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이렇게까지 잘 되길 바라진 않았음 (2)
부우우웅 ―
차 안은 봉고차의 거친 엔진 소리만이 가득했다.
봉고차 안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
세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부우우웅 ―
운전대를 잡은 철민이 연신 눈으로 백미러를 흘긋거렸다.
‘왜 저리 어색해? 둘 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런가.’
그의 뒷자리엔 한 쌍의 남녀가 타고 있었다.
잿빛 은발의 강천과 흑청발의 서아.
머리카락의 색감적인 조화도 상당했지만 두 사람의 외모적 조화도 대단했다.
‘이야… 아주 그냥 모델들이구만.’
헌터가 되지 않았다면 둘 다 모델을 해도 잘나갔을 것 같은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서로 각각 양쪽 문에 달라붙어 차창 밖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묘하게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씨X럴. 갑자기 화나네.’
은근히 속으로 두 사람의 외모에 감탄하던 철민은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화에 속으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잘생기고 예쁜 놈들이 능력까지 좋으면 나 같은 놈들은 어쩌라는 건지…….’
이미 결혼까지 했고 자식까지 가져봤던 철민이 할만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괜히 젊은 날이 생각나 왠지 억울한 철민이었다.
쿠르르르 ―
봉고차가 어느 산자락 앞에 멈춰 섰다.
“다 왔다. 내려라.”
달칵 ―
뒷자리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각자 따로 차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섰다.
“장비 챙기고.”
강천이 트렁크에서 경량갑옷을 챙기고,
탁 ―
서아도 경량갑옷과 기다란 막대기를 챙겼다.
그 모습에 철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력 보조 지팡이를 쓴다고? 아직도?”
“…네…….”
철민의 악의 없는 질문에 서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마력 보조 지팡이는 던전의 마정석을 베이스로 몬스터의 마석을 일부 합성 및 가공시켜 만든 고가의 장비로, 마력을 잘 다루지 못하는 초짜 헌터들이 마력 조작을 연습할 때 쓰는 그야말로 보조 장비였다.
내구성이 그리 강하지 않아 무기로 쓸 수는 없었기에 웬만해서는 고유 능력과 함께 직접 전투를 선호하는 헌터들에겐 실전에서 그다지 쓸모가 없는 장비였다.
“크흠… 미안하다. 말실수했어.”
서아가 어떤 문제로 다시 재입학했는지 알고 있었던 철민은 서아가 고개를 숙이자 헛기침을 하며 사과했다.
“…아니에요.”
그러면서 서아는 옆에 서 있는 강천을 쳐다보았다.
멀뚱히 갑옷만을 착용한 채 맨손으로 서 있는 강천.
서아는 강천을 흘긋거리며 철민에게 물었다.
“이분은… 갑옷만 입으시나요?”
“아, 얘? 얘는 무기 필요 없어. 몸이랑 능력 자체가 무긴데 뭐.”
“…….”
강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를 경계한다기보단 그냥,
‘…….’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있을 뿐이었다.
엄청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으니까.
친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달라졌겠지만, 철민은 친한 사람이라기보단 상급자인 교관.
또래가 단둘뿐이어선 강천의 낯가림이 풀어지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러나 곧,
“여기는 D급 던전, ‘독벌새의 협곡’이다. 참 뭐라고 할까… 너희한텐 너무 애매한 곳이지.”
철민이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강천의 눈빛이 또렷하게 돌아왔다.
“왜 애매하죠?”
강천의 물음에 철민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 사람은 등급에 비해 강하지만… 그래봐야 D급 나부랭이고, 한 사람은 등급에 비해 약하지만… 그래도 B급이란 말이지.”
벅벅 ―
철민은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는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본래 최소 D급 헌터 10명은 필요한 던전이야. D급치고 강한 놈이랑 B급치고 약한 놈 둘이서 감당할 수 있을지가 참 애매~하단 말이다.”
철민이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래도 난 너희를 한번 믿어보려 한다. 명심해. 무리하지 말고 힘들다 싶으면 자가 회복 사용하면서 뒤로 빠져. 절대 깊게 들어가지 말고,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바깥에서 유인해라.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 브레이크 하루 전에라도 내가 혼자 토벌하면 그만이니까. 알았어?”
““네.””
씨익 ―
철민은 미소를 지으며 강천을 바라보았다.
“누나 잘 케어해라. 그 녀석 따라가겠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괴물이랑 비교하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강천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짧은 순간, 강천의 뇌리에 얼마 전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쿠르르르릉 ― !
붉게 물든 하늘에서 내리치는 붉은 번개.
그리고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까지.
‘…그걸 어떻게 따라가……?’
“……?”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모르는 서아는 그저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아, 너도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연습해. 혹시나 뭔가 이상이 생기거든 이 녀석에게 말하고. 이놈 그래도 실전반 에이스거든. 마력 다루는 센스만큼은 나보다도 뛰어난 놈이니까 믿고 의지해도 돼. 어차피 너보다 동생인데다가 아직 헌터증도 없는 조무래기니까 하인 하나 생겼다 생각하고 부려 먹든지.”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진짜.”
강천의 입이 다시 한번 삐쭉 튀어나왔다.
계속 차가울 정도로 딱딱한 표정을 유지하던 차 안에서와는 전혀 다른 느낌.
그런 강천의 친근한 모습에 서아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잘 부탁드려요.”
긴장이 풀어진 서아가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었다.
흠칫!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낯선, 그것도 여성과 이렇게 악수를 하는 것 자체가 심히 낯설었던 강천의 얼굴이 당황한 듯 조금 빨개졌다.
하지만 내민 손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기에,
“자, 잘 부탁드립니다.”
서아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화악 ― !
강천의 얼굴이 조금 빨개지자 괜히 자신도 부끄러워진 서아도 귀를 붉혔다.
“…….”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철민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겉으로 내뱉고 말았다.
“X랄… 놀고들 있네.”
* * *
부우우우우웅 ― ! 부우우우우우웅 ― !
날갯짓 소리가 마치 거대한 모터가 돌아가는 듯 울리고 있었다.
D급 던전 ‘독벌새의 협곡’.
던전의 명칭답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좁은 협곡이 쭉 외길로 이어지는 단순한 지형의 던전이었다.
다만 외길 양옆으로 함께 쭉 이어져 있는 높다란 절벽이 들어선 이로 하여금 절로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부우우우우웅 ― !
협곡 위를 날아다니는 독벌새들의 대형 모터 같은 날갯짓 소리가 협곡 안의 공간에서 증폭되어 두 사람의 정신을 계속해서 사납게 했다.
“끄윽……!”
이 요란한 소리에 노출된 지 불과 수 분 만에 서아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주저앉았다.
‘이런.’
그런 서아를 본 강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보다 환경 자체가 너무 열악했던 것이다.
서아가 먼저 쓰러지긴 했지만, 강천의 정신도 흔들리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부우우우우우웅 ― !
고막을 넘어 계속해서 뇌까지 울려대는 그 진동이 인간의 균형감각을 자꾸만 흐트러지게 하고 있었다.
‘이대로 공격까지 당했다간 너무 힘들어지겠어.’
휙 ― 휙 ―
강천은 귀를 막은 채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귀를 막을 수 있는 걸 찾는 것이었다.
그러다,
‘아!’
강천은 자신의 품속에 있던 손수건을 떠올리고 손수건을 잘게 찢었다.
“서아 씨! 손 치워봐요!”
폭 ― 폭 ―
강천이 재빨리 서아의 양쪽 귀에 찢은 손수건을 뭉쳐 꽂아 넣었다.
“하아… 하아…….”
머리를 울리는 진동이 대폭 줄어들자 서아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고, 고마워요.”
하지만 강천은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자신의 귀까지 틀어막은 데다가 무엇보다 독벌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너무 컸으니까.
소리로 소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강천이 손에 검을 생성하여 땅바닥에 글자를 썼다.
[협곡 위로 가죠]
그러자 서아도 막대기로 땅바닥에 글자를 썼다.
[위험, 포위될 수도]
[대신 올라가면 소리 울림 X, 위험시 바로 도망]
‘아……!’
강천이 노리는 바를 이해한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 !
뜻이 통한 두 남녀가 가파른 협곡 위를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 * *
부우우우우웅 ― !
참새보다는 더 크고 비둘기보다는 조금 작은 독벌새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며 두 사람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여기가 훨씬 낫죠?!”
“…이걸 낫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협곡을 오르니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 대지는 온통 독벌새들의 작은 둥지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부우우우우웅 ― !
본질은 새인 주제에 진짜 벌처럼 떼거지로 날아드는 독벌새들.
놈들의 침에는 마비독이 있어서 침이 묻은 부리에 쪼이면 몸이 마비될 수 있어 위험했다.
쿠르르르륵 ―
서아가 재빨리 자신과 강천 주위에 두껍고 높다란 흙벽을 세웠다.
양옆과 뒤, 그리고 위를 막은 두터운 흙벽.
덕분에 두 사람은 전방에서만 날아드는 독벌새들만 주의하면 되었다.
“좋네요!”
빠바바바바박!
강천은 양손에 강철 쌍절곤을 쥐고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검으로 베기엔 너무 빠른 독벌새들을 일격에 치명상을 입히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마력으로 몸을 강화했다지만, 웬만한 새보다 훨씬 더 빠른 독벌새들을 잡아내는 강천의 동체시력과 운동신경에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서아는 혀를 내둘렀다.
‘대단해!’
분명 D급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강천이 보여주고 있는 움직임은 명백히 D급 헌터 이상의 움직임이었다.
‘C급… 아니, B급이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항상 후위에서 청룡길드원들의 전투를 지켜봤던 서아였다.
국내 최고의 기량을 가진 인재들만이 모여있는 청룡길드.
지금 강천은 그런 청룡길드의 B급 헌터를 떠올리게 할만큼 대단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빠각! 빠바바박! 빠가각!
“끼익!”
쌍절곤 한 번에 몸 어딘가가 우그러져 버린 독벌새들이 지면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마무리 부탁해요!”
퍼뜩!
강천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서아가 땅에 떨어진 독벌새들을 흙 속에 파묻어버렸다.
곧 숨 막혀 죽게 되겠지 – 라고 생각하며 할 만큼 했다고 여긴 그 순간,
“그렇게 말고! 새롭게 응용을 해봐요! 찔러 죽이던가!”
강천의 말에 서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찌른다고?’
찌른다니?
자신은 무기가 없었다.
가지고 있는 거라곤 마력 보조를 위한 막대기 하나뿐.
이런 막대기로 찌른다고 몬스터가 죽을 리가 없다는 건 강천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대체 무슨…….’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서아가 어버버하며 머뭇거리는 순간,
“잘 봐요!”
슈욱 ― !
강천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촤라라라락 ― !
순식간에 변화한 쌍절곤이 길게 늘어졌다.
채찍이었다.
부우우우웅 ― !
길게 늘어지며 하늘 위로 쭉 뻗은 채찍을 피한 독벌새들이 강천의 빈틈을 발견하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채찍을 위로 쭉 뻗은 탓에 강천의 상체가 무기 없이 열려있었으니까.
채찍의 단점이었다.
대상을 타격점에서 정확히 타격하지 못하고 빗나가게 되면 채찍 사용자는 채찍이 되돌아올 때까지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위험해요!”
기겁한 서아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씨익 ―
강천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웃고 있어?’
그의 미소를 발견한 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극검회(軟棘劍廻)]
촤좌좌좌좌좌좌좍 ― !
강천의 신형이 무자비하게 회전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수많은 독벌새들이 그를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푸슈슈슈슉 ― !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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