습하던 선배들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
“미친……!”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단 두 번의 공격으로(맞춘 건 한방이지만) 철민이 정신을 못 차리고 그로기 상태가 되자, 태운은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아… 젠장.’
지금 자신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근 1년간의 중력 트레이닝으로 인해 태운의 몸 상태는 선수 시절의 전성기 그 이상이었으니까.
맨몸으로 바위와 고목을 부수는 파괴력이었으니 이렇게 될 만도 했다.
‘오랜만이라 너무 흥분해버렸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기분은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A급 헌터인데 이 정도인가…….’
씁쓸한 뒷맛을 지우며 태운은 철민이 그로기 상태에서 깨어나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
한편,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철민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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