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성장통이 너무 아픔 (4)
화재 발생 20분 경과.
“여보오오오!”
“정운아아아아! 어떡해애애애!”
“흐아아아악! 안에! 안에 우리 가족이 있다고!”
화재가 난 빌딩이 아닌 바깥에서도 생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163빌딩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가족들, 혹은 방문자들의 가족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와 고함 소리.
현장으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게 바리케이트를 친 경찰들이 연신 진땀을 빼고 있었다.
“접근하시면 안 돼요! 화재 진압에 방해가 됩니다! 이러시면 더 구조가 힘들어져요!”
“여러분, 제발 진정하세요!”
경찰들도 알았다. 이 사람들이 진정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이 현장에 개입하면 무고한 희생자들이 더 나오게 될 테니까.
가족들을 구하겠다고 저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들도 다수 나올 것이었다.
“비켜! 비키라고! 우리 딸 목숨 당신들이 책임질 거야! 비켜어어!”
“재민아… 무사해야 해. 제발……!”
“경찰 아저씨, 저기 제 남자친구가 있어요… 들여 보내주세요… 네? 제바아알… 저 가야 해요…! 저기 가야 한다고, 씨X!!!”
태초의 혼돈이 이러했을까.
바리케이트를 친 채 버티고 선 경찰들도 상황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이들을 막아섰다는 죄책감, 그와 동시에 제어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혐오감 등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지나가겠습니다.”
사람들이 뒤엉킨 인파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런 난리통에도 사람들의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그 선명한 목소리에 어떻게든 앞으로 가겠다고 애를 쓰던 사람들이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
순간 일대가 잠잠해졌다.
* * *
저벅 저벅 저벅 ―
조금은 다급해 보이는 걸음걸이.
네 명의 남녀가 현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세 사람은 익히 알려진 사람이었다.
‘헌터 협회 알파조!’
‘이태성이다!’
헌터 협회의 최대 전력이라고 알려진 알파조.
비록 협회가 길드에 비해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어떤 길드에 들어가더라도 대우받을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정적에 휩싸인 이유는 또 따로 있었다.
협회 최강이라는 알파조의 선두에서 걷고 있는 남자.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옛날 드라마에 등장했던 것과 비슷한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은 뭐랄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엔 그 정도뿐.
그들은 하얀 가면을 쓴 남자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몇몇 경찰들이 반응하기 전까진.
“특임반장님!”
하얀 가면의 남자를 본 경찰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특임반장?
사람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띄워졌다.
‘군부대 특임대인가……?’
‘경찰 관계자……?’
방금까지도 잔뜩 굳어있던 표정의 경찰들이 저렇게까지 환한 표정으로 맞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한 상사나 관계자라고 하기엔 너무 긍정적인 반응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매탈?”
“……!”
“……!”
혼란스러워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이매탈……!’
‘천안시의 영웅!’
‘그래! 협회 직원이라고 했지!’
‘가면을 바꾼 건가?’
얼마 전 볼리베어 검거 당시 경찰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는 헌터 협회 특임반.
하지만 해당 사건을 해결할 때 특임반장의 모습을 직접 본 이는 경찰들과 범인들 뿐이었으니 일반 시민들이 잘 모를 만도 했다.
저벅저벅 ―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스슥 ―
몰려있던 사람들이 마치 홍해처럼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꾸벅 ―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숙이는 특임반장.
척 ―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사람은 경찰이 친 바리케이트 선까지 도달했다.
스윽 ―
그러자 바리케이트 뒤에서 나오는 한 사람.
이 구역을 담당하는 책임자, 박 경위였다.
“트, 특임반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특임반장을 대하는 경위의 태도가 깍듯했다.
어째서?
특임반장이 계급이 더 높아서?
아니, 애초에 일반 경찰과 헌터 협회는 별개의 집단인데다가 협회 직원은 적어도 다른 공무원들 사이에서 완전한 공무원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반 사회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과 헌터 사회의 치안을 담당하는 헌터 협회는 역할까지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서로 과도한 예를 보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꿀꺽 ―
경찰이 특임반장을 반김과 동시에 깍듯하게 맞이하는 이유?
단순했다.
‘무, 무서워!’
볼리베어 일당은 헌터가 아닌 일반인 범죄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마력을 사용하여 제압하는 건 불가능.
그런데 특임반장이라 불리는 이 하얀 가면의 사내는 수십 명이나 되는 그들을 마력도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때려잡은 것이다.
―…미친?
태운의 바디캠에 찍힌 영상을 확인한 경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회칼, 쇠파이프, 일본도, 도끼 등등.
총기 반입이 어려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흉기들이란 흉기는 전부 들고 달려드는 수십 명의 범인들을 맨몸으로 제압하는 태운의 바디캠 영상은 그야말로 판타지 액션 영화가 따로 없었다.
그 엄청난 태운의 바디캠 영상은 몇몇 간부들의 결정에 따라 경찰 격투술 교본 실전 영상으로 꼽히게 되었고, 단 며칠 만에 신입을 포함한 현직의 거의 모든 경찰이 그 영상을 보게 되었다.
경찰들의 반응은 4가지 케이스로 나뉘었다.
첫 번째, 단순히 감탄하는 케이스.
두 번째, 열렬한 팬이 되는 케이스.
세 번째, 질투하는 케이스.
네 번째, 두려워하게 되는 케이스.
그중 특히 젊은 경찰들은 두 번째 케이스가 많았다.
남경과 여경 구분 없이 대부분의 젋은 경찰들은 영상을 본 이후 특임반장의 팬이 된 것이었다.
반면 박 경위는 네 번째 케이스였다.
‘말로만 듣던 인자강이 진짜 있을 줄이야…….’
헌터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싸우는 것이 업인 사람들이라 일반인들에 비해 신체 능력이 더 좋고 싸움을 더 잘하긴 하겠지만,
‘흉기를 든 수십 명을 일방적으로 뚜까패는 건 차원이 다르지!’
눈앞의 이 하얀 가면을 쓴 남자는 그냥 어나더 클래스였다.
그렇게 잔뜩 긴장한 박 경위가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그때,
“사람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특임반장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예?”
* * *
박 경위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헌터가 왜 일반인 구조에 참여하지?
브레이크도 아닌데?
싸움을 엄청나게 잘하니 볼리베어 사건은 뭐 마력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치겠지만,
‘여긴 화재 현장인데?’
거기다 단순한 화재도 아니고 초대형 화재다.
인간 본연의 능력으로는 불을 견딜 수 없는 것이 진리이자 이치.
개입한다면 어쩔 수 없이 마력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되면 벌어지게 될 일들을 특임반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박 경위는 혹시 몰라 그의 말을 되물어보았다.
“사람들을 구하러 오셨다고요?”
“예, 시간이 없으니 빨리 비켜주시겠습니까?”
박 경위의 사고가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특임반장이 구조를? 특임반장은 헌터인데? 헌터가 구조를? 어떻게? 마력 없이? 응? 화재 현장인데? 불이 저렇게 큰데?’
스윽 ―
박 경위의 대답이 늦어지자 태운은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자, 잠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 경위는 다급히 특임반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특임반장님은 헌터이시지 않습니까! 설마 저 안에서 마력을 사용하시겠다는 겁니까?”
박 경위의 말에 태운의 뒤에 서 있던 알파조 3인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도 궁금했으니까.
결국 오는 내내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던 태운이었으니까.
설마 진짜로 마력을 사용할…
“네, 사용할 겁니다.”
…리가 있네?
알파조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깃들었다.
“저, 저기? 특임반장님? 진짜로요?”
당황한 한기성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와.정.말.대.다.나.다.”
너무 어이가 없어 영혼을 잃어버린 유인하가 뒷목을 짚은 채 비틀거렸다.
이태성은 다급히 박 경위와 특임반장 사이에 끼어들었다.
“특임반장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방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따라오긴 했지만, 이건 정말 아닙니다. 여기가 무슨 산골짜기인 줄 아십니까? 도시 한복판입니다. 그런데 마력을 사용하시겠다니요?”
물론 전력으로 쓰지 않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근데 저 불을 보라.
전력으로 쓰지 않고 배기겠는가?
게다가 이태성이 알기로 특임반장의 고유능력은 번개였다.
불을 끄는 것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능력.
결국 안에 들어가서 구하겠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몸을 강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특임반장은 최소 S급으로 평가받는 이였으니 전력으로 강화하지 않더라도 괜찮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차는 있어도 전력이 아니라고 해도 마력입자가 나오는 건 기정사실.
피해가 어디까지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이태성은 태운을 보낼 수 없었다.
“돌아가시죠. 특임반장님. 현장은 일반 전문가분들께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끄덕끄덕 ―
뭔가 이태성의 뒤에 숨은 꼴이 된 박 경위가 고개만 내민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 그러시죠. 특임반장님.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잘못하다간 저 화재 이상의 대참사가…….”
“제가.”
낮게 가라앉은 태운의 목소리가 박 경위의 말을 끊었다.
분명한 노기가 깃든 목소리였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왔을 것 같습니까?”
무시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자꾸만 지체되는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지나가겠습니다.”
“안 됩니…….”
툭 ―
쿠당!
불도저처럼 굳게 밀고 나아가는 태운의 앞길을 막아서려던 이태성과 박 경위가 태운의 몸에 밀려 나동그라졌다.
“……!”
이태성을 비롯한 한기성과 유인하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명백하게 둘 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 협회 최강자였던 태성이 형이 저렇게 힘없이 밀렸다고?’
‘태성 오빠가… 맨몸으로도 밀렸어?’
척 척 척 ―
경찰들이 옆으로 물러나며 바리케이트를 열어주었다.
“부탁드립니다. 특임반장님.”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순경 하나가 용기를 내어 작게 목소리를 냈다.
끄덕 ―
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잘 막아주세요.”
“예!”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던 경찰 기동대가 마치 전장에 나서기 직전의 군대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어느새 단숨에 젊은 경찰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특임반장이었다.
파앗 ― !
기동대의 힘찬 대답을 들은 태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엇!”
그 모습에 알파조는 허둥지둥 달려와 혹시나 마력입자가 새어 나왔을까 태운이 사라진 자리를 둘러싸고 마력을 감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어, 없어? 하나도?’
‘말도 안 돼!’
분명 신체 강화를 사용해 빠르게 이동한 것이 분명함에도 태운이 사라진 자리에는 마력 입자 한 톨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세 사람.
“…오늘 너무 많이 놀라는 것 같은데.”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요.”
스윽 ―
두 사람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한기성은 불타고 있는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직 진짜 놀라야 할 건 따로 있을 것 같지만 말이죠.”
한기성의 말에 두 사람의 시선도 163빌딩을 향했다.
“부디 한 번 더 크게 놀랄 수 있기를.”
화재 발생 25분 경과.
마침내 현장에 특임반장이 도착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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