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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65화 (65/300)

65화. 지원군이 나타남 (2)

163빌딩 초대형 화재 사고.

당시 거의 꼭대기 부근 식당, 스카이 스타에 아내와 함께 있었던 서민우 의원은 천운으로 아무런 부상이나 후유증 없이 살아남았다.

모든 것은 특임반장이라는 한 헌터 협회 직원 덕분이었다.

“하민아!”

“하민아… 어흐흐흑……!”

다시는 보지 못할 줄만 알았던 딸아이와 다시 만나게 된 서민우 의원 부부.

“…엄마, 아빠, 왜 그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부모가 엄청난 화재 현장에서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그래… 그래, 차라리 다행이야…….”

서민우 의원은 눈물을 훔치며 딸의 머리와 볼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당시엔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 그 하나와 가족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져 있었다.

자신들을 구한 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볼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며칠이 흐르고,

“아……!”

조금이지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서민우 의원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현장에서 자신들을 구한 이가 바로 한 협회 직원이라고.

‘대단한 사람이구나.’

화재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나가는 특임반장이라는 사람의 행보를 보며 서민우 의원은 가슴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벅참을 느꼈다.

‘이 사람을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없을까?’

그러나 서민우 의원은 무소속인데다가 기반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국회의원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

서민우 의원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선거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무턱대고 도움을 주겠다며 일을 벌려 놨다간 오히려 이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삐이익 ― ! 삐이익 ― !

“꺄아아아악!”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남산타워에 놀러 갔다가 다중브레이크가 발생했던 그때,

우르릉 ―

서민우 의원은 다시 한번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고 말았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다시 한번 자신과 가족들을 구해주는 특임반장의 모습을 말이다.

‘두 번이나 구원받았다.’

서민우 의원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힘이 될 수 있든 못 되든 간에 일단 해보는 거야. 까짓거 다음 선거 때 또 당선될 수 있게 잘하면 되지!’

서민우 의원은 결심을 세우자마자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협회를 직접 찾아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국회의원 서민우입니다. 혹시 특임반장님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국회의원…! 아, 그게 특임반장님이 워낙 바쁘셔서… 만나시려면 미리 약속을 잡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혹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특임반장님, 업무용 번호가 있습니다. 근데 혹시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뭔가 걱정스러운 듯한 직원의 표정.

게다가 서민우 의원이 특임반장을 언급하자,

“또 무슨 일이지……?”

“진짜 특임반장님 좀 냅둬라, 하아…….”

1층에 있던 다른 직원들의 걱정과 불만에 찬 듯한 투덜거림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서민우 의원의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협회 안에서도 인망이 두터우신 분이구나. 하긴 당연히 그럴 테지.’

씨익 ―

그런 직원들의 반응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서민우 의원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은혜를 갚으려고 그러는 거니까.”

“…예? 으, 은혜요?”

깜짝 놀란 직원이 말을 더듬었다.

“네.”

스윽 ―

서민우 의원의 시선이 주위에서 쑥덕거리는 다른 직원들을 향했다.

흠칫!

그의 시선에 놀란 직원들이 재빨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척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빙긋 ―

그런 직원들을 바라보는 서민우 의원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무나도 큰 은혜지요.”

* * *

서민우 의원과 일단 약속을 잡은 태운은 행정부서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서민우 의원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뒷조사를 하면 할수록,

“국회의원인데도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네요. 워낙에 이슈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어서… 그 흔한 행사 사진도 없어요.”

태운은 서민우라는 사람이,

“칼럼이 하나 있긴 해요. [현대판 황희정승, 서민우]… 시의원 시절에 나왔던 칼럼이에요.”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월세 집에 사는 의원이라…….”

태운이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빛냈다.

“몇 안 되는 무소속 국회의원이에요. 아는 기자 분한테 연락해봤는데, 워낙에 독자노선을 걷다 보니 여러 정당에서도 이분을 거의 주변인이나 외인 취급하고 있다네요.”

“작정하고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사람이 이분이라던데요? 전과는커녕 작은 위법 행위조차 한 적이 없고, 아내분 외에는 누구와도 비싼 음식점을 안 간다네요. 그래서 오히려 더 다른 국회의원들한테서 따돌림 당하는 듯한데…….”

“아, 이분 아직도 월세 사신대요. 차량은 아내분 명의로 하나 있고, 본인은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신다고.”

“…기자들이 그런 것도 알아요?”

“기자가 모르는 걸 찾는 게 더 빠를걸요.”

행정부서 직원들의 도움 덕분에 빠르게 그에 대해서 알게 된 태운이 고민에 잠긴 듯 가면의 턱 부분을 손가락을 툭툭 두드렸다.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는데… 정치적으로 도움을 받기엔 기반이나 세력이 너무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깨끗한 사람이라서 말이지.’

“흐음…….”

태운은 서민우 의원에게 받을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그래도 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도움을 주고 싶다는데 거절하는 건 너무 큰 손해였으니까.

아무리 협회에 대한 평판이 많이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협회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문제들을 생각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평소에 이런 것에 관해 생각해둔 것이 없었던 태운으로선 갑자기 생각하려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일단 만나보지, 뭐.’

태운은 그냥 우선 부딪쳐보기로 마음먹었다.

“도와주셔서 다들 고마워요. 다들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뭐든 시켜만 주세요!”

움찔!

눈앞의 아기새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면서 말이다.

* * *

며칠 뒤, 협회 지하에 위치한 복지시설 중 하나인 사내 카페.

그 구석진 자리에서 태운과 서민우 의원이 조우했다.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특임반장님.”

깍듯했다. 정말 국회의원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실 국회의원도 그저 한 종류의 직업에 불과했다.

선거 유세를 할 때는 세상 제일 낮은 사람이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세상을 모두 낮게 바라보는 거만하고 오만한 이들이 많아서 그렇지.

상대가 누구든 초면이라면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게 맞는 일이지만,

“과분하게도 국회의원 명함을 달고 있는 서민우라고 합니다.”

당연한 예의를 차리고 있는 서민우 의원의 행동이 세상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선 기분이 들게 하고 있었다.

그 씁쓸한 현실에 태운은 가만히 가면 뒤에서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특임반장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태운도 허리를 깍듯하게 굽혔다.

상대가 예의를 차려준다면 자신도 그만큼 차려주는 것이 또 하나의 예의였으니까.

“음료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아… 제가 사겠습니다.”

“아뇨, 제가 사야지요. 손님이신데. 뭘로 하시겠습니까?”

“아, 그럼 저는… 그냥 아이스티로 하겠습니다.”

아이스티를 주문하겠다는 서민우 의원의 말에 태운은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

“커피는 잘 안 드시나 보죠?”

“아하하하… 입맛에 안 맞더군요. 저는 그냥 달달한 게 좋습니다.”

170이 조금 안 되어 보이는 키와 순박한 인상.

그와 동시에 단정한 옷차림과 왠지 모르게 지적일 것 같은 머리와 안경.

거기에 깍듯한 예의와 친근한 입맛까지.

태운은 속으로 서민우 의원에 대한 첫인상 점수로 100점을 매기며 자신과 서민우 의원의 음료를 주문했다.

“아이스초코랑 아이스티 주세요.”

“네~ 특임반장님, 여기 처음 이용해보시죠? 특임반장님도 애 입맛이셨네요? 의외다~”

복지시설들을 관리 및 운영하는 협회 직원의 말에 태운은 머쓱한지 서민우 의원을 돌아보며 가면 뒤를 긁었다.

“…사실 저도 여기 이용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그래도 직원들 사이에서 맛이 꽤 괜찮다고 평이 좋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제가 또 공짜라면 사족을 못 써서요. 특임반장님이 사주시는 건데 뭔들 안 맛있겠습니까?”

생각보다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

“음료 나왔습니다~”

곧 음료가 나오고,

풀썩 ―

협회 내 카페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이 음료를 홀짝였다.

“역시…….”

“단맛은 진리입니다.”

씨익 ―

두 사람은 허공에서 눈빛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특임반장님과 저는 잘 맞는 것 같군요.”

“이것 참 초면에 이렇게 맞기도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초반 탐색은 끝.

곧바로 태운의 두 눈빛이 예리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움을 주시고 싶으시다고요?”

태운이 먼저 본론을 꺼내자, 서민우 의원도 진중한 눈빛을 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아마 너무 많은 사람들을 구하셔서 잘 모르겠지만, 저는 벌써 특임반장님께 두 번이나 목숨을 빚졌거든요. 저는 빚지곤 못 사는 성격이라서.”

서민우 의원의 말에 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사죄드리겠습니다. 제가 의원님에 대해서 알아본 바로는 실례인 말인 줄은 알지만, 의원님은 국회의원으로서 힘이 그닥 없으신 것 같더군요.”

태운의 말에 서민우 의원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

순간 태운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혼자가 아니라고 하심은…….”

“지금까지 특임반장님께 도움을 받은 분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태운의 동공이 작게 흔들렸다.

“저는 당연히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혀 도움을 받고자 한 일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도 생각해주세요.”

서민우 의원은 품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보였다.

“특임반장님께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

서민우 의원은 가면 뒤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는 태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모든 전문 인사들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저 같은 국회의원을 비롯해 변호사, 경찰, 의사, 군인… 심지어 누구나 알만한 대형 언론사 사장님도 이번 다중 브레이크 사건으로 인해 특임반장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다더군요.”

“이, 이게 다…….”

아무리 태운이라도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팔락 ―

수첩을 넘기는 태운의 손끝이 조그맣게 떨리고 있었다.

팔락 ― 팔락 ―

빼곡히 적힌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그들의 직업과 전문 분야.

“대체 어떻게…….”

말을 잇지 못하는 태운에게 서민우 의원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모았습니다.”

“……!”

털썩 ―

갑자기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는 서민우 의원.

이에 당황한 태운이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의, 의원님? 갑자기 무슨……!”

“특임반장님께서는 앞으로 더 큰 일들을 해나가실 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모로 부딪히는 일들이 많겠지요. 정작 제 주변의 몇몇 국회의원들만 봐도 대놓고 협회를 까고 있으니까요.”

“……!”

서민우 의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진중한 눈으로 태운을 올려다보며 대화에 쐐기를 박았다.

“저희가 기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예……?”

“저희를 딛고 올라서십시오. 특임반장님!”

서민우 의원의 결연한 눈빛을 마주한 태운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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