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도 진해짐 (1)
콰앙!
콰지직!
쨍그랑!
사내들의 발에 가게의 가구와 유리창들이 부서졌다.
{전부 다 부수고 끌어내!}
카가강! 캉!
수십 명의 사내의 손에 들려있는 연장들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섬뜩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쇠파이프, 야구 배트 등등.
심지어 칼과 도끼를 든 사람들도 있었다.
{너희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완전히 박살 난 가게의 한 상인이 그들을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피땀 흘려 일궈온 가게가 망가졌으니 충분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러나,
{어이… 말이 짧잖아?}
짜악!
눈가에 흉터가 나 있는 남자가 상인의 뺨을 후려쳤다.
{커헉!}
상인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아버지!}
상인의 아들이 황급히 달려와 쓰러진 상인을 감싸 안았다.
{이런… 쳐죽일 놈들이! 너희 중국에서 온 놈들이지?}
부르르 ―
아들의 안면이 파르르 떨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분노와 공포가 어우러진 복잡한 표정.
하지만 그 표정이 오로지 공포로 물들어버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악 ― !
{아아아악!}
어느새 나타난 빡빡이 남자가 회칼을 들고 상인의 아들의 볼을 그어버린 것이다.
{이거 섭섭하네. 같은 중국 동포 아니야? 왜 우리를 외지인 취급하는 거 같지? 칼로 얼굴에 그림 좀 더 그려줄까?}
{어흐흐흑!}
{대체 왜 그러세요… 살려주십쇼! 살려주십쇼!}
거리 곳곳에서 상인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질질질…….
완전히 거리를 점령한 사내들이 킬킬대며 가게 안에 숨어있던 상인들의 머리채를 잡고 거리 바깥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철푸덕!
{아아아악!}
남녀노소 상관없이 머리채를 쥐어뜯기며 가게 바깥으로 끌어내진 상인들이 울분과 함께 고통을 토해내며 거리에 엎어졌다.
인천 차이나타운.
다수의 대만 출신 상인들과 소수의 중국 출신 상인들이 모여 형성한 중국 문화 지구이자 마을.
별안간 나타난 사내들에 의해 수십 명의 상인이 거리 바깥으로 끌려 나오고 가게들이 부서졌지만, 그 와중에도 멀쩡한 가게나 끌려 나오지 않은 가게들이 있었다.
바로 중국인 상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었다.
즉, 지금 끌려 나온 이들은 모두 대만인 출신 상인들이라는 말.
바다 건너 한국에서조차 억압받게 된 대만인 상인들이 억울한 듯 두 눈에서 피가 섞인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
거리에 한데 모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인들 앞으로 사내 중 올백 머리를 한 채 실눈을 뜨고 시가를 물고 있는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 여러분, 나는 왕첸이야. 내 이름 들어는 봤을지 모르겠네. 앞으로 차이나타운 상권은 우리가 관리하려고.}
“……!”
눈물을 흘리고 있던 상인들이 왕첸의 이름을 듣고 다들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왕첸.
중국 8대 조폭 무리 중 동쪽의 용이라는 뜻을 가진 ‘동렁(dōnglóng)(東龍)’의 서열 2위인 남자였다.
중국은 국가에 의해 모든 국민의 정보가 통제되는 나라. 중국 공안이 잡지 못하는 조폭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잡지 않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을 바로 8대 조폭 무리, 팔대흑사회였다.
아무리 절대적인 권력과 힘을 지닌 중국 고위층과 공안들이라도 대놓고 하기 어려운 온갖 어두운 이면의 행동들을 대신해주는 대리자들이라고나 할까.
그 대신 그들은 어느 정도 선에서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특히, 해외에서의 활동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외국에서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일단 본토로 도망을 가면, 중국 정부는 자체 수사를 하겠다며 수사 협조를 해주지 않았으니까.
나라의 힘을 내세워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범죄 조직을 옹호하는 것이었지만, 10인의 세계급 헌터 중 2명이나 보유한 중국에게 따질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그나마 미국?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서로 부딪히는 걸 피했다.
세계 최강의 헌터 ‘제이슨’을 포함해 세계급 헌터를 무려 3명이나 보유한 미국, 그리고 세계급 헌터 2명과 세계에서 가장 많은 헌터를 보유한 중국.
서로 부딪히면 그 결과는 공멸임을 알고 있었기에 미국과 중국은 최대한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어찌 되었든 그런 팔대흑사회 중 상하이에 거점을 둔 ‘동렁’의 No.2가 인천 차이나타운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덜덜덜.
그를 알아보게 된 상인들이 잔뜩 겁에 질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리 본토에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결국 다 우리 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의 인민들 아니겠어? 우리가 책임지고 보호해줄 테니 다들 매달 한국 돈으로 보호관리비 100만 원씩만 내면 돼.}
“……!”
왕첸의 말을 들은 상인들의 표정에 다시 한번 경악이 깃들었다.
100만 원이라니? 그것도 매달?
대체 시대가 어느 때인데 조폭들에게 보호비를 낸단 말인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한 상인이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뭐?}
왕첸의 실눈이 커지며 그의 검은 동공이 드러났다.
후우 ―
빨던 시가를 입에서 빼내 연기를 내뱉으며 천천히 입을 연 상인에게 다가가는 왕첸.
희번뜩!
그의 눈엔 단순한 광기로 치부할 수조차 없는 진짜 광기 어린 기운이 어려있었다.
스윽 ―
어떻게 들여왔는지 품에서 권총 하나를 꺼내는 왕첸.
“……!”
갑작스런 총구에 놀란 상인들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꾸욱 ―
총구를 상인의 이마에 갖다 누르는 왕첸.
덜덜덜.
상인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포들이라고 좋게 좋게 가려고 했는데, 참 일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끼릭 ―
이마에 총구를 갖다 붙인 채 장전하는 소리가 상인들의 귓가를 가득 채웠다.
{꼭 본보기가 있어야 말을 듣겠다는 거지?}
{자, 잘못했습니다! 드릴게요! 100만 원, 드리겠습니다!}
덜덜 떨며 손발이 닳도록 비는 상인.
그러나 왕첸은 그런 상인을 내려다보며 비웃을 뿐이었다.
{늦었어.}
차칵 ―
왕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끄아아악!}
상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끄아아아아……?}
순간 이마에 불이라도 난 듯한 화끈함에 비명을 질렀던 상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를 매만졌다.
{…살아있어?}
“……?”
다른 상인들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바닥을 뒹굴었던 상인과 왕첸을 번갈아 보았다.
{푸하하핫! 여기 총이 있을 리가 없잖아. 워낙 총기 규제가 빡세야 말이지. 이거 라이터야.}
모두의 간담을 서늘케 한 장난치곤 실로 허무한 권총의 실체였다.
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들의 안색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비웃는 왕첸.
{어이어이, 동포들. 안색 좀 어떻게 해봐. 왜 이렇게들 하얘졌어? 누가 죽인대? 돈만 내면 된다고!}
왕첸이 낄낄대며 재밌다는 듯 상인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긴장 풀어! 응? 뭐 어떻게 안 한다니까? 그리고 너는 안색이 좀 많이 심하게 하얗…….}
누군가를 발견한 왕첸이 말끝을 흐렸다.
{…가면?}
새하얘진 안색의 상인들을 놀리던 왕첸은 그 속에 있던 새하얀 가면을 쓴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진짜 총인 줄 알았잖아.”
눈앞이 새까맣게 암전되었다.
* * *
[인천 차이나타운을 뒤집어놓은 폭동 무리 전원 검거, 중국 팔대흑사회 인물들로 밝혀져…….]
[차이나타운은 중국 땅? 어이없는 그들의 논리와 시대착오적 발상.]
[또 한 건 해냈다! 국민 해결사 특임반의 무한 질주.]
[또다시 민간 사건에 개입한 협회, 이대로 괜찮은가?]
[헌터 협회, 국가 기관 국민 신뢰도 평가 지수 84점, 한 달 전에 비해 4배 상승해… 공기업을 제외하면 전체 국가 기관 중 1위.]
대단했다.
아직 협회에 대한 불신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완전히 쇄신된 것은 아니지만, 거의 환골탈태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공업용수로도 사용 못 할 정도로 탁하고 악취가 심하게 나던 6급수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3급수 정도로 개선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대중들은 달라진 협회의 모습에 환호했지만,
까드득 ― !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이익……!”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한 여인이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특임반장…! 기어코 내 일까지 망쳐놨겠다……?”
쨍그랑!
여인이 휘두른 손에 맞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유리 조형물 하나가 산산조각 났다.
뚝… 뚝…….
유리 파편에 찔려 피가 흐르는 여인의 손.
그러나,
스르륵 ―
이내 곧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벌컥 ―
또각 또각 또각 ―
방에서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여인.
어둡고 긴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과 똑같이 생긴 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갔다.
벌컥 ― !
“오빠!”
방 안에 있던 오빠라 불린 남자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 때문에 놀랐는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다 살짝 몸을 떨었다.
“하아… 제발 노크 좀 하라고…….”
“발소리 들었잖아! 그리고 우리 사이에 무슨 노크야.”
또각 또각 또각 ―
그녀의 붉은 입술만큼이나 붉은 하이힐을 신고 그에게 다가가는 여인.
그리고는,
풀썩 ―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성의 허벅지 위에 앉아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오빠아…….”
애교와 울먹임이 조금씩 섞인 매력적인 목소리가 남성의 귓가를 울렸다.
여인의 울먹임을 눈치챈 남성은 여인의 다리를 떨어지지 않게 붙잡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남성의 물음에 여인은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남성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이거 봐봐! 얘가 이제 내 일까지 망쳤다고! 그러니까 말했잖아아~ 얘 냅두면 엄청 귀찮아질 거라고! 내 돈까지 날라 갔단 말이야!”
여성이 남성의 어깨를 퍽퍽 치며 떼를 썼다.
만약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경악을 넘어 거품을 물고 기절할 광경이었다.
그야 그녀는 국내 7명뿐인 S급 헌터 중 유일한 여성이자 주작길드의 부길드장, 이화연이었으니까.
언제나 도도하고 강단 넘치는 모습으로 인해 그녀는 단연코 여성 헌터들이 동경하는 헌터 1위에 빛나는 인물이었다.
항상 잘난 듯 으스대는 사내놈들을 S급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라 내려다보는 한국 최강의 여인.
심지어 그녀의 이명은 광전사였다.
언제나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미친 사람처럼 싸우는 그녀의 패기와 광기는, 같은 S급 헌터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꺼려 했다.
공격력과 방어력은 평범한 A급 헌터에게도 살짝 못 미치는 정도였지만, 체력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그녀였으니까.
게다가 그녀의 고유 능력 ‘초재생’은 그런 그녀의 체력을 극대화해주었다.
어쨌든 그런 그녀가 누구에게 애교를 부린다는 것은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장면인 것이다.
남성은 이화연이 내민 핸드폰 화면 속 기사들을 슬쩍 본 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기회를 보고 있으니까.”
그러자 이화연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언제까지 기회만 봐야 하는데! 나는 얘 천안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얘 때문에 우리 길드 이미지가 더 안 좋아졌잖아! 우리가 뭐 안 가고 싶어서 안 갔냐고! 하필 그날 주력 헌터들이랑 다 같이 던전에 들어갔던 것뿐인데!”
그러자 남성은 그런 이화연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래그래, 우리 화연이 힘들었구나. 오빠가 화연이 마음, 다 알지. 근데 정말 미안해. 아직은 딱히 놈을 공격할 명분이 없어. 그리고 여론 분위기상 시기도 좋지가 않아.”
남자가 살짝 슬픈 미소를 지으며 이화연을 달래주자, 이화연은 금세 마음이 사르르 녹아 사라진 듯 표정을 풀었다.
폭 ―
“…화내서 미안해.”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이화연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자신의 감정을 유일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자 그녀의 버팀목인 그가 슬픈 표정을 짓자 마음이 아파 온 것이다.
“괜찮아. 오빠가 힘이 부족해서 미안해.”
“무슨 소리야, 오빠. 오빠만큼 강한 사람이 어딨다고.”
이화연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난 오빠 믿어. 나한테 오빠밖에 없으니까.”
“…고마워.”
자신을 끌어안은 이화연을 함께 끌어안은 남성, 도명조의 입가에,
히죽 ―
오싹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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