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던전이 너무 기대됨
“허억… 허억… 이제 그만하자!”
철민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저는 더… 할 수 있… 습니다…….”
신음과도 같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남자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저거 태운이 형이야?”
강천의 물음에 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괴물인데다가 또라이야. 미쳤어.”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지동혁, 김한석, 채민아 세 사람은 통증으로 끙끙거리며 고개만 간신히 돌려 미친 짓을 하고 있는 태운을 바라보았다.
“강화하고 맞아도 죽을 것 같은데… 저 미친놈이…….”
“저 오빠 사람 아니야. 응… 아니야.”
더욱 놀라운 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몸과는 다르게 전신에 상처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맞긴 맞았으나 최대한 몸을 비틀어 흘렸으니까.
덕분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직접적인 외상은 피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입가에 흐르는 피도 고통을 참아내느라 입술을 깨물어서 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아프긴 더럽게 아팠다.
‘후우… 후우… 진짜 죽겠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통일까?
몸을 단련하고 단련해서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몸이었지만, 정작 태운이 누군가에게 실전에서 맞아본 적은 손에 꼽았으니까.
‘데뷔전, 첫 대회 준결승전이랑 결승전 말고는 없지.’
태운의 신들린 흘리기와 회피 실력은 가히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래서 훈련 때를 제외하면 거의 맞을 일이 없었는데, 그마저도 격투기를 그만둔 이후엔 훈련하지 않았다. 사관학교 입학 전에도 홀로 수련을 했으니 맞을 일이 없었고.
그러다 이렇게 맞으니 아무리 단련된 몸에 최대한 빗맞았더라도 정신이 띵해 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허억… 허억… 스읍! 후우… 아니, 그만하자. 내가 힘들어서 못 던지겠다. 공도 이제 없어!”
철민의 포기 선언.
“아하하…….”
그 말과 함께 태운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콰당!
“하아… 하아…….”
욱신욱신.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퉷!”
얼마나 이를 악물고 있었는지 입술에서 나온 피가 물처럼 고여 철퍽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짜 저거 뭐 하는 놈이야?’
상자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며 철민은 대자로 누워 옆으로 피가 잔뜩 섞인 침을 뱉고 있는 태운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살짝 했다고는 해도 마력으로 강화까지 한 내 강속구를 맨몸으로 받아내? 처음엔 그냥 정신 차리게 해주려고 했었는데…….’
강천에 이은 태운의 터무니없는 요구.
철민은 태운이 강천처럼 한두 방 버티다가 나가떨어질 줄만 알았다.
그러나,
“…한 상자를 다 던졌네.”
상자 하나당 200여 개의 야구공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한 상자를 5명에게 썼고, 남은 한 상자 전부를 태운에게 던졌다.
‘어떤 쪽으로든 헌터계가 크게 흔들리겠군.’
철민은 참으로 기가 차면서도 태운이 앞으로 보여줄 행보가 점점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바로 다음 날로 다가왔다.
‘방학이라고 다를 게 있나?’
태운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관생들은 방학이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니까.
막 각성했을 때와는 다르게 이제 마력을 다룰 줄 알게 된 존재들.
하지만 마력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기에 사관생들은 일반인들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형, 방학 때 뭐할 거야?”
옆자리에 앉은 강천이 태운에게 말을 걸었다.
‘얘도 많이 밝아졌네.’
입학 초기만 해도 언제나 무표정이던 강천은 대련 이후 적어도 태운과 있을 때는 평범하게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하겠어. 오전 수업도 없겠다, 하루 종일 운동하고 마력호흡 단련해야지. 각성해야 할 거 아니야?”
태운은 자신의 마력 수치를 완전히 비밀로 하고 있었다.
문제는,
‘졸업식 때 어떻게 기계를 속이냐는 건데…….’
적어도 어떻게 측정하는지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태운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헌터들의 졸업식 마력측정 영상이 있잖아! 아, 괜히 쓸데없이 고민만 했네.’
그때,
띵딩 띵딩 띵 띵띠디디디딩~
1학기 마지막 오전 수업 종이 울렸다.
담당 교관은 별말도 없이 반을 나섰고, 3반 사람들은 교관의 무성의한 태도가 익숙해졌는지 별말 없이 친한 사람들끼리 희희덕거렸다.
“형, 뭐해. 얼른 가자.”
“응? 아, 어어.”
생각에 잠겨있던 태운은 강천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짐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관학교의 첫 학기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 * *
“우리는 던전에 갈 거다.”
“……!”
철민의 말에 실전반 전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의 놀란 표정을 본 철민은 이를 보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강해지려면 던전 도는 게 제일이야! 2년 내내 마력호흡만 해서 1차 각성을 어느 세월에 찍겠냐!”
태운 또한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실 반 이름만 실전반이지, 왜 실전반이라고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피어오르려고 했던 참이었다.
‘역시 뭐가 있긴 했네!’
태운은 가슴 속에서 두근대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느끼며 철민의 말에 집중했다.
“참여는 자유다. 강요하지 않아. 방학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나는 방학마다 매일 아침 7시에 대련장에서 기다릴 거다. 참여하고 싶은 날에 이곳으로 오면 된다. 전달 사항은 이상. 질문 있나?”
번쩍!
민아가 손을 치켜들었다.
“음.”
철민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민아는 잽싸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 장비 없이 들어가나요?”
민아의 질문에 모두가 자신들도 궁금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인 장비는 종류별로 준비해둘 거다. 방학 동안 몸에 맞는 무기를 찾는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다양하게 연습해보는 거지. 또 다른 질문?”
이번엔 동혁이 손을 들었다.
“던전은 어느 정도 난이도인가요?”
던전의 난이도는 헌터의 등급과 마찬가지로 F급부터 EX급까지 있었다.
예를 들면 F급 던전은 최소 F급 헌터 10명은 있어야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이라는 의미였다.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F급 위주로 돌 거다. 너희들의 수준에 따라 최대 D급, 정말 여유가 있을 경우엔 C급까지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물론 정말 여유가 있을 때만이지만 말이지.”
철민은 태운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엔 대한이 손을 들었다.
“교관님도 같이 가시나요?”
그의 질문에 철민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헌터증도 없는 병아리들만 들여보낼까 봐? 당연히 내가 통솔한다. 지금 너희들 수준으로 너희만 보냈다간 F급 던전에서도 순식간에 전멸할걸?”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A급 헌터인 이철민.
그라면 B급 던전까지도 솔로 레이드가 가능할 터였다.
‘그러니까 아무리 최대라고는 해도 D급, C급 던전까지도 입에 올리실 수 있는 거겠지.’
모두를 한번 둘러본 철민은 씨익 이를 드러내며 마무리했다.
“이제 질문 없지?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볼 사람은 보자. 다들 기억해라. 부지런하고 성실한 놈이 더 빨리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넵!””
두근두근.
첫 실전을 앞둔 실전반 멤버들은 저마다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 설레는 첫 방학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 * *
방학 첫날.
부우웅 ―
실전반 6명 전원은 이철민과 함께 F급 던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태창]
이름 : 권태운
능력 : 초힘(중력/전자기력/?/?)
마력 : 5,178
태운의 마력 수치는 대략 3개월 전, 마석을 흡수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홀로 계속해서 자가 회복 연습을 했던 탓이었다.
그래도 높은 효율의 마력 호흡 덕에 자가 회복 연습을 상당히 많이 했음에도 오히려 마력 수치가 조금 늘어있었다.
덕분에 태운의 자가 회복 속도는 이미 이철민을 훨씬 뛰어넘은 상태였다.
‘최대한 다치지 말자.’
가장 빨리 강해지기 위해선 다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한 듯했다.
끼익 ―
의정부 쪽에 있는 사패산 어귀에 다다르자 차를 세우는 이철민.
“다들 장비 챙겨서 내려라.”
덜컹!
트렁크가 열리고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장비를 챙기는 한편,
“진짜 아무 장비 없이 괜찮겠나?”
철민은 많이 찝찝했던 듯 가만히 홀로 몸을 풀고 있는 태운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괜찮습니다. 위험해 보인다고 판단되시면 던전에서 곧바로 나가겠습니다.”
“음…….”
철민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절대 장비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태운 때문이었다.
순수한 육체로 어디까지 통하는지 알고 싶다나 뭐라나.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앞으로 더 제대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이 태운의 주장이었다.
‘듣자 하니 잘 나가는 격투기 선수였다고… 그러니 주먹을 선호하는 건 알겠다만, 주먹을 주로 쓰는 헌터들도 하다못해 건틀렛이라고 착용하고 입장하는데…….’
철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내 마력이 담긴 야구공도 맨몸으로 받아내는 녀석인데 F급 정도야 괜찮겠지.’
이번 던전은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약한 곤충형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었다.
몬스터는 각 개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크게 곤충형, 짐승형, 인간형, 키메라형, 전설형이 있는데, 곤충형부터 전설형으로 갈수록 대체적으로 강해졌다.
“이번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는 저주흰개미들이다.”
철민은 던전 입장에 앞서 간단히 던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전국의 모든 던전은 나타나는 즉시 협회로 신고되는데, 5할 정도가 협회에서 정기적인 수색을 통해 발견된 던전들이었고, 나머지는 협회가 아닌 길드나 헌터 또는 시민들이 찾아낸 것이었다.
신고가 접수된 던전은 모두 협회 주관 아래에 마력측정, 던전 내부 조사, 브레이크 시기 예측 등이 진행된다.
그렇게 모든 조사가 끝나게 되면 협회가 찾아낸 던전은 협회 측에서 선착 배정을 진행하고, 그 외 제 3자가 찾아낸 던전은 브레이크 시기 전까지 제 3자에게 점유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모든 던전은 브레이크 30일 전부터 그 던전을 점유했던 개인 혹은 집단이 토벌을 실시해야 했다.
“던전은 또 하나의 세계다. 던전에 따라 그 크기도 천차만별이지. 이번 던전의 크기는 대충 북한산 일대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정도면 소형인 축에 속했다.
큰 던전은 거의 작은 국가 하나 정도의 크기를 가지기도 했으니까.
“다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크하핫!”
철민의 웃음소리가 사패산 일대에 퍼져나갔다.
* * *
“우와…….”
대한과 민아는 입을 쩌억 벌린 채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굴? 아니… 토굴인가.’
거대한 크기의 공간이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7명을 반기고 있었으니까.
“흰개미 집인가 보네.”
동혁이 벽을 손으로 스윽 문질렀다.
투둑.
작은 흙 알갱이가 동혁의 손가락에 긁혀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딱! 따닥!
흙 알갱이가 떨어지는 작은 진동을 어떻게 느꼈는지 사방에서 중형견만한 저주흰개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꿀꺽.
처음으로 몬스터와 대치한 실전반 멤버들이 긴장한 듯 저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잘 들어라. 저주흰개미는 공격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 다만 저주파를 내뿜는데 근육을 경직시켜 몸이 둔해지지. 그렇게 효과가 좋지는 않지만 방심하다간 당할 거다.”
빠르게 저주흰개미의 정보를 읊는 철민.
그의 말을 들은 실전반 전원은 저주흰개미의 정보를 되새기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스릉 ―
쌍검을 든 강천이 먼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섰다.
“합!”
마력으로 강화한 다리가 토굴 바닥을 박차자,
팍 ― !
흙먼지가 일어나며 강천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키엑!”
몸을 낮추고 턱을 벌린 채 대기하는 저주흰개미들.
‘외관은 일단 일반 흰개미랑 다르지 않은데?’
개미들에게 달려가며 강천이 의문을 가지는 찰나,
쩌억!
저주흰개미의 집게 형태의 턱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그 가운데에서 무형의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지지징 ―
“……!”
덜컥.
순간적으로 한쪽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난 강천의 몸이 기울어졌다.
근육을 경직시키는 저주파에 맞은 탓이었다.
사사사 ―
기울어지는 강천에게 달려드는 흰개미들.
파앗!
놈들의 날카로운 턱이 주저앉은 강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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