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전 세계가 너무 난리 남 (5)
태운이 한강 이남을 정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북 지역의 대피가 완료되었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은 서울이었지만 그만큼 대피소가 워낙 곳곳에 잘 구비되어있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서울은 다른 도시에 비해 건물들이 죄다 신식이어서 웬만한 건물마다 지하에 임시 대피소가 잘 지어져 있는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미처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은,
끼이이이익 ― !
협회 직원들의 발 빠른 대처 덕에 방마 트럭을 타고 브레이크 외곽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방마 트럭으로만 약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을 구출한 협회 직원들이 외곽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무전을 쳤다.
“서울 전 지역 대피 완료!”
흥분한 델타조장 김인국이 대피소 문을 걸어 잠그고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대피소 안.
현장을 찍고 있는 중계용 드론들이 서울시 곳곳을 촬영하고 있는 영상이 대피소 안쪽에 설치된 대형 TV에 송출되고 있었다.
“왜 다 철수하는 거야?”
“몬스터들이 아직 저렇게 많은데… 뭐 하는 거지?”
상황을 모르는 시민들이 대피소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알겠습니다.}
비상 상황을 대비해 무전을 들으며 대피소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협회 직원들의 무전기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우우우 ―
TV 속 서울시 하늘 전체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금방이라도 세상을 멸망시킬 것만 같은 붉은 번개 다발들이 용처럼 곳곳에서 꿈틀거리며 하늘을 가득 채웠다.
[적뢰우(赤雷雨)]
한강 이남을 적신 붉은 번개의 비가 훨씬 더 커진 규모로 한강 이북 전체를 적시고 있었다.
콰르르르르릉 ― !
하늘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무지막지한 천둥소리에 대피소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크아아악!”
우르르릉 ―
천둥소리가 방마벽을 뚫고 들어오며 대피소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이런 미친……!’
김인국의 표정에 놀라움과 경악스러움이 뒤섞였다.
방마벽은 마력을 차단하는 데에 특화된 벽.
마력 감염을 막기 위한 벽이니만큼 방마 기능 자체에 초점을 두고 설계된 벽이라 기타 다른 건물들에 비해 충격이나 방음에 취약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벽은 벽이다.
아무리 천둥소리가 크다고 한들, 겨우 소리에 이렇게 건물이 흔들려서는 안 되었다.
‘대체 얼마나 소리가 큰 거야……!’
붉게 물든 화면 속 하얀 점을 바라보는 김인국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 * *
ㄴ 특임반장 미친 쉨…
ㄴ 돌았냐 진짜 개 지리네
ㄴ 어디 있다 이제 왔어! 다 뒤지는 줄 알았네!
ㄴ 형 나 대피소에 있는데 천둥소리 좀 무섭거든? 살살 좀 해주라…
생중계 댓글창도 완전히 난리가 났다.
특임반장의 등장과 함께 그의 화려한 전투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전투라고 하긴 힘들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으니까.
배애애애애애앵 ―
파지지직!
강천을 피해 달아나던 5마리의 소음 파리들이 광속으로 떨어져 내린 적뢰에 맞아 까맣게 타버렸다.
“……!”
강천을 비롯해서 대련장 바깥에서 전투를 벌이던 인원들이 모두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친…….”
대한과 민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콰지직! 파지직!
쿠르릉 ― 콰르르릉 ― !
세상이 멸망하는 것 같았다.
“히익!”
수없이 떨어지는 번개 다발들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덮칠 것만 같은 공포에 전투를 벌이던 헌터들이 어깨와 목을 움츠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파지지직!
붉은 번개는 귀신처럼 몬스터들만을 타격하고 있었다.
주륵 ―
서울 한복판에 떠오른 채 눈을 감고 집중하는 태운의 가면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마력을 지닌 대상을 따라가는 유도성질을 지닌 적뢰였으니까.
아직 거리에 남아있는 헌터들을 공격하지 않으려면, 헌터들을 노리는 적뢰들의 방향을 비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강 이북으로 헌터들을 모두 보내버렸던 한강 이남을 정리할 때와는 다르게 시민들의 대피를 완료시킨 채, 여전히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헌터들이 많이 남아있어 태운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파지지직! 파직!
헌터들을 향해 떨어지려는 번개를 비틀어 근처 건물의 피뢰침으로 유도했다.
다행히 몬스터들이 전부 F급이라 오래 걸리지 않은 대학살.
“후우…….”
몬스터의 전멸을 확인하고 자기장을 거둔 태운의 턱 끝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치익…….
태운이 무전을 쳤다.
“몬스터 진압 완료. 브레이크된 던전 토벌 상황 보고해주세요.”
세상에 던전이 나타난 이후, 최초이자 이례적으로 나타난 동시다발적인 브레이크가,
{중구 지역 토벌 완료했습니다.}
{동대문구 지역 토벌 완료했습니다.}
{성동구 지역 토벌 완료했습니다.}
……
태운과 다른 이들의 협력 덕에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임반장님! 지금 다른…….}
“…한국뿐만이 아니라고요?”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에 태운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일주일이 지났다.
한두 개도 아닌 수십 개의 던전이 동시에 브레이크된 다중 브레이크 사건.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서울에서 발생한 다중 브레이크는 총 12만여 명의 마력 감염증 환자를 발생시켰으며 그중 11만 2천여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특임반장을 비롯한 헌터들이 그렇게 고군분투하여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단시간에 최대한 빠르게 사태를 종결시켰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1,000만에 달하는 서울시 인구를 생각하면 피해는 그야말로 미미한 편이었다.
안타깝게도 다중 브레이크가 발생한 국가는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이번 다중 브레이크를 겪은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총 6개국.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브라질, 나이지리아였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이변 현상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 연결해보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룬 뉴스들이 연일 쏟아져나왔다.
피해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지역/사망자/지역 인구 대비 피해율]
― 한국 : 서울/11만2천/1.12%
― 일본 : 도쿄/90만/6.42%
― 미국 : 뉴욕/584만/29.2%
― 프랑스 : 파리/57만/25.9%
― 브라질 : 상파울로/750만/60.8%
― 나이지리아 : 라고스/2000만/76.9%
30분도 되기 전에 브레이크 토벌을 완료한 한국을 제외한 일본, 미국, 프랑스는 브레이크를 토벌하는 데에 만 하루가 걸렸다.
일본과 프랑스는 그렇다 쳐도 세계 최강의 헌터대국인 미국이 오래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데다가 고위 헌터들의 대다수가 태평양 연안 쪽 길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세계급 헌터 중 2명이 외국에 있었고, 남은 1명은 홀로 다른 던전을 토벌 중이었기에 제때 브레이크를 정리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건물마다 대피시설이 잘 구비되어있었기에 하루가 걸렸음에도 그 시간에 비해 피해가 경미했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는 시설적인 대비가 부족했기에 헌터들이 고군분투를 했음에도 파리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파리 사태를 목격한 실정이 비슷한 유럽의 각국은 대피시설 확충을 위해 발 빠르게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하루 안에 진압하지 못한 나머지 두 국가 중 하나인 브라질은 사태를 진압하는 데에 나흘이나 걸리고 말았다.
인구가 많았기에 헌터는 많았지만, 질이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대피소 같은 시설도 제대로 지어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브라질 최대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가장 심각한 건 나이지리아였다.
2,600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인구수를 자랑하는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
그러나 인프라는 열악하기 그지없어 거의 모든 사람이 마력에 그대로 노출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나이지리아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었기에, 주변국으로 퍼지는 걸 우려한 다른 아프리카의 헌터들이 지원을 나서 6일 만에 겨우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무려 2,0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고 말았다.
남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수이며, 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에 3분의 1에 가까운 수였다.
단 일주일 만에 4,000여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희생된 지구.
세계가 슬픔으로 물들었다.
“아아아아아아~”
전 세계 곳곳에서 추모곡과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어두운 방 안.
일본에서 돌아온 도명조가 소의 탈을 쓰고 새로 산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다.
지잉 ―
그를 포함하여 노트북 화면에 뜨는 총 13개의 화면.
악귀 형상의 탈을 쓴 남자를 필두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보고하도록.}
악귀탈의 남자의 말에 12지신의 탈을 쓴 이들이 각각 자신의 성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의 차례가 되고,
{소, 보고해라.}
악귀탈의 남자가 두 눈빛을 빛냈다.
“예, 한 달간 한국에서 총 11만 2,500여 명, 그리고 일본에서 90만 명을 더해, 총 101만 2,500여 명입니다. 사용한 자원은 F급 씨앗 50개입니다.”
{흠.}
악귀탈의 남자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도 다들 수고가 많았다. 특히 용, 쥐, 양, 개, 소의 방주. 아주 칭찬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악귀탈의 남자가 호명한 탈을 쓴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두근두근.
소는 고개를 숙인 채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고 있었다.
‘살았다… 살았어……!’
{그런데 소.}
흠칫!
그러나 악귀탈의 부름에 이내 다시 소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예.”
{비슷한 개수의 씨앗을 사용했음에도 용, 쥐, 양, 개에 비해 성과가 부족한 듯하군. 한국에 몇 개를 사용했지?}
“하, 한국과 일본 각각 25개씩 사용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인프라가 좋은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다. 그 때문만은 아니지. 특히 한국엔 최근에 나타난 그놈이 있지 않나? 정리를 빨리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악귀탈의 말에 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놈을 향한 국내 여론이…….”
{소.}
쑤욱 ―
악귀탈은 전처럼 노트북 화면을 빠져나와 자신의 얼굴을 소의 코앞까지 들이댔다.
덜덜덜.
소의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일단 100만이라는 기준은 넘겼으니 저번 일은 용서하겠지만… 더 이상 놈의 명성이 퍼지는 걸 막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런 지구촌 정보화 시대에 특정 인물 정보를 해외에 퍼지지 않게 막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죄, 죄송합니다.”
소의 어깨와 목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꿀꺽 ―
악귀탈이 소를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는 다른 방주들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과는 달리 다른 방주들은 이제 소가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
필터링된 정보를 그들도 보았으니까.
하얀 가면을 쓰고 하늘에서 붉은 번개를 뿌려대는 특임반장의 힘을 말이다.
‘불쌍해라.’
‘한국 안 걸려서 다행이다.’
‘여론까지 장악했으면 진짜 골치 아프겠는데.’
‘그전에 처리했어야지, 멍청한 놈.’
하지만 악귀탈의 분노도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특임반장.
그러나 한국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소식과 정보에 대해 외국인들의 접근 자체를 그가 막아버렸으니까.
외신들이 특임반장에 대한 소식을 전혀 다루지 않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냥 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악귀탈에게는 세계로 퍼지는 그에 대한 정보를 틀어막고 접근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즉 세계의 정보 자체를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과 힘이 있었다.
이번 다중 브레이크 사태도 외국에는 한국이 특별히 피해가 적고 빠르게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잘 구비된 대피소 등의 인프라와 대형길드들의 발 빠른 대처로만 소개되었을 뿐이었다.
“명심해라 소. ‘권능’도 만능은 아니야. 한국 안에서의 정보까지 통제할 수 없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놈의 명성이 더 커지고 복잡해지기 전에 빠르게 마무리해. 그리고 놈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 판단에 실수가 없도록 해라. 놈의 힘은 명백히 세계급 수준이니까.”
“……!”
악귀탈의 말에 소가면 뒤, 도명조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역시 이매탈과 동일 인물이었어……!’
펜릴을 잡은 이매탈.
어디서 뭐 하나 했더니만 특임반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분명 푸른 번개를 사용했었는데……?’
소가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악귀탈이 단번에 정리해주었다.
“멍청하긴. 능력이 한 가지라는 그 고정관념을 버려.”
“아……!”
쑤욱 ―
다시 모니터 안으로 들어간 악귀탈이 모든 방주들에게 알렸다.
{어쨌든 이번 달의 성과에 대해선 모두 잘했다고 칭찬해주지. 특히 압도적인 성과를 올린 용, 소, 쥐, 양, 개의 방주에게는 각 대륙별 씨앗 분배권을 내리겠다.}
악귀탈의 파격적인 권리 이양에 용, 소, 쥐, 양, 개를 제외한 방주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악귀탈은 방주들의 그런 반응을 눈치채고도 반응하지 않았다.
{사망자들이 많이 나온 만큼 그 뒤에 해야 할 일들도 알 거다. 한동안은 다들 바쁘겠군. 특히 소.}
악귀탈이 소를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서두르는 게 좋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고 싶지 않다면.}
퍼억 ―
악귀탈의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노트북 전원이 나가며 화면이 까맣게 암전되었다.
“…….”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
투욱 ―
소 탈을 벗은 도명조의 눈 밑은 어느새 방 안을 채운 어둠보다도 더 까맣게 죽어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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