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망나니들이 포장지를 찢음 (3)
―퇴, 퇴출 말입니까?
―네, 행실에 문제 있는 자들을 퇴출시키세요. 이건 부탁드리는 것과 동시에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협회가 언젠가 준비를 마친 뒤 작정하고 조사를 시작했을 때, 두 길드가 그 어떤 길드보다도 당당하게 체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회장실에서 태운이 김천용과 정호백을 만났을 때,
―하지만 그랬다가 그들이 무슨 짓이라도 벌이면 어떡합니까?
―저희가 말하기도 뭐하긴 하지만 헌터들은 이상할 정도로 일반 사람들에 비해 자존심이 셉니다. 퇴출을 시켰다간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길드의 품에서 저지르나, 내쫓겨서 저지르나 결국은 똑같습니다. 오랜 시간 바늘로 쿡쿡 찔리는 것보단 차라리 송곳에 한 번 찔리고 마는 게 나아요. 제 말대로 해주세요.
이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청룡길드와 백호길드가 불량한 헌터들을 퇴출시키고 그들의 신상 정보를 넘겼을 때부터,
―서장님,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허허허! 그럼요! 이렇게 크게 힘 써주셨는데요. 마침 저도 고작 단말기 하나 빌려드린 걸로 끝내긴 아쉬웠습니다. 부탁이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헌터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다면서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저에게 연락하라고 전국의 경찰분들께 말씀 좀 해주십시오.
―…? 어차피 헌터 분쟁 조정은 협회가 담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협회를 거치지 말고 바로 제게 직통으로 연락을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건 분쟁 조정이 아닌 현장 검거를 위함입니다.
―어… 현장 검거요……?
―이건 제 업무용 핸드폰 번호입니다. 전국의 경찰분들께 알려주세요.
이런 사태에 대해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꿀꺽 ―
‘대단해!’
미리 등록한 단축키로 특임반장에게 긴급 메세지를 보낸 박 순경은 태운이 헌터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은 사선을 넘나들며 단련된 인간 병기들.
마력과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헌터들 사이에 등급은 무의미한 것과 거의 다름없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8명 중 6명이 전투 불능이 된 것이다.
‘역시… 특임반장은 대단하다니까!’
볼리베어 바디캠을 보고 특임반장의 팬이 되었던 박 순경의 두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 * *
“여기서 자가 회복 쓰면… 아니다, 한번 써봐. 어떻게 될지.”
사아아아 ―
바닥에 널브러진 5명의 전 백호길드 헌터들은 전신의 피부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유다영이 느꼈던 감정과 똑같은 감정.
고통은 물론이고 짙은 패배감과 함께 그보다 더한 공포감이 그들의 전신을 뒤덮었다.
욱신욱신.
헌터가 된 이후 이리도 오랜 시간 고통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사지가 부러진들 어떠하리. 어차피 고통은 잠깐이었다.
자가 회복 한 번이면 사라질 부상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괴물…….’
차라리 이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감사하게 여겨야 했다.
분명 저자는 마력을 쓰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가면에 가려져 표정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
사아아아아아 ―
그 어떤 특별한 능력도 없이, 그 어떤 표정 노출도 없이 인간이 이런 살벌하고 오싹한 기운을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부들부들.
5명의 망나니들은 발가벗겨진 채 맹수 우리에 내던져진 듯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덜덜덜.
나뭇가지 부러지듯 다리가 부러진 이수민이 눈물과 콧물을 동시에 뽑아내며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
이수민을 스쳐 지나가는 특임반장.
순간, 이수민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그래서 너희는 언제 덤빌 거지?”
흠칫!
전 청룡길드 헌터였던 류정치와 박성국이 어깨를 잘게 떨었다.
‘미, 미친. 저게 말이 돼?’
‘백호 5명이 순식간에…….’
힐끔.
서로 눈치를 보는 두 사람.
차마 입을 떼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눈빛만으로 뜻이 통하고 있었다.
‘이건 못 이겨!’
‘무조건 항복!’
털썩 ―
두 사람이 말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얌전히 체포되겠습니다.”
두 사람이 항복을 선언하자 잔뜩 긴장한 채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박……!”
“역시 특임반장!”
누군가는 특임반장의 활약에 환호했고,
“저 쓰레기 새끼들 진짜!”
누군가는 그들을 향해 욕설을 날렸으며,
“죽을 뻔했어… 헌터한테…….”
“흐어어엉~”
누군가는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삽시간에 다시 소란스러워진 포장마차 거리.
하지만 가면 뒤의 태운의 표정은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저벅저벅 ―
특임반장, 태운은 조용히 무릎을 꿇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스윽 ―
가만히 두 사람 앞에서 무릎만 굽혀 쪼그려 앉는 태운.
“왜 안 덤벼?”
그 모습이 마치 골목길에서 돈을 뜯는 양아치 같았다.
태운의 살벌한 눈빛과 마주친 두 사람이 몸을 덜덜 떨며 시선을 피했다.
“죄, 죄송합니다…….”
“큰 소리 내면 죽인다.”
“…예?”
순간 두 사람의 눈앞에 불이 번쩍 빛나는가 싶더니,
뻐벅!
“……!”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휘둘러진 태운의 주먹이 두 사람의 복부 측면을 때렸다.
리버샷(Liver shot)이었다.
“커헉…! 컥!”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두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허, 소리 내면 죽인다니까?”
그리고,
꾸우우우우욱 ―
쪼그려 앉아있던 태운의 두 무릎이 앞으로 숙여진 두 사람의 뒤통수를 바닥을 향해 짓눌렀다.
지직…….
“……!!!!!!!!”
두 사람의 얼굴 피부가 딱딱한 바닥에 눌려 짓뭉개지기 시작했다.
“너희만 그냥 넘어가면 친구들이 억울하잖냐.”
벌떡 ―
5~6초가량 두 사람의 머리통을 짓누른 태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손과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어딜 그냥 넘어가려고.”
가면 뒤의 태운의 표정이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 * *
“저기… 그것이 말입니다.”
왕십리 파출소장, 김정훈이 연신 삐질삐질 진땀을 흘려댔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경찰들과 함께 8명의 헌터들을 경찰서로 인계한 태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자꾸만 말끝을 흐리는 김 소장.
태운은 그런 김 소장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시원하게 말하세요. 자꾸 말끝 흐리지 말고.”
꿀꺽 ―
김 소장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미치겠네, 진짜!’
“끄응…….”
김 소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입을 가린 채 태운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들 신원 조회를 해보았습니다만… 헌터들입니다. 그것도 전부 다 4대 길드 출신!”
“……?”
김 소장의 말을 들은 태운은 그저 김 소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듯이.
그러자 김 소장은 손발을 휘저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을 처벌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평범한 헌터도 처벌하기 꺼려지는 마당에 4대 길드 출신이라뇨!”
“…뭐라고요?”
저벅 ―
태운이 김 소장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흐익!”
특임반장의 명성과 강함을 알고 있는 김 소장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지금 그 난리를 쳤는데 처벌을 못 한다? 지금 그 말입니까?”
하얀 가면이 코앞으로 다가와 그를 압박하자, 김 소장은 진땀을 연신 흘려대며 시선을 피했다.
“그, 그럼 어떡합니까… 저희도 힘이 없단 말입니다. 혹시라도 저희 선에서 처벌했다가는 윗선에서도 뭐라 할 테고, 그 뒷감당을…….”
쾅!
태운이 거칠게 발을 굴렀다.
“……!”
파출소 전체를 울리는 그 굉음에 파출소 안에 있던 8명의 헌터들을 포함해 모든 이의 움직임이 딱딱하게 굳었다.
“경찰은 여태까지 이렇게 해왔습니까? 헌터가 뭘 저질러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고? 그냥 뒷감당이 두려워서?”
겁먹은 김 소장의 두 눈에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억울했다. 자기라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저희한테 이러셔도 소용없습니다… 형사재판까지 가더라도 어차피 전부 무죄 아니면 벌금형이란 말입니다! 겨우 그거 먹이려고 저희가 목숨까지 걸고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들어나 보지요. 당신들이 해야 하는 뒷감당이라는 게 뭡니까?”
태운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이들이 자꾸만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이유가 단순히 윗선에서 뭐라 하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 더 큰 무언가가 있었다.
슬쩍 ―
김 소장은 곁눈질로 8명의 헌터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쪽을 살폈다.
“…….”
태운에게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조금 전의 굉음에도 태운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꿀꺽 ―
그 모습에 김 소장은 조금이지만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그래… 특임반장은 뭔가 다를지도 모르잖아……!’
소곤소곤 ―
다시 한번 태운의 귓가에 귓속말을 전하는 김 소장.
“……!”
김 소장의 귓속말을 들은 태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끄덕끄덕.
김 소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치 큰 형에게 무언갈 이르는 동생의 모습처럼 보였다.
나이는 김 소장이 훨씬 많았지만.
으득 ―
태운이 이를 갈았다.
‘이런 미친놈들이…….’
그것도 잠시,
“후우…….”
태운은 길게 숨을 내쉬며 감정을 컨트롤했다.
‘아직은 흥분할 때가 아니다.’
일단은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굳건하던 헌터들의 포장된 이미지에 금이 가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태운은 김 소장에게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뒷감당은 제가 하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거든 저를 파세요. 제가 협박했다고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어쨌든 저 사람들은 봐주지 말고 정상적으로 사건 처리하세요. 이미 이야기 다 된 거니까.”
“예…? 이야기가 되다니 무슨…….”
여전히 망설여지는지 김 소장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다시 말끝을 흐렸다.
“…….”
태운은 이제 그런 김 소장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 가만히 핸드폰을 꺼냈다.
뚜르르르 ―
어디론가 가는 신호음.
{청룡길드장 김천용입니다.}
{백호길드장 정호백입니다.}
태운이 건 그룹콜에 4대 길드 수장인 두 거물이 전화를 받았다.
“……!”
스피커 폰으로 그룹콜을 건 탓에 파출소 내 모든 이들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직접 연락을 때린다고?’
‘와씨, 특임반장 클라쓰…….’
태운에게 잡혀 온 8명의 헌터들의 표정도 상당히 복잡하게 변하고 있었다.
“특임반장입니다. 청룡길드와 백호길드에서 퇴출된 헌터들이 거리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법대로 처벌하겠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태운의 으름장 같은 거친 발언에 파출소 내 경찰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저, 저렇게까지?’
‘너무 세게 나가는 거 아니야?’
‘와씨, 특임반장 클라쓰…….’
광팬인 박 순경만 초롱초롱하게 눈빛을 뜨고 있을 뿐, 모두가 특임반장의 행동에 크게 긴장한 듯 마름 침을 삼켜댔다.
모두가 태운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두 길드장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때,
{백호길드는 그들과 무관합니다.}
{청룡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든 저희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굉장히 의외의 대답이 스피커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
모든 이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고,
으득 ―
고개를 숙인 8명의 헌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좌절감에 이를 갈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톡.
그룹콜을 마친 태운은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김 소장을 바라보았다.
“들으셨죠?”
“예, 예? 아, 예…….”
씨익 ―
태운은 가면 뒤에서 미소를 지으며 파출소 안에 있는 다른 경찰관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법대로 처벌해봅시다. 뒷감당은 전부 제가 할 테니 우리 한번 선례를 만들어보자고요.”
2096년 8월.
마침내 전 세계 최초로,
[왕십리 포장마차 거리에서 난동을 피운 8명의 헌터, 현장에서 체포.]
[검찰 측 曰 “특수폭행 및 협박, 공무집행방해와 기물 파손 등 다수 죄목 적용 가능해.”]
헌터에게 징역이 구형되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