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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52화 (52/300)

52화. 늙은 구렁이가 꿈틀거림 (1)

삘릴리 ~ 삘릴리 ~

정겨운 벨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네, 협회장 한동석입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동석은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았다.

{날세, 협회장. 통화 괜찮은가?}

핸드폰 너머에서 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입니다. 어쩐 일이신지요?”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전화를 받는 동석.

그의 표정엔 여유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일단은 축하를 전함세. 요즘 헌터 협회에 대한 평판이 아주 좋아졌어. 무려 거의 4대 길드 급으로 말이야.}

“축하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그저 저희의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말이지요.”

동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축하 인사를 받자, 전화 너머 노인의 숨소리가 살짝 거칠어졌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계속 왜 그러는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동석이 시치미를 뚝 뗐다.

{특임반을 말하는 걸세!}

노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분명 지난번엔 특임반장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나! 주의를 줘서 더 이상 그런 일이 없게끔 한다고도 했을 텐데? 왜 자꾸 선을 넘느냐는 말이야!}

“…….”

노인의 잔소리에도 동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노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노인은 그런 동석이 기가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옳다구나 하며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긴말하지 않겠네! 당장 특임반을 해체시키고 특임반장을 제명시키게! 에잉, 쯧쯧. 사람이 말이야, 그만큼 경고했으면 알아먹…}

“죄송합니다. 의원님.”

가만히 듣던 동석이 노인, 국회의원 이한천의 말을 끊었다.

{…응?}

동석의 사죄의 의미가 헷갈렸던 이한천이 동석에게 되물었다.

{뭐가 죄송하다는…….}

“저희 능력으로는 특임반장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

동석의 말에 이한천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러니까… 제명 못 시키겠다?}

“예,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서슴없이 분노를 드러냈다.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겐가! 협회 직원 인사권이 협회장에게 있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알고 있는 사실일세! 자네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의원님.”

그런 이한천의 분노를 동석의 차분한 목소리가 끊어냈다.

“인사권이야 저에게 있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협회장이 협회장의 권한에 대해서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동석은 한 차례 숨을 골랐다.

“협회장의 권한이 어디 먹히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거대한 힘 앞에서는 저의 알량한 권한 같은 건 먹히지가 않는다는 걸 말입니다.”

{자네 지금… 우릴 저격하는 건가?}

이한천이 거칠게 숨을 씩씩거렸다.

그러나 그런 상대방의 반응에도 동석은 호흡을 차분히 유지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특임반장은 저희 협회가 제어할 수가 없는 인물이라는 걸 말입니다. 혹, 뭔가 특임반장에게 요구하고 싶으신 사항이 있으시거든 저를 통해서 하기보단 직접 전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무섭거든요.”

동석의 말에 이한천은 뭔가 알아들었다는 듯 호흡을 진정시켰다.

{음… 그렇단 말이지. 그럼 우리가 뭘 어떻게 하든 협회는 신경 쓰지 않겠다, 이렇게 알아들어도 되겠는가?}

“협회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러자 만족스러운 답을 들었는지 이한천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알겠네. 협회장의 의견은 잘 알았어. 그럼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지. 수고하게나.}

“예, 들어가십…….”

뚝 ―

동석의 마무리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이한천.

스윽 ―

동석은 핸드폰을 내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 싸X지 없는 노친네가…….”

동석의 욕설에 김 기사가 백미러로 흘끗 동석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협회장님?”

“아, 김 기사. 쏘리 쏘리. 걱정 말어. 화난 거 아니니까.”

흘깃 ―

김 기사는 다시 한번 백미러로 동석의 표정을 살폈다.

“으흠흠~”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 동석의 표정.

하지만 김 기사는 그런 동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괜찮…은 겁니까? 정말로 그쪽에서 특임반장님을 해코지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김 기사의 말에 동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해코지할 테면 해보라지! 나라면 차라리 악어 입속에 머리를 집어넣겠어! 그리고 지들이 특임반장이 누군 줄 어떻게 알고? 정체도 못 알아낼 텐데 뭐.”

한바탕 웃고 난 뒤, 차창 밖을 바라보는 동석의 얼굴엔 뿌듯함과 기대가 잔뜩 어려있었다.

‘특임반장… 자네는 정말 대한민국의 보물이자 희망이야!’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씨익 ―

동석의 표정에선 단 일말의 걱정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 * *

최초의 8인.

속사정을 모른다면 굉장히 명예스러울 듯한 타이틀이 달린 8명의 헌터의 모습이 한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있었다.

“흐음…….”

바닷가의 한 카페에 앉아있는 태운.

철썩 ― !

끼룩 끼룩 끼룩!

동해 바다의 시원한 바닷바람이 태운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다.

동해 해수욕장 한복판에 발생한 A급 던전 조사를 하러 온 태운은,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던전 조사에 들어가기 전 잠시 카페에 들러 앉아있었다.

도란도란.

함께 카페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BGM처럼 태운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가면을 벗은 맨얼굴이었지만, 태운을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면도 품속에 잘 감춰두었으니 들킬 염려도 없었다.

톡톡.

조회수 : 2

기사 조회수를 본 태운의 눈썹이 씰룩였다.

‘생각보다 검열이 훨씬 심하군. 이 일의 파장이 겨우 이 정도라니…….’

사상 처음으로 헌터에게 징역형이 내려졌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주의 깊게 보도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못하고 있다는 말이 더 맞았다.

초반에 잠시 화제를 몰던 기사들도 전부 내려간 상태.

그나마 메이저 언론사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애쓰는 몇몇 소규모 언론사들이 낸 짤막하고 간접적인 인터넷 기사들만이 작정하고 검색하고 뒤져봐야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태운이 가지고 있는 대문짝만한 기사는 기사가 뜨자마자 캡쳐한 캡쳐본이었다.

‘한 3초 떴었나?’

태운의 코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마 윗선에서 개입했겠지.’

이미 동석에게 전달받은 바 있었다. 정계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그래도 헌터가 관련된 일이라고 벌써 언론에 대한 통제를 시작한 듯했다.

“흐음…….”

생각보다 더 빠르고 철저한 입막음에 태운은 살짝 한숨을 쉬며 핫초코를 조금씩 빨아 먹었다.

촙 ― 촙 ―

뜨거운 핫초코가 몇 방울씩 올라오며 태운의 입 안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뭐, 애초에 어차피 임팩트도 전국을 뒤집어엎기엔 부족하긴 해.’

헌터가 난동을 부리긴 했지만, 그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협박만 했을 뿐 마력은 사용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아무리 날뛰었다고 해봐야 초인이 아닌 운동선수급 피지컬을 가진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이나 마찬가지.

심지어 행실이 좋지 않아 버림받은 이들이었으니, 사람들의 비난의 화살마저 헌터가 아닌 오직 그들에게로 몰렸을 것이었다.

‘마력을 조금이라도 사용하게 만들었어야 했나…….’

태운은 잠시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진짜 누가 당하면 어쩌려고.’

무고한 피해자들의 추가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건데, 그 과정에서 무고한 피해자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일은 선례를 만든 것에 대해 만족해야겠지… 그래, 시작이 반이랬으니까.”

쪼로로록 ―

뜨겁지도 않은지 핫초코를 단숨에 비워버린 태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론사 쪽도 길을 좀 뚫어놔야겠는데?’

헌터와 관련된 정말 중요한 사건을 해결했는데도 이렇게 언론이 단번에 통제되어버린다면, 자칫 협회가 오히려 언론플레이에 휘말려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었다.

‘누군가를 깔 건덕지 정도야 갖다 붙이면 그게 다 건수가 되니까…….’

“하아…….”

카페를 나서는 태운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참 멀고도 험난하구만.”

그냥 힘으로 죄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스팟 ― !

태운은 던전 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아니, 왜 못 찾아? 사람 하나 못 찾는 게 말이 돼? 그것도 그렇게 언론을 많이 탄 사람을?”

쾅!

이한천 의원이 두꺼운 책으로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쩌적…….

그 충격으로 인해 두꺼운 책의 모서리에 맞은 책상 위 유리 덮개가 살짝 갈라졌다.

{아니 협회에서 정보를 죄다 막아놔서 추측할 수 있는 단서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한 남자가 살짝 신경질이 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걸 찾는 게 네놈들 일 아니야? 뭐 어떻게 해서든 찾아야 할 거 아니야!!”

이한천 의원의 목에 핏대가 바짝 솟아올랐다.

부르르르 ―

손발까지 떠는 것이 어지간히도 열이 받은 모양이었다.

{이름도 몰라, 주소도 몰라, 얼굴도 몰라, 신원 조회도 안 돼, 차량 번호도 보안 번호에다가 차량도 집에 두는 게 아니라 협회 건물에 짱박혀 있는데 우리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이 사람은 뭐 날아다니는지 CCTV에 동선도 안 찍힌단 말입니다!}

“대충 그 자식을 알고 있는 지인이나 가족이 있을 거 아니야!”

{씨X, 누군지를 모르는데 가족을 어떻게 알아! 그나마 그 사람을 알고 있는 게 협회 직원들인데, 그 사람들도 모른다는데! 자꾸 애X끼처럼 징징대지 말고 그만 포기하십쇼. 어차피 우리가 못하는 일이면 다른 데 가도 다 ~ 똑같습니다.}

흥신소 사장의 말에 이한천 의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를 반복했다.

콰앙!

와창창!

참다못한 이한천 의원이 책상을 발로 밀어버렸다.

“이 개X끼야! 돈 뱉어!”

{고객님? 착수금을 뱉으라는 게 무슨 개소리십니까. 잔금은 안 받았으니까, 우리는 이만 손 텁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저희한테 공작 치지 마십쇼. 거래 내역이랑 통화 내역 다 저희한테 있으니까 처신 잘하시고!}

“……!”

{뭐 우리야 의원님이 저희를 먼저 건들지만 않으신다면 가만히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마십쇼. 그럼 이만!}

뚝 ―

뚜우 ― 뚜우 ― 뚜우 ―

제 할 말을 다 마친 흥신소 사장이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부들부들.

이한천 의원의 몸이 분노로 인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 개X끼들을 그냥…! 내가 누군 줄 알고…….”

티딕 틱틱틱 ―

핸드폰에 무언가를 입력하는 이한천 의원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틱, 뚜르르르 ―

신호음이 한 차례 가고,

{예, 의원님. 정 비서입니다.}

정 비서라는 남자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애들 시켜서 업체 하나 담가야겠다. 전에 고용했던 용역 헌터 애들 아직 일하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또 힘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좋아. 걔네 시켜서 내가 알려주는 흥신소 하나 없애. 주소 찍어줄 테니까. 그리고 그쪽이랑 주고받은 거래 내역이랑 통화 내역 좀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데 방법 있나?”

{사람 불러 처리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처리되면 알려주게나. 깔끔하게 지우도록.”

{예, 그럼…….}

뚝 ―

“후우…….”

전화를 끊은 이한천 의원은 그제야 며칠 묵은 배변을 배출한 사람마냥 속이 후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터벅터벅 ―

창가로 다가간 이한천 의원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익 ―

“후우…….”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짙은 담배 연기가 창가로 내려다보이는 한강을 뿌옇게 물들였다.

‘흥신소도 누군지 못 찾는단 말이지…….’

이한천 의원의 머릿속엔 하얀 가면을 쓴 남자, 특임반장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 못 찾겠다면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씨익 ―

담배 연기 속에 가려진 늙은 구렁이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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