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이렇게까지 잘 되길 바라진 않았음 (1)
불과 일주일 만에 발생한 4,000여 만의 희생자들.
전 세계가 혼란과 슬픔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다중 브레이크 사건을 겪었던 국가 중 가장 피해가 경미했던 한국이었지만,
대앵 ~ 대앵 ~
11만 2천 명이라는 숫자도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으니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발생한 사망자 탓에 전국의 장례식장이 마비되었고, 사망자 수 이상의 유족들 울음 소리로 인해 서울 전역에서는 며칠째 통곡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천안 브레이크, 163빌딩 화재 사고 때도 열렸던 대규모 합동분향소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열리며 수일째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힘든가?”
광화문 광장을 지나가는 차량 안에서 동석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태운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인위적인 사고와 자연재해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물론 많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때만큼 괴롭진 않습니다. 다만…….”
“…자연재해라기엔 무언가 작위적인 느낌이 있었지.”
동석의 말에 태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지만 전 세계적인 이변 현상으로 치부되어버린 다중 브레이크 사건.
헌터학계에서조차 이번 일은 던전이 일으킨 기이한 현상 정도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번 일이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모든 다중 브레이크가 6개국의 최대 인구를 지닌 도시에서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동시에… 이걸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지…….”
태운이 말끝을 흐리자, 동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브레이크를 인위적으로 일으킨다는 것도 말이 되질 않지. 던전은… 일반적인 자연재해와 궤 자체를 달리하니까.”
던전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던전 속 세계는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라는 것뿐이었다.
헌터의 시작이자 존재의 이유인 던전.
그런 헌터의 근원을 다룰 수 있다?
그것도 발생 위치와 브레이크를 자유자재로 일으킬 수 있는 수준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정작 태운의 힘만 봐도 그랬으니까.
태운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차창 밖을 쳐다보았다.
헌터의 근원을 다루는 힘?
태운의 힘은 우주의 근원을 다루는 힘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주의 근원도 다루는데, 헌터의 근원쯤이야 다루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아직 섣부른 판단은 일러.’
부우우웅 ―
태운과 동석을 태운 차량이 어느 한 건물을 지나쳤다.
완전히 반파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너덜너덜한 건물.
주작길드의 본사 건물이었다.
‘주작길드…….’
천안 때도 그렇고 하필 중요한 순간에 자리를 비웠던 주작길드.
‘하필 그날 길드원 전원이 여행을 갔다고?’
주작길드 건물을 바라보는 태운의 미간이 좁아졌다.
“후우…….”
그렇다고 주작길드를 의심하기엔 너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심지어 최근 3년간 주작길드 사람들은 미국과 일본만을 방문했을 뿐이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작길드의 뒤를 캐보았던 태운은 이렇다 할 소득 없이 그들에 대한 의심을 접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주작길드에 대한 묵은 감정까지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주작길드에는,
‘조금만 더 기다려라. 처절하게 무너뜨려 줄 테니.’
그의 원수가 있었으니까.
* * *
그 어떤 경우든 좋은 일 있다면 나쁜 일이 있기 마련이고, 나쁜 일이 있다면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었다.
세계는 4,000만 명이라는 사람들이라는 잃었지만, 그와 동시에,
“괜찮아요?”
150만 명이 넘는 새로운 헌터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다중 브레이크 사건에 휘말려 마력에 감염되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이었다.
피해가 가장 경미한 한국에서도 일주일만에 8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헌터들이 생겨났다.
한 해에 100여 명 안팎의 헌터가 나오던 한국의 평균치에 무려 80배에 달하는 수치.
“으음…….”
“여기 또 깨어나셨다!”
포화 상태에 이른 마력감염 환자 전용 병실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특수방마복을 입은 채 깨어난 환자들을 케어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환자로 인해 병원의 인력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뚜벅뚜벅 ―
검은 양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앗! 들어오시면 안 돼요!”
한 병원 간호사가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자,
스윽 ―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품속에서 명함을 내밀었다.
“…응? 헉! 주, 주작…….”
놀란 간호사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들은 4대 길드 중 하나인 주작길드의 사람들이었으니까.
“실례할게요~”
무리 중 검은 단발의 한 여인이 간호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저기 어떤 일로 오신…….”
간호사는 살짝 겁먹은 와중에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들의 목적을 물었다.
그러자 방금 전 미소를 지었던 여인이 들고 있던 파일철을 흔들어 보였다.
“선점 계약하러 왔죠~”
“예…? 선점 계약?”
본래 길드 계약은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이루어졌다.
그 누가 되었든, 사관학교에서 어느 정도 기본을 배우고 준비가 되어야 앞으로의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병원에 있는 이들은 아직 고유 능력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길드들의 입장에선 굳이 병원까지 찾아가며 헛걸음할 이유가 없었다.
“길드장님 지시라서요~”
싱긋 ―
뚜벅뚜벅 ―
다시 한번 간호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주작길드 사람들.
그날, 전국의 마력감염증 환자 8,000명 중 900여 명이 주작길드와 비밀리에 선점 계약을 체결했다.
주작길드가 어떤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점 계약 모두 완료했습니다.}
“수고했다.”
또다시 무언가 꾸며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 * *
“몰래 누군가를 만났다고?”
“응.”
청룡길드 본사.
길드장실에 김천용과 민호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명조 감시에 대한 일 때문이었다.
“왜 진즉에 말 안 했지?”
김천용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민호성을 쏘아보았다.
“…뭔가 알아내면 알려주려고 했지. 만났다는 것 말고는 알아낸 게 없단 말이야.”
민호성이 슬쩍 김천용의 눈을 피했다.
따지고 보면 그도 억울하긴 했다.
뭔가 알아내면 연락하라고 했지, 모든 경과를 보고하라고 듣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피해자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나온 이번 다중 브레이크 사건에 대해 김천용이 도명조를 의심하기 시작한 와중에, 민호성이 그 점을 들어 김천용에게 따지기란 불가능했다.
“후우… 일단 지금까지 관찰한 내용 전부 말해봐.”
“음… 일단 그날 이후 특별한 움직임 자체는 거의 없었어. 주작길드 본사와 자택을 왔다 갔다 하거나 이화연이랑 외식을 나가는 것 빼고는… 음, 다중 브레이크 전에 출국한 게 끝이야.”
김천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분명 브레이크가 터지기 몇 시간 전에 출국했다고 했지?”
“응, 정오 즈음에 터졌는데 그날 아침 일찍 길드원들과 다 같이 비행기를 탔으니까.”
“…….”
김천용은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팔짱을 끼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바닥을 쳐다봤다.
‘서울 12개 구에서 총 25개의 브레이크가 터졌어. 도명조가 넘어갔던 일본도 25개가 터졌고… 그에 비해 다른 국가들은 50개 안팎의 브레이크가 터졌는데… 이게 우연일까?’
증거는 없었다.
딱히 이야기가 될 만한 인과 관계나 개연적 단서도 없고.
하지만 김천용의 직감이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번 일에 분명 도명조가 연관되어 있다고 말이다.
“뭔가 이어질 만한 단서 하나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툭툭 ―
김천용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툭툭 건드렸다.
지도 위에 표시된 25개의 빨간 점들.
지도에는 브레이크가 발생했던 장소가 모조리 표시되어 있었다.
그때,
“…음?”
문득 가만히 지도를 내려다보던 민호성이 무언가 발견한 듯 상체를 앞으로 숙여 얼굴을 지도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왜 그러지?”
김천용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분위기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민호성이 무언가를 발견해냈다는 것을 말이다.
민호성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점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서도 브레이크가 있었어?”
민호성이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한 산이 있었다.
바로 은평구에 위치한 ‘봉산’이라는 낮은 산이었다.
“그래. 청호 길드가 토벌한 브레이크 던전이지. 이상한 점이 있나?”
민호성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여기… 그때 도명조가 어떤 남자랑 만났던 장소 같은데.”
벌떡!
민호성의 말에 김천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앞장서.”
“어……?”
갑작스런 김천용의 명령에 민호성이 당황하여 두 눈을 크게 떴다.
“직접 가보면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무언가 확신한 듯한 김천용의 눈빛은 이미 직접 가보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 좀 쉬고 싶었는데.’
“하아… 알았어.”
강원도에서 은평구까지.
장시간 운전할 생각에 피곤해진 민호성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다중 브레이크 사건이 마무리되고 다시 사관학교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꽤 상당수의 학생이 갑작스레 마주한 몬스터에 대한 PTSD가 생겨 얼마간 치료를 받는 소동이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사관학교 내에선 사망자가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기에 일상으로의 복귀는 그 어느 곳보다 빨랐다.
특히 실전반은 브레이크 전보다 오히려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브레이크는 던전보다 훨씬 더 쉽게 겪을 수 없는 흔치 않은 기회였던데다가 이번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자신들의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오늘도 실전반 생도들은 평소처럼 강해지기 위해 의지를 다지며 단련을 시작하려고 했다.
실전반 교관인 철민이 누군가를 데려오기 전까진 말이다.
“편입생이다.”
“…예?”
“아니지… 졸업했었으니까 재입학이라고 해야 하나?”
평소보다 조금 늦게 온다 싶더니, 철민은 뜬금없이 어떤 여인과 함께 대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메랄드색에 검은 물감을 푼 듯한 흑청빛의 생머리와 고생 한번 해보지 않은 듯 물방울처럼 고운 피부.
거기에 나 착하고 순해요 – 라고 쓰여있는 듯한 사슴 같은 눈망울까지.
그래서일까, 그녀는 그리 작은 키가 아님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했다.
그래, 그냥 간단히 말해서 초미녀였다.
“……!”
그녀를 본 5명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남자들 중 누군가는,
후욱 ― 후욱 ―
자신도 모르게 콧바람까지 뿜어대고 있었다.
흘긋 ―
콧바람을 뿜어내는 대한을 민아가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뭐, 뭐야?”
“…저질.”
갑작스런 초미녀의 등장에 남자 생도들이 절로 긴장하여 얼어붙었고, 민아는 알 수 없는 경쟁의식으로 인해 불타올랐다.
“청룡길드… 최서아?”
강천이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기 전까진.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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