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망나니들이 포장지를 찢음 (2)
그들이 가진 어둠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언론과 사회는 그 소수의 피해자들을 단지 헌터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들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급진적 성향의 부적응자들로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이미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고위 헌터들에 의해 입막음을 당했고,
“이, 이래도 됩니까?”
“괜찮아, 괜찮아! 아니 뭐 이런 걸로 잡혀가는 헌터 봤어?”
그중 몇몇은 그들에게 물들어버리기도 했다.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사회적인 눈치와 이렇다 할 남은 증거가 없었기에 조용히 피눈물만을 삼켜야 했던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알았기에 일말의 꼬투리도 잡히지 않으려 아슬아슬하게 암암리에 일들을 저지르던 몇몇의 악질 헌터들과,
자신들의 이미지까지 손해를 입을까 두려워 언론의 이야기를 방패 삼아 그저 침묵했던 나머지 헌터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고 있는 것만 같던 그들 간의 긴장감이,
“끄윽…….”
지금 이 자리에서 갈가리 찟겨져 나가고 있었다.
퍼억 ―
류정치의 주먹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한 명의 턱을 후려쳤다.
털썩 ―
힘없이 쓰러지는 경찰.
“미, 미친…….”
“헌터가… 경찰을 팼어……!”
처컥 ―
그러자, 뒤따라 달려오던 남은 경찰 3명이 권총과 테이저건을 꺼내 들었다.
“손 들어!”
자신을 겨누고 있는 권총들과 테이저건을 바라본 류정치가 피식 코웃음을 흘렸다.
“그거 맞아도 우리 안 죽어. 그리고 권총은 실탄도 없으면서 뭐하러 겨누고 있어?”
짜악! 짜악!
아직도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뺨을 후려치며 스트레스를 풀던 유다영도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경찰 아저씨들 웃기네. 헌터가 왜 초인이라 불리는데? 머리 쏴서 즉사시킬 거 아니면 집어넣어. 아니면 이 아저씨 얼굴 잡아 뜯어 버린다?”
꿀꺽 ―
침을 삼키는 경찰 중 한 명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다, 다들 미쳤어!’
눈앞에 서 있는 8명의 헌터.
8명 전부 눈이 맛이 가 있었다.
취한 것도 취한 거지만 마치 그들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 자체가 뜯겨져 사라진 느낌.
그래, 지금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에서 빠져나온 8마리의 맹수들 같았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동물원 우리 안의 맹수들이 자신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알고 있었다.
그 맹수들과 자신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동물원 우리가 있기에 자신들은 안전하다는 걸.
그렇기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동물원 우리 안의 사자나 호랑이를 보고 멋있고 신기하다며 환호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맹수들과 자신들 사이의 우리가 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
“으… 으아아아아악!”
동물원은 그저 맹수들의 사냥터이자, 자신들은 한낱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이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전부 움직이지 마!”
우뚝 ―
A급 헌터, 류정치의 고함에 다들 다리가 얼어붙고 말았다.
그 모습들이 마치 호랑이와 사자의 포효에 몸이 얼어붙은 초식동물들 같았다.
“여기서 한 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마력을 방출할 거다. 목숨 걸고 5%짜리 도박해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한번 움직여봐.”
“……!”
마치 단체로 시내 한복판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단체로 어떤 의미를 가진 플래시몹이라도 하는 줄 알았으리라.
까딱 ―
류정치의 고갯짓에 나머지 7인이 움직였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핸드폰을 전부 수거하는 7명.
그리고 한데 모아놓고는,
콱! 콰직!
짓밟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SNS에 퍼지면 좀 곤란하거든.”
류정치가 실실거렸다.
꼴꼴꼴꼴 ―
바닥에 나뒹굴던 소주병을 잡아 단숨에 들이켜는 류정치.
“자… 이제 어떡할까? 응? 다 죽여버려? 그래야 목격자가 없지.”
덜덜덜.
류정치의 말에 얼어붙은 사람들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유다영에게 뺨을 수십 차례나 맞고 쓰러진 중년 아저씨가 바닥에 엎어진 채 신음하듯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슬쩍 ―
그들과 대치하고 있던 경찰들 중 가장 뒤에 서 있던 경찰이 슬쩍 눈동자만을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언제 오시는 거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미친 헌터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움직임 없이 눈동자만을 굴리던 순경.
그러나,
“왜 눈동자를 굴리실까? 뭐 찾는 거라도 있나?”
어느새 다가온 유다영이 경찰의 눈앞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
테이저건을 겨눈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순경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응? 응? 경찰 아저씨, 뭐 찾냐고~”
탁 ― 탁 ― 탁 ―
유다영은 순경이 들고 있는 테이저건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순경의 볼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크윽!”
“아저씨, 말 안 해? 나 세게 친다 진짜?”
그녀의 손이 높이 들어 올려졌다.
눈빛이 맛이 간 그녀의 모습에 순경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에이씨! 말하란 말이야!”
철썩!
뺨을 맞는 거친 소리와 함께,
“커헉!”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응?’
자신이 맞을 줄만 알았던 순경은 예상치 못한 소리에 살며시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뺨이 빨갛게 부어오른 채 쓰러져있는 단발머리의 여자.
그리고,
“특임반장님!”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자신의 옆에 서 있었다.
* * *
“뭐, 뭐야?”
당황한 이수민이 말을 더듬었다.
보이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난 건지, 손을 휘두르는 것조차.
하얀 가면을 쓴 남자는 눈 한번 깜빡하는 순간 어느새 나타나 있었다.
“……!”
나머지 헌터들도 당황했는지 두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크윽!”
바닥에 쓰러져있던 유다영이 뺨을 붙잡은 채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너 뭐야!”
곧바로 달려들며 주먹을 휘두르는 유다영.
철썩!
“꺄악!”
콰당!
그러나 달려들던 기세가 무의미하게 어이없이 뺨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이… 씨X새X가……!”
스릉 ―
본래 단검을 사용하는 유다영.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평소에도 무기를 휴대하고 있는 그녀는 단숨에 상대를 죽일 기세, 살기를 피어 올렸다.
“칼 빼면 뺨으로 안 끝나.”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X까! 개X끼야!”
그 말이 귀에 들어올 유다영이 아니었다.
슈악 ― !
비록 마력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단검을 든 채 그녀가 달려드는 속도는 웬만한 단거리 육상선수급이었다.
언제나 괴수들과 피를 튀기며 싸우는 헌터들의 신체 능력은 그만큼 마력 없이도 웬만한 운동선수와 비등한 수준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터업 ― !
상대가 좋지 않았다.
꽈드드드득 ―
“꺄아아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양 손목을 붙잡힌 유다영이 비명을 질렀다.
꾸득 ― 꾸드득 ―
하얀 가면을 쓴 남자의 손이 점점 그녀의 두 손목을 조여 들어갔다.
마치 단단한 수갑이 그녀의 양 손목을 옥죄는 것만 같았다.
“놔! 안 놔! 꺄아아아악!”
꾸드드드득 ―
겨우 한 손으로 유다영의 두 손목을 단번에 붙잡은 남자.
게다가 남자의 악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결국,
뚜둑 ― 으지지직!
뼈가 부러졌다.
아니, 부러지다 못해 짓이겨졌다.
“끄흐으으윽……!”
고통스러웠던 유다영은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의 입술을 깨문 채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반사적으로 자가 회복을 사용하려 했다.
주변에 일반인인 경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크흡!”
백면의 남자의 손이 그녀의 목을 잡아챘다.
꽈악 ―
“마력 사용하면 다음은 목이야.”
“……!”
유다영과 백면의 남자의 두 눈이 마주쳤다.
덜덜덜.
그녀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고.
발악은 최악의 수라고.
스륵 ―
털썩.
그녀는 양 손목이 부러진 채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욱신욱신.
양 손목에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짙은 패배감과 모욕감이 그녀의 전신을 휘어 감았다.
울컥울컥 ―
눈물이 마구 차올랐지만 참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오오오오 ―
눈앞의 하얀 귀신이 자신을 죽일 테니까.
“쓰러진 분들을 모시고 물러나세요.”
특임반장, 태운이 멍하니 서 있는 경찰들에게 말했다.
“아, 네 넵!”
류정치에게 맞아 쓰러진 경찰 하나와 유다영에게 잔뜩 폭행을 당한 중년인을 데리고 뒤로 물러나는 경찰들.
이수민이 걷어찬 의자에 맞아 다친 부상자들까지 모아놓고 보니 총부상자가 5명이었다.
거기에 포장마차 하나가 무너지고 추가로 주위에 얼어붙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핸드폰을 빼앗겨 부서졌으니 재산피해도 상당한 상황.
태운과 대치한 나머지 7명의 헌터의 두 눈에 핏발이 잔뜩 솟아올랐다.
“…당신이…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선두에 선 류정치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하지만 그런 걸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있을 태운이 아니었다.
“그건 네 놈들이 알 것 없고.”
저벅 ―
태운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주춤.
태운의 기세에 밀린 7명이 그에 맞춰 한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선택해라.”
저벅 ―
태운이 계속해서 한 걸음씩 앞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그냥 순순히 잡혀갈지.”
저벅 ―
“뒤지게 맞고 잡혀갈지.”
번뜩!
가면 너머 태운의 두 눈빛이 살벌한 안광을 터뜨리고 있었다.
* * *
“어, 어떡할 거냐.”
박성국이 진땀을 흘리며 류정치에게 물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163빌딩의 초대형 화재를 단숨에 진압하고 얼마 전 중국 조폭 무리를 단신으로 때려잡은 인물이 아니던가.
정호백보다 강하다는 이매탈과 동일 인물이라는 설도 있었다.
류정치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놈이 S급 헌터라고 치더라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마력을 쓸 수 없을 거야.’
163빌딩을 진압하는 영상이 류정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주위에 바리케이트가 넓게 쳐져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마음껏 사용할 수 없을 거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류정치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맞기는 개뿔. 정말 네 놈이 소문의 이매탈과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마력을 쓰지 못하면 평범한 사람이랑 똑같아. 그런데 혼자서 우리 7명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어, 이길 것 같아.”
“…….”
너무나도 단호한 특임반장의 대답에 잠시 류정치의 말문이 막혔다.
“이, 이길 것 같다고?”
“그만 질질 끌고 빨리 정해. 덤빌 거면 빨리 덤비고. 아니, 이왕이면 제발 덤벼줘라. 여기 피해 입은 사람들 앞에서 좀 처맞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
“이익!”
류정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너… 지금 우리 무시했지?”
슈욱 ― !
참다못한 이수민을 포함한 전 백호길드 헌터들이 먼저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마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지만 무려 5명의 B급 헌터가 사방을 에워싸고 달려든 것이다.
웬만한 S급 헌터도 마력 없이는 일방적으로 당하기 십상인 상황.
그러나,
“이제 정당방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빠각!
태운의 발끝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이수민의 무릎을 걷어찼다.
우드득 ―
“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무릎이 역방향으로 꺾여버린 채 힘없이 쓰러졌다.
“이게!”
그 사이 등 바로 뒤를 점한 헌터가 태운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샥 ― !
재빨리 자세를 낮추자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남자의 주먹.
빙글 ―
태운은 동시에 몸을 돌리며 팔꿈치로 그의 낭심을 가격했다.
뿌지지직!
“꺼…어어어억……!”
부들부들.
털썩 ―
뭔가 짓눌려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전신이 마비된 그가 몸을 덜덜 떨며 무릎을 꿇었고,
파앗 ― !
아직 남은 3명이 태운의 양옆과 위를 점하고 달려들었다.
핏 ― !
공중으로 솟아오른 태운이 단숨에 위에서 달려드는 헌터의 옷깃을 잡아챘다.
빙글 ―
후욱 ― !
마치 유도처럼 공중에서 그를 업어치자, 마찰력 하나 없이 발생한 원심력과 관성에 의해 두 사람의 신형이 어우러져 마치 풍차처럼 돌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곽 ― !
“크아아악!”
위에서 떨어져 내린 인간 풍차가 양옆에서 달려든 두 사람의 머리를 바닥에 갈아버렸다.
콰앙!
뒤이어 옷깃을 잡힌 채 자신과 함께 돌던 헌터를 바닥에 꽂아버리는 태운.
“커헉!”
순식간에 5명의 B급 초인들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
불과 2~3초 만에 벌어진 이 모든 광경에,
“다음.”
류정치와 박성국을 포함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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