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36화 (36/300)

36화. 특임반이 밑 작업을 시작함 (3)

“…….”

“…….”

사아아아 ―

시끌벅적하던 식당 전체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식당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입구 근처에서 마주한 네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파조……!’

하얀 마스크를 쓴 특임반장과 대치한 2남 1녀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표정이 놀라움을 물들었다.

‘알파조가 갑자기 왜 여기에 온 거지?’

‘얼굴 한번 마주치기도 힘든 양반들인데…….’

알파조의 업무 강도는 협회 직원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저 얼굴 좀 보라.

퀭 ―

얼마나 잠을 못 잤으면 셋 다 다크서클이 광대를 넘어 입술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반면 몇몇 전투부서 직원들은 그들을 보고 흥분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적왕의 재림, 고무인간 유인하.

공방일체의 병기, 철인 한기성.

헌터 협회 공식 최강자, 맹호 이태성.

셋 다 성장하기에 최악의 환경인 협회에서 버티며 끝끝내 A급까지 올라선 악바리 인재들이었다.

살인적인 업무를 소화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A급이라는 위치까지 올라선 이 세 사람은 모든 헌터 협회 직원들의 동경 대상이었다.

“다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계셨네! 다들 오랜만입니다!”

적막을 깨고 이태성이 식당에 앉아있는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태성 씨, 오랜만이야!”

“세상에 얼굴 좀 봐! 제대로 쉬고 있는 거야?”

“태성 씨, 제가 보내드린 홍삼은 먹고 있는 거죠?”

꽤나 인망이 두터운 모양인지 직원들은 다들 반갑게 이태성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특히 어머니뻘 되는 나이의 직원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하하하! 아니, 왜 자꾸 나를 다 걱정하는 거지? 나 이태성이라고!”

수염도 깎지 못해 꺼끌꺼끌한 턱을 쓸어내리며 이태성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어쨌든 그래서 그쪽이 우리 협회의 와일드카드라는 분이신가?”

이태성은 곧바로 웃음을 뚝 그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태운을 쳐다보았다.

“……!”

꽤나 진지한 듯한 이태성의 반응에 한껏 풀어졌던 식당의 분위기는 다시 삽시간에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하하하. 음…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스윽 ―

하지만 태운은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악수를 청했다.

그 정호백마저 단번에 기선 제압했던 태운이었다.

협회 최강자라고 해봤자 A급에 불과한 이태성에게 위축될 리가 없었다.

“…….”

태운이 내민 손을 바라만 보는 이태성.

식당 내에 있는 모두가 긴장한 기색으로 태운과 이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성이 형…….’

이태성의 뒤에 서 있던 한기성은 불안한 눈빛으로 이태성과 태운을 바라보았다.

* * *

―뭐? 와일드카드?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여태껏 우리를 이렇게 굴렸다고?

―오, 오빠 조금 진정하고…….

―시X,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집 사놓고도 벌써 2년째 집 한번 못 들어갈 정도로 굴렀어! 근데 이제 와서 와일드카드? 이건 협회장 멱살 잡아도 무죄야!

―오, 오빠! 기성이가 들어!

―야, 한기성! 솔직히 너희 부모님이지만, 이건 너무하지! 나도 그렇지만 너는 아들인데 이게 말이 되냐? 아들이 수년째 집도 못 들어가고 구르고 있다는 거 아시면서 와일드카드를 숨기고 계신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솔직히 나도 좀 화나긴 하네.

―기, 기성아?

―태성이 형, 본부로 가자.

―그렇지! 저기요! 차 돌려주세요!

―예, 예? 던전 조사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그 길로 협회 본부가 있는 서울까지 달려온 세 사람.

사실 와일드카드라는 존재가 있었는데도 자신들을 굴려서 화가 났다는 건 단순한 명분에 불과했다.

셋 다 속으로는 울분과 질투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동안의 고생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 그에 반해 별안간 등장한 주제에 협회에 대한 평판을 반등시킨 굴러들어온 돌에 대한 질투.

그래, 흔히 말하는 텃세와 자격지심 같은 거였다.

일반적인 신입이었다면 격하게 환영해주었겠지만, 지금 눈앞의 이 신입은 그동안 협회 직원들, 특히 전투부서 직원들의 공로를 가로채는 듯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기에 쉽게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태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억울하겠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

그 누구보다도 태운이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태운이 평생 해오던 것이었으니까.

외국에서 각종 메달을 따고 돌아와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때의 허무한 기분을 태운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속에 쌓아둔 것이 많을 터.

그런데 현재의 흐름으로선 그 노력들을 태운이 모조리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고 있었다.

사실 태운 또한 협회에 대한 평판이 바뀌기 시작한다면, 그건 그동안 협회 사람들이 해온 노력이 인정받아 바뀌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려. 그리고… 아마 불가능해.’

역할에 근거한 노력은 웬만해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던전 조사? 수색? 각종 잡무? 전부 원래부터 협회의 일이다.

인력난에 시달려서 더 힘들 뿐 그건 어디까지나 협회의 사정.

몇몇 시민들이 약간의 감사함을 느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만으로 평판을 바꿀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평판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임팩트.

단순 민원을 처리하는 경찰, 소방관들보다 강도를 잡거나 사람을 구하는 경찰, 소방관들에 대해 더 큰 존경심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재 협회는 현상 유지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임팩트가 있는 일을 해결할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

최강자인 이태성마저 A급에 불과한 마당에 어떤 임팩트를 줄 수 있겠는가?

흘깃 ―

어색하게 손을 내민 채 태운은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이태성을 바라보고 있는 협회 직원들.

그 가운데에 상기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몇몇 이들은 누가 봐도 전투부서 직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어지간히도 환영받지 못하는군.’

그들의 기분을 십분 이해했기에 태운은 뻘쭘한 손을 거두며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의 기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이태성의 거친 눈매가 씰룩거렸다.

“우리의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예, 하지만 지금은 제가 여러분의 기분을 어찌 달래드려야 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알파조는 현재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즉,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들어온 태운의 도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이…….”

태운의 말에 화가 난 이태성이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그때,

스팟 ― !

묵묵히 그의 옆에 서 있던 여인, 유인하가 대뜸 달려들었다.

* * *

‘인하야?’

한기성이 놀라 눈을 치켜뜸과 동시에,

파앙!

태운은 날아오는 유인하의 주먹의 경로를 가볍게 비틀었다.

휘릭 ― !

관성에 저항하지 않고 상체를 숙이며 두 팔로 땅을 짚은 채 두 다리를 뻗어 하체를 돌리는 유인하.

후웅 ― !

거센 풍차 돌리기였지만,

슥 ― 슥 ―

태운은 약간의 고갯짓만으로 그녀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버렸다.

타닷!

유인하는 곧바로 공격을 거두고 물러났다.

“…대단한데?”

약간 얼떨떨한 표정.

적어도 한 대 정도는 맞출 수 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S급에 달하는 실력을 가졌다는 건 사실이었나 보네.”

째릿 ―

유인하는 양 허리에 손을 올리며 태운을 노려보았다.

“신입 너, 실력 좀 있다고 건방지게 굴지 마. 우린 네가 달래줘야 할 어린애들이 아니니까.”

태운은 퀭한 눈두덩이로 자신을 째려보는 유인하를 보며 조금은 안쓰러운 감정을 느꼈다.

으쓱 ―

그러나 태운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린애처럼 행동하고 있으면서 어린애로 보지 말아달라니, 무리한 요구인 것 같습니다만?”

“뭐?”

발끈한 유인하가 재차 나서려 하자, 이태성은 손으로 그녀를 가로막았다.

“…무슨 뜻이지?”

이태성의 두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지금의 상황이 당당하지 않은 상황임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당신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같은 평화를 유지할 수 없었겠지요.”

“……!”

어쩌면 모두에게 하는 말.

조금은 뜬금없고 갑작스럽지만, 지금껏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태운의 입에서 나오자 세 사람을 포함해 식당 내에 있던 전 직원들은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태운의 이어지는 말에 직원들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지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그 노고를 대중들이 알아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 노력,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한 노력들이었습니까? 당신들은 모두 인정받아야만 일을 하는 어린애들입니까?”

“…….”

“당신들을 포함해 상당수의 협회 직원들이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노력들에 대한 인정을 제가 갑자기 나타나 가로챈 것 같습니까? 어이가 없군요.”

태운은 막힐 것이 없다는 듯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당신들이 협회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나은 대우, 더 나은 수입, 더 나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이 협회 바깥에 저렇게 널려 있는데도 말입니다. 굳이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박봉, 거기다 무능력하다며 대중들의 욕까지 얻어먹으면서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가 뭐냔 말입니다.”

울컥 ―

감성적인 몇몇 협회 직원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다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보고자, 조금이라도 우리처럼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기에 이곳에서 버텨내고 계신 것 아닙니까?”

‘다, 당신도……?’

태운의 말에 알파조, 특히 이태성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도 피해자 중 한 명일 수도 있었음을 간과하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정작 협회는 어쩌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제대로 헌터들을 관리하고 있습니까? 아니, 관리할 수는 있습니까? 쓰레기 헌터들이 사고를 치면 뒷수습이나 하지,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한 적이 있기나 합니까?”

부르르 ―

몇몇 직원들, 특히 전투부서 직원들의 어깨가 심하게 떨렸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힘이 없어서 아닙니까? 전 그런 협회의 힘이 되기 위해 여기 이 자리에 왔습니다.”

“……!”

태운의 말을 들은 모든 협회 직원들의 뇌리에 한가지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특임반……!’

‘특임반은 그걸 위한 것이었나!’

안 그래도 모두가 의아해하던 차였다.

전투부서를 놔두고 뜬금없이 생겨난 특임반.

신입이면 신입이지, 단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부서까지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울컥 ―

협회가 드디어 새로운, 아니 지금껏 힘이 없어 포기하고 있던 온전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초석을 다지고 있음을 깨달은 직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드디어……!’

‘조금만 기다려, 엄마……!’

거의 모든 협회 직원들이 헌터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었다.

가족이나 지인을 잃고 홀로 마력감염증에서 살아남아 이곳에 온 사람들이라는 말이었다.

주르륵 ―

마침내 숙원의 해결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알게 된 직원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 *

“특임반장.”

“아, 협회장님.”

한 차례 호소에 가까운 일장 연설을 펼친 후, 식당을 빠져나온 태운은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석과 맞닥뜨렸다.

“다 들으셨습니까?”

태운의 말에 동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에게 그렇게 벌써 말해도 되는 건가? 정보가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새어나갈 겁니다.”

말을 잇던 동석은 태운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아니, 대체 어쩌려는…….”

“당연히 잡아야지요.”

태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동석에게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특임반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 외부에서 심어놓은 스파이를 잡아야지요. 숙원 해결을 위한 기밀 사항이라 말해놓았으니, 적어도 진짜 협회 직원들이 외부에 알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외부 스파이가 있다면…….”

“…스파이가 있다면?”

“아마 정계 쪽에 바로 알릴 겁니다. 협회장님도 알다시피 협회를 가장 경계하는 건 길드도 대중들도 아닌 정계 쪽이니까요.”

태운의 말에 동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들의 무기인 길드를 통제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혹시라도 힘을 가지게 될까 언제나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정계에서 알아서 감시하고 있으니 길드들은 굳이 우리에게 인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을 테고?”

“맞습니다. 우리에겐 지금이 아니면 스파이를 솎아낼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목적이 정계에 알려지더라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이니, 발뺌한 채 평소의 협회로 있으면 되니까요. 그러면 그들도 이렇다 할 물적 증거나 명분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기껏해야 저를 노리겠지요. 하지만 활동을 시작한 뒤엔 물러설 수 없어요.”

가면 뒤 태운의 눈빛이 번뜩였다.

“얼른 가시죠, 협회장님. 준비할 게 많습니다.”

동석을 지나쳐 계단을 오르는 태운.

느리지만 꾸준하게.

태운은 계단을 오르듯 복수를 향해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