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야구공이 너무 아픔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흘러 6월 말이 되었다.
“강천아, 가자. 정신 좀 차리고.”
“으으… 졸려 죽겠네.”
오전 이론 수업이 끝나고, 어느새 부쩍 친해진 두 사람은 나란히 교실을 나섰다.
“쌍룡이다, 쌍룡.”
“피지컬 지린다.”
두 사람은 헌터사관학교 내에서 유명한 쌍룡으로 불리고 있었다.
‘첫 체력장에서 실전반에 들어간 괴물들.’
그들에게 내려진 평가였다.
훈훈한 외모와 탄탄한 체격까지 고루 갖춘 두 사람의 모습에 몇몇 여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졸지 좀 말고 들어.”
“뭐래, 어차피 형도 집중 안 하면서.”
오전 이론 수업 시간.
강천은 항상 아침잠을 이겨내지 못해 졸기 일쑤였고, 태운은 언제나 마력호흡을 단련하며 중간중간 교관의 눈치만 살피곤 했다.
그럼에도 언제나 테스트는 순조롭게 통과였다.
태운은 이미 예습이 끝난 상태였고, 강천은 야행성 노력파였으니까.
“우리 왔다!”
“어어, 왔냐?”
“오빠들 어서 와요!”
대련장에 들어서자 4명의 선배들이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
지동혁, 김한석, 이대한, 채민아.
이들은 태운과 강천보다 1년 먼저 들어온 사람들로, 작년에 강화반에 배정받았다가 올해 실전반으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사관생들이 강화반인 상태에서 졸업하며, 한 해에 실전반으로 졸업하는 인원들이 2~3명을 넘지 못함을 생각하면 이들 또한 굉장히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그리고 실전반들은 언제나 대형길드에서 러브콜을 최우선적으로 받았기에 실전반 출신들은 그 기세가 언제나 당당하다 못해 오만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잘 부탁한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실전반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씨익 ―
실전반 맏형, 김한석이 태운을 보며 웃어 보였다.
첫날 태운과 강천의 철민과의 대련을 보며 나이와 선후배에 상관없이 두 사람에게 배우려 하는 보기 드문 멋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제보단 덜 맞길 바래.”
뚜둑 ―
태운의 장난스런 미소에 네 사람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진짜… 오빠는 너무 얄짤없어. 나 같은 애 때릴 데가 어딨다고.”
네 사람 중 막내 라인인 채민아가 입을 삐쭉 내밀며 툴툴거렸다.
그러자 영혼의 단짝이자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같은 막내 라인 이대한이 옆에서 킥킥댔다.
“그러다 던전에서 몬스터한테 개털려 봐야 아~ 적어도 진짜 죽이지는 않는 태운이 형한테 맞을 때가 나았구나! 하지, 쯧쯧.”
찌릿!
민아가 대한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라… 어?”
“어이구! 어이구 무서워라~”
“이게 진짜!”
파밧 ― !
곧이어 마력으로 다리를 강화한 민아가 대한에게 달려들었고,
핏 ― !
또한 다리를 강화한 대한도 백스텝으로 이리저리 민아를 피해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너 잡히면 죽어!”
“헹! 잡을 수는 있고?”
쉬식 ― ! 파밧 ― !
일반인은 눈으로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대련장 안을 누비는 두 사람.
실전반 다운 실력이었다.
“하… 쟤네는 또 저러네.”
네 사람 중의 에이스이자 한석의 친구, 지동혁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쟤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곧 교관님 오실 텐데.”
“그 전에 민아가 쓰러질걸?”
아니나 다를까.
“헤엑… 헤엑… 야 이 색… 쿨럭…….”
“후! 위험했어, 위험했어~~”
민아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대련장 바닥에 주저앉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대한의 호흡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쟤 또 냅다 마력 다 쏟아부었나 봐. 진짜 저 습관 고치라니까.”
실전반에 들어올 정도의 신체 스펙을 지닌 민아가 고작 몇 분 뛰었다고 저렇게 될 리는 없었다.
민아가 유독 대한에 비해 심하게 지쳐 보이는 건,
‘마력 탈진.’
마력이 바닥을 보일 때 드러나는 증상 때문이었다.
마력 탈진은 심한 탈력감과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 특징이었으니까.
결국 흥분만 하면 마력 사용량을 조절하지 않고 모조리 쏟아 부어대는 민아의 나쁜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곧 수업인데, 에휴.”
한석은 민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업어주었다.
“오…빠… 이대한 저 새끼 한 대만 때…려…….”
“알았다, 알았어.”
민아를 벽에 기대어 앉힌 한석의 신형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슈욱!
빠악!
“으악!”
“얌마, 민아 좀 그만 놀리라고 몇 번을 말하냐!”
“아니 형! 나는 팩트를 말한 거야!”
순식간에 대한의 뒷덜미를 잡은 한석이 계속해서 대한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같은 실전반이었음에도 한석의 수준은 대한과 민아와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시끄러! 팩트 폭행도 폭행이야!”
그 말에 벽에 기대어 쉬고 있던 민아의 몸이 움찔거렸다.
“한석 오빠까지…….”
그 모습들을 구경하는 강천과 태운의 입가에는 줄곧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와… 한석이 형, 한 번에 두 명을 때리네. 한 놈은 주먹으로 한 놈은 말로.”
“풉… 케미 좋네.”
그때,
쾅!
철민이 대련장 문을 발로 거칠게 열며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들 또 뭔 짓 하고 있냐?”
절그럭 ―
철민의 양손에는 커다란 박스 2개가 들려져 있었다.
* * *
실전반에서 배우는 마력 사용법은 총 3가지였다.
첫 번째, 전신 강화.
전체적인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며, 사용하는 마력량에 따라 향상 정도와 지속력이 달라졌다.
통상적으로 분당 100 정도의 마력을 사용해서 신체 능력을 1.1배 증폭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 부분 강화.
특정 부위만을 집중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으로 전신 강화보다 까다로웠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효율성이 좋았다.
부분적으로 강화되는 신체 부위가 작을수록 전신 강화에 비해 같은 마력으로도 향상 정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워낙 컨트롤 자체가 까다로웠기에 베테랑 헌터들도 정찰이나 기습이 아닌, 통상적인 전투 시에는 전신 강화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세 번째, 부여 강화.
헌터와 맞닿은 물체에 마력을 불어넣어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의외로 마력은 범용성이 적어서 마력으로 탐지를 한다든지 마력만 방출해서 공격한다는 식의 응용이 불가능했다.
마력을 바깥으로 뿜어내며 유형화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일반형 헌터들뿐이었으니까.
그들 외에 다른 유형들은 신체 바깥으로 마력이 나오는 순간, 자신의 고유 능력으로 치환되어서 나타났다.
그러나 헌터와 맞닿은 것에 한해서는 마력이 순수하게 그 성질을 유지하며 부여되는 것이 가능했다.
때문에 헌터들은 대체로 맨몸이 아닌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쨌든 이미 전신 강화를 모두 익힌 실전반 6명은 이철민의 지도하에 매일 부분 강화와 부여 강화를 연습하고 있었다.
“누구부터 할래?”
쿵 ―
어느새, 커다란 상자 2개를 들고 온 철민이 상자들을 내려놓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태운이는 마지막. 네가 하면 다들 의욕 떨어져서 안 돼. 음… 못하는 애들부터 하자. 민아 나와.”
부들부들.
그러나 민아는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음? 뭐야? 쟤 상태 왜 이래?”
“아 그게…….”
이철민의 물음에 한석이 대한과 민아 대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여간 이대한 너… 너부터 나와라.”
꿀꺽.
대한의 목 뒤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똑바로 서! 오늘도 다치기 싫으면 열심히 강화해야 할 거야. 알겠어?”
“넵!”
대략 1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철민이 상자를 열었다.
드륵 ―
그 안에는 야구공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뚜둑 ― 우드득 ―
“후우… 그럼 오늘도 몸 좀 풀어볼까?”
씨익 ―
“히익!”
어깨를 풀며 살벌한 눈빛을 발하는 철민의 두 눈과 마주한 대한의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이마! 오른 어깨! 왼 옆구리! 오른 무릎! 명치!”
쐐액 ― ! 쐐액 ― ! 쐐애액 ― !
야구공들이 거센 바람 소리를 내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빡! 빠악! 빠각!
마력으로 살짝 강화된 야구공들이 지동혁의 전신을 난타했다.
“크흡!”
타이밍을 잘 맞춰서 신체 부위를 강화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정도의 딱 적절한 강도.
그렇다고 부분 강화를 포기하고 전신 강화를 했다가는 터무니없이 많은 마력이 들어 끝까지 버틸 수 없었으니 부분 강화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왼 눈! 목! 오른 허벅지!”
철민은 쉴 새 없이 공을 던지며 자신이 노리는 부위를 말해주었다.
제구력이 어찌나 좋은지 한 번도 본인이 말한 곳 이외에 맞는 법이 없었다.
‘이러니 스포츠란 스포츠는 죄다 망하지.’
태운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으으으…….”
먼저 나섰던 대한은 이미 옆에 널브러져 끙끙거리고 있었다.
“많이 아프냐.”
태운의 말에 대한은 끙끙거리면서도 가자미 눈을 떴다.
“…형은 잘해서 맨몸으로 안 맞아봤으니까 모르겠지.”
투덜거리는 대한의 말에 태운은 으흠 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맞아볼까?”
“뭐? 크악!”
태운의 말에 놀라 벌떡 일어나려던 대한은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완전치 않은 부분 강화로 맞아서인지 여전히 욱신거리고 있었다.
“형, 형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러다 골로 가 진짜.”
“음? 뭐야? 태운이 형이 왜 골로 가?”
동혁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강천이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끄응… 아니, 태운이 형이 신체 강화도 안 하고 그냥 맞아보겠다잖아. 나야 좀 미숙했지만, 조금이라도 부분 강화된 상태에서 맞았으니 이 정도지… 진짜 미친 거 아냐?”
“오? 그럼 나도 그렇게 해봐야지!”
“…….”
강천의 반응에 대한은 머리가 멍해졌다.
‘쌍룡이 쌍으로 미쳤네.’
그때,
“다음! 유강천 나와!”
동혁이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비틀비틀 자리를 비켰다.
“어… 어억…….”
삐걱대는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후우…….”
동혁의 모습을 흘긋 바라본 강천은 심호흡을 하며 철민 앞에 섰다.
“바로 시작한다!”
“넵!”
아직도 공이 가득한 상자.
쐐액 ― ! 쐐애액 ― !
마력으로 강화된 야구공이 강천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왼 어깨! 명치!”
빡!
첫 구부터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흐업! 괘, 괜찮아. 아직 버틸 만…….”
뻑!
“끄으으으…….”
털썩.
뒤이어 날아온 야구공이 명치를 강타하자 강천의 몸은 마치 모래성마냥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
“뭐, 뭐야?”
오히려 철민이 당황해 말을 더듬는 상황.
“저 등신이 진짜…….”
대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헉!”
잠시 뒤, 강천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으앗, 깜짝이야! 너 괜찮아?”
대한이 옆에 누워있다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 기절했어?”
대한은 강천의 등을 살짝 두들겨주었다.
“어, 2방 만에… 괜찮아. 너니까 한방 버텼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맨몸으로 그걸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자부심 가져도 돼!”
대한의 눈이 대련장 한가운데를 향했다.
“저 미친 형 놈 빼고.”
빡! 빡! 뻐억! 빠박!
열중쉬어 자세를 한 채 야구공을 맞고 있는 남자.
그의 입가에서는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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