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망나니들이 포장지를 찢음 (1)
부우우웅 ―
검은 승용차가 떠나가고,
사삭 ―
산 중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룡길드의 부길드장, 민호성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도명조와 낯선 남자가 서 있던 자리로 가보는 민호성.
“…….”
그들이 있던 자리를 둘러봤지만, 그 거대한 불길이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주위엔 그을린 흔적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소문이 사실이었던 건가.’
염왕 도명조.
그의 불은 태우고자 하지 않는 것을 태우지 않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화염뿐만이 아니라 불꽃이 뿜어내는 열기마저도 통제할 수 있는 수준.
그것이 바로 주작길드의 길드장, 도명조의 실력이었다.
“쳇.”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민호성이 혀를 찼다.
대화 내용은커녕 누굴 만났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불꽃의 벽이 사라졌을 땐 도명조 혼자뿐이었으니까.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남자는 증발이라도 했는지 그 어떤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를 꾸미고 있어.’
민호성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천용이 형은 어떻게 알았을까? 도명조가 무언갈 꾸미고 있을 거라는 걸.’
―네가 도명조를 좀 감시해줘야겠다.
―응? 주작길드장? 갑자기? 그 사람은 왜?
―…있어 그런 게. 그니까 뭐 수상한 짓을 하는 건 없는지만 좀 감시해줘. 뭔가 알아내면 바로 연락해주고.
민호성은 곧바로 핸드폰을 켰다.
그러나,
“아놔.”
산속이라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스윽 ―
민호성의 눈에 남자가 타고 왔던 무음 오토바이가 들어왔다.
“…오케, 택시비 굳었고.”
슈아아악 ― !
민호성은 망설임 없이 무음 오토바이를 타고 산자락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떠난 산 중턱.
낯선 남자가 녹아내렸던 그 자리에서,
꿀렁.
흙바닥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꿈틀대기 시작했다.
* * *
왕십리 포장마차 거리.
그중 한 포장마차에,
타악!
“크으으으!”
8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다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연거푸 소주를 들이켜는 이들.
그들은 바로 얼마 전 청룡길드와 백호길드에서 퇴출된 헌터들이었다.
“이번 거 나누면 얼마지?”
한 단발머리의 여성 헌터가 소주잔을 비우며 8명 중 대장을 맡은 A급 헌터, 류정치에게 물었다.
“음? 가만있어보자… B급 마정석 305kg, 1억 5,250만 원… 몬스터 부산물 3천만 원… 총 수입 1억 8,250만 원.”
핸드폰 계산기를 꺼내 두드리는 류정치.
그래도 무리 중 리더 역할이라고 정확히 돈 계산을 하는 모습이 꽤나 똑똑해 보였다.
“지출은 던전 신청비 100만 원, 채굴꾼 20명 고용비 6천만 원.”
타다닥 ―
류정치의 손가락이 연신 계산기를 두드렸다.
“1억 8,250만 원에서 6,100만 원 빼면… 1억 2,150만 원. 나는 2배로 받기로 했으니까 9로 나누면 각자 1,350만 원씩. 나는… 2,700만 원인가.”
“씨X.”
백호길드의 B급 헌터, 이수민이 욕설을 내뱉었다.
“한 달 반을 굴렀는데 1350? 하하하… 헌터 맞냐, 진짜…….”
1,350만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협회 직원들의 평균 월급에 4배 정도 되는 거액.
하지만 그들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길드 헌터, 특히 4대 길드에 속한 헌터들의 평균적인 수입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니 수년간이나 그런 수입을 얻으며 살아왔던 그들로선 1,350만 원이라는 거액이 푼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확실히 용병 수입이 길드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네. 다들 용병은 왜 하는지 몰라.”
류정치의 말에,
“그래도 형님 덕에 B급 돈 게 어디요. C급 던전 돌았으면 이것도 안 나왔을 거요.”
홀짝 ―
류정치와 함께 청룡길드에서 쫓겨났던 박성국이 술을 홀짝였다.
류정치를 제외한 다른 7명은 모두 B급 헌터.
그나마 A급 헌터인 류정치가 있었기 때문에 B급 토벌이 가능했던 그들이었다.
그래서 류정치가 두 사람 몫을 가져간 것도 있었고.
그때, 단발머리의 유다영 헌터가 표정을 찌푸렸다.
“어…? 잠시만… 우리 C급 돌았으면 더 번 거 아니야?”
“음?”
“왜 계산이 그렇게 되지?”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유다영은 자신도 핸드폰으로 계산기를 켰다.
“봐봐. 보통 마정석 300kg 정도 나오니까 300kg이 나왔다고 쳤을 때, C급이면 kg당 25만 원이니까… 마정석 7,500만 원. 거기에 부산물 대충 1,500 잡으면 총 9천만 원. 채굴꾼 똑같이 고용한다고 치면 6천 빼도 3천만 원! 솔로 레이드는 조금 빡세니까 2명씩 돈다 쳐도 1인당 1,500씩 가져가는데?”
“…….”
“…….”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류정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되게 근시안적이구나, 너. 한두 번, 아니 좀 더 여유 있게 따져서 대 여섯 번까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럼 마력 수치는 어쩌려고?”
“아.”
유다영은 류정치의 말에 입을 살짝 벌렸다.
“자기 수준에 맞는 던전 안 돌고 맨날 쉬운 것만 돌면 결국 도태되는 거야. 아무리 B급 헌터가 C급 돈다고 쳐도 자가 회복 한번 안 쓰고 가능할까? 그렇게 눈앞의 수익만 좇다가 몇 년만 지나 봐라, 어느새 E급 던전 돌고 있는 너를 발견할 거다.”
거기에 박성국이 말을 거들었다.
“그리고 계산에 하나가 빠졌잖아. 아무리 C급이라도 2명이서 돌면 토벌 기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지. 그렇다고 채굴꾼 수를 줄였다간 채굴 기간이 더 오래 걸려. 결국 방금 네 계산은 월 1,500이 아니라 두 달에 1,500인 거야. 두 달 동안 1,500 벌래, 아님 한 달 반 동안 1,350 벌래?”
“뭐가 더 많은 거야?”
“하아…….”
이수민이 한숨을 쉬며 유다영의 목을 끌어안았다.
“괜찮아. 나는 그래도 다영이 좋아해. 귀엽잖아.”
“자, 잠깐만! 무슨 의미야, 너!”
“푸하하핫!”
겉으론 나름 즐겁게 투닥이는 8명의 헌터들.
그러나 속으론 전부 다른 생각들로 가득했다.
‘시X,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냐고!’
‘X 같네, 진짜. 아 스트레스 받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냐, 시X. 정호백 그 새X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겉으론 가면을 쓴 채 속으로는 욕설을 되뇌고 있는 그들.
그래도 보이는 분위기 자체는 나름 화기애애했기에 술자리는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죄송한데요. 조금만 목소리 좀 낮춰주시겠어요? 다른 손님들도 계셔서…….”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다가와 양해를 구했다.
“엉?”
그러자 얼굴이 살짝 빨개진 류정치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뭐어? 우리 목소리가 시끄러워? 아니 마음대로 떠들지도 못하면 그럼 시X 술은 왜 마시냐? 어? 뭘 봐 이 새X들아! 내가 시끄러워? 우리가 시끄러워? 그럼 너희들이 어쩔 건데 이 등신 새끼들아!”
포장마차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하게 가라앉았다.
* * *
“당신들 뭐야?”
“뭘 꼬라 봐, 시X로마!”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일은 아니었다.
잠깐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 과하게 시끄러운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너희들 우리 무시하냐?”
“다 죽여버릴라, 이 시X년놈들이.”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데다가 길드에서 퇴출되어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그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리 착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터엉!
박성국이 포장마차의 천막을 세워놓은 기둥을 거세게 후려치자, 천막이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으악!”
“꺄악!”
천막 아래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들이 갑자기 내려앉은 천막 아래에 깔리며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마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어도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던전에서 싸우는 걸 업으로 삼는 헌터.
일반인들에 비해 힘이 좋은 건 당연한 것이었다.
“당신들 미쳤어!?”
한 중년인 아저씨가 천막을 헤치고 나오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짜악!
유다영의 손바닥이 아저씨의 뺨을 올려붙였다.
“지금 누구한테 덤벼?”
짜악! 짜악!
“크헉! 커헑!”
중년인은 뺨을 얻어맞으며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이이익!”
잡히지가 않았다.
딱히 뒤로 도망치는 것도 아닌데 앞의 자신보다 머리 2개는 더 작은 여자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가 않고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갔다.
“너희들 뭐 하는 놈들이야!”
퍼억!
콰당!
옆에서 지켜보던 또 다른 전 백호길드 헌터가 아저씨의 옆구리를 발로 차 밀어버렸다.
“버림받은 놈들이다, 왜.”
“아, 왜 넘어뜨려! 더 가지고 놀라 했는데!”
유다영이 신경질을 냈다.
“그럼 다시 일으켜 세워서 가지고 놀면 되잖아.”
“아, 그러네?”
유다영은 넘어진 아저씨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꾸구국 ―
‘무, 무슨 힘이……!’
넘어져 있던 중년인은 80kg가 넘는 자신을 멱살을 잡아 강제로 일으키는 여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저씨, 더 맞아야지?”
짝! 짜악! 짝!
경쾌한 박수 소리 같은 것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이런 상황들을 쭉 지켜보던 이수민이 류정치에게 다가가 살짝 귓속말을 건넸다.
“근데 우리 이래도 돼? 너무 난리 쳐놓은 거 아니야?”
“풉! 뭐 지들이 어쩔 건데? 우리 헌터야! 우리가 지금까지 얘네 눈치 봤냐? 길드 윗선 눈치 봤지?”
류정치는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듯 거칠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수민에게 다시 귓속말을 건넸다.
“아니, 막말로 헌터는 사람 죽여도 끽해봐야 벌금으로 끝나는 세상인데 뭐 문제 있겠냐?”
“알파조가 뜨면?”
“알파조가 현장 출동하는 거 봤어? 날 잡고 중재 신청하면 그때 뒷북치러 오는 거지.”
그러자 이수민의 표정이 다시 환하게 펴졌다.
“하긴 그래? 어 잠시만, 나 좀 흥분되는데?”
히죽 ―
빠악!
콰앙!
이수민은 넘어져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발로 차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커플들을 향해 날렸다.
“아악!”
“오빠!”
남자친구가 본능적으로 여자친구를 감쌌지만 날아간 의자는 안타깝게도 남자친구의 허리에 맞고 말았다.
허리를 부여잡으며 쓰러지는 남자친구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여자친구.
그렁그렁.
여자친구의 두 눈엔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한 커플 깼고~”
이수민은 마치 게임이라도 하듯이 의자를 뻥뻥 차서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으악!”
“꺅!”
빗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남학생이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코피를 흘렸고, 또 다른 여대생은 다리를 맞아 무릎을 다쳤는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삐용 삐용 삐용 ―
여기저기서 피해가 속출하고 상황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해지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도착했다.
삐이이익 ― !
“거기 뭐 하는 겁니까!”
순찰차 2대에서 내린 경찰 4명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왔다.
하지만 술도 마셨겠다, 감정까지 달아올라 이미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그들이었다.
콰악 ― !
류정치는 망설임 없이 선두에서 달려오던 경찰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뭐? 어쩔 건데? 우리 헌터야. 수틀리면 확 마력 방출해버린다?”
류정치의 말에 경찰들을 포함해 주위를 멀게 빙 둘러싼 채 이 상황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깃들었다.
“허, 헌터……?”
“헌터가 왜……?”
가장 존경받는 직업 1위.
가장 인기 있는 직업 1위.
가장 명예로운 직업 1위.
가장 유망한 직업 1위 등등.
각종 수식어로 헌터라는 직업을 둘러싸고 있던 화려한 포장지가,
찌직…….
마침내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핫!”
어느 버림받은 망나니들에 의해서.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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