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전 세계가 너무 난리 남 (1)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직장인 김 씨는 회사 점심시간을 맞아, 직장 동료 몇몇과 회사 근처 국밥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웅성웅성.
평소 김 씨와 동료들이 자주가는 국밥집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뭐야… 여기 맛집으로 소문났나?”
“아씨… 저기 나만의 맛집이었는데…….”
잔뜩 몰린 인파에 앞으로 사람들이 몰리겠다는 생각이 든 김 씨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일단은 가까이 다가가 보는 김 씨와 동료들.
웅성웅성.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국밥집을 온 사람들치고는 국밥을 주위로 빙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니던가?
꼭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연예인이라도 왔나?”
“아니면 혹시 고위 헌터?”
헌터 덕후인 김 씨의 동료 박 씨가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인파 속으로 달려갔다.
“야야! 저놈, 진짜…….”
“냅둬. 쟤 찐이잖아.”
김 씨와 동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먼저 달려간 박 씨의 뒤를 따라 천천히 인파로 들어갔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조금 지나가겠습니다.”
어떻게든 인파를 뚫고 원 안쪽으로 들어오는 데에 성공한 김 씨와 동료들.
그리고 그들이 목격한 것은,
“헙!”
국밥집 앞에 떡하니 생겨난 작은 던전 게이트였다.
“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동료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먼저 와있던 박 씨는 고개를 저으며 눈빛을 빛냈다.
“무슨! 브레이크된 것도 아니고, 직접 건들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리고 누군가 신고했을 테니 곧 협회 직원들이 올 거야. 그니까 우린 그때까지 구경이나 하면 돼.”
박 씨의 표정은 굉장히 신나 보였다.
그냥 헌터나 던전에 관련된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였으니까.
그리고 김 씨와 동료들은 그런 박 씨의 엄청난 덕후력을 알고 있었기에,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는 박 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냐… 하튼 되게 신기하긴 하다. 저기로 들어가면 던전이 나온단 말이지…….”
“가위바위보 해서 지면 들어가 보기?”
“어, 너나 죽어~”
“킥킥킥.”
던전을 앞에 둔 채 농담을 던지는 김 씨와 동료들.
이때까지만 해도 별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거 안에서는 못 나오고 여기서만 들어갈 수 있는 거 맞지?”
인파 중 고등학생 무리 몇몇이 빙 둘러싼 원 안으로 들어왔다.
“어어! 저 녀석들이!”
“진짜 요즘 애들은 겁대가리가 없어.”
인파 속에서 곧바로 그들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시대든지 간에 일단 모든 학생들은 요즘 애들이라는 말에 어울리듯, 겁이 없는 건 국룰인 듯했다.
그런데 이 고등학생들은,
“그럼 돌 던지면 몬스터들 맞는 거 아니야?”
진짜로 겁대가리가 없었다.
어디선가 짱돌을 주워들고 온 고등학생 하나.
금발로 샛노랗게 염색하고 타투와 피어싱까지 한 꼬라지를 보아하니 누가 봐도 나 일진 양아치라고 광고하는 듯했다.
건들건들.
아니 애초에 점심시간인데 학교가 아닌 이런 대로변에 나와 있다는 것부터가 평범한 학생들은 아니었다.
“야, 잘 봐라. 나 이제 헌터 된다. 몬스터 잡으면 마력 오르잖아, 인정?”
금발 양아치가 투구폼을 잡았다.
“뭐, 뭐 하는 거야!”
금방이라도 돌을 던질 듯한 폼에 놀란 박 씨가 소리를 질렀지만,
슈욱 ― !
이미 양아치가 던진 돌은 게이트를 향해 날아간 뒤였다.
슈룩 ―
그냥 부드럽게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돌.
“……!”
양아치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인파들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게이트는 살짝 빛이 일렁였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우, 쉬X. 순간 겁나 쫄았네.”
“푸하하핫! 헌터 된다면서 돌 던져놓고 쪼는 거 개 추하죠? 고딩인데 팬티에 지렸죠?”
양아치들의 개념 없이 위험한 행동에 인파 속에서 몇몇 사람들이 이들을 훈계하려 나섰다.
“너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다 저 게이트 터지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냐!”
양복을 입은 한 아저씨가 버럭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귓구녕을 파며 후 부는 금발 양아치와 그 친구들.
“에이, 아저씨. 뭔 소리야? 무슨 게이트가 돌 던진다고 터져? 게이트가 뭐 비눗방울이야?”
“크크큭! 비눗방울이래 크하핫! 버블 경제 드립 신선했다.”
“어제 그거 하나 또 주워들었다고 바로 써먹네, 이 X끼. 쟤는 경제란 말은 꺼내지도 않았거든.”
“응, 느그 인플레이션~”
“이 X끼는 그냥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연관성이 1도 없네.”
자기들끼리 히히덕거리며 아저씨의 훈계를 무시하는 그 모습에 박 씨도 화가 났는지 씩씩거리며 거들고 나섰다.
“너희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일 뻔했어! 알아?!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이 시간에 여기 왜 있는 거야!”
찍 ―
금발 양아치가 이 사이로 바닥에 침을 뱉었다.
“우리가 학교를 가든 말든 아저씨들이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자꾸 무슨 돌 던졌다고 게이트 터진다고 지X이세요? 예에?!”
눈을 부라리며 보란 듯이 또 한 번 돌을 던지는 양아치.
슈룩 ―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돌은 게이트 너머로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다.
“……!”
순간, 기겁한 박 씨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다시 동료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저 아저씨 쫄았다 키키킥!”
“킥킥킥! 아저씨 개 추하죠?”
고등학생들의 조롱을 들으면서도 빠르게 발을 놀리는 박 씨.
박 씨는 재빨리 동료들을 붙잡은 채 그들을 끌고 인파 속을 빠져나왔다.
“어어… 괜찮아? 저 X끼들 죽일까? 내가 왕년에 한따까리하던…….”
“…빨리 벗어나야 해. 택시!”
갑자기 택시를 불러세우는 박 씨.
그 모습에 김 씨와 동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너 진짜 왜 그래? 고등학생들한테 쫄았다고 택시까지 잡고 튈 것까지야…….”
“뭔 개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너네도 살고 싶으면 빨리 타!”
“……!”
누가 봐도 심각한 표정에 김 씨와 동료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박 씨가 뭔가를 봤거나 느꼈다는 걸.
탁 ―
네 사람은 택시에 얼른 올라탔다.
“기사님, 일단 여기를 좀…….”
앞자리에 탄 박 씨가 목적지를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박한식? 야! 왜 그래?”
뒤에 앉아있던 김 씨가 박한식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박한식의 동공은 김 씨가 흔드는 어깨보다 더욱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밟아주세요.”
“예? 뭐라고요?”
잘 듣지 못한 택시 기사가 되물었다.
그러자,
“밟으라고요! 빨리! 일단 서울만 벗어납시다!”
“모, 목적지는요?”
“아, 몰라. 따따블로 줄 테니까 일단 밟아요!”
부아아아아앙 ― !
따따블이라는 박한식의 말에 택시 기사는 일단 출발하고 보았다.
그렇게 박한식과 그의 동료들을 태운 택시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약 5분 뒤,
끼이이이이익 ― !
쾅! 콰아앙!
털썩 ―
쿠당!
도시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 * *
헌터 협회 본부 3층, 4층, 5층.
마치 대형 쇼핑몰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구조의 3층부터 5층은 전국에서 걸려 오는 신고 전화를 받는 곳이며, 가끔 브레이크 시 현장 통제를 위한 총괄 지휘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삐리리리리 ―
삐리리리리 ―
총 3개의 층에 걸쳐 여기저기서 울리는 벨 소리로 인해 헌터 협회 본부가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후다닥 ― !
다다다 ― !
전화를 받고 일 처리를 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직원들.
“상황 보고!”
5층 난간에 기대어 3층부터 5층까지의 직원들을 한눈에 담은 동석이 상황 보고를 지시했다.
“서울역 부근에 브레이크 2개 발생했습니다! 마력 감염자 수는 아직 파악되질 않고 있습니다!”
“성동구, 동대문구 각각 브레이크 3개씩 발생! 감염자 수 파악은 아직입니다!”
“신촌역도 브레이크 하나 발생했습니다! 학생들 피해가 너무 큽니다!”
“강남역 브레이크 2개 발생! 마력에 감염된 운전자들로 인해 도로가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은평구에서도 브레이크가…….”
서울 전역에서 수십 개에 달하는 브레이크가 발생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동석의 이마와 등에서 연신 땀줄기가 흘러내렸다.
“전투원들은! 전부 현장 도착했나!”
“수도권에 있던 알파, 베타, 감마, 델타까지 전 조원 현장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등급이 높지 않습니다! 전부 F급 브레이크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F급 브레이크 정도라면 델타조원들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약한 던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수였다.
“현장에 도착한 길드 현황 보고!”
“한강 이남 쪽 브레이크는 금천구를 제외하고 전 브레이크 지역에 백호길드가 도착해 정리 중입니다!”
“청룡길드 측 서울로 이동 중입니다!”
“청룡길드 산하 백룡 길드가 금천구로 향했습니다!”
“백호길드 산하 청호 길드가 지금 막 은평구에 도착했습니다!”
4대 길드 중 2개의 길드가 존재하는 수도권 지역.
그러나 직원들의 보고에는 정작 한 길드가 빠져있었다.
“주작길드는? 주작길드는 왜 보고가 없어?!”
“주작길드장과 부길드장 모두 통신 두절입니다!”
“뭐……?”
동석은 귀를 의심했다.
둘 다 통신두절이라고?
‘설마 브레이크에 당했단 말인가? 그 둘이?’
하지만 분명 F급 브레이크라고 했다.
S급 헌터인 두 사람이 고작 F급 브레이크에 당할 리 없었다.
‘설마…….’
아무리 주작길드라고는 해도 해서는 안 될 의심의 씨앗이 스멀스멀 동석의 머릿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몬스터들에 의해 주작길드 본사가 파괴되었습니다!”
한 직원의 보고에 의해 동석은 의심의 싹을 자를 수 있었다.
“아니, 그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주작길드원들은 어디 갔어!”
그때, 한 직원이 전화를 받고 다급히 외쳤다.
“주작길드원 중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단체로 일본에 여행을 갔다고…….”
콰앙!
우지직!
동석의 주먹이 5층 난간을 단번에 우그러뜨렸다.
“하필 이럴 때에……!”
천안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그 시간, 그 타이밍에 주력 헌터들과 전부 던전 안에 있었다니.
물론 그럴 수는 있었다.
브레이크가 예고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두 번 연속이나?
‘하지만…….’
이번 브레이크로 인해 주작길드 본사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명백하게 주작길드도 천문학적인 손해를 본 상황. 의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우연이 겹친 것일 뿐.
질끈!
눈을 강하게 감았다가 뜬 동석의 눈빛이 진해졌다.
‘우선은 사태 해결이 먼저다!’
브레이크가 터지며 발생한 마력 감염증 환자들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몬스터들로 인해 발생할 2차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집중할 때.
동석은 곧바로 태운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먼저 와있는 메시지 하나가 동석의 눈에 들어왔다. 감마조원 중 한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읽은 동석의 안색은,
“왜… 왜 하필 이럴 때……!”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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