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53화 (53/300)

53화. 늙은 구렁이가 꿈틀거림 (2)

이른 아침 헌터 협회 본부 1층.

“흠흠~ 흐흠~”

던전 배정 창구에서 일하는 김희정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직 각종 접수를 받는 시간이 아니었기에 협회 내부에는 창구 안쪽에 직원들만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 한산했다.

“희정 씨! 아침부터 기분 되게 좋아 보이네? 무슨 일 있었어?”

던전 배정 창구 바로 뒤, 전투부서 직원들이 쓴 보고서를 입력하는 던전 정보 갱신 업무를 맡은 이정혜가 보고서를 쓰다 말고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슝 날아왔다.

바로 옆에서 일하다 보니 평소에도 워낙 친한 두 사람이었다.

“아, 정혜 언니! 혹시 그거 봤어요? 협회 커뮤니티에 특임반장님이 올리신 글?”

“…응? 글을 쓰셨어? 뭐라고 올리셨는데?”

협회 커뮤니티, ‘아틀라스’.

협회 직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비밀 카페로,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등 여러 가지 잡다한 정보가 오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협회장이나 부협회장이 가끔씩 전체 공지란에 전체적으로 공지할 내용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전체 공지란에 바로 어제, 특임반장이 글을 올린 것이었다.

“히히히! 한번 봐봐요! 언니도 콧노래가 절로 나올걸? 흐흠~”

김희정은 의미심장한 말만 하고 계속 콧노래를 흥얼댔다.

“나 커뮤니티 잘 안 하는데… 거기 들어가면 우울해진단 말이야.”

이정혜는 김희정이 말을 해주지 않자, 입을 살짝 내밀며 핸드폰을 켰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이 전부 신세 한탄 등 부정적인 글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협회 직원들 중 대다수는 커뮤니티에 가입만 하고 잘 들어가 보지 않았다.

톡 톡 ―

이정혜는 오랜만에 헌터 협회 커뮤니티, ‘아틀라스’에 들어가 보았다.

묵묵히 사회를 위해 고통을 견디는 협회 직원들처럼 묵묵히 하늘을 떠받치는 거인 아틀라스의 모습이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가 흐려졌다.

그리고 나타난 전체 공지란에는 NEW! 표시가 떠 있었다.

‘대체 뭘 쓰셨길래 희정이가 저렇게 좋아하지?’

언젠가 갑자기 협회에 나타난 이후 협회 직원들을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특임반장.

그런 그의 공지였기에 이정혜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전체 공지란을 눌렀다.

그리고,

“…헐?”

이정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틀어막았다.

[전체 공지]

제목 : 사회 정의 이전에 사내 정의를!

=> 안녕하십니까, 특임반장입니다. 불철주야 항상 열심히 일해주시는 협회 직원분들께 좋은 소식을 전하고자 이렇게 공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 곧 추석이라는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른 직장이나 길드 헌터들은 명절 보너스다 뭐다 하면서 많이 받아 가는데, 우리 협회 직원들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남들 다 받는 그 흔한 보너스 하나 받지 못한다니요?

=>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앞으론 우리 직원분들도 명절 보너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얼마 전, 협회장님과 부협회장님께 부탁드려 여러분들의 입사 시기와 근속 연수 자료 등을 모두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냥 지나갔던 명절 보너스들도 소급해서 모두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 물론 정부 쪽에서 지급 받는 것이 아니라, 제 사비로 지출하는 것이라 한 번에 드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설날과 추석이 올 때마다 받지 못하신 명절 보너스를 1년 치씩 더해서 드리겠습니다.

=> 아마 오래 근무하신 분들은 그동안 받지 못하셨던 보너스를 다 챙기시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실 것 같습니다. 대신 한동안 명절마다 두둑한 보너스 가득 챙기실 수 있을 테니 조금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 다들 더욱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공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사회를 떠받드는 ‘아틀라스’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특임반은 여러분들의 금융치료를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P.S. 명절 보너스는 여러분들의 월 급여의 60%가 지급될 예정입니다.

“아니… 미, 미친…….”

공지를 모두 읽은 이정혜의 손발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봤어요? 봤어? 대박이죠? 아~ 진짜 나 특임반장님한테 반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시집갈 때가 된 건가……?”

김희정의 주책에도 이정혜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촤르르르 ―

그녀의 눈은 이미 Money, ₩₩₩ 표시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월급의 60%… 300의 60%면 180만 원. 명절마다 1년 치씩 더해서 주신댔으니까, 이번 추석에 보너스만 540만 원! 내가 여기서 4년 일했으니까 앞으로 명절 때마다 3번은 더 540만 원씩……!’

이정혜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굴리는 사이, 김희정은 혼잣말로 망상을 굴리고 있었다.

“아, 정말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걸 이렇게 딱딱 알아서 해주실까… 여자친구는 있으신가? 연애하면 더 잘해주겠지? 한번 대시를 해 봐…?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지…….”

덥석 ―

혼잣말로 망상을 하던 김희정의 손목을 누군가 갑자기 덥썩 잡았다.

“응?”

눈이 ₩₩₩가 되어버린 이정혜였다.

“희정아, 포기해. 특임반장님은 내 거니까.”

“뭐래, 이 언니가!”

“아하하하하하!”

뜻밖의 보너스가 지급된다는 소식에 협회 직원들의 분위기는 한없이 밝아져 있었다.

사실 남들은 다 받아 가는 보너스를 이제서야 받게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활짝!

직원들의 표정은 아침 햇살처럼 밝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오전 7시가 되었고,

달칵 ―

잠겨있던 협회 1층 정문이 열리며 본격적인 직원들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밝은 분위기로 시작하는 오전 업무 시간.

그러나 그 밝은 분위기는,

“특임반장이란 사람은 어디 있나?”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 * *

국회의원 이한천.

그는 제1야당의 NO.2에 해당하는 인물로 욕심과 고집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어떻게든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며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이 얼마나 커다란 손해를 보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냉혈한.

특히 협회를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거물급 정계 인사들 중 하나가 바로 그였다.

협회를 허수아비보다 못한 신세로 만들고, 길드 헌터들을 위시하여 타인의 명의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한천.

워낙에 길드 헌터들을 등에 업고 켕기는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 보니, 길드 헌터들을 유일하게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협회의 입지가 최근 떠오르는 것 자체가 이한천의 목을 옥죄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저, 저희도 모르는데요.”

“숨기지 말고 당장 말해! 어디 있어! 너희들 한번 큰일 나고 싶어? 나 국회의원 이한천이야!”

그동안 법이라는 명분과 길드라는 힘을 양손에 쥐고 협회를 흔들어왔던 정계 인사들.

이한천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고 성질이 급했기에 직접 움직이는 행동대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저, 정말 모릅니다! 항상 본부로 출근하시는 게 아니라, 거의 외근 일이 대부분이셔서…….”

협회 1층 가드를 맡은 몇몇 직원들이 이한천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맸다.

국회의원 이한천.

협회 직원 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별일 없어도 가끔 와서 깽판을 치고 가는 이 늙은이를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짜악!

이한천의 비리비리한 손이 직원의 뺨을 때렸다.

일반인, 그것도 노인의 따귀였다.

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뿌득 ―

기분이 더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쭈? 이를 갈아? 이 갈면 네놈이 어쩔 건데? 협회 한번 뒤집어 엎어줄까? 눈 안 깔아?”

“…죄송합니다.”

가드는 고개를 숙인 채 이한천에게 사과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기분 하나 때문에 협회의 모두를 힘들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심지어 상대는 제1야당의 권력자였다.

또 어떤 제지나 제약이 들어와서 모두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큭큭.”

아침 일찍부터 창구 앞에서 대기하던 몇몇 길드 헌터들이 그 모습을 보고 킥킥댔다.

노인네 하나 어쩌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협회 직원들의 꼴이 우스웠으니까.

길드 헌터들의 비웃음까지 듣게 된 1층 직원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던 그때,

“이한천 의원님.”

직원들의 연락을 받고 내려온 협회장, 한동석이 이한천 의원을 불렀다.

“협회장… 자네!”

너무나도 당연하게 동석을 향해 말을 놓고 하대하는 이한천.

그러나 동석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한 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고 협회장실로 가시지요. 특임반장은 협회장실에 있습니다.”

“……!”

직원들의 표정에 당혹감이 어렸다.

누가 봐도 특임반장을 작살내러 온 것 같은 국회의원을 특임반장에게 안내해서 어쩌려는 것인가?

한순간이지만 직원들은 특임반장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팔아넘기는 듯한 동석의 행동에 원망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뒤이은 동석의 말에 직원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특임반장도 의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기다렸다고?”

나이에 맞지 않는 이한천 의원의 짙은 눈썹이 쌍심지처럼 치켜 올라갔다.

* * *

끼익 ―

뚜벅뚜벅 ―

협회장실 안으로 두 남자가 들어섰다.

협회장 한동석과 국회의원 이한천.

그리고 협회장실 안으로 들어서는 두 남자를 부협회장 양현주와 하얀 가면을 쓴 한 남자가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세요, 의원님.”

양현주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자 이한천이 반색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 부협회장, 자네도 있었군.”

이한천의 음흉한 눈이 양현주의 전신을 훑었다.

이한천은 나이답지 않게 웬만한 젊은 여인들에게도 꿇리지 않는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현주를 볼 때마다 음흉한 시선을 보내왔었다.

남편, 동석이 옆에 있든 없든 똑같이 말이다.

꾸득 ―

그 시선을 눈치챈 동석은 이한천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빙긋 ―

그런 동석에게 현주는 괜찮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자네가 특임반장이군?”

“예, 처음 뵙겠습니다. 이한천 의원님.”

까딱 ―

특임반장, 태운이 고개를 살짝 숙이자 이한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젊은 놈이 허리는 숙이지 않고 고개만 까딱거리는 것이.

그리고 이한천은 그런 불편한 감정을 대놓고 표현했다.

“거참,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 고개나 까딱거리고 말이야. 에잉, 쯧쯧.”

풀썩 ―

자연스럽게 현주의 옆자리에 앉는 이한천 의원.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손을 휘감았다.

흠칫!

현주의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이한천 의원의 행동에 현주가 몸을 떨었으며,

빠직 ―

동석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고,

부릅 ―

태운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한천 의원은 어떤 의미에선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단 한 번의 언행으로 동석과 현주, 그리고 태운 세 사람의 심기를 건드는 데에 성공했으니.

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이더라도,

“그 젊은이들이 누굴 보고 자랐겠습니까. 윗물이 예의를 밥 말아 먹었으니 아랫물은 예의를 죽 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태운이 상대여선 대진운이 그리 좋았다고 볼 수가 없었다.

“…뭐, 뭐?”

갑자기 비아냥거리는 태운의 말에 이한천 의원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한천 의원은 화가 난 상태에서도 여전히 현주 옆에 딱 붙은 채 태운을 향해 손가락질해댔다.

꾸깃 ―

그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태운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선을 넘어도 한참은 넘어버린 이한천 의원.

그리고 태운은 선을 넘은 상대에게까지 선을 지킬 정도로 아량이 그리 깊지 않았다.

스윽 ―

태운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선 넘지 마, 이 미친 노친네야.”

이한천 의원을 바라보는 태운의 눈빛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