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38화 (38/300)

38화. 성장통이 너무 아픔 (1)

서울 여의도.

과거 100여년 전만 해도 63빌딩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전국에는 63빌딩보다 더 높은 100층이 넘는 빌딩들이 곳곳에 들어섰고, 63빌딩은 과거의 영광만을 지닌 채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나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은 법.

5년 전, 새로 지어진 63빌딩은 163빌딩으로 다시 태어나며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되찾았다.

이젠 일일 평균 방문객 2만여명이 넘는 관광지 중 하나로도 자리매김한 163빌딩.

오늘도 163빌딩엔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띵 ―

워낙 크고 넓은 건물이다 보니 여러 개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163빌딩.

드르륵 ―

그중 한 엘리베이터에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올라탔다.

배달원 조끼를 입고 커다란 리어카를 끌며 엘리베이터에 타는 남자.

“…….”

리어카에는 1.5L짜리 패트병에 담긴 노란 물이 한가득 실려있었다.

“어우, 누가 이렇게 보리차를 많이 시켰대?”

남자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아주머니가 혀를 쯧쯧 찼다.

“고생이 참 많으시네요~”

그녀의 딴에는 고생하는 배달원에게 한 마디 따뜻한 말이라도 던져주고 싶었던 듯했다.

하지만,

“…….”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선조차 주지 않는 남자.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아무 대꾸조차 없는 남자의 반응에 아주머니는 열이 올라왔는지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크, 크흠! 엘리베이터가 좀 덥네…….”

띵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타닷 ―

무안했던 아주머니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쿵 ―

위이잉 ―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어이가 없어, 정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사람 무안하게시리.”

아주머니는 자신을 내려주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눈으로 흘기며 괜히 궁시렁거렸다.

그때,

띠딩!

{네, 말씀하세요.}

아주머니의 궁시렁거림에 반응한 핸드폰 내장 AI가 반응했다.

“쉬리야, 닥쳐.”

{…….}

무안해진 쉬리였다.

최첨단 AI, 쉬리는 생각했다.

‘지가 불러놓고.’

인간들은 참 제멋대로라고.

* * *

내부 스파이 2명이 검거되었다.

그 결과, 협회 내에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그동안 수년간 꽤 오랜 시간 동안 행정부서 직원으로 근무했던 두 사람이었으니까.

“다, 당신! 후회할 거야! 후회할 거라고!”

“굴러들어온 돌 주제에! 갑자기 이렇게 난리를 쳐도 아무 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제압되어 협회의 조사실로 끌려간 두 사람이 버둥거리며 태운을 향해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댔다.

하지만 가면 뒤의 태운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시작하세요.”

“…네.”

감마조원 하나가 태운의 말에 따라 손을 뻗었다.

우우웅 ―

감마조원, 이영석의 손에서 마력이 흘러나와 제압된 두 사람을 감쌌다.

“이런 씨X!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아? 아니, 너는 내 폰 봤으니까 누군지 봤잖아! 너희들 감당할 수 있냐고!”

“가만 안 둔다! 이딴 오합지졸 집단 쓸어버리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당장 내일이라도 끄으윽……!”

생난리를 치던 두 사람의 눈빛이 곧 흐리멍덩해졌다.

끄덕 ―

이영석은 태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능력, ‘최면’이 성공적으로 걸렸다는 의미였다.

“감사합니다.”

드륵 ―

태운은 의자 하나를 끌어와 등받이에 두 팔을 올려놓은 채 거꾸로 앉았다.

“너희 둘 외에 스파이가 더 있나?”

태운의 물음에 두 눈이 흐리멍덩해져 잿빛으로 변한 두 사람이 천천히 말을 뱉어냈다.

“…아니… 없어…….”

“본부 외에 지부에도 없나?”

“지부는… 신경 쓸 가치…도 없어…….”

피식 ―

태운의 입에서 바람 빠진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협회를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껏 무시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꽤나 웃겼으니까.

“언제부터 스파이가 된 거지? 둘 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스파이였나?”

“물론…이지…….”

“왜 스파이가 된 거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하급 용병으로… 일하다… 제안…받았어…….”

“채굴꾼… 으로 일하다가… 제안… 받았어…….”

“뭐라고 제안했지?”

“기본 월급에다가… 월 천만 원씩… 더 준다고 했…어… 나중에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했어…….”

하급 용병과 채굴꾼.

어찌 보면 마력감염증에서 살아남아 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중, 중도 포기자들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박봉이라 알려진 협회 직원과 수입이 비슷한데다가 성장 가능성마저 적은 이들.

그렇다 해도 일반 직장과 비슷한 수입과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보장되는 이쪽 일을 하는 헌터들은 대부분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자들은 있기 마련.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지만, 능력이 되지 않아 해당 위치를 벗어나기 힘든 이들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었다.

그랬던 이들에게 정계 쪽에서의 제안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렸으리라.

“…최면으로 혹시 기억 조작도 가능합니까?”

“예, 조작하려는 정도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합니다만… 키워드를 잊어버리게 하는 정도는 금방 됩니다.”

이영석의 말을 들은 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사람이 협회 안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만들어주시고요.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다만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태운이 조사실을 빠져나오자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협회장, 현주가 눈은 조사실 안을 향한 채로 입을 열었다.

“설마 진짜 스파이가 있을 줄은 몰랐네.”

“무시는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을 양반들이 아니잖아요. 속이 시커먼 구렁이 같은 그 작자들이 변수를 대비하지 않을 리는 없으니까요.”

두리번 ―

태운은 조사실 바깥을 두리번거렸다.

“협회장님은요?”

“알파조랑 식사하러 올라갔어. 협회장실에 뭐 배달 음식 잔뜩 시켜놨다고 그러던데. 특임반장도 조사 끝나면 올라오래.”

“부협회장님은 안 드시고요?”

“…난 중식 별로 안 좋아해서.”

진짜 중식이 싫은 듯 현주는 입을 으 ― 하는 모양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 먼저 올라가서 식사하겠습니다. 저 두 사람은 최면 작업 끝나면 추방해주시고요. 아, 그리고.”

부스럭 ―

현주에게 봉투 하나를 내미는 태운.

현주는 이게 뭐냐는 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저기 감마조 분께 전해주세요. 소소하지만 수고비라고. 그럼.”

태운이 떠나고 홀로 남은 현주.

“…….”

조사실 안에서 두 사람을 향해 힘쓰고 있는 이영석의 눈치를 살짝 본 뒤,

부스럭 ―

태운이 건넨 봉투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아홉, 열.’

5만 원짜리 10장.

총 50만 원이었다.

‘…태운 씨, 집 잘 사나 보네?’

조금 전에도 핸드폰 검사를 하며 직원들에게 협조 사례금을 지급하느라 10억 이상의 어마어마한 돈을 썼던 사실을 알고 있던 현주였다.

태운이 거의 매일 2~3개의 대리 토벌을 뛰고 있음을 모르는 현주로선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여러모로 참 마음에 든다니까.”

싱긋 ―

현주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잘만 하면……?’

심상치 않은 현주의 표정.

무언가 일을 꾸미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똑똑.

“들어오게!”

태운이 협회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동석이 그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게나! 면 불겠어!”

접대 테이블에 잔뜩 놓인 중식 세트.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들이 태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꾸벅 ―

어제 태운과 잠시 얼굴을 붉혔던 세 사람, 알파조가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풀썩 ―

태운은 자연스레 이태성의 옆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협회장님.”

“허허허! 그래그래, 많이 드시게나.”

딱!

나무젓가락을 어딘가에 두들기지 않고도 단번에 깔끔하게 가르는 태운.

쮸악 ― 쮸악 ―

식사를 이어가면서도, 알파조 세 사람의 모든 신경은 짜장면을 비비는 태운에게로 향해 있었다.

긴장?

물론 긴장은 되었다. 특임반장의 소문은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얼굴!’

‘면상!’

‘어떻게 생겼는지나 좀 보자!’

가면 뒤에 감춰진 특임반장의 얼굴이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선 당연히 가면을 벗어야 할 터.

그 누구도 보지 못한 특임반장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두근두근.

그저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동석과 달리 세 사람의 가슴은 마구 뛰고 있었다.

마침내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의 면발을 들어올리는 특임반장.

짜장면이 그의 하얀 가면 뒤에 있을 그의 입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스윽 ―

30cm.

20cm.

10cm.

5cm.

어느새 바로 가면 앞까지 도달한 짜장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두 눈이 부릅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자!’

‘벗어라!’

‘공개해!’

딸깍 ―

순간,

후룩 ―

“…….”

딸깍 소리와 함께 왠지 모를 정적이 흘렀다.

“음?”

짜장면을 입에 넣고 맛있게 오물거리던 태운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잔뜩 일그러진 세 사람의 표정.

“…왜들 그러십니까?”

태운의 물음에 알파조 세 사람은 진이 빠진 듯 힘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닙니다.”

“마, 맛있게 드세요.”

“여러모로 대단하시네요.”

“……?”

태운이 가면 옆의 귀 쪽 근처의 무언가를 누르자 슉 ― 하고 가면의 입 부분이 올라가며 입만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자 눈치 없는 동석이 허허 웃으며 끼어들었다.

“가면 참 대단하지 않은가? 가면을 벗지 않고도 식사도 할 수 있으니까. 제작에 신경 좀 썼지.”

“맞습니다. 정말 대단한 가면이에요. 통풍도 잘 되고.”

서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눈으로 흘기는 알파조의 표정이 어색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쓸데없이 잘 만들어놨네.’

‘하… 아버지…….’

‘시아버지다. 시아버지다. 시아버지다. 나쁜 생각 금지! 나쁜 생각 금지!’

표정 관리가 힘든 알파조 사람들이었다.

* * *

“저, 정말이십니까?”

알파조 세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니, 단순히 밝아졌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마치 비 온 뒤 먹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쨍쨍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듯 세 사람의 다크서클이 단번에 옅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앞으로 발생하는 고위 헌터 분쟁 조정 문제는 곧 특임반에서 전담할 거다. A급 던전도 마찬가지고.”

동석과 태운을 바라보는 알파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드, 드디어…….”

“퇴근… 퇴근이 보인다……!”

“아버지, 저 믿고 있었습니다.”

어제도 점심시간에 식당에 들렀다가 분쟁 조정 2건을 해결하고 B급 던전 하나를 조사하고 온 알파조.

오늘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협회 본부로 다시 돌아온 그들은 집에 가지도 못하고 협회 수면실에서 눈을 붙이고 온 참이었다.

피곤한 와중에 협회장에게 불려 살짝 짜증도 나 있던 상태.

한기성이야 부자지간이니 그렇다 치지만, 이태성과 유인하는 딱히 불려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물론 한기성과의 결혼을 은근 바라고 있는 유인하에게는 협회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이유가 있긴 했다.

“대신 알파조에서 베타조가 맡았던 C급 던전 조사를 좀 맡아주게. 괜찮은가?”

“당연합니다! 완전 여유지요!”

헌터 분쟁 조정과 A급 던전만 사라져도 알파조의 일의 절반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C급 던전?

A급 헌터에게는 뭐 조금 험한 나들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솔로 토벌도 가능한 C급 던전 조사 정도야 혼자서도 하루 만에 여러 개를 끝낼 수도 있었으니까.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특임반장님.”

잔뜩 날을 세우던 어제의 모습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구세주를 보는 것마냥 태운을 바라보는 알파조.

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힘들었나 보네.’

동석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푹 쉬었다.

“행정부서 직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과 휴일이 보장된다지만… 전투부서 직원들을 챙겨주지 못해 항상 참으로 미안했어. 델타조는 크루로 돌며 휴일이 있지만 감마조부터는 거의 쉬질 못했거든. 알파조가 특히 그런 점이 심했고… 특임반장 덕에 전투부서의 일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게 되었네.”

태운을 바라보는 동석의 눈빛이 한없이 깊어졌다.

“다시 한번 협회와 함께 해줘서 고맙네. 특임반장. 정말 자네에게는 여러모로 너무나 많이 도움받고 있어.”

태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마우시면 이렇게 밥이라도 자주 사주시죠. 참고로 전 딱히 가리는 게 없습니다.”

동석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허허허허! 당연하지! 아주 풀코스로다가 식고문을 해주지! 내가 아는 맛집이 참 많은데…….”

그때,

삘릴리 ~

동석의 전화가 울렸다.

“아 잠시만 실례하지.”

동석은 잠시 손바닥을 들어보인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협회장 한동석입… 뭐?”

전화를 받는 동석의 표정이 삽시간에 심각해졌다.

“음, 음. 알겠네, 음. 내 좀 이따 다시 전화하지.”

급히 전화를 끊은 뒤,

삐릭 ―

동석은 곧바로 TV를 틀었다.

“…무슨 일입니까?”

심각해진 동석의 모습에 이태성이 살짝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때, TV에서 다급한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지금 163빌딩이 보이는 다른 건물 옥상에 올라와 있습니다! 거대한 불길이 치솟으며 뿜어낸 연기로 인해 일대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특임반장.”

“네.”

사태를 파악한 태운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혹시 가능하겠나?”

동석의 걱정스런 목소리.

벌떡 ―

하지만 태운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능해야지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 163빌딩.

하늘과 가장 가까운 구조물 중 하나인 그 건물에서,

웨에에에에에에엥 ― !

초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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