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31화 (31/300)

31화. 협회가 변태를 준비함 (3)

씨익 ―

태운이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그때,

“이제 이매탈, 당신 차례입니다.”

워낙 어두웠기에 그 미소를 보지 못한 한동석이 말을 이어나갔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그것도 이렇게 비밀리에.”

꿀꺽 ―

한동석은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늦은 밤이기도 하고 협회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해버리긴 했지만,

‘목적이 뭐냐?’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이 남자가 아직 완전히 믿을 만한 자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한동석은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있었다.

털어놓고 보니 속이 후련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이 남자에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최선의 행동일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휘이이이이 ―

주륵 ―

꽤나 찬 바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동석의 온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초조해진 한동석이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인가?’

그와 동시에 곧바로 후회스러운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협회장이란 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에게 직감 하나만을 믿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으니까.

꽈악 ―

극도로 긴장한 한동석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무는 그때,

“차라리 다행입니다. 당신이 소시민이어서.”

이매탈, 태운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매탈의 말은 한동석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울리기에 충분했다.

“당신이 소시민이었기에 협회는 존속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울컥 ―

적어도 협회 소속이 아닌 자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한동석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솟아오르는 울분을 간신히 내리눌렀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는가……?’

이런 말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듣게 될 줄이야.

협회장으로서 직원들과 그동안의 고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하지만 최악을 면했을 뿐, 협회는 이대로여서는 안 됩니다.”

이매탈의 입에서 냉혹한 평가가 이어졌다.

“헌터 협회의 존재 의의는 헌터라는 신인류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헌터들과 일반인들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잘 섞일 수 있게 돕는 것. 그게 헌터 협회의 존재 의의이자 창설 이념 아닙니까?”

헌터 협회의 창설 이념.

그것은 바로 사회 균형의 수호와 사회 정의의 실현이었다.

“현시대에서 헌터들은 명백한 강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협회는 헌터들을 감당할 수 없는 사회를 위해, 헌터들을 통제하고 그들의 잘못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번뜩!

이매탈의 번뜩이는 눈빛이 한동석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협회는 지금 존재 의의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으득 ―

한동석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떡하란 말입니까? 지금, 아니 지금까지 협회는 단 한 번도 힘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스윽 ―

울분을 토하는 듯한 한동석의 말을 들은 태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스윽 ―

손을 내밀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한동석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의 무력한 협회, 저와 함께 바꿔보시지 않겠습니까?”

최소 S급 헌터 이상의 실력이라 평가되는 정체불명의 헌터, 이매탈.

협회 역사상 최초로,

씨익 ―

A급을 뛰어넘는 헌터가 소속되는 순간이었다.

파직!

손을 내민 이매탈의 두 눈가에 푸른 뇌전이 명멸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새벽.

삐빅 ―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한동석이 살금살금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엇… 당신, 안 잤어……?”

한동석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양현주를 보고 허허 웃으며 뒷통수를 긁었다.

“…대체 누굴 만났길래 이 시간에 들어오는 거야?”

살짝 화가 난 듯한 양현주의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그야 한동석이 누구와 만나는지 이야기해주지 않고 갔었으니까.

단 한 번도 이성 문제로 속을 썩여본 적이 없던 한동석이었지만, 양현주는 밤새 기다리며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까지 한껏 펼친 뒤였기에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거리낄 것이 없는 한동석은 그런 양현주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밝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보, 지금 많이 피곤한가? 엄청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당연히 피곤…….”

팔짱을 낀 채 다른 곳을 바라보다 한동석의 얼굴을 쳐다본 양현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흐흐흐!”

한동석의 표정이 새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해져 있었으니까.

“대체 무슨……?”

영문도 모른 채 밤새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양현주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 * *

다음 날.

늦은 새벽에 잠이 들었음에도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한 두 사람은 곧바로 협회장실로 올라갔다.

두근두근.

끼익 ―

긴장한 가슴을 부여잡고 부협회장, 양현주가 협회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

턱이 없는 탈, 이매탈을 쓴 남자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정말이잖아?”

“안녕하십니까, 부협회장님.”

“어… 음… 네, 안녕하세요.”

양현주가 어색한 목소리로 이매탈의 인사를 받았다.

“허허허! 왜 그리 어색하게 서 있어? 자자, 다들 앉자고!”

한동석은 사람 좋게 웃으며 양현주의 등을 소파 쪽으로 밀어주었다.

마침내 삼자대면을 하게 된 세 사람.

묘하게 어색한 기류를 한동석이 먼저 깨주었다.

“그런데 자네 계속 가면 쓰고 있을 건가? 어차피 우리 둘한테까지는 공개하기로 했잖아?”

어느새 친해졌는지 한동석은 편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어젯밤 이루어졌던 두 사람의 대화.

그 내용은 이랬다.

이매탈, 태운이 협회 소속이 되어 협회를 돕는 대신, 협회장 한동석이 태운의 개인정보를 직접 관리할 것.

물론 협회장 외 타인은 태운의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렇죠. 부협회장님까지는 허용이었죠.”

한동석은 정보 공개 범위를 자신뿐만이 아닌 아내이자 부협회장인 양현주에게까지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현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태운의 정보는 협회 기밀 등급으로 분류되어 협회장과 부협회장 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되어있었다.

달칵 ―

이매탈을 벗어 내려놓는 태운.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어머…….”

양현주의 표정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 소문에 이매탈이… 정말 이렇게까지 젊을 줄은 몰랐네요.”

“그치? 내 말이 맞았지?”

양현주의 옆에 앉은 한동석이 실실댔다.

“자, 그럼 어디 계획을 한번 짜보자고!”

한동석이 커다란 손을 비벼대며 입맛을 다셨다.

뜻밖에 커다란 전력을 얻게 되어 두 눈빛마저 빛낼 정도로 의욕이 충만해진 한동석의 모습은 양현주에게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 계획은 제가 전부 짜왔습니다.”

이 일을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태운은 그 짧은 사이에 모든 계획들을 정리해서 종이로 뽑아오기까지 한 상태였다.

“아, 그래……?”

간만에 열의를 불태웠던 한동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귀, 귀여워!’

그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양현주의 입꼬리가 마구 씰룩였다.

하지만 초면인 태운이 앞에 있었기에,

터업 ―

얼른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히죽 ―

그녀의 광대뼈가 올라가는 것까지는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고 있었다.

‘소문대로 사이좋은 부부네.’

피식 ―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태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 * *

“…단번에 바꾼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태운은 자신이 가져온 자료들을 두 사람에게 넘긴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협회가 힘이 생겼다 해서 곧장 헌터들을 압박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여론, 그러니까 민심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태운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협회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바꿀 시간이. 그리고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

턱.

태운의 손이 자신을 가리켰다.

“바로 저, 이매탈의 존재입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현재 이매탈은 국내 헌터들 중 누구보다도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신원불명의 강자, 소리 소문없이 천안을 구하고 떠난 영웅 등등…….”

본인의 입으로 말하기가 조금 부끄러웠는지 태운의 볼에는 옅은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자료에 집중한 두 사람은 태운의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매탈이 사실 협회 소속 직원이었다? 협회는 즉각적인 이미지 쇄신을 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동석은 우려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이매탈이 협회의 직원이라고 해서 곧바로 이미지 쇄신이 일어난다는 것은 조금 성급한 판단 아닌가? 자네 생각 이상으로 협회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야박하다네.”

한동석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협회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습니까?”

“그건…….”

한동석이 말을 흐렸다.

그리고 양현주가 말을 이어받았다.

“무능력함이죠. 바로 능력 있는 인재가 없다는 것.”

양현주의 말에 태운은 빙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사실 능력 있는 사람들 뿐인데 말이죠. 힘이 없어 여러 제약에 시달려서 그렇게 된 것일 뿐. 그런데 이매탈이라는 능력이 검증된 존재가 사실 협회 소속이었다는 겁니다.”

한동석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부정적인 평가의 원인 자체를 해결할 수 있는 자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곧바로 헌터들에 대한 문제를 직접 건들지 않을 겁니다. 헌터 문제는 대중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고, 정계 쪽으로도 연결되어 있어 문제가 커지니까요. 정치적 아군이 없는 협회는 민심을 사로잡기 전까지는 평소와 비슷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태운은 손가락을 펴 보였다.

“즉, 헌터들에 대한 통제권을 쥐기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협회가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래야 앞으로 이미지 왜곡으로 포장된 헌터들과 부딪혀도 큰 반발이 없을 테니까요.”

태운이 계획을 모두 설명하자, 한동석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계획대로만 되면 정말 그 이상은 없겠지. 아주 좋은 계획이네! 하하핫!”

그러나 양현주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 모든 계획들… 좋긴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어요.”

양현주의 말에 태운이 싱긋 웃어 보였다.

“말 놓으셔도 됩니다. 부협회장님.”

태운의 말에 양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어쨌든 나는 이 계획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계획의 리스크를 당신… 아니, 태운 씨가 짊어져야 한다는 거야. 협회 입장에서는 조금 귀찮은 일들만 있을 뿐이지만.”

태운은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느냐는 듯 양현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겠어? 아무리 우리가 헌터 관련 문제를 건드리지 않더라도 협회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길드들의 견제가 계속될 거야.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들은 무력 사용도 서슴지 않을 테지. 이매탈, 그러니까 세간에는 태운 씨가 S급 헌터인 정호백보다도 강하다고 평가되고 있긴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급 헌터 여러 명까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잖아? 아니, 그 전에.”

양현주는 말을 이어가다 한 차례 숨을 골랐다.

“나는 아직 태운 씨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몰라. 그러니까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나한테도 알려줘야지?”

헌터의 개인정보 등록, 갱신은 오로지 협회 측정실에서만 가능했다.

개인정보 열람 정도는 핸드폰으로도 가능하지만, 태운의 정보는 기밀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측정실로 직접 가서 협회장이나 부협회장의 승인을 받지 않는 이상 열람이 불가한 상태.

그러나 측정실에는 아침 일찍부터 담당 직원이 출근하기 때문에 양현주는 아직 태운의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젯밤 한동석에게서 이름만 전해들은 것이 다였던 것이다.

“아, 그렇군요.”

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젯밤 한동석이 직접 갱신해준 헌터증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허업! 콜록! 콜록! 우욱!”

양현주는 너무 놀란 나머지 헛바람을 들이키다 못해 기침하다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왜냐하면 헌터증에 드러난 태운의 힘은,

[헌터증]

이름 : 권태운

고유능력 : ???

등급 : EX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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