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늙은 구렁이가 꿈틀거림 (3)
“미, 미친 노친네? 이이이……!”
이한천 의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을 반복하며 그의 동공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자신에게 이리 대한 이가 있었던가?
제1야당의 2위 권력자인 자신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의 윗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야당의 최고 권력자도 자신을 이렇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새파란 젊은 놈이 자신에게 미친 노친네란다.
“이이익……!”
잠시 혼란스러웠던 이한천의 머릿속이 정리되어가며 당황스러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네놈!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그런 망발을……!”
“너는 이분이 지금 누군 줄 알고 감히 그딴 저급한 행동을 하는 거지?”
쿠우우우우 ―
가면 너머의 태운의 살벌한 안광이 이한천의 심장을 옥죄기 시작했다.
‘뭔 놈의 눈빛이…….’
이한천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분명 마력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찌 그 어떤 능력 사용도 없이 인간 본연의 힘으로 저런 기운을 발출할 수 있단 말인가?
터업!
이한천은 순간적으로 떨리기 시작하는 다리를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기세 싸움에서 밀릴 순 없었으니까.
“부, 부협회장이지. 그걸 내가 모를 것 같나? 나는 제1야당 국회의원…….”
“그래 부협회장님이시지. 전 세계에서 내 위에 계시는 단 두 분 중 한 분이시라는 말이다. 근데 국회의원 따위가 그런 이분을 희롱해?”
콰앙!
태운의 발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테이블을 발로 밟아 단번에 주저앉혔다.
푸스스스…….
꿀꺽 ―
누가 봐도 단단해 보이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태운의 발 구름 한 번에 두동강 나자, 이한천은 자신도 모르게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너, 너 지금 실수하는 거다! 협회 전체가 힘들어져도 상관없다는 거냐!”
피식 ―
이한천의 발악에 태운은 대놓고 들으라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그 전에 네놈은 죽겠지.”
스윽 ―
태운은 부서진 테이블의 반쪽을 한 손으로 통째로 들어올렸다.
투두둑…….
부서진 원목 부스러기가 협회장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미, 미친! 지금 뭐 하는……!”
이한천의 안색이 태운의 가면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잘 가라.”
화아악 ― !
원목 테이블의 반쪽을 든 태운의 손이 이한천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흐극! 흐아아아아악!”
이한천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때,
“이게 무슨 짓인가!”
파악!
동석이 떨어져 내리는 태운의 팔을 붙들었다.
* * *
이한천이 협회장실로 들어서기 몇 분 전.
1층 직원의 연락을 받은 동석은 그 소식을 태운과 현주에게 알렸다.
“하… 이한천… 그 변태 새끼…….”
이한천이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현주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태운은 현주에게 질문했다.
“변태 새끼요? 이한천 의원이 무슨 짓을 했길래…….”
뿌득 ―
태운의 물음에 동석이 옆에서 말없이 이를 갈았다.
현주가 한숨을 푸욱 쉬며 대답해주었다.
“대놓고 뭔가를 하는 건 아닌데… 만날 때마다 이상한 눈빛으로 보고 음… 너무 달라붙는달까.”
“…그거 충분히 대놓고 하는 거 아닙니까? 협회장님이 옆에 계셔도 그런 짓거리를 한단 말입니까?”
끄덕 ―
현주는 잔뜩 울상이 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휙 ―
태운은 그걸 보고만 있냐는 듯한 눈빛으로 동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동석의 두 눈은 현주 이상으로 침울해 보였다.
“…한심해 보이나? 아내도 못 지키는 놈이 협회장 자리 꿰차고 있는 게.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네. 경찰에 신고해봐야 경찰이나 검찰 둘 다 그 사람을 건드리길 꺼려 하고, 힘으로 하자니 그 자식의 뒤를 봐주는 놈들 때문에 뒷일이 걱정되고…….”
“뒤를 봐주는 놈들이 누구길래 그럽니까?”
태운이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주작길드야.”
현주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주작길드……!”
그의 원수가 몸 담고 있는 그 길드가 언급되자, 태운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현주는 입술을 깨물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S급만 2명이나 있는 데다가 전국에서 A급 헌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길드지. 청룡길드장 김천용 씨만 없었으면 압도적인 국내 최강인 길드였을 거야. 지금도 길드원 전력만 놓고 보면 주작길드가 압도적이지만.”
“…….”
잠시 생각에 잠기는 태운.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생각이 났는지, 태운의 입가에는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연극 한번 해보는 거 어떻습니까?”
““…연극?””
태운의 제안에 두 사람이 서로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잠시 후 태운의 설명이 끝난 뒤,
“그거 너무 자네한테 위험한 거 아닌가?”
“그래, 태운 씨. 조금 무리하는 것 같은…….”
두 사람이 우려를 표했지만,
“제가 주작길드 따위한테 질 것 같습니까?”
태운은 가소롭다는 듯 약간 거만해 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하긴…….”
“…주작길드는 무슨 자네한텐 참새 길드일걸세.”
협회장 부부는 그런 그의 자신감에 격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 *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저분은 국회의원이야! 그것도 제1야당의 최고에 가까운 권력자시라고!”
협회장실 한쪽 벽면으로 몰린 태운이 동석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흐어어어…….”
죽다 살아난 이한천은 여전히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넋을 놓고 있었다.
‘더 세게 말하시죠!’
‘알겠네!’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혼신의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니, 저 늙다리가 먼저 선 넘지 않았습니까! 콱 죽여 버릴라니까 이번만 눈감아주십쇼!”
“자네, 자꾸 이렇게 나올 건가? 아무리 평소에도 막무가내로 행동한다지만, 이번 일은 자네가 선을 넘은 걸세!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마음대로 행동할 텐가!”
“아니, 시X! 협회장님은 화도 안 나십니까? 부협회장님을 저렇게 만지고 달라붙는데? 그럼 안 죽일 테니까 저 노친네 거기라도 뭉개버리게 해주십쇼! 더는 저도 양보 못 합니다!”
“안 죽인다고? 음…….”
동석이 고민하는 듯하자,
“허업!”
넋을 놓고 있던 이한천은 가랑이를 오므리며 두 손으로 그곳을 가렸다.
“혀, 협회장! 제발! 막아주시게! 제발!”
동석은 그런 이한천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게 지금 할 말인가! 안 죽이고 거기만 뭉갠다니! 그게 죽이는 거랑 뭐가 다른 건가!”
“진짜 목숨이 끊어지는 것과 남성성만 끊어지는 건 엄연히 따지면 다릅니다. 협회장님.”
태운은 동석의 어깨너머로 이한천과 두 눈을 마주치며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어차피 저 노친네 제대로 기능도 못 하고 있을 텐데 그냥 뭉개게 해주시죠.”
70이 넘은 이한천이었다.
물론 남자로서의 그런 기능은 거의 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안 된다고 했네! 그럼 소변은 어디로 보시라고!”
“마, 맞아! 나 오줌 싸야 해!”
그래도 소중한 건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태운의 난동에 이한천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머릿속까지 하얘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자신의 뒤를 봐주는 주작길드? 다 소용없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만 사는 저 미친놈한테 지금 당장 죽을 판인데.
훗날을 도모하더라도 일단은 지금 당장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이한천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털썩 ―
이한천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현주를 향해 싹싹 빌기 시작했다.
“부, 부협회장! 내가 이렇게 사과함세. 마, 많이 불쾌했지? 미안해. 자네가 워낙 여자로서 매력이 넘치다 보니… 아, 아니지!”
찰싹!
말이 헛나오자 자신의 뺨을 때리는 이한천.
어지간히도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헛소리까지 해서 더욱더 살아나갈 가능성이 좁아졌다고 느낀 이한천이 이마를 바닥에 붙이며 넙죽 엎드렸다.
“제, 제발! 용서해주시게!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 흐으윽… 제발 좀 살려주시게…….”
덜덜덜.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한 자세로 협회를 찾아왔던 이한천.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앞에서 이마까지 바닥에 붙이고 덜덜 떨게 될지.
끄덕 ―
태운과 눈빛을 교환한 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한천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일어나세요. 한 나라의 국회의원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그렇게 쉽게 고개 숙이시는 거 아니에요.”
울컥 ―
이한천은 현주의 말에 무언가 속에서 울컥 솟아오름을 느꼈다.
“부협회장, 자네…….”
어느새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이한천.
빙긋 ―
현주는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속으론 쌍욕을 내뱉고 있었다.
‘변태 쓰레기, 인간 말종, 더럽게 추한 노친네 같으니…….’
현주가 이한천을 협회장실 바깥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두 사람을 따라나서는 동석. 그러면서 태운에게 한 마디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은근히 즐기는 듯 연기에 굉장히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 동석이었다.
“거기 가만히 있게! 내 지금까지 참았지만 더 이상 자네의 횡포를 두고 볼 수가 없어! 이따 얘기 좀 하지!”
하지만 태운의 연기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 역시 굉장히 진심으로 임하고 있었으니까.
“아 모릅니다! 저 노친네 갑자기 죽었다는 뉴스 나오면 제가 한 줄 아십쇼!”
휙 ― !
협회장실 창문을 통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태운.
어느새 중력 트레이닝을 10G 이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태운에게는 건물 벽을 타는 것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였다.
굳이 마력을 쓰지 않아도 이미 초인의 반열에 오른 태운의 신체 능력.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태운이 서슴없이 도심에서 마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착각한 이한천은,
“…딸꾹!”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데서나 마력을 사용하는 미친놈을 건드렸으니,
‘잘못 걸렸다.’
앞으로 두 발 뻗고 자는 건 그른 듯했다.
* * *
―보셔서 아시겠지만… 특임반장은 저희도 통제가 되질 않습니다.
―의원님, 저희 협회는 결코 윗선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든 건 특임반장의 독단이었습니다.
―아, 알겠네. 자네들 사정은 알겠어. 이, 일단 오늘은 가보겠네. 좀… 쉬어야겠어.
―들어가십시오.
털썩!
“하아아아…….”
자신의 의원실로 돌아온 이한천은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수명이 20년은 줄어든 것 같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냥… 무서웠다.
죽다 살아났으니까.
“…….”
바닥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이한천.
점차 시간이 지나고,
“……!”
이한천의 이성이 돌아오며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뿌득 ―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개X끼가… 감히 나를?”
콰앙! 콰앙! 콰아앙!
이한천의 앙상한 두 주먹이 테이블의 유리 덮개를 산산조각 냈다.
“내가…!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뚝 ― 뚝 ―
유리에 베인 그의 손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아프지도 않은지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는 이한천.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티딕 ― 띡띡띡.
뚜르르르 ―
벨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울리고,
{여보세요.}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날세. 이한천.”
이한천이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아이고, 의원님 아니십니까. 어쩐 일이시죠?}
“자네가 일 좀 하나 해줘야겠는데.”
이한천의 말에 남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음… 바로 해야 합니까? 죄송하지만 요즘 좀 바빠서…….}
“자네도 최근에 한 번 곤혹을 좀 치렀지 않나?”
{…무슨 말씀이신지?}
남자의 목소리가 진중해졌다.
씨익 ―
진중해진 남자의 태도에 이한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거 왜 이러나? 나 이한천이야. 대충 알려고 하면 모두 알 수 있다고… 최근에 차이나타운을 건드렸었지?”
{……!}
“의뢰 대상은… 특임반장일세.”
{특임반장……!}
전화 너머, 이한천의 전화를 받던 도명조의 두 눈빛이 진해지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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