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협회가 변태를 준비함 (4)
‘EX…! 세계급 헌터!’
양현주의 두 눈에 경악스러움이 깃들었다.
세계급 헌터.
4차 각성을 이루어낸 전 세계에 딱 10명뿐인 최강의 존재들.
10대 헌터라고도 불리며 국가는 그들을 보유한 것만으로 세계의 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실제로 이 10명의 헌터를 보유한 총 7개의 국가는 G7, G20 같은 모임 외에 또 다른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P7’이었다.
그 기준은 선진국 여부가 아닌 오로지 힘.
Group of 7이 아닌 Power of 7이었다.
세계급 헌터의 힘은 국가 단위 힘의 순위를 다시 매길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실제로 G20에도 속하지 못했던 아이슬란드는 세계급 헌터 ‘카트린’을 필두로 당당히 P7에 속한 바 있었다.
즉, 만약 태운의 존재가 공개된다면 대한민국도 당당히 P8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태운의 헌터증을 살펴보던 양현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고유능력은 물음표 표시가 되어 있는 거지?”
양현주는 한동석을 돌아봤지만,
으쓱 ―
한동석도 모른다는 듯 커다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협회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에 대해 태운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제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정보는 아예 알려드리지 않을 겁니다. 어젯밤 전해 들으셨겠지만, 이게 제가 협회와 협력하는 조건입니다.”
양현주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야 이미 이매탈의 능력은 전부 드러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미 영상도 퍼져 있는 판에 감출 건 또 뭐란 말인가?
양현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능력… 번개 아니었어? 이미 영상이랑 기사가 많이 나가서 이제 와서 감춰봤자…….”
스윽 ―
태운의 눈치를 살피던 양현주의 두 눈에 다시 한번 놀라움이 깃들었다.
“…번개가 아니라는……?”
태운은 말없이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 *
다음 날.
한 편의 기사가 올라왔다.
[헌터 협회장 한동석, 이매탈의 정체에 대해 입 열기로… 자세한 이야기는 기자회견에서 밝힐 예정.]
당연히 전국이 다시 한번 떠들썩해졌다.
“그래서 이매탈이 누구래?”
“누군지 정체는 밝힐 수 없다는데?”
“엥? 뭐야, 그럼 그냥 구라 아니야?”
“몰라, 일단 기자회견 들어봐야 할 듯.”
그리고 며칠 뒤 열린 협회 공식 기자회견.
촤좌좌좌좌좌좍!
수많은 플래쉬들이 터지며 기자 회견장에 들어서는 한동석을 집중 조명했다.
끼익 ―
한동석이 제자리에 착석하고,
촤좌좍!
몇 번의 플래쉬가 더 터지고 나서야 기자 회견장 내부의 셔터 소리가 잦아들었다.
툭 ―
마이크를 잡는 한동석.
“크흠.”
목을 한차례 가다듬은 한동석은 가벼운 인사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협회장 한동석입니다.”
촤좌좌좍!
한동석이 입을 떼자마자 다시 플래쉬가 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동석은 이에 익숙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모이신 기자 분들이 무엇을 가장 궁금해하고 계실지 알기 때문에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타다다다닥 ―
꿀꺽.
타자를 치는 기자들의 목울대가 마구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이매탈을 쓴 헌터가 천안 브레이크 진압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촤좌좌좌좌좍!
플래쉬 세례가 한층 더 강해졌다.
모두가 한동석의 입에 주목하고 있었다.
“해당 헌터는 사실 협회 소속으로 협회의 전력 보강과 만일을 대비한 와일드카드였습니다. 당시 상황이 급박했기에 불가피하게 이런 식으로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촤좌좌좌좍!
플래쉬가 재차 터져 나옴과 동시에 기자 여러 명이 손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질문 있습니다! 그 말은 이매탈이 원래 협회 소속 직원이었다는 뜻인가요?”
아직 공식적으로 할 말을 모두 끝내고 질문 시간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석은 그런 기자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습니다. 해당 헌터는 협회의 일원이었습니다.”
“……!”
몇몇 기자들의 표정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렇게나 강한 헌터가 협회에 속해 있었다니?
S급 헌터인 정호백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매탈이었으니, 이게 사실이라면 협회는 역사상 최초로 S급 헌터를 보유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었다.
“그동안 이매탈의 존재에 대해 협회가 숨긴 이유가 있습니까?”
“협회가 가진 비장의 패가 드러나면 사회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습니다.”
“협회 측에서 이매탈을 협박한 것은 아닙니까?”
“협회는 이매탈을 협박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피식 ―
대답을 이어가는 한동석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세계급 헌터를 협박해? 세상에서 지워질 일 있나.’
어쭙잖은 힘으로 이매탈을 협박한다?
한동석은 곧바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협회를 통째로 짓이기는 상상을 해보았다.
‘상상조차 하기 싫군.’
다시 한번 그와 한 편이 된 것을 기뻐하며 한동석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이어나갔다.
“협회가 이매탈이라는 와일드카드를 준비하고 있던 의도가 무엇입니까?”
“의도랄 것이 있겠습니까? 단지 협회의 이념과 존재 의의를 지키고자 노력해나갈 뿐입니다.”
“그런 와일드카드가 있었다면 3년 전, 울릉도 S급 던전 토벌에는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겁니까?”
“시기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가 협회 소속이 된 건 그 이후입니다.”
“이매탈은 한국인입니까, 외국인입니까?”
“대한민국 협회 소속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한국인입니다.”
술렁 ―
이매탈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크게 술렁이는 기자 회견장.
파밧! 팟!
기자들의 손을 들어올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분명 지금껏 협회는 모든 헌터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매탈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매탈의 정보는 분명히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다만 그의 존재가 와일드카드인 이상, 그에 대한 협회 측 입장이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의 정보는 보안 처리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민간 측에서도 찾지 못했을 겁니다.”
“그럼 이매탈은 누구입니까? 정체를 밝혀주시죠!”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히 공개하려고 했지만, 헌터 본인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웅성웅성.
기자들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헌터는 그 신분상 힘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지하고 계신 겁니까?”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매탈에 대한 정보는 협회장의 특별 권한으로 ‘국가 기밀’로 분류되어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국가 기밀!’
한동석의 대답을 들은 기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단순한 특종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특종임을 기자 본연의 직감으로 캐치한 것이다.
“국가 기밀이라 하면 몇 등급입니까?”
“국가 기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추측의 여지가 생길 수 있는 정보 또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세간에는 지금 이매탈이 백호길드의 마스터, 정호백보다 강하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8번째 S급 헌터가 맞습니까?”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이매탈의 능력에 대해서…….”
“노코멘트하겠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이매탈 개인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한동석은 이매탈 본인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에 관련해서는 모조리 노코멘트로 일축해버렸다.
결국 원하는 답을 하나도 듣지 못한 기자들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한 기자가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협회는 이매탈의 존재를 세간에 드러냈습니다.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입니까? S급 헌터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힘이 생겼으니 앞으로 길드들과 충돌이 있는 건 아닙니까?”
희번뜩!
불만이 잔뜩 어렸던 기자들의 눈빛이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이매탈에 대한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앞으로 대한민국 헌터계의 판도였으니까.
길드들을 제어하고 통솔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회가 사실은 그들을 보조하는 기관에 불과하다는 암묵적이고도 공공연한 사회적 위치가 이매탈의 존재로 인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동석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협회는 언제나 평화를 지향합니다. 협회는 그저 앞으로 더욱 사회 정의 실현과 사회 균형 유지에 힘쓸 뿐입니다.”
애매모호한 대답과 함께 곧 기자회견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 기자회견으로 인해,
[속보……]
[긴급 속보……]
전국은 한 번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기자회견이 끝나고 기사가 쏟아진 바로 다음 날.
저벅 저벅 저벅 ―
아침 일찍부터 협회 직원이 아닌 두 명의 남자가 협회 안으로 들이닥쳤다.
“헉……!”
“저분들이 왜……?”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려던 협회 직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두 사람을 보고 저마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협회장님 계십니까?”
두 남자 중 파란 장발의 남자가 1층 접수처에 말을 물었다.
“어… 어…….”
갑자기 맞닥뜨린 거물에 직원이 어버버하며 당황하자,
쿵 ―
그 옆에 서 있던 2m에 가까운 백발의 거한이 데스크를 치며 으르렁거렸다.
“빨리 좀 대답하지? 있어, 없어?”
화들짝!
그의 으름장에 잔뜩 위축된 직원은 몸을 덜덜 떨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계, 계십니다. 조금 전에 올라 가셨…….”
“가자!”
성질 급한 백발의 남자가 앞장을 서고,
“고마워요.”
푸른 장발의 남자는 떨고 있는 직원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띵 ―
직원들이 제지할 새도 없이 협회장실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두 사람.
위이이이잉 ―
1층에 있던 직원들은 그저 두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무언가 순식간에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 * *
벌컥 ―
노크도 없이 협회장실 문을 열어젖히는 백발의 남자.
푸른 장발의 남자, 김천용이 뒤에서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하아… 정호백, 노크도 없이…….”
하지만 백발의 남자, 정호백의 귀에 그런 김천용의 목소리는 닿지 않고 있었다.
“협회장! 당신… 엇?”
기자 회견 내용에 대해 따지려 들던 정호백의 말문이 턱 막혔다.
협회장실 소파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뒤이어 들어선 김천용도 그를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
“…….”
한순간이지만 협회장실에 적막이 흘렀다.
“…둘이 같이 오셨는가.”
협회장 자리에 앉아있던 한동석이 그 적막을 먼저 깨뜨렸다.
“안녕하십니까, 협회장님.”
김천용이 먼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청룡길드 마스터, 김천용.
그는 4대 길드 중 유일하게 협회를 존중하는 이였다.
심지어 같은 청룡길드원들의 대다수마저 협회를 무시하고 있음에도, 언제나 협회를 존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보기 드문 헌터였다.
그 사실을 알기에 한동석은 언제나 김천용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가 협회를 존중해주었기에, 다른 헌터들이 협회를 무시는 할 수 있을지언정 도를 넘는 패악질은 부리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김천용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이가 바로 정호백이었다.
“크흠… 안녕하쇼. 협회장.”
본래 다른 헌터들처럼 협회를 무시했던 정호백.
그러나 거친 언사와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아 다소 무례할 수 있는 행동거지를 제외한다면, 그 또한 헌터들 중에선 협회를 나름 존중하는 편이었다.
사실 김천용의 눈치를 보는 게 좀 더 크기는 했지만.
그런 두 사람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한동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앉지.”
네 명의 남자가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한동석과 이매탈을 쓴 태운이 나란히 앉았고, 그 맞은 편에 김천용과 정호백이 나란히 앉았다.
“…이매탈이 협회 소속이라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소파에 앉자마자 김천용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한동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네.”
정호백은 탈을 쓰고 있는 태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체는 왜 밝히지 않는 거요?”
시선은 이매탈을 향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두 사람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너는 왜 정체를 감추고 있는 것이며, 협회는 왜 그런 이매탈의 정체를 같이 숨겨주고 있는 것이냐.
그 의미를 알아들은 한동석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한동석이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그때,
“아까부터 말이 짧군.”
이매탈의 입이 먼저 열렸다.
흠칫!
이매탈의 발언에 다른 세 명이 모두 몸을 흠칫 떨었다.
“백호길드의 마스터 정호백.”
이매탈 너머로 번뜩이는 태운의 두 눈빛이 살벌한 기운을 담은 채 정호백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협회장님이 당신 친구인가?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무례도 모자라, 아버지뻘인 협회장님께 상당히 함부로 말을 하는군.”
사아아아아 ―
마력을 운용하지 않았음에도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기운이 정호백의 전신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무례에 사과해라.”
“……!”
부릅뜬 정호백의 두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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