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이렇게까지 잘 되길 바라진 않았음 (3)
“허억… 허억…….”
“하아… 하아…….”
D급 던전 ‘독벌새의 협곡’ 게이트 앞.
던전 안에서 도망쳐 나온 두 사람이 각자 근처에 있던 나무에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떼거지로 달려드는 독벌새의 엄청난 맹공에 천하의 강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후퇴한 것이었다.
“후우… D급인데도 엄청나네요. A급이나 S급 던전은 그럼 어느 정도라는 거지…….”
말과는 다르게 강천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씰룩 ―
간간히 입가가 씰룩이는 것으로 보아 명백히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서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서아의 머릿속에 좀 전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휘리리리리릭 ― !
매섭게 회전하기 시작하는 강천의 신형.
그리고 그런 그에게 달려들던 독벌새들이,
촤좌좌좌좌좌좍 ― !
말 그대로 갈려 나갔다.
후두두둑 ―
그 어떤 비명이나 신음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기 조각이 되어 절명하는 수십 마리의 독벌새들.
촤라라랑 ― !
어느새 회전을 멈춘 강천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털고 있었다.
―요점은 과감한 응용에 있어요. 고유능력 명은 능력의 성질만을 정해주지, 능력의 형태는 정해주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면 이것처럼.
강천은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를 보여주었다.
채찍이 변화한 기다란 연검.
그러나 그 기다란 연검의 검날에는,
사아아아 ―
보기만 해도 섬뜩한 날카로운 강철의 가시들이 삐쭉빼쭉 돋아나 있었다.
부드러운 연검과 철퇴에나 있을법한 섬뜩한 가시들의 조화.
그야말로 연극검, 그 자체였다.
‘1차 각성 능력이 냉병기라고 했지.’
냉병기.
화약의 힘을 이용하지 않는 무기의 총칭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저런 냉병기의 형태는 없었다. 강천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좀 전의 장면을 떠올렸던 서아가 강천을 대단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무섭…지는 않으세요?”
서아는 강천에게 질문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손끝을 다른 손으로 붙잡았다.
‘못났어…….’
D급에 불과한 동생조차 저렇게 잘 싸우는데, B급씩이나 되는 자신은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으니까.
거기다 자기 등급보다 두 단계나 낮은 던전에 들어가 놓고 무섭지 않냐는 바보 같은 질문이나 던지고 있었으니…….
그때,
“당연히 무섭죠.”
강천의 대답이 서아의 떨림을 멈추게 했다.
“무섭…다고요? 근데 표정은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는데…….”
서아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았지만, 이미 전신에 아드레날린이 가득했던 강천은 전혀 낯을 가리지 않고 대답했다.
“음… 무서운 놀이기구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 무서운 건 분명한데 왠지 모르게 더 타고 싶고 중독되는? 사람들이 그런 걸 타고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도 다 비슷한 것 아닐까요?”
‘무서운 놀이기구……?’
서아는 살짝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보았다.
쿵 ― 쿵 ― 쿵 ―
선명하게 느껴지는 심장의 박동.
분명 헌터가 되기 전 무서운 놀이기구를 탈 때도 비슷하게 심장이 뛰었던 것 같았다.
그때,
울컥 ―
누군가와 함께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탔던 때를 회상하던 서아의 눈시울이 돌연 붉어졌다.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났으니까.
푸욱 ―
서아가 고개를 숙였다.
“대단하세요…. 저는… 그게 그렇게 잘 안 되어서…….”
강천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는 동시에 열등감과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던 것 같았다.
어떤 던전이든 들어가면 심하게 긴장해서 단순한 걸음조차 뻣뻣해졌다고나 할까.
‘그래… 그런 상태로 마력을 다루려니 잘 안 되는 거겠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
모의고사는 잘만 보던 수험생들이 정작 수능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
심지어 그 상태에서 체력까지 빠지게 되면, 그야말로 완전한 무기력과 함께 밀려오는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는 법이었다.
혼자 연습할 때와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의 차이가 극명했던 서아의 문제점이 제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
새삼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은 서아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최악이다… 이제 어떡하지…….’
단순히 마력을 잘 다루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쉽게 긴장하고 겁많은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헌터… 포기해야 하나 보다. 나랑은 맞지 않아.’
이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 A급이 되던 S급이 되던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었다.
남들의 발목이나 잡는 짐 덩어리.
운 좋게 능력을 조금 잘 타고나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낙하산.
서아는 더 이상 그런 시선과 평가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점점 자괴감과 두려움이라는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서아.
그러나,
“저는 서아 씨가 더 대단한데요.”
강천의 한 마디는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이 되었다.
“…네?”
내가 대단하다니?
처음 유니크형 능력자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사관학교에 가서도 극악한 운동신경과 센스 때문에 단 한 번도 잘한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서아였으니까.
“제가 대단하다뇨. 무슨 그런 농담을…….”
“당사자 앞에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기사를 봤어요. 서아 씨에 대한 이야기.”
잔뜩 상기되어 있던 강천의 눈빛이 슬프게 가라앉았다.
“17살… 그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모두 잃고 세계 최초의 유니크형이 된 소녀.”
움찔!
강천의 말에 서아의 몸이 작게 경련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모두 유니크형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에만 집중했죠.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는데.”
파르르 ―
강천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서아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나이에 혼자 남겨진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남의 속사정은 생각조차 하지 않더라고요. 멋대로 기대나 하고 부담만 주고 말이야.”
뚝뚝 ―
고개를 숙인 서아의 얼굴 밑으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윽 ―
강천은 품에 안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서아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봤다.
파르르 ―
가녀린 그녀의 어깨가 연신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강천의 눈에도 약간의 습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홀로 그걸 버텨온 서아 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자 후배로서.”
흠칫!
고개 숙여 눈물을 훔치던 서아가 강천의 말에 놀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온통 눈물범벅이 된 서아의 얼굴.
그리고 그건,
주륵 ―
강천도 마찬가지였다.
뚝 ― 뚝 ―
서로를 마주 보며 흘린 두 남녀의 눈물이 나무 밑의 흙을 촉촉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세계 첫 번째 유니크형 능력자 최서아, 그리고 세계 두 번째 유니크형 능력자 유강천.
두 사람이 서로의 아픔과 감정을 공유한 순간,
쩌적…….
여태껏 서아의 전신을 짓눌러왔던 가장 큰 부담의 바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 *
늦은 오후.
부우우웅 ―
철민은 강천과 서아를 데리러 가기 위해 다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짜식들… 조금은 친해졌으려나.”
함께 던전 토벌을 하기 위해선 소통과 팀워크가 필수였다.
물론 그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던데다가 낯까지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둘 다 명백히 D급 몬스터보다 훨씬 강한 녀석들이니까.’
이번 던전의 몬스터보다 월등한 기량을 가진 두 사람이었기에 이번 던전은 부족한 소통 능력과 팀워크를 단련하기에 적합했을 것이었다.
‘무리해서 깊게 들어가지만 않으면 위험한 건 없으니까.’
최악의 경우, 헌터에겐 자가 회복이라는 수단이 있었다.
독벌새는 마비독으로 상대를 마비시켜 천천히 죽이는 타입이었으므로 무리에 둘러싸이지 않는 이상 손쓸 새도 없이 당할 일은 없을 터.
부우우우웅 ―
어느새 철민이 모는 차량이 던전 입구 근처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응?”
믿기 힘든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하하핫! 누나 이런 성격이었어요?”
“헤헤… 이상해……?”
철민은 두 눈을 의심했다.
‘뭐야, 갑자기 이 하이틴 드라마 같은 분위기는?’
저 연놈들이 분명 아까 전 딱딱하게 뒷좌석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맞는 것인가?
잘 모르는 최서아는 그렇다고 치자.
‘강천 저놈이 저렇게 웃는다고?’
저렇게 마냥 흐림 하나 없이 마냥 밝게 웃는 모습은 철민조차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태운이 놈이 있었을 때도 저렇게까지는 안 웃었던 것 같은데…….’
“아!”
그때, 철민의 차를 발견한 강천이 손을 흔들었다.
“교관님!”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강천의 모습은 철민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우욱 ―
강천의 과하게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마주한 철민은 자기도 모르게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아냈다.
‘어우 씨… 난 또 왜 이래.’
그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여보, 뭐 해?
―드라마 봐요.
―무슨 드라만데? 장르가 뭐야?
―로맨틱 코미디요.
―…우욱!
―…왜 저래 저 양반…….
그래, 오글거림.
철민이 견디지 못하는 오글거림이 저 밝은 표정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쾅 ― !
괜히 심통이 난 철민이 차 문을 거칠게 닫으며 내리면서 씩씩거렸다.
“너네 뭐해? 토벌은 제대로 하고 히히덕거리는 거냐?!”
철민은 더없이 맑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흐리게 해보고자 일부러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아무리 물속에 사는 물고기라도 너무 맑은 물에서는 살지 못하는 법.
지금 철민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 당연하죠. 저 이제 여기서 마력도 안 올라요. 수치 1,400 넘겼어요.”
“저, 저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이미 철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광활한 호수에 있는 듯했다.
“…….”
겨우 하루 만에 이루기 힘든 괄목할만한 성과까지 얻었다고 하니 딱히 할 말이 사라진 철민.
아무리 미꾸라지 한 마리가 난리를 쳐봐야,
“…토벌은 얼마나 진행됐는데?”
“한 100여 마리 정도 잡긴 했는데 던전 자체가 워낙 넓어서 그건 잘…….”
드넓은 호수를 흐리게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짜 100마리 넘게 잡았네.”
“누나, 진짜 고생했어요.”
“고생은 네가 다했지 뭘. 하루 만에 성장 한계까지 오르다니 대단해. 청룡 정예 분들도 동급 던전에서 그렇게는 못 하는데.”
“누나 실력도 엄청 좋아졌어요. 뭔가 새로 태어난 느낌?”
“헤헤, 그래?”
상상 이상으로 가까워진 두 사람을 바라보는 철민의 표정은 심히 복잡해져 있었다.
‘너희들이 이렇게까지 잘 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앞으로 계속 이 분위기를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날이 막막해진 철민이었다.
* * *
한편 철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 시각.
헌터 협회 본부에서는,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협회 직원들이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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