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이매탈이 너무 강함 (4)
브레이크 당시, 게이트 앞.
“…아직 차이가 많이 나긴 하는군.”
순식간에 사라진 이매탈과 그를 쫓아간 김천용의 빈자리를 바라보던 정호백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같은 S급이라고는 하지만 김천용과 자신의 차이가 새삼 다시 느껴졌으니까.
“흐음…….”
정호백은 이매탈을 뒤쫓는 것은 김천용에게 맡기기로 한 뒤, 아직 빛을 내고 있는 게이트로 다가갔다.
빛의 일렁임이 전혀 없는 것이 완전히 토벌된 것이 확실한 던전.
늦으면 내일, 빠르면 오늘 안에 알아서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너희는 기자들이 게이트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여기를 지키고 있어라.”
“형님! 혼자서 어쩌시려고…….”
백호길드원들이 살짝 우려를 표했지만,
“뭘 걱정하냐. 이미 토벌된 던전인데. 혹시 모르니 한번 확인만 해볼 테니 걱정 말고 여기나 지켜.”
“…알겠습니다.”
스윽 ―
정호백의 시선이 한쪽에 모여있는 청룡길드원들을 향했다.
“어이 청룡 놈들!”
흠칫!
정호백의 부름에 청룡길드원들의 몸이 살짝 떨렸다.
다른 길드의 S급 헌터.
아무리 자신들의 길드 마스터와 나름 친하게 지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다른 길드의 S급 헌터였으니 충분히 경계할 만했다.
청룡길드원들도 백호길드원들과 나름 친분이 있기는 했지만, 길드 마스터인 정호백은 조금 다른 문제였으니까.
“뭐 그리 긴장하냐. 너네한테도 부탁 좀 하자. 같이 좀 지키고 있어라. 오키?”
“…….”
끄덕 ―
다른 길드의 마스터에게 명령받는 게 탐탁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에 청룡길드원들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피식 ―
“짜식들, 표정 좀 펴라.”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인 정호백의 신형이 곧 붉은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 * *
다시 청룡길드 사무실.
던전에 들어가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린 정호백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
그 모습에 놀란 김천용.
단순히 정호백이 이매탈이라는 인재를 욕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김천용은 그런 정호백의 모습에 생각을 바꾸었다.
‘…두려워한다고? 정호백이?’
정호백, 대한민국 4대 길드 중 하나인 백호길드의 마스터.
대한민국 7인의 S급 헌터 중 일인이자, 자신을 제외하면 남은 6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강력한 헌터.
던전이든 브레이크든 사건이 터졌다 하면, 수준이 어떻든 냅다 달려들어 몬스터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두고 사람들은 그를 백야차라고 불렀다.
제주도 백록담에서 중국의 세계급, 그러니까 EX급 헌터인 첸과 한판 붙은 것은 아직도 회자 되는 사건이었다.
‘그때 한판 붙은 이유가 첸이 백록담에 가래침을 뱉었다는 이유였지.’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상대는 무려 세계급 헌터.
다행히 헌터 협회의 제주도 지부장의 목숨을 건 만류로 크게 번지지는 않을 수 있었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세계 10대 헌터라고도 불리는 이와 싸울 생각을 할 정도로 정호백은 그만큼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정호백이 두려움을 느낀다라…….’
끼익 ―
김천용은 뒤로 젖혔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뭘 본 거지?”
김천용의 물음.
하지만 되돌아온 건 다른 질문이었다.
“…최소 국적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겠지?”
정호백의 표정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밀당할 타이밍이 아님을 알아챈 김천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양인인 건 확실하다.”
끄덕 ―
김천용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호백.
그러자 이번엔 김천용이 물고 늘어졌다.
“너도 이제 말해봐라 정호백. 대체 뭘 본 거야?”
흠칫!
김천용의 물음에 정호백의 어깨가 살짝 떨려왔다.
정호백의 눈앞에 당시 보았던 광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드넓은 연갈색 갈대밭 전역에 널브러진 수천 구나 되는 2층 건물 크기의 거대한 잿빛 웨어울프들 시체들.
그리고 그보다 더 커다란 수백 구의 고동색 웨어울프들의 시체들까지.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라울 만했다.
하지만,
“그건… A급 던전이 아니었다.”
정호백이 나지막이 뱉은 말에 김천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그게 무슨… 그 웨어울프들이 강하긴 했지만, 확실히 S급 몬스터의 수준은 아니었다. S급 몬스터들이 얼마나 강한지 너도 알잖아?”
3년 전, 대한민국 4대 길드의 S급 헌터들이 모두 모여 토벌했었던 울릉도 S급 던전.
일본과 미국의 S급 헌터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토벌한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두 사람의 뇌리에 선명했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말하는 거다. 천안의 그 던전 안에는 회색 웨어울프 말고도 울릉도 던전의 몬스터와 맞먹는 놈들이 수백 개체나 있었어. 이미 죽은 녀석들이라 직접 상대해본 것은 아니지만 감이라는 게 있단 말이다.”
부들부들.
정호백의 어깨의 떨림이 심해졌다.
“무엇보다… 그 던전의 보스는…….”
―이, 이게 무슨…….
정호백의 눈 앞에 펼쳐진 천안 던전 내부.
쿠우우우우 ―
거대한 수천 수백 구의 웨어울프들의 시체들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그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생물이 하나 쓰러져있었다.
바닥에 몸을 붙이고 쓰러져 있는 상태만으로도 어지간한 작은 산에 맞먹는 크기.
겨우 작은 이빨 하나가 잿빛 웨어울프보다 커다란 고동색 웨어울프만 한 초대형 몬스터.
이미 죽었음에도 놈의 몸에 남아있는 강력한 마력의 잔재는 놈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찌릿! 찌릿!
잔재의 기운마저도 얼마나 강하던지 거리를 두고 선 정호백의 전신이 찌릿찌릿 아플 정도.
“…화, 확실해. 그건 분명 펜릴이었어.”
펜릴.
몬스터의 유형 중 최강이라고 불리는 전설형 몬스터 중 하나.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늑대가 바로 천안 던전의 보스였던 것이다.
팍!
정호백이 떨리는 두 손으로 김천용의 어깨를 잡았다.
“기, 김천용. 이매탈… 그자를 얼른 찾아야 한다. 우리는 터무니없는 괴물을 놓쳤어. 시X, 지금 신원도 확인이 안 된 그런 괴물이 일반인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단 말이다!”
정호백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한 김천용.
파르르 ―
그의 눈동자 또한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한편, 태운이 조기 졸업한 뒤 2학기가 시작된 헌터사관학교.
사회로 나갈 수는 없다지만 핸드폰이나 인터넷은 당연히 사용할 수 있었기에 사관학교 또한 천안에서 일어난 사태로 인해 난리가 난 상태였다.
“진짜 봐도 봐도 개간지다…….”
“나도 헌터가 되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푸하하하! 뭐래, 기초반 놈이.”
“너도 기초반이잖아, 이 자식아!”
남자 생도들은 이매탈 영상을 보며 되고 싶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고,
“너무 멋있다… 뭔가 잘생겼을 것 같지 않아? 난 입만 봐도 알아. 이 사람 잘생겼어.”
“푸흣! 그게 뭐야? 그나저나 팬카페 생긴 거 알아? 난 벌써 가입했다? 헤헤.”
“팬카페가 생겼어? 어디어디! 뭐야? 팬카페 링크 좀 줘!”
“나도 나도!”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여자 생도들은 연예인들을 덕질하듯 ‘이매각시’라는 팬카페에 가입하여 덕질하기 시작했다.
무료하면서도 힘든 사관학교 생활에 한 줄기 활로를 찾은 생도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들떠있었다.
그렇게 1학년 2학년 할 것 없이 사관학교 전체가 이매탈로 인해 들썩이는 가운데,
“…….”
한 여인 또한 가만히 이매탈에 관련된 기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S급 헌터인 정호백을 구한 것도 모자라 천안시 전체를 구하고 사라진 의문의 헌터.
스윽 스윽 ―
기사를 넘기는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진중했다.
톡.
기사에 첨부된 너튜브 동영상.
―파지지지직!
이매탈의 전투 영상이 그녀의 폰에서 재생되었다.
주변에 관심을 주지 않고 언제나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묵묵히 자기 단련만을 거듭하던 그녀.
그랬던 그녀의 표정에,
꿈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 *
“교관니이이이임! 안녕하세요!!!”
오전 수업이 끝나고 실전반 멤버들이 잔뜩 흥분한 상태로 대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대련장 안에서 홀로 마력 호흡을 하던 철민은 요란하게 들이닥친 실전반 멤버들을 보며 표정을 찡그렸다.
‘내 아까운 시간…….’
오전 내내 다섯 시간이 넘게 마력호흡을 하고 있었던 철민은 6시간을 채우기 직전에 흐트러진 호흡에 이를 으득 갈았다.
덕분에 6시간 가까이 해놓고도 마력 수치를 1밖에 올리지 못했으니까.
‘…역시 마력호흡은 수지가 안 맞아.’
단위 시간을 채우지 못해 3시간을 낭비한 철민은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오는 실전반 멤버들을 향해 한껏 짜증을 냈다.
“너희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평소엔 시간 딱 맞춰오더니! 하아… 하여간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러나 철민이 어떤 말을 하든 실전반 멤버들은 이미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었다.
“그거 진짜 태운이 형 아니야? 번개 못 봤어? 번개? 파지지직! 키야!!!”
잔뜩 흥분한 얼굴의 대한이 영상 속 이매탈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 영혼의 단짝 민아가 곧바로 대한의 말에 응수했다.
“아니, 바보야! 태운 오빠 번개는 파란색 아니고 금색이라니까! 너 색맹이냐?”
“뭐? 색맹? 내가 색맹이면 너는 문맹이냐?”
“뭐? 나 국어 1등급 출신이야, 이거 왜 이래!”
“나도 미술 1등급이야, 이거 왜 이래!”
“따라 하지 마라!”
“떼레해지 뭬래~”
“이게 진짜!”
파밧!
또다시 시작되는 대한과 민아의 추격전.
쿠당탕탕!
두 사람은 전보다 한층 더 나아진 움직임으로 대련장 전체를 쏘다니며 여기저기를 어지르기 시작했다.
“야야! 너희 오자마자 뭐해!”
철민이 말려봤지만,
“하하, 교관님 냅두세요. 어차피 곧 끝나니까.”
오히려 동혁은 포기하라며 성질을 내는 철민을 말렸다.
말 그대로 초장부터 개판이 돼버린 대련장이었다.
“…맨날 정리해두면 뭐 하냐 진짜.”
철민의 투덜거림을 들은 동혁은 진짜 궁금한 듯 철민에게 되물었다.
“근데 교관님, 진짜 대련장은 왜 정리하세요? 맨날 어질러지는데.”
순간 동혁의 이마에서 불이 번쩍 났다.
빠악!
“크윽!”
“너까지 왜 그러냐 엉? 그럼 너는 왜 먹냐? 어차피 똥 쌀 건데.”
“안 먹으면 죽으니까……?”
“…말대꾸할래?”
여러모로 정신이 없는 네 사람.
한편, 활기찬 네 사람과는 달리 뒤이어 들어오는 한석과 강천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진짜 능력도 능력이지만 움직임이… 와아…….”
계속 영상을 돌려보며 감탄하는 한석.
덕분에 영상 속 이매탈은 벌써 웨어울프들과 수백 번을 반복해서 싸우고 있었다.
전신 강화가 아닌 극한의 효율로 제때 이루어지는 부분 강화.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능력의 발현까지.
한석은 이매탈의 움직임을 분석하며 배우는 것에 상당히 몰입해있었다.
반면, 강천은 한석과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영상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초점은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태운이 형 맞는 것 같은데…….’
이매탈과 태운이 닮았다는 생각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던 것이다.
태운이 비인기 종목인 격투기 선수 시절부터 그의 광팬이었던 강천.
아무리 마력을 사용하고 능력을 사용한다지만,
―뻐억!
이매탈의 움직임은 확실히 태운의 움직임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아니, 근데 번개 색깔이 확실히 달라… 그리고 조기 졸업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A급 최상위 몬스터를 잡을 수 있겠어?’
태운이 이매탈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었기에 강천의 머릿속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물론 태운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상식을 부수는 사람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부수는 일이었으니까.
‘조기 졸업 한 달 만에 S급 헌터인 정호백보다 강해진다고? 그건 진짜 말이 안 되잖아.’
그때,
“너네는 뭘 그렇게 보고 있냐?”
철민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부들부들.
어느새 난리 치던 대한과 민아,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했던 동혁까지 대련장 한쪽 구석에서 기마 자세로 벌을 받고 있었다.
“아, 교관님. 이거 영상 보셨죠?”
한석은 철민이 다가오자 푸른 번개를 몸에 두르고 웨어울프와 싸우고 있는 이매탈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건…….”
영상을 본 철민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아니, 이거 처음 보세요?”
“기사만 봤지, 영상은 처음인데. 너튜브? 난 그런 거 볼 줄 몰라.”
“와… 교관님 문찐이셨네… 켁!”
농담을 던지는 한석의 목덜미를 붙잡은 철민은 진지한 눈빛으로 영상 속 인물을 들여다보았다.
‘푸른색 번개…….’
피식 ―
철민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빨리 크잖아 이 자식아.’
유일하게 청뢰를 알고 있는 철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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