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다들 성장하고 있음 (2)
서울 불곡산.
E급 던전 ‘괴물 여치의 숲’.
“하아… 하아…….”
찌르르르 ―
몸집이 거대한 호랑이만큼이나 큰 괴물 여치 2마리가 한 남자를 앞뒤로 둘러싸고 있었다.
파앙 ― !
뒤에 있던 괴물 여치가 튼튼하고 육중한 뒷다리로 단숨에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흡!”
남자가 급히 뒤로 돌아 허리를 뒤로 젖히며 괴물 여치의 공격을 피해냈다.
슈칵 ― !
사람 팔뚝만 한 거대한 턱이 남자의 배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푸악!
후두둑 ―
남자를 스쳐 지나간 괴물 여치가 배에서 내장을 쏟아냈다.
남자가 자신의 위로 지나가는 괴물 여치의 배를 검으로 갈라낸 것이다.
찌르르르르 ―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곤충들이 그렇듯,
사삭 ―
놈들은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이상, 거의 정상적인 상태나 다름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찌르르르르 ―
하지만 내장을 쏟아낸 괴물 여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달았다.
피시시시시 ― !
곤충답지 않게 화가 난 듯 날개를 거칠게 비비는 괴물 여치.
파앙 ― !
파앙 ― !
이번엔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차라리 호랑이 두 마리가 달려드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호랑이만 한 여치가 달려드는 모습은 생리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파밧!
마력으로 강화한 두 다리가 남자의 신형을 달려드는 두 마리의 사이로 이끌었다.
휘리리릭 ― !
쌍검을 든 채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는 남자.
콰사사사삭!
바람개비 같은 남자의 공격에 두 여치의 몸통이 걸레 조각처럼 찢어졌다.
쾅! 콰앙!
달려들던 그 속도 그대로 저만치 땅에 처박히는 두 괴물 여치.
탁
반면 남자는 가볍게 지면 위에 착지하고 있었다.
스윽 ―
“확실히 너도 참 난 놈이다.”
조금 떨어진 곳, 거대한 풀떼기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 중년인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헌터사관학교 실전반의 교관, 이철민이었다.
“후우…….”
그리고 방금 두 괴물 여치를 순살한 남자, 유강천은 호흡을 고르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1학기가 끝나며 사실상 이론 수업 커리큘럼이 끝나버린 사관학교.
2학기가 시작되고, 생도들은 하나같이 말 그대로 강해지기 위해서 매일매일 구르고 있었다.
기초반은 매일 5시간의 신체 단련 이후 나머지 시간 동안 마력 호흡 수련을, 심화반은 매일 6시간의 신체 단련 이후 나머지 시간 동안 마력 호흡 수련을 했다.
모든 건 실전반에 오르기 위해서.
매주 체력장을 치르는 기초반과 심화반 사람들은 매일매일을 근육통과 싸워야 했다.
반면, 실전반은 매일 5시간의 대련 이후 나머지 시간 동안은 방학 때처럼 던전을 드나들고 있었다.
던전을 도는 것만큼 마력 수치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런 실전반 중에서도 다른 4명과 차이가 많이 나게 되어 따로 던전을 돌고 있는 강천.
그렇다고 해서 강천의 실력이 태운만큼 마음 놓고 솔로 레이드를 돌 정도로 압도적이진 못했기에 철민은 오전 반나절은 강천과 함께, 그리고 오후 반나절은 나머지 4명과 함께 던전을 돌았다.
‘거의 D급에 가까운 괴물 여치 2마리를 부상 하나 없이 홀로 이기다니… 권태운 놈만 없었으면 너만큼 뛰어난 인재도 없었을 거다.’
철민은 아직도 힘겹게 F급 던전을 돌고 있는 다른 4명과는 다르게 벌써 E급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던전을 공략하는 강천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뛰어나면 딱 이 정도로 인간미 있게 뛰어나야지. 어후, 그놈은 정말 인간미가 없다니까…….’
불현듯 태운의 생각이 난 철민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괴물 같은 놈.’
최근 태운의 활약상을 모두 알고 있는 철민은 매번 자신이 가진 상식이 파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아니 나한테까지 숨기는 게 있었을 줄이야. 그건 또 무슨 능력이래?’
철민이 태운의 활약상이 담긴 영상을 떠올리던 그때,
“하핫.”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강천이 웃음을 흘렸다.
별안간 갑자기 강천이 웃음을 흘리자, 철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싸우다가 머리 얻어맞았냐? 왜 갑자기 웃고 난리야?”
철민이 다소 거칠게 반응했지만,
씨익 ―
강천은 뭐 좋은 일이라도 생긴 듯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교관님, 저 1차 각성했습니다.”
“…뭐?”
실전반의 독보적인 에이스 유강천.
마침내 그가 입학 후 반년 만에 마력 수치 1,000을 넘기며 첫 번째 각성을 맞이한 것이었다.
* * *
태운을 제외하면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으로 빠른 성장 속도였다.
[상태창]
이름 : 유강천
능력 : 무기(냉병기/?/?/?)
마력 : 1,004
“음… 첫 번째 능력은 냉병기? 뭐, 예상대로네요. 이제 따로 검은 필요 없겠네.”
“……!”
강천의 말을 들은 철민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했다.
‘세계 두 번째 유니크형 능력자!’
졸업할 때 즈음 되면 외부 고위 관계자들이 너도나도 강천을 스카웃하러 올 것이 분명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도.
물론 국내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 길드들에게 우선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긴 했다.
‘첫 번째 유니크형 능력자인 최서아도 그런 식으로 청룡길드로 스카웃되었지.’
이왕이면 강천이 길드로 가지 않고 태운이 들어간 협회에 갔으면 했던 철민은 넌지시 강천을 떠보았다.
“진짜… 너는 확실히 최소 4대 길드는 들어가겠다.”
“예?”
강천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두 눈을 끔뻑이며 철민을 쳐다보았다.
너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강천의 눈빛에 철민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어…? 뭐, 뭘 그렇게 쳐다보냐? 4대 길드가 뭐 어때서?”
“저 길드 안 들어갈 건데요?”
화악 ―
순간 철민의 얼굴에 은은한 화색이 돌았다.
“그럼? 뭐 용병이라도 뛰려고?”
“아뇨, 협회 갈 건데요. 태운이 형 도와줘야죠. 요즘 열심히 하던데.”
흠칫!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강천의 말에 철민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뭐야… 너 알고 있었어?”
씨익 ―
강천이 밝게 미소를 지었다.
처음 입학할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밝아진 모습.
태운을 비롯한 실전반 동료들 덕에 활기를 되찾은 강천의 모습은 누가 봐도 보기에 좋았다.
“그럼요. 제가 형 격투기 선수 시절부터 덕질만 몇 년인데. 그것도 모를까 봐요? 그리고 저 형이랑 요즘도 연락 주고받거든요. 아마 아는 사람은 저랑 교관님 말고는 없을… 아!”
말을 하던 강천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교관님. C급 던전에서도 성장 못 하게 되면 저도 조기 졸업시켜주는 거죠?”
“…….”
강천의 김칫국에 철민은 할 말을 잃었다.
‘이제 겨우 1차 각성한 놈이 무슨 벌써부터 2차 각성을 보고 있냐.’
C급 던전에서 성장을 못 하게 된다는 말은 최소 B급 헌터에 오른다는 의미.
5,000이라는 마력 수치가 그렇게 쉬웠으면 개나 소나 B급 헌터가 되었을 것이었다.
“이제 기기 시작한 놈이 벌써부터 날 생각만 하고 있네. 얌마! E급부터 혼자 할 수 있게 되고 말해!”
“에이~ 솔직히 오늘도 계속 혼자하고 있었는데요? 교관님은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셨잖아요.”
사실이긴 했다. 딱히 철민이 도와주지는 않았으니까.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이 있을까 싶어 같이 들어왔을 뿐.
‘…재수 없는 놈들.’
철민은 생각했다. 이래서 재능충들이 싫다고.
문득 철민은 재능충들이 사실 곤충형 몬스터들의 종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 * *
“…….”
“…….”
후룩 ―
델타조 직원들이 어느 카페에 모여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
평화로웠다.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도 선선한 것이 날씨도 참으로 좋았다.
“…이거 참 적응 안 되네.”
델타조의 조장, 김인국이 작게 중얼거렸다.
작은 혼잣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델타조원들 4명은 조장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몇 주.
전투부서 직원들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업무 강도가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자세히 말해보자면,
알파 ― A, B급 던전 조사 및 헌터 관리.
베타 ― C, D급 던전 조사.
감마 ― E, F급 던전 조사.
델타 ― 던전 수색 및 마력 측정.
이랬던 업무 편성에서,
알파 ― B, C급 던전 조사.
베타 ― D, E급 던전 조사.
감마 ― F급 던전 조사 및 마력 측정.
델타 ― 던전 수색.
이렇게 변했다.
특임반장이 알파조의 일을 덜어내고, 알파조가 베타조의 일을 덜어내고, 베타조가 감마조의 일을 덜어내고, 감마조가 델타조의 일을 덜어내게 된 것이다.
델타조 밑은 없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델타조는 새롭게 맡은 일 없이 일만 덜어지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특임반장의 등장으로부터 비롯된 일.
물론 업무 강도가 감소한 정도로 따지자면 알파조가 제일이었지만, 델타조도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총 67명으로 이루어진 델타조는 5인 1조로 세분화하여 일하는데, 총 13개 조 중에서 8개 조가 돌아가며 각 도를 맡아 인적이 드문 지역들을 수색했다.
나머지 5개 조는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마력 수치를 측정하고 던전이 발생한 인근 지역을 통제하는 일을 했고, 남은 2인 중 하나가 알파조의 차량 운전 및 관리 지원을, 그리고 마지막 1명은 델타조 내에서 순번을 돌아가며 쉬었다.
그런데 특임반장이 들어오고 업무 편성이 바뀌면서 델타조는 인원이 남아돌게 되었다.
알파조에 지원해주던 한 명도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어져 총 67명 중 하루에 던전 수색에 필요한 40명만 일하면 되었던 것.
즉, 27명이 남아돌게 된 것이다.
“…….”
그러나 매일매일 일에 치여 살던 이들이 갑자기 여유로워졌다고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매일매일 비번을 받은 27명 중의 델타조 중 무려 20명이 다시 5인 1조를 이루어 본부 근처 카페에서 비상호출에 대비하여 대기하게 된 것이다.
물론 굳이 대기할 필요는 없었다.
비상호출은 거의 브레이크 때만 걸리는데, 브레이크는 수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 한 대형 사고였으니까.
다만 그냥 마냥 쉬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델타조장 김인국을 비롯한 5인이 카페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때,
“어? 델타조장?”
카페 앞을 지나가던 한 남자가 김인국을 알아보았다.
감마조원 중 하나였다.
“엇! 안녕하십니까!”
아무리 델타조의 장이라고 하더라도 감마조의 조원보다는 지위가 낮다.
그랬기에 김인국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 살다 살다 우리가 카페에서 마주치네. 여기서 뭐 해?”
남자는 김인국과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뭐랄까, 마냥 쉬기 뭐해서 그냥 본부 근처에서 대기 중입니다. 오늘 비번이십니까?”
김인국의 물음에 남자가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어, 최근에 우리도 일이 거의 절반 이상으로 줄어서 말이야. 10인 1조로 하다가 F급 던전은 그냥 2인 1조로 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우리도 맨날 절반 가까이 놀아.”
“하하하. 이거 참 쉬는 게 어색하진 않으십니까? 저희는 어색해 죽겠습니다.”
김인국의 말에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델타조를 단번에 일깨워주었다.
“마냥 쉬는 게 아닌데 뭐. 오늘도 좀 이따 비번자들 모아서 C급 레이드 뛰기로 했어. 방금 C급 던전 신청하고 오는 길이야. 시간도 많이 생겼는데 빨리 강해져야지? 나도 언제까지 감마조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혹시 소식 들었나? 감마조장님 저번 주에 베타조로 승급하셨어. 2차 각성하셨거든. 키야 ~ 부러워 죽겠다니까?”
“……!”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지?’
할 일이 없는 게 아니었다.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델타조 직원들이라고 좋아서 언제까지나 델타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 강해지고 더 높이 올라서고 싶은 것은 헌터의 본능이자 인간의 본능.
‘이런 본능까지도 잊을 정도로 너무 오랫동안 피폐하게 지냈구나.’
김인국은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은,
씨익 ―
속이 시원해지는 한숨이었다.
드르륵 ―
앉아있던 델타조원들이 생각이 통한 듯 갑자기 모두 다 같이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흰 할 일이 생겨서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 갑자기? 어어, 그래그래. 수고해.”
다다다다 ―
갑자기 어디론가 연락하며 본부로 달려가는 델타조 사람들.
“야, 너 비번이지! 레이드 뛰자! 뭐 E급? 당연히 D급이지, 뭔 소리야!”
그리고 감마조의 남자는 카페 앞에 홀로 남겨져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할 거 없어서 대기 중이었어?”
델타조도 당연히 쉬는 날 레이드를 뛰고 있을 줄 알았던 남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왠지 신입이 안 올라오더라니, 게으름 피우고 있었구만?”
특임반장이 협회에 들어오고 어언 한 달.
여유를 찾게 된 협회 직원들의 정체되었던 성장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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