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37화 (37/300)

37화. 특임반이 밑 작업을 시작함 (4)

“어, 어째서입니까?”

청룡길드 본사 앞.

3명의 헌터가 억울한 표정과 제스처로 한껏 본인들이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길드장 명령입니다.”

청룡길드의 실장, 이혜지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길드 마스터님의 특별 지시로 청룡길드는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이들을 길드에서 퇴출시키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이죠.”

이혜지의 말에 3인 중 하나, A급 헌터 류정치가 발끈했다.

“웃기지 마! 뭐가 올바른 행실인데? 우리 전부 전과기록 하나 없이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전과상으론 그렇겠죠.”

이혜지가 안경 렌즈를 번뜩였다.

“류정치 헌터, 당신은 2년 전 관악산 브레이크 토벌을 명목으로 무분별한 삼림 훼손을 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관리인을 기절시키고 달아났죠. 그뿐입니까? 던전 토벌 이후 이루어지는 마정석 채굴 작업 중, 채굴꾼들에게 잦은 폭언과 욕설을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길드가 이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다른 두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

류정치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길드가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문제 삼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어때서! 나는 고위 헌터라고! 그리고 청룡길드가 언제부터 그런 걸 문제 삼았다고…….”

“…지금까지는 그랬죠.”

이혜지는 다시 한번 안경을 고쳐 썼다.

“청룡은 지금까지 길드 전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적어도 심각하게 선을 넘을 정도의 범죄가 아니라면 길드원들의 과오를 눈감아주었습니다. 거의 모든 길드들이 그렇게 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달라요.”

찌릿 ―

류정치와 다른 두 명의 헌터를 바라보는 이혜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건 바로 경멸의 눈빛이었다.

“갑자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길드 마스터께서는 청룡길드가 가장 강한 길드가 아니라 가장 당당한 길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

3명의 헌터의 표정에 당혹스러움과 분노가 깃들었다.

세 사람의 몸은 어느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혜지는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은 헌터에게 한없이 너그럽습니다.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사실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엄격한 선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혜지는 할 말이 끝난 듯, 속이 후련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래도 더욱 엄격한 기준이 아니라 일반인의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길드에 들어가도 청룡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각자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그러나 그때,

“지X하고 있네!”

“뒈져!”

세 사람은 돌연 미리 합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등을 돌린 이혜지에게 달려들었다.

“허업!”

갑작스레 덤벼드는 세 헌터의 행동에 놀란 이혜지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A급 헌터 하나와 B급 헌터 둘.

고작 C급에 불과한 이혜지로선 한 사람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

설마 길드에서 퇴출당했다고 해서 길드 바깥에서 자신을 공격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속도로 보아하니 마력까지 사용한 듯했다.

슈아아악 ― !

‘당한…….’

기겁한 이혜지가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

콰앙!

그녀의 바로 앞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부스스스 ―

길바닥을 채우고 있던 벽돌들이 산산조각 나며 일어난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움찔움찔.

갑작스런 충격에 기절한 세 헌터는 가라앉는 먼지 속에서 팔다리만을 움찔거리고 있을 뿐.

“휘유~”

그리고 먼지 속에서 어느새 나타난 한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뭔 일이래? 혜지 씨 괜찮아?”

“아, 부길드장님! 감사합니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이혜지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혜지의 감사 인사에 남자는 살짝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쓰러진 세 사람을 가리켜 보였다.

“얘네는 누군데 여기서 이런… 어? 우리 길드원들 아니야?”

이혜지는 안경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며 간단하게나마 남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설명을 마치자,

“…그랬단 말이지?”

남자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

남자의 시선이 청룡길드 본사의 꼭대기를 향했다.

“이 형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래?”

남자의 입가에 흥미롭다는 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나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협회의 여력이 미치지 못하는 울릉도와 독도를 수색하며 발견한 던전을 토벌하는 일명 ‘동해 토벌’을 다녀온 청룡길드의 부길드장.

대한민국 최강의 7인 중 한 명이자 청룡길드의 또 다른 S급 헌터, 민호성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 * *

똑똑

“들어오세요.”

끼익 ―

꾸벅

하얀 마스크를 쓴 남자, 태운이 방 안에 들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아, 특임반장 왔는가.”

협회장, 동석이 태운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청룡과 백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태운의 말에 살짝 반짝이는 동석의 눈빛.

“…벌써 끝난 건가?”

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은 길드원 셋, 백호는 길드원 다섯을 퇴출시켰다고 합니다. 해당 길드원들의 명단과 신상도 모두 전달받았고요.”

동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길드장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대단하군.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야.”

풀썩 ―

태운은 동석의 말을 들으며 소파에 앉았다.

“…협회장님 쪽은 어땠습니까?”

동석을 바라보는 가면 너머의 태운의 눈빛이 번뜩였다.

어제의 일. 스파이 색출 건을 말하는 것이리라.

태운의 말뜻을 알아들은 동석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안 그래도 전화기에 불이 날 지경이라네. 거참, 뭐가 그리 켕기는 게 많은지 안달들이 났더구만.”

우우우웅 ―

때마침 또다시 울리는 동석의 핸드폰.

동석은 핸드폰을 확인하고 다시 태운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이나? 어젯밤부터 계속 이 지경일세.”

“…아주 협회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군요.”

태운이 코웃음을 흘렸다.

정치인들의 행동이 참으로 우습고도 화가 났으니까.

어제 협회 안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내자마자 곧바로 연락을 해댄다?

아주 자신들이 협회에 스파이를 심어놨다고 광고를 하는 꼴이었다.

“우리가 스파이의 존재를 알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지.”

마치 ‘너희가 스파이 있는 걸 알면 어쩔 건데?’라며 배짱을 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태운의 물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석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좋지 않군. 아니, 상당히 더러워.”

끼익 ―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석.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 상당히 분한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하나? 스파이가 있음을 확인했으니 이제 색출해야 할 텐데…….”

스윽 ―

품 안에서 무언가 꺼내 흔들어 보이는 태운.

단말기같이 생긴 물건이었지만, 동석은 그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게 뭔가?”

“휴대용 데이터 복구 장비입니다. 기술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나온 지 몇 달 안 된 따끈따끈한 신기술의 집약체라고 할까요. 민간인은 구할 수도 없는 겁니다.”

태운의 말에 동석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물건을 그럼 대체 어떻게 구한 건가?”

“용산경찰서장님께서 빌려주셨습니다. 감사패 대신 부탁을 좀 드렸죠. 세상 참 편해지지 않았습니까? 굳이 전문업체를 찾아가지 않아도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다니.”

씨익 ―

태운은 웃으며 장비를 다시 품 안으로 넣었다.

“직원분들께 잠깐 실례 좀 하러 가보실까요?”

태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촤르르르 ― 촤르르르 ―

협회장의 지시에 따라 협회 출입구의 셔터문들이 내려갔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나도 모르겠는데…….”

협회 1층 로비에 모인 500여 명의 협회 본사 행정부서 직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점심시간이 되기 1시간 전에 소집령이 떨어진 데다가 협회 출입구가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예, 예? 갑자기요?”

“아니, 이거 개인정보잖아요!”

핸드폰까지 수거해갔으니까.

영문도 모른 채 소집되어 핸드폰까지 빼앗긴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반발은 당연히 태운의 예상 범위 내였다.

마스크를 쓴 채 간이로 마련된 임시 단상에 선 태운.

식당에서처럼 무선 마이크를 들고 불만으로 가득 찬 직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협회 안에 스파이가 있습니다.”

“……!”

직원들의 두 눈에 당혹스러움이 깃들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의문이 가는 말이기도 했다.

협회 안에 스파이를 두어서 뭐에 쓰려고?

어차피 중소 길드 하나 건드릴 수조차 없는 허수아비 같은 조직일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태운은 그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고 바로 하고자 하는 목적을 밝혔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핸드폰 통신기록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제와 오늘 48시간 동안의 기록만 확인할 테니까.”

핸드폰의 기록을 확인한다는 말에 상당수의 직원들이 발끈하여 화를 내려 했지만, 이어지는 태운의 말에 자신들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아무 이상이 없는 분들께는 협조해주신 감사의 의미로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사례금이 지급될 겁니다.”

쿵 ―

태운이 바닥에 무언가 가득 담긴 캐리어 가방을 하나 내려놓았다.

스윽 ―

한 직원이 그 캐리어에 흘끗 눈길을 주며 손을 들어 물었다.

“그… 사, 사례금이 얼마나 됩니까?”

태운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2개를 펴 보였다.

“민감한 부분인데다가 무고하신 분들께는 상당히 실례를 범한 부분이니 한 분당 200만 원씩 곧바로 지급해 드릴 예정입니다.”

태운의 말을 들은 대다수의 직원들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언제나 돈이 고픈 직원들이었으니까.

일반인 취준생들 사이에서조차 도는 ‘협회 직원만 한 박봉도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협회가 국가 기관이었기에 일단은 공무원 중에서도 특수경력직 공무원 계열의 별정직 공무원으로 취급되는 협회 소속 직원들.

하지만 봉급 체계는 다른 공무원들과 다르게 운영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협회를 향한 정부의 차별적 대우 때문이었다.

딱히 공부해서 들어온 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진짜 공무원처럼 대우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대판 신분제도 비슷한 것이랄까.

정계 쪽에서 대놓고 협회를 견제하는 데다가 협회 자체를 그다지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기에 고위 공무원이 아닌 일반 공무원들과 여론도 이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힘이 없는 협회 직원들은 연차에 상관없이 직책에 따라 일괄적으로 봉급을 수령했다.

연금? 명절 수당? 추가 근무 수당?

전부 없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건 그저 기본급뿐.

예를 들어 행정부서의 경우 일반 직원은 월 300만 원, 각 팀장은 35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 것이다.

월급 인상? 물가 반영?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직책이 변하지 않는 이상 평생 똑같이.

그리고 이런 취급은 가장 높은 직책인 협회장에게조차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나마 그들에게 주어지는 이점이라고는 일단은 헌터증을 지니고 있었기에 부가세 외의 세금들이 면제된다는 점 하나.

거기다 어쨌든 형식상으론 공무원 신분이었기에 헌터로서 관련된 일 외의 수익 창출 활동은 또 금지되었다.

그렇다고 던전을 돌자니 협회 직원들은 능력도 길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무엇보다 그럴 시간 자체가 없었다.

즉, 협회의 모든 이들은 직책이 변하지 않는 이상 쭉 변함없는 월급에만 의지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하고 불공평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곳에 남아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들은 서로를 더욱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태운은 이런 협회 직원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다.

“특임반은 인원이 저 혼자라 인력이 언제나 부족합니다. 앞으로 이렇게 협조를 구해야 할 일이 종종 있을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운의 말을 들은 협회 직원들의 눈이 섬광탄마냥 반짝였다.

‘사례금은 수익 창출이 아니지!’

‘용돈 주는 사람이다!’

‘내년 세배는 특임반장님한테 제일 먼저 한다!’

찾은 것이다. 보너스를 뱉어내는 창구를.

추가 수익 창출의 동아줄을 말이다.

“맡겨주세요!”

“특임반장님! 믿고 있었습니다!”

“자주 좀 불러주세요!”

“그냥 제 폰 가지십쇼!”

움찔.

생각보다도 훨씬 격한 직원들의 반응에 통장 잔고를 살짝 확인한 태운의 입가가 살짝 떨려왔다.

남들에 비해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던전을 돌 수 있고, 심지어 채굴꾼 없이 혼자서 마정석까지 채굴할 수 있는 태운.

하지만 그에게 입을 벌리며 짹짹대는 불쌍한 아기새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다.

‘…더 열심히 일해야겠군.’

어쩌다 보니 태운은 협회라는 둥지의 실질적 가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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